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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상종

농사짓는 마음으로

부새롬
124호 2017.09.21
뿌 <1945>, <요정의 왕>, <이방인>까지 작품을 연달아 하고 계신데 안 힘드세요?
박 글쎄,<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래 했으니까, 맨날 두 시간 반 동안 무대에 있어서 그런지, 이 정도는 체력이 버텨주는 것 같아요.

뿌
<1945>, <요정의 왕>, <이방인>까지 작품을 연달아 하고 계신데 안 힘드세요?
박
글쎄,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래 했으니까, 맨날 두 시간 반 동안 무대에 있어서 그런지, 이 정도는 체력이 버텨주는 것 같아요.
뿌
정말 지치실 때 없으셨어요?
박
왜 없겠어요. (웃음) 집에 6살짜리 딸이 있는데, 연극도 연극이지만 아버지 역할도 해야 하는 거고. 딸 얼굴 보면서 위안도 받고 용기를 내죠.
뿌
연극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박
82년에 처음 시작했어요.
뿌
와, 35년 됐네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박
나는 연극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에요. 공부를 안 해서 후진 대학교에 들어갈 때 쯤이었는데, 아버지가 사업 실패를 하셔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가족들이 뿔뿔이 헤어질 상황이 됐어요. 가방을 싸들고 “인생이 왜 이러냐, 어디로 가야 되나”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탔는데, 한 선배를 만났어요. 지금은 없어진 충무로에 있던 건넌방 소극장의 쫑파티에 한 번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 소극장의 대표였던 선배를 만난 거예요. 날 기억을 하더라고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연극 해볼 생각 없느냐고, 나는 없다, 그러고 헤어졌어요. 친구 집에서 하루 이틀 잤는데, 며칠 남의 집 눈칫밥을 먹다 보니까 힘들어가지고 그 극장을 찾아가봤어요. 거긴 뭐, 환영을 해주더라고요. (웃음) 포스터 붙이고 그러다가 연극을 하게 됐죠. 그 후로도 대학을 가지 않았고,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정말 어깨 너머로 연기를 배웠죠. 그러고 군대를 갔죠. 군대를 가니까 오히려 연극 생각이 무지하게 많이 났어요. 갔다 와서 그때부터 연극을 좀 제대로 해보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뿌
그 대표님은 뭘 보시고 연극 해볼 생각 없느냐고 하셨던 거예요?
박
아마 단원이 필요했나 보죠. 극장 만든 지 얼마 안됐으니까.
뿌
그냥 일손이 필요했던 거예요?
박
그런 거죠. (웃음)
뿌
연기랑 관련된 뭔가를 보신 게 아니라요?
박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정말 우연찮게 연극을 하게 된 거죠.
뿌
무슨 영화 같네요. 그렇게 시작하셨으면 첫 작품이 정말 기억에 많이 남으실 꺼 같은데요.
박
그게 워크숍 공연이었는데 장 끌로드 반 이탤리의 <뱀>이라는 작품을 한국식으로 각색해서 <돌고 돌아도 낯설은 땅>이라는 작품을 했죠. 저한테는 너무 신나고 환상적이었어요. 나 같은 사람이 무대에 서다니…. (웃음)
뿌
어지간한 형편에도 연극하면 힘든데 정말 힘드셨겠어요.
박
부모님도 저한테 미안했겠죠. 젊었을 땐 1년정도 떠나서 돈을 벌었던 적도 있어요.
뿌
꼭 경제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도, 이렇게 오랜 세월 연극 하시다 보면 정말 힘들 때도 있잖아요.
박
제일 결정적이었을 때가 몸담고 있던 극단 무천이 와해되기 시작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죽산에서 작업을 할 때였는데, 일어나면 연극이고, 눈 감으면 자고, 이런 시절을 보내다가 무천이 와해되는 분위기여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6개월이 지났는데,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찾으러 다니는 성격이 안 되니까, 일이 없었어요. 그 때가 40대 초반 정도였는데, 심각하게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 전까지 십 몇 년을 줄기차게 연극을 열심히 했었는데, 아무도 날 모르는구나, 날 불러주는 사람이 없구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죠. 여행을 다녀와서 연극을 하든가, 말든가 결정을 짓자, 생각을 하고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떠났어요. 영국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 돈이 없어서 유로버스를 탔어요. 밤새 이동을 하는데 갓난 아기가 있었거든요. 장거리 여행이니까 아이가 울죠. 여행객들은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중간 기착지마다 어른도 힘든데 애기가 안 힘들겠냐고, 응원을 해주는 거예요. 버스 기사까지도요. 한번 정도 그랬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계속 응원해주는 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저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서 저런 인간애를 갖고 있구나, 나는 연극을 하면서 내 위주로만 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 관객, 같이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죠.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번 새로운 기분으로 해봐야 되겠다, 그랬는데, 갔다 온 지 일주일 만에 생판 모르던 산울림에서 연락이 왔어요. 김명화 작가의 <까페 신파>라는 작품을 같이 하자고. 그 때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또 다른 마음으로, 연극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고, 이후로 지금까지 온 거 같아요.
뿌
정말 힘들 때가 있으면 또 되게 좋을 때도 있잖아요.
박
음…
뿌
없으셨어요? (웃음)
박
아니, <요정의 왕> 하면서도 좋았어요. 좋은 작품에다가, 어느 스태프 하나, 배우 하나 빠지지 않고 좋은 작품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하모니가 잘 이뤄졌다고 할까요? 인간적인 하모니까지 이뤄졌다 싶을 때 즐거운 거죠. 근데 (연극은) 또 없어지잖아요.
뿌
어떤 역할 때문에 인정받고 그럴 때가 아니라, 작업이 잘 이루어졌을 때요?
박
그렇죠. 내 역할만 잘해선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전체 틀에 내가 한 조각이 됐을 때가 기쁜 거고, 하모니가 깨졌을 때는 별로 (좋지 않죠.)

