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류백희 조명디자이너

아직 지치지 않았어요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110호 2017.02.23
뿌 검색을 해봤더니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무대, 음향디자이너로도 나와 있더라고요.
류 왜 그렇게 된 건진 모르겠는데 그건 잘못된 거예요. 한 적 없어요.
뿌 예전에는 다른 파트 작업도 하셨나, 했어요. 작업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류 한 20년 됐어요. 처음엔 배...

뿌
검색을 해봤더니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무대, 음향디자이너로도 나와 있더라고요.
류
왜 그렇게 된 건진 모르겠는데 그건 잘못된 거예요. 한 적 없어요.
뿌
예전에는 다른 파트 작업도 하셨나, 했어요. 작업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류
한 20년 됐어요. 처음엔 배우 활동을 6년 했어요. 연희단거리패에 37개월 있었고.
뿌
개월 수까지 정확하게. (웃음)
류
네. 37개월이요. 연희단은 배우가 스태프도 하고, 뭐든 다 같이 하잖아요. 그 때 조명이 하고 싶어서 그 쪽을 했어요.
뿌
20년 전에 여성분이 조명 일을 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류
제 사수가 구윤영 디자이너인데, 당시엔 흔하지 않았던 여성 조명디자이너였죠. 제가 배우 할 때 그 분이 동숭아트센터 조명감독이었는데 무작정 찾아가서 조명 좀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 조명을 접한 게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연극반이었는데, 학교 조명 장비를 저희가 운영했어요. 다른 써클이 행사 같은 걸 할 때 조명 작업을 해주는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게, 주먹구구식으로 한 건데, 그렇게 조명 작업을 했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썼던 조명기기들이 90년대 후반에 소극장에 작업하러가면, 똑같이 다 있었어요. (웃음) 배우만 할 때는 관심이 없어서 극장에 무슨 조명기가 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뿌
연극반 시절까지 합하면 굉장히 오래 연극을 하셨네요.
류
그렇죠. 지금까지 공연 쪽 일 말고 다른 걸 해본 건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현장으로 바로 나와서 배우생활하고 조명 일을 했으니까요. 제가 처음 조명 배울 때만 해도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2001년에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인턴을 하면서 눈도 넓어졌고, 듣는 것도 많아졌고, 또 다른 사수인 이인연 감독님도 만났어요. 이감독님 통해서 무용도 많이 접하게 됐고, 지금은 무용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뿌
제가 인터뷰했던 분들 중에 완전 현장파(?)는 처음이에요. 어떤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아서 있었던 어려움이랄까, 그런 거 없으셨어요?
류
없었어요. 학교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디자인을 하는데 졸업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제가 기술적으로 뭔가를 더 배우고 싶은 것도 없었고요. 만약 학교를 간다면 직접적으로 일과 관련된 과 말고 다른 과를 가고 싶었어요. 국문과 같은 데. 연극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공연이 어쨌든 텍스트라는 걸 바탕으로 하고, 그 안에 문학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그걸 배우면 좋지 않을까, 그랬죠. 아니면 미술 쪽이나.
뿌
하긴 생각해보면 ‘디자인’을 배운다는 게 좀 이상한 말이기도 하죠.
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먼저 하셨던 분들의 경험치나, 이론을 배울 수 있어요. 저는 그걸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거죠. 오히려 출신, 학교, 라인, 이런 게 없어서 일하기 더 편했을 수도 있어요. (웃음)
뿌
요즘에는 이런 케이스가 참 드물 것 같긴 해요.
류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근데 잘 못 버티는 것 같아요. 오히려 별 생각 없이 크루 생활하던 친구들이 살아남고, 하다 보니 눈도 트이고, 더 관심도 생기고, 그러다보니 디자인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처음부터 디자인 해야지, 이러고 발 들이는 친구들은 잘 못 버티더라고요. 저도 처음부터 조명디자이너가 돼야지, 그러진 않았어요. 조명도 연극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그냥 연극작업을 한 거였죠. 하다보니까 배워지는 게 있었고, 그런 게 하나둘씩 쌓이고,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뿌
조명은 어떻게 보면 특별한 계기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하신 것 같은데, 배우는 왜 접으시게 된 거예요?
