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종무
연극이 나를 일깨워줘요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116호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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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난 이종무 배우와 근황토크, 요즘 <갈매기>에서 뜨리고린 역을 맡아 연습하고 있단다.
종무 아, 이제 뜨레쁠레프는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웃음)
뿌 이제 본격 인터뷰를 시작해볼까요?
종무 이거 은근히 떨린다. <...
종무 아, 이제 뜨레쁠레프는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웃음)
뿌 이제 본격 인터뷰를 시작해볼까요?
종무 이거 은근히 떨린다. <...
오랫만에 만난 이종무 배우와 근황토크, 요즘 <갈매기>에서 뜨리고린 역을 맡아 연습하고 있단다.

- 종무
- 아, 이제 뜨레쁠레프는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웃음)
- 뿌
- 이제 본격 인터뷰를 시작해볼까요?
- 종무
- 이거 은근히 떨린다.
- 뿌
- 편하게 하심 돼요. 너무 많이 들었던 얘기일 텐데, 되게 젠틀하고 착해보이잖아요.
- 종무
- (긍정의 미소.)
- 뿌
- 인정하시네요. (웃음) 실제 성격은 어때요?
- 종무
- 젠틀한 거 같애. (웃음) 그건 성격이니까. 그런 얘길 너무 많이 듣기도 하고. 착한 거는 잘 모르겠어. 특히 와이프는 그런 얘기 들으면 진짜 싫어하지.
- 뿌
- 밖에서 가면 쓰고 다닌다고?
- 종무
- 다른 사람들이 남편 착하다 그러는데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고. 내가 말을 워낙 나긋나긋하게 해서 그런 것 같아. 지금은 좀 극복했는데 트라우마라고 할 정도로 엄청 콤플렉스가 심했지. 왜 이렇게 말을 나긋나긋하게 하냐고 연출한테 지적을 정말 많이 받았어.
- 뿌
- 그랬을 것 같아서 질문했어요. 말투나 목소리, 외모에서 그렇게 느껴지니까요. 배우가 아니었으면 되게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배우로서는 스트레스가 좀 됐을 것 같아요.
- 종무
- 배우만 안 했으면 이렇게 맘 고생을 했을 일이 없을 텐데, 그 생각을 진짜 많이 했지. 처음 연극할 땐 배우를 하려면 성격을 바꿔야 되나? 고민도 많이 했고. 지금은 많이 정리됐어.
- 뿌
- 어떤 시간을 거쳐서 정리됐는지 얘기 좀 해주세요.
- 종무
- 내 안에는 그런 부드러움 말고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걸 연극을 하면서 점점 알게 됐고,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살아온 걸 인정하지 않고서 뭘 다른 걸 할 수가 없단 걸 알았어. 연출이 요구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내가 살아온 것들을 버리고 다르게 한다, 가 기본적으로 출발이 잘못됐다라는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어. 나 자신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출발을 하면, 어느 순간 연출이 원하는 것, 혹은 내가 꺼내고 싶은 다른 면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게 됐어.
- 뿌
- 지금은 극복이 됐다고 생각하세요?
- 종무
- 나름은.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게 98년도니까… 연기한지 근 이십 년이 됐네.
- 뿌
- 이십 주년 기념 공연 해야겠네요. (웃음)
- 종무
- 야, 어떻게 버텼나, 싶어.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서 연기를 좀 즐길 수 있게 된 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쯤? - 뿌
- 극복이 됐다 싶다가도 또 어떤 상황이 닥치면 또 이게 문제인가, 그런 생각이 들고, 반복이 됐겠죠.
- 종무
- 맞어. 근데 한 순간 작업이 재밌어지고 즐거워지더라고. 잘하고 못하고는 그때그때 다르고, 매번 잘할 수도 없지만, 예전에는 괴로웠던 작업을 어느 순간 즐길 수 있게 됐어. 지금도 프러덕션 상황에 따라서 그럴 수 없을 때도 있긴 하지만.
- 뿌
- 꼭 착해 보이는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배우들은 고정된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게 싫잖아요. 비슷한 역할로 소모되기도 하고. 자신의 다른 면모를 발견해주는 작품이나 연출을 만나면 반갑고.
- 종무
- 아무래도 고정된 이미지가 있지. 근데 지금 나는 내 스스로, 누가 믿든 안 믿든, 나한테는 다양한 이미지가 있다, 라고 생각하고 있어. 예전에는 부드럽고 선하고, 좋게 보면 지적(知的)이고 (웃음) 그런 이미지로 많이 보였다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역할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나 스스로도 어떤 역할이든 내 안에서, 나답게 할 수 있겠다 싶어.