뿌
역할이나 작품으로 기억에 많이 남아있는 건요?
박
이강백 작가의 <내마>를 하면서 연극계의 주목을 좀 받았던 것 같아요. <요정의 왕>도 그렇고, 5.18을 다뤘던 <봄날>은 내가 눈물을 많이 흘렸던 작품이었어요. 5.18의 아픔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극단 무천에서 <오셀로> 했을 때 이아고 역을 했는데, 야외의 새빨간 무대에서 탱고를 췄던 것도 상당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오셀로를 계략에 빠트리고 여름 밤의 공기를 맡으면서 막 신이 나서 춤을 췄죠.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 (이하 <고도>)를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3년을 했어요.
뿌
와, 13년이나요? 안 지겨우셨어요? (웃음)
박
좋아요. 그걸 하고 있으면 나의 정체성이 찾아지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작품, 역할도 하고 싶지만, <고도>는 같이 늙어가고 싶은 연극, 나의 바로미터 같은 거라고 할까? 이걸 멋지게 잘 해낼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작품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겠다, 싶어요. 몸을 이렇게 툭 치면 쑥 나오는 느낌이 있어요. 나랑 같이 하는 한명구 형도, 나보다 더 오래 했지만, 마찬가지일 거예요. 운명적인 느낌이 있어요.
뿌
10년 넘게 똑같은 걸 하면 솔직히 지겨울 꺼 같은데, 상상하기 힘드네요.
박
좋은 작품은 그런 거 같아요. 전에는 못 느꼈던 호흡이 새롭게 느껴지고,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더 찾아지는 게 많고. 작품 속의 침묵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고. <고도>는 1969년 초연 이후 공연이 계속 오면서 굉장히 잘 다듬어진 조각품 같아요. 남들은 뭐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잘 다듬어진 것 같아요. (웃음)
뿌
작품 하실 때 인물에 어떻게 접근하세요?
박
제일 어려운 시간이고, 어려운 작업이죠. 일단 첫인상이 많이 좌우하는 것 같아요. 리딩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그걸 바탕으로 점차 깎아나가고, 또 연출하고 조율도 하죠. 뭔가를 읽으면 첫인상이 딱 들어오는 편인데, 틀릴 때가 힘들죠. (잘못 잡은) 캐릭터를 잡아나갈 때, 그 사람의 숨소리 하나에, 동작 하나에 캐릭터가 다시 잡히고 고민했던 게 풀렸던 적도 있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리딩을 많이 해서 자꾸 그 사람의 호흡을 찾아내려고 하죠.
뿌
정말 안 풀릴 땐 어떻게 하세요?
박
괴롭죠 죽어버리고 싶죠. (웃음) 많이 걸어요. 전 첫 대사의 톤, 느낌과 호흡을 찾으면 잘 풀리는 편인데 그게 안 풀리면 계속 걸으면서 그 사람의 숨을 찾으려고 해요.
뿌
이제 작업하시면 거의 다 후배들이죠? 어떠세요?
박
힘들죠! (웃음) 내 위에 한 사람이라도 선배가 있으면 좀 편할 꺼 같은데, 내가 제일 선배니까 연습이나 공연에서도 어떤 중심을 잡아줘야 되니까, 힘들어요. 원래 자유분방한 사람인데 그런 게 자꾸 없어지고. (웃음)
뿌
후배들 보면 좀 답답하고 그러실 때도 있을 거잖아요.
박
있죠. 왜 없겠어요? (웃음)
뿌
연습실에서든 술 자리에서든 얘기 많이 해주세요?
박
가끔 해요. 이럴 땐 이런 호흡으로 하면 어떻겠느냐, 그런 식으로… 도움을 주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웃음) 좋게 받아들이니까 고맙죠.
뿌
지금 말씀하신 건 구체적인 제안이잖아요. 그런 거 말고 배우는 이러면 좋을 것 같아, 라든가, 자주 하시는 말씀 있으세요?
박
책 많이 봐야 된다. 그래야지 내 안에 데이터베이스가 많이 축적이 되고 그걸 바탕으로 인물이 조합이 잘 될 거고, 인물을 만나기가 쉽다. 어떤 사람인지 입체적으로, 감성적으로 만날 수 있으니까 책을 많이 보라는 얘기를 자주 해요.
뿌
그럼 선배님도 책 많이 보시겠어요.
박
돌아가더라도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주로 읽어요. 그때가 탐독하는 시간이죠. 집에서는 그러기 힘드니까. 요새는 바빠서 좀 못나갔는데, 연극하는 친구들하고 책 읽는 모임도 해요. 과학, 심리학 등 여러 가지 책을 읽어요.
뿌
어떤 분야에 관심 있으세요?
박
인문학 쪽 책들이 재밌고, 과학도… 다 재밌어요.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다 예술이랑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는 구나를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고 재밌어요.
뿌
재밌게 읽으신 책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박
행동의 심리를 다룬 건데 <왜 그녀가 다리를 꼬았을까>라는 책이 있어요. 연극에도 도움이 많이 될 수 있죠.