류
연희단은 원체 공연이 많으니까 배우 활동을 많이 하긴 했었는데, 저 스스로 한계를 앞질러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배우는 누구나 ‘니마이’(주인공) 하고 싶어 하잖아요. 어렸을 때니까, 스스로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니마이’에 대한 동경이 있었죠. 어느 순간 내가 십수 년을 해도, 배우는 계속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동경하고 상상하는 배우는 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훅 오더라고요.

뿌
작업을 굉장히 오래 하셨는데 초창기 작업 얘기 좀 해주세요.
류
저는 크루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고, 데뷔를 금방 한 편이었어요. 그때도 이미 연출을 오래 하신 기국서, 박근형 선생님들이랑 작업을 많이 했고, 김낙형, 장우제 같은 연출들이 이제 막 처음 연출하고 그럴 때 였어요. 서로 같이 뭘 모르면서 싸우면서, 헤매면서 그렇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뿌
이미 연극 작업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데뷔를 빨리 하셨나 봐요.
류
그런 것도 있고, 아무래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고 (웃음), 소극장 작업이라는 게 비싼 디자이너들이랑 작업하기 힘든 여건이잖아요. 그리고 당시만 해도 소극장 연극에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부족했고요.
뿌
연출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일종의 테크니션 역할이었던 건가요?
류
그렇죠. 규모가 좀 되는 프로시니엄 극장은 그렇진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소극장 작업은 좀 그랬어요. 제가 디자이너 초창기였을 때 무대, 조명 디자인과가 막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졸업생들이 현장에 나오면서 디자이너가 많아지고, 소극장에서도 디자인 개념이 더 잡혀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리 열악한 프러덕션에서도 디자이너들이 다 있고, 디자이너로 대접을 하잖아요. 그게 맞는 거죠.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나, 공동의 작업자로서 인정해주는 것도 그렇고, 많이 좋게 바뀐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는, 연출 선생님들이 스태프를 하대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연출이 나이 어린 스태프들에게도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서로 동등한 작업자로 대화를 나누니까 공동의 창작물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예전엔 사람을 하대하니까 일도 그런 식으로 됐거든요. 그게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당시엔 문화였고, 저 역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예전에는 무대디자이너 정도만 스태프지 나머지는 뭐… 조명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죠.
그리고 그때랑 비교해보면 전체적으로 공연계가 많이 발전을 한 것 같아요. 외국에서 공연을 보기도 하고, 외국에 무용 공연을 하러가는 일도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빨리빨리 잘 하는 것 같아요. (웃음) 희곡도, 물론 안 그런 작품도 있지만, 좋은 작품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젊은 작가들도 많이 생기고, 창작극도 많아졌죠. 근데 희곡을 영화 시나리오처럼 쓰는 게 많아졌어요. 그게 참 안타까워요. 영화장면처럼 나열해놓는 희곡이 갈수록 많아져요. 물론 연극이 뭐든 할 수 있다, 라고 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걸 1장, 2장, 3장 주르륵 늘어놓으면 그걸 어떻게 다 주워 담아요? 특히 소극장 작업에서는 어렵죠.
뿌
(웃음) 그런 면이 있죠. 말씀하시는 게 되게 직설적이신 것 같아요. 작업할 때도 그러세요?
류
네. 돌려서 얘기 못해요. 그래서 가끔 다투기도 하죠.
뿌
다투실 때, 주로 이유가 뭔가요?
류
작품을 할 때 어떤 방향으로 가기로 한 게 있잖아요. 그 방향을 봤을 때 이런 지점을 이렇게 가는 건 과한 거 같다, 혹은 부족한 거 같다, 라고 얘기하죠. 말로는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놓고 실제로는 그렇게 가지 않을 때 (다투게 될 때가 있죠). 초장기에는 많이 그랬는데, 나이 먹고 그러면서 지금은 많이 덜해졌죠. 끝까지 들어주고 끝까지 참는 게 있어요.