맨날 경계하는 건 있지. 나답게 한다는 게 나 편한 대로, 익숙한 대로 하는 건 아니잖아. 그 사이에서 늘 고민하면서, 그래도 내 안에는, 사람은 누구나 다 여러 가지 면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나답게 하려고 해. 너무 맘 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웃음) 그 믿음을 갖고 연기를 하면 연출하고도, 배우하고도 즐겁게 작업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커졌달까? 10년 전만 해도, 작업 하나 하면, 이거 하고 그만둬야지, 그런 생각 진짜 많이 했어. - 뿌
- 이 문제 때문예요?
- 종무
- 응. 너무 성격에 안 맞았어. 연기는 뭔가 뻔뻔하게 막 해야될 것 같은데 너무 소심하고 여리니까 연출, 상대 배우를 만나서 뻔뻔해지는 게 너무 어려운 거야. 지금은 그래도 여리진 않은 것 같은데. (웃음) 이런 사람들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은데, 초기에 그런 생각 많이 했어.
- 뿌
- 꼭 연기적인 면 뿐만이 아니라 배우들한테 외향적이길 요구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 종무
- 어렸을 땐 정말 내성적이었어. 고등학교 때까지 여자 앞에서 말을 못했으니까.
- 뿌
- 인기 진짜 많았겠다. 잘 생겨가지고 말수도 없고. (웃음)
- 종무
- 존재감 자체가 없었어. 중학교 때 워낙 얌전하고 의사표시도 안하고 그러다가, 외향적인 애들이 너무 부러운 거야. 나도 그러고 싶어서 어느 날 일부러 장난도 좀 치고 까불었어. 그날 선생님이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그러더니 “너 무슨 일 있니?” 너무 걱정을 하시는 거야. 내가 답을 잘 못하니까. “종무야, 선생님한테 말하기 부담스러우면 니가 편한 선생님하고 얘기를 해볼래?” 그러셔. 내가 밝아지려고 했던 게 사건이었던 거지. (웃음)

- 뿌
- 좋으신 선생님이었네요. 근데 그렇게 얌전한 사람이 어떻게 연기를 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 종무
- 그러게. 대학 동아리에서 시작했어. 그때도 연기, 이런 거 한번도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었어. 과 행사가 있어서 연극은 모르지만,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고 구성원으로 일조하고 싶은 마음, 약간의 건전한 마음으로 하게 된 거지. 그때가 연극동아리가 쇠퇴하던 때여서 신입생들이 연극반에 들어가겠다 그러면 선배들이 막 환영해줬거든. 근데 내가 연극반 하겠다고 했더니 선배들이 걱정하는 거야. 너 정말 괜찮겠니? 그러면서. (웃음) 동아리 연극은 스파르타잖아.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땀 흘리는 거에 매력을 느꼈지. 그리고 별 생각 없이 살았는데 연극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경험을 조금씩 하게 된 거 같아.
- 뿌
- 동아리를 재밌게 하는 거 하고 직업적으로 연극을 하겠다는 건 굉장히 큰 차이가 있잖아요.
- 종무
- 대학교 4학년때 동기들은 다 언론고시 준비한다고 도서관에 다 들어가있는데, 안 들어가지더라고.
- 뿌
- 공부하기가 싫었구만. (웃음)
- 종무
- 그것도 맞아. 공부도 잘 못했고. 근데 다들 상식, 토익 공부를 하는데 내가 왜 이유 없이 저기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 되지? 막연한 질문이 들었어.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서 뭘 해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연기를 조금 더 해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배우가 되겠다는 건 아니었어. 연기가 나를 좀 더 열어준다,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그런 거였지. 그래서 휴학을 하고 1년동안 연기 학원을 다녔어. 마침 IMF가 터져서 집에선 그거 때문에 취직을 늦게 하려고 휴학하고 취직 공부 하는 줄 아셨지.
- 뿌
- 전에 김승언 배우 인터뷰할 때도 이 비슷한 얘기했는데. IMF가 참 여러 가지로 영향을 끼쳤어요.
- 종무
- 1년을 정말 열심히 했어. 1년을 온전히 마친 사람이 5명인가 밖에 안됐고 지금껏 연기하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그런 게 스스로 기특하기도 해. 아무튼 1년정도 해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고. 이건 내 길이 아니다. 그러고 공부가 하고 싶어져서 복학을 했는데, 얼마 안 되서 아비뇽 연극제에 참여할 배우를 모집하는 공고를 본 거야. 거창연극제에서 반년쯤 일도 하고 연극도 하고, 프랑스에 가는 거였어. 연기할 생각은 없었는데 프랑스에 가고 싶어서 복학한지 일주일만에 다시 휴학을 하고 거창에 내려갔지. 그게 본격적인 시작이 된 거야.