뿌
아까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요. 선배가 되면서 힘들어지는 게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박
나이 드는 건데요. 나이 드니까 주인공 역할이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웃음) 노역이 자꾸 들어오는 게 좀 슬퍼요. <요정의 왕>같은 경우는 재밌었는데 나이든 사람 역할이 재밌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뿌
배우들은 나이, 이미지, 성별 이런 거 때문에 자꾸 비슷한 역할로만 캐스팅되면 참 힘들 꺼 같아요.
박
여배우들은 더 힘들죠. 남자들은 그래도 역할이 많은데 안타깝죠.
뿌
희곡 자체에서 다양한 인물이 없는 게 좀 아쉬운 것 같아요.
박
일본 작품들은 좀 다양한 거 같아요. 색깔도 좀 다르고 호흡도 다르고.
뿌
우리나라 작품이 다양성이 부족한 걸까요?
박
아직 부족하죠. 작가도 적고. 한국 희곡도 좀더 질도 좋아지고 밀도가 높아지면 좋겠어요. 일본은 작가가 워낙 많잖아요. 많은 수에서 결과물이 나오는 건데 우리나라는 수 자체가 적으니까 아무래도… 이런 얘기하면 싫어할 텐데. (웃음)
뿌
저도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요. 외국 희곡을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야, 싶은 작품도 많은데 한국 희곡에선 그런 걸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희곡뿐 아니라 한국 연출의 스타일, 연극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한다. -필자 덧붙임)
박
일본은 만화부터 해서, 인문학, 워낙 튼튼한 인프라를 갖고 있는 나라예요. 다양한 작가들이 나올 수 밖에 없죠. 우리나라는, 작가를 탓하기 전에 토양부터 엉망이죠. 얼마 전에 마광수 교수가 자살한 거나 장정일 작가를 봐도 그렇고, 그런 다양성을 다 뭉개버리고 짤라 버리면 어떻게 작가가 커나가겠어요?
뿌
그렇죠. 다시 캐스팅 관련 얘기로 돌아가서, 만약 선배님이 역할을 고르실 수 있다면 뭘 해보고 싶으세요? 소설 속 인물일 수도 있고 여자 역할일 수도 있고요.
박
(웃음)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되게 괴팍하고 자유로운 영혼? 그런 역할이 있으면 해보고 싶어요.