뿌
디자인하면서 뭘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류
작품이죠, 뭐. 연극으로 얘기를 하면, 희곡을 쓴 작가랑 그걸 공연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연출가가 관객들이랑 소통하고 싶은 게 있는 거잖아요. 그걸 충분히 들어주고, 이해 안 되는 지점이 있으면 질문하고, 거기에 제가 보탬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서 애쓰는 거죠. 빛으로 더 화려한 걸 만들고, 그런 건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이 가는 것 안에서, 저도 필요한 한 파트로서 협업하는 거니까요. 저도 조금 어렸을 때야 어느 장면에서, 어느 라이트로 가야된다, 막 다투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뿌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얘기일 수 있는데 무용은 조명이 아무래도 좀 더 화려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연극에 비해서는 더 잘 보이기도 하고요.
류
무용도 작품마다 다른 것 같아요. 화려한 걸 선호하는 분도 있고, 담백한 걸 좋아하는 분도 있죠. 근데 무용은 세트가 거의 없기 때문에 조명이 시각적으로 많이 들어오죠. 연극은, 물론 빈 무대 작품도 있지만, 세트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조명이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연극하시는 분들 중에 조명을 볼 줄 모르는 경우도 되게 많아요. 세트를 비추는 빛이 잘 나온 건데, 세트가 예쁜 거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때 되게 속상한데 어쩔 수 없는 숙명이죠, 뭐. 연출가분들 중에 조명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알아보지만, 모르는 분들이 태반이에요.
뿌
최근에 무용 공연을 더 많이 하시게 된 건 그런 이유도 있나요?
류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에요. 먼저 무용 쪽 작업이 선약이 돼서 스케줄이 잡혀버리는 경우가 많은 거죠. 가끔 어렵게 같이 연극했던 분들한테 농담 삼아 그런 얘기를 들어요. “지금 너 불러서 작업 할려면 조명비 얼마 있어야 돼?” (웃음) 무조건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런 부분도 현실적으로 있죠. 후배들이 연출로 입봉할 때 제대로 된 디자인료 없이 작업할 때도 있죠. 최근에도 그런 작업을 했고요. 술값이 더 들어요. (웃음)
그리고 무용도 하다보니까 이해도가 생기잖아요. 처음 할 때는 이해는 안 되는데 그림만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까 힘들었어요. 근데 하다보니까, 끊임없이 대화하다보니까 무용인들만큼은 아니어도, 밖에서 바라보는 제 입장에서 시각이 생기고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편해지더라고요. 초반엔 얼마나 시행착오가 많았겠어요.

뿌
무용이든, 연극이든, 내용적으로는 어떻게 접근하세요?
류
이틀 전에 디자인 하고 싶어 하는 후배랑 술 먹으면서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좀 창피한 얘긴데, 실은 연습을 보거나 연출가 얘기를 듣기 전에 희곡을 먼저 읽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희곡을 보통 먼저 받잖아요. 정말 너무너무 바빠서 못 읽을 때도 있지만, 안 읽을 때가 많아요. 그냥 듣고 싶어요. 희곡을 먼저 읽어버리면 재단하는 게 생겨서, (그 프러덕션에서 하고자 하는 걸 ) 오롯이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스태프 회의를 하면 콘셉트를 먼저 물어보잖아요. 미리 정해두고 얘기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콘셉트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미리 콘셉트를 정해놓고 거기에 작품을 맞추고 싶지 않아요.
뿌
그러면 작품 제안을 받으면 무조건 하세요? 희곡을 읽고, 재미없겠다 싶어서 거절하는 경우는 없으세요?