- 뿌
- 소심하다고 하는데 소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결정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 종무
- 그런가? 결정적인 순간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진짜로 생각 없이 살다가 대학에 왔는데, 주변 친구들은 기자가 되겠다, 피디가 되겠다, 다들 너무 명확한 거야. 난 뭘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근데 연극이라는 게 그런 생각을 자꾸 일깨워준다고 해야 되나? 넌 누구냐? 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거지. 다른 인물을 연기하려면 자신의 주관이 있어야 되는데, 주관 없이 살다가 연기하면서 그런 문제를 경험하다 보니까, 조금 더 해보고 싶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미련이 있었던 것 같아. 프랑스에 가서 공연하고 돌아와서 다시 복학을 했는데, 그때 언론인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졌어. 졸업을 했는데 딱히 배우로서 뭘 해보겠다는 것도 없었고 취직도 아닌 거 같고, 이런 와중에 같이 학원 다녔던 사람들이 만든 극단이 있어서 거기에 들어갔어. 그게 2001년이었어. - 뿌
- 아나운서 같은 거 했으면 되게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신방과 다니면서 구체적으로 꿈꿔본 적은 없어요?
- 종무
- 없어. 고등학교 때까진 꿈이 공무원이었어. 아버지가 공무원이셨거든. 연극하면서 한동안 선배들한테 공무원 하면 진짜 잘 할 꺼 같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 (웃음) 왜 여기 와 있냐고.
- 뿌
- 나빴다, 상처받았겠는데요.
연극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요.

- 종무
- 그래서 몰래 십 년 했지. 지나고 보니깐 알면서도 모른 척 하셨던 것 같아.
- 뿌
- 그 십 년 동안 집에선 아들이 뭐하고 있는 줄 아셨던 거예요?
- 종무
- 매일 새벽같이 나가서 밤 늦게 들어가니깐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이 간첩인줄 알았다고. 대충 이렇게 저렇게 둘러대기도 하고. 거창에 내려가 있을 때는 연극관련 일을 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배우인 줄은 모르고 기획 쪽 일을 한다고 생각하셨을 꺼야.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는 몰래 했고.
- 뿌
- 엄청 음흉하네요.
- 종무
- 더 무섭지? (웃음) 대충 아셨겠지. 되게 감사한 건 흔히 듣듯이 호적에서 파버린다, 그러진 않으셨어. 아버지가 가끔 취하시면 불러다 앉혀놓고 니가 PD를 했어야 되는데, 그러셨어. 지금도 가끔 니가 연극을 안 했어야 되는데, 그러셔. 이십 년째 연극하고 있는데 그러시면 욱하기도 하고 서운할 때도 있지.
처음으로 제대로 말씀 드렸던 건 연극원 시험에 붙고 나서였어. 엄청 고민해서 말씀 드렸는데 의외로 좋아하셨어. 정체를 밝혀줘서 고맙다 (웃음) 는 게 있었고, 대학원이라 그러니까 교수되는 건 줄 아셨던 것 같아. 열심히 하라고 3년동안 지원도 해주시겠다고. - 뿌
- 부모님이 공연 보러오세요?
- 종무
- 아버진 딱 한 번 오셨어. 엄마는 두 번. 나름 극장도 번듯하고 역할도 괜찮은 공연이어서 오시라 했는데, 아빠는 안 오시고 엄마가 친구 분들하고 처음 공연을 보러 오셨어. 지갑에서 3만 원인가, 4만 원 꺼내주면서 밥 먹으라고… 아이고 눈물이 날라고 하네. 그 이후에 아버진 다른 공연 보러 오셨었고.
잠깐 쉬는 시간. 필자가 연출로서 배우의 연기에 대해 갖고 고민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 종무
- 나의 고민이기도 한데 연기를 가르치면서 무대에 서는 게 쉽지가 않아. 어떻게 배우가 매번 같은 연기를 살아있게 할 수 있느냐, 를 가르칠 땐 설명해줄 수 있어. 근데 막상 내가 무대에서 하면 안 되는 게 많거든. 이론과 실제를 일치시켜가는 게 나의 목표 중 하나야. 어떻게든 연기, 티칭, 두 개를 다 잘하고 싶은데, 둘 중에 하나에 더 집중을 해야 되나, 이제 그런 선택을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작년부턴 그런 고민이 좀 들기도 해. 근데 아직은 둘 다를 붙잡고 좀 더 바둥거려 보자, 그러고 있어.
- 뿌
- 작업할 때 뭘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 종무
- ‘이 인물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나의 충동은? 관객들한테 내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를 지금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 어떤 인물을 보면, 이렇게 하고 싶어, 라는 게 생기길 바래. 그게 없을 때 수동적으로 되니깐. 연출의 해석, 작가의 의도도 있지만, 거기에서 좀 벗어나서 나라는 배우의 해석을 가지고 동료 작업자들을 만나고 싶은 거지. 그것이 동료, 관객들한테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도 찾아가는 거고. 내 해석이 너무 연출하고 안 맞고 관객들한테 설득력이 없으면 막말로 나의 예술 세계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니까 그 부분을 고민해야 되는 거지. 예술이라 그러면 좀 웃기지만.
- 뿌
- 작업 내에서 배우로서의 생각을 얘기해줬는데요. 조금 더 폭을 넓혀서 연극인으로서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배우조합 ‘사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 종무
- 그거 때문에 힘들어죽겠는데. (웃음) 지금은 거의 무보수로 하고 있는 일인데 하게 된 계기는 딱 하나야. 강의를 나가다 보면, 특히 지방대를 가면 “서울 가서, 대학로에서 연극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질문을 정말 많이 받게 돼. 해줄 수 있는 답이 없어. “서울에 혹시 연고 있니? 없어? 일단은 알바라도 하면서 돈을 벌고 방을 구해서…” 이런 얘기 밖에 해줄 수가 없어. 연영과는 그렇게 많고 젊은 애들은 매번 쏟아져 나오는데, 나름 선배, 선생으로서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려면 일단 올라와서 알바부터 구하라는 말이 너무 어이가 없잖아. 그러지 않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나름의 마음으로 하는 거지.
- 뿌
- 선배로서의 일종의 사명감이네요.
- 종무
- 사명감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고. 그리고 조합에서 계속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있잖아. 연극인 복지재단이나 연극센터에서도 배우 재교육을 하면서 많이 정착이 됐는데, 대학 졸업하고 나와서도 계속 훈련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 나도 뭔가 배우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듣고 싶고. 그런 게 좀 정착이 되면 좋을 것 같아서 하고 있지. 협동조합 모토에 ‘건강한 연극 생태계’ 이런 문구가 들어있는데 그런 데 좀 일조하고 싶다, 라는 생각도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즐거움이 있는 거지.

- 뿌
- 마지막 질문 전에 덧붙이고 싶은 얘기 있으세요?
- 종무
- 요즘은 배우로서 작업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 알아가고 있는 거 같아서 좋아. 늘 강의랑 작업을 바쁘게 해왔는데, 그러면서도 이 두 개 다 사라질 수도 있다, 라는 두려움이 약간 있었어. 근데 딱 작년 연말, 올해 초에 그렇게 된 거야. 강의도 없어지고 작업도 정해진 게 없고. 아, 결국 이런 시간이 오는 구나, 걱정을 했는데, 막상 스트레스가 심하지는 않더라고. 뭐가 싹 없어지니까 오히려 그 안에서 뭔가 막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좋았어. 나 스스로가 또 성장했구나, 이런 느낌?
- 뿌
- 신기하네요. 앞으로도 일이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싶어서 되게 불안할 꺼 같거든요.
- 종무
- 예전엔 그런 두려움이 되게 컸고 그거 때문에 더 열심히 치열하게 했던 것 같아. 막상 그 순간이 왔는데, 되게 절망적이거나 스트레스로 오는 게 아니라 이 순간을 좀 더 기다리자, 그런 여유가 좀 생긴 거야. 스스로 기특했었어. 연극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면서 지금껏 버텨왔는데 정작 이런 순간에는 여유가 생기더라고. 다 아는 얘기지만 작품은 내 작품이 있어. 지난 3, 4년간 쉼 없이 작업을 했고 지금 상반기에 잠깐 없는 거니까. 이런 여유가 생겼다는 게 내가 연기를 좀더 오래 할 수 있겠다, 싶은 거지. 내 생활신조 중에 하나가 인생사 새옹지마인데 정말 그런 거 같아. 조금 지나니까 수업할 기회도 다시 생기고 작업도 생기고.
- 뿌
- 마지막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이종무한테 연극이란?
- 종무
- 알 수 없는 세계. 아직까지 아마추어 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연극하면서 나를 찾아간다, 알아간다는 것이 나한텐 여전히 중요하거든. 그게 재밌고 젠틀하고 착하기만 할 것 같은 사람이 연극을 하면서 뭔가 변해가고 찾아가고 있고 아직 더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정말 알 수 없는 세계인데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 세계? 여기까지 내가 믿고 있는 것 같아.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 이종무(배우)
- 주요작품
<과학하는마음 - 숲의 심연> <왕과 나> <국물 있사옵니다> <겨울이야기> <배수의 고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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