류
스케줄 때문에 거절한 적은 있어도, 작품 때문에 거절해본 적은 없어요. 뭐든 다 공부가 돼요. 물론 저도 어떤 희곡이 좋고, 어느 연출가가 잘 하고, 이런 건 알죠. 하지만 다 그 나름대로의 배울 게 있죠. 초짜 연출한테도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할 수 있는 상상이나 사고는 그 사람이랑 작업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거든요. 물론 결과물이 섭섭할 수는 있어도 (웃음) 과정은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그걸 배우는 거죠. 연출가 중에서도 100을 미리 다 짜시는 분들도 있지만,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분들도 있어요. 그 안에서 저도 조명으로 플러스 되는 걸 찾고 이야기를 얹어가는 거죠.
뿌
그렇게 초짜 연출? 혹은 후배랑 작업하면서 깜짝 놀랐던 적 있으세요?
류
쉽지 않아요. (웃음) 연출가에 대해서 말고, 지금은 그런 경우가 많이 없어졌지만, 전문가가 아닌 그냥 극단의 단원이 한 조명을 보고 놀랄 때는 있었어요. 저만해도 조명에 대한 1,2, 3,4, 기본 룰이 있잖아요. 저 빛은 그런 룰에 들어올 수 없는 건데, 야~, 하고 감탄할 때가 있어요.
뿌
오히려 조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군요.
류
1, 2, 3, 4가 있다 보면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근데 실은 디자인이란 건 기본이 되는 1,2, 3, 4 안에 그런 숨구멍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요즘은 그런 걸 찾기가 쉽지 않아요. 틀에 갇히는 게 있죠.
그리고 하면 할수록 어떤 스페셜 (라이트)를 늘어놓는 것보다 기본 (라이트)만으로도 작품이 다 보이고 들리면 된다, 라고 생각을 하니까, 빛들이 암만 화려하면 뭐할까, 싶어요. 제 지향은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는데, 또 상대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 절충을 하게 돼죠. 때로는 무용이든 연극이든, 연습실에서 너무 잘 보일 때가 있어요. 이미 너무 감동적이고 충만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내가 극장이라는 공간에 가서 빛을 만들어야 되는 게 너무 어렵죠. 엄청 조심스럽고요. 내 빛이 더해져서 관객들하고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죠. 우리가 하는 일이 관객을 만나려고 하는 일이니까요. 관객이 배우만 만나는 게 아니잖아요. 스태프인 저도 같이 만나는 거죠.
뿌
단순한 빛을 지향하게 된 것 말고 또 작업하면서 바뀐 점이 있으세요?
류
나이를 먹어가니까, 작품 이전에, 작품 외적으로 안무자나 연출가, 작가님들에 대한 어떤 모습들을 보게 돼요. 예전에는 그걸 볼 줄 몰랐어요. 그게 작품에 직접적으로 투영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게 쌓이다 보면 소통이 잘 되고, 작품 얘기하는 게 더 쉬워지는 게 있더라고요.
뿌
일을 정말 많이 하시는데 좀 재미없다, 그럴 때 없으세요?
류
아직 지치지 않았어요. 스케줄이 없어서 쉴 때 말고, 스스로 쉰 적은 없어요. 공간이 다르면 빛은 매번 다르거든요. 또 같은 극장에서 공연을 해도 세트가 어디에 위치해 있냐에 따라서 빛의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빛이 달라져요. 제 눈엔 그게 보이죠. 똑같은 극장에서 똑같이 빈 무대로, 비슷한 무대 공간을 쓰는 작업을 하게 되면 빛이 비슷해지니까 똑같지 않으려고 궁리를 하게 되죠. 그러니까 지칠 수가 없어요. 내가 만드는 빛이지만 매번 할 때마다 되게 신기해요.
뿌
그렇게 안 지치는 비결이 뭘까요?
류
저는 극장에서 노는 게 제일 행복해요. 빈 무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상상이 막 가요. 셋업하기 전에 비어있는 무대 보는 것도 좋고, 무용 같은 경우는 빈 무대가 많으니까 점심 먹고 한 십분 일찍 들어가서 그 빈 무대를 그냥 보고 있어요. 그게 제일 재밌어요. 저기서 내가 무얼 할까, 내가 뭘 하려고 준비를 했을까, 혼자 상상을 해요. 재밌어요. 극장에서 놀고 일 끝나고 술 마시는 게 제일 행복해요.
뿌
재밌다, 이길 수 없는 대답이네요. 그럼 일 없으실 때는 뭐하세요?
류
되게 창피한 얘긴데요, 만약 내일 스케줄이 없다, 그러면 오늘 술 진탕 먹고 그 다음 날은 종일 자요. 요즘은 스케줄이 많아져서 못 그러는데 전에는 여행도 많이 갔어요. 여행 가는 건 좋아하는데 뭐 막 보러 다니고 이런 건 안 좋아해요. 어디 가서 경치보고 술 먹는 거 좋아해요. 실은 다른 데다 에너지를 쏟는 게 아까워요.
뿌
다른 데 에너지 쏟고 싶지 않아서 매일 같은 옷 입는다는, 페이스북 경영자랑 비슷하네요.

뿌
후배들한테 자주 하게 되는 얘기가 있으신가요?
류
이런 건 술 먹어야지 나오는 얘긴데. 아까 작품 할 때 뭐 중요하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셨잖아요. 빼먹은 게 있는데 배우든, 무용수든, 가수든, 제가 하는 작품에 출연하는 사람은 무조건 예뻐야 돼요. 제 빛을 받으면 슬퍼도 멋있어야 되고 불행해도 멋있어야 돼요. 그런 빛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이런 식으로) 제가 갖고 있는 조명에 대한 생각, 관점, 아이디어, 때로는 잔소리, 이런 걸 술 먹으면서 후배들한테 정말 얘기 많이 하는 편인데, 막상 판 깔아주니까 어렵네요.
뿌
술 한 잔 하면서 인터뷰 할 껄 그랬어요. (웃음) 자주 얘기하시는 관점이 궁금한데요.
류
네가 연습실에 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그 사람이 하고자하는 걸 들어주는 거, 봐주는 거, 기다려 주는 거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질문하고, 그런 다음 참여자로서 니 얘기도 하고. 그리고 극장에서 작업할 때 라이트 하나 못 달고 큐 하나 못 만들어도 되니까, 페이스 조절을 잘 하라고, 어수선 떨지 말고 잘 보고 잘 들으란 얘기 많이 해요. 어수선 떨면 보일 것도 안보이거든요. 또 조건이 좋은 공간에 있는 후배들한테 넌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안 늘 것이라는 얘기를 해요. 재료가 없을수록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우선순위를 따지고 버릴 건 버려야 되잖아요. 좋은 여건에 있으면 버리질 못하거든요. 그렇게 버리고 버리다보면 가장 들려주고 싶고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게 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본질만 남겠죠. 그것만 보여주고 들려줘도 되는 거죠. 사람이 한꺼번에 얼마나 많은 걸 볼 수 있겠어요.
뿌
갑자기 좀 뜬금없지만, 인터뷰 내내 되게 애정이 느껴져서요, 연극을 왜 좋아하세요?
류
이유가 없어요. 무대 위에 있었을 때는 남 앞에 서서 뭔가를 하는 게 좋았어요. 되게 떨리고 긴장 됐지만 끝나고 났을 때 어떤 뿌듯함이 있었고요. 지금은 무대 위에 서지는 않지만 나대신 박수 받는 배우들을 보고 있는 게 너무 흐뭇해요.
뿌
마지막 연극데이트 공식 질문입니다. 류백희 디자이너한테 연극이란?
류
별로 특별할 게 없어요. 계속 연극 안에서 허우적대고 살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늘상 거기 있으니까 별스러운 게 없는 것 같아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류백희(조명디자이너)

주요작품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한국인의 초상>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궤짝> <물의 노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