잠깐 쉬는 시간

뿌
연극계에 오래 계셔온 선배님으로서 또 하고픈 말씀 없으세요?
박
에이 뭐… 극장에 가면 객석의 반 이상이 연극인 인 것 같아요. 남의 것 보는 것도 좋지만, 철저하게 혼자가 돼라, 외로워하지 말고 책보는 게 훨씬 낫다. (웃음)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외로워서 (연극 보러 다니면서 어울리고) 그렇게 되는데 외로움을 좀 즐기고 자신한테 시간을 할애하고 집중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뿌
배우들은 아무래도 캐스팅 안되면 불안해지고 그렇잖아요.
박
평생 그래야 하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웃음) 나라고 불안감이 왜 없겠어요. 근데 30년을 그렇게 버텨왔더니 어느 순간에는 또 작품이 오더라고요. 기다리는 작업이잖아요.
뿌
그게 참 어릴 수록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박
자기 안에는 열정이 활화산 같은데 불러주는 데는 없고 그러면 미치는 거죠. 왜 모르겠어요. 나도 그랬고. 사람들이 연극을 왜 보겠어요? 물론 작품도 보는 거지만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의 향기를 느끼고 싶어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숨소리와 몸에서 느껴지는 그 건강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거죠. 내 향기를 만들려면 자기한테 돌아와서 집중해야하는 거죠.
뿌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뭔가 나를 이끄는 사람의 매력? 그런 게 느껴지는 배우가 있어요.
박
그렇죠. 그게 흡입력이라고 봐요. 그 흡입력은 결국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냐,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이해할 줄 알고, 자연하고도 동화될 줄 알고, 그런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름다운 사람이 악역을 해야 멋있지, 진짜 악한 사람이 악한 역을 하면 추해지잖아요.

뿌
연극데이트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상종한테 연극이란?
박
농사다.농부의 마음으로 연극을 하겠다.벼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연극은 손이 많이 가야 되죠. 공연이, 추수가 끝날 때까지 어마어마한 애정과 손길과 마음이 가야지 연극이 그나마 아름답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뿌
마지막 질문이라고 했는데… (웃음) 이렇게 손도 많이 가고 애써서 작업하는데 솔직히 연극이 대중성은 없잖아요. 연극 왜 하세요?
박
글쎄, 운명인 것 같아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버스에서 느닷없이 만난. 엄청 매력이 있는 일이죠. 영화는 리얼리티가 많이 필요한데, 연극은 가상과 환상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수염 하나 달고 나오면 금방 할아버지도 되고. (웃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요. 촌스러운데 되게 인간미 있는 예술 같아요.
뿌
저도 그래서 연극을 참 좋아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연극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박
나도 맨날 그런 생각했는데, 벌써 30년이 흘렀어요. 지금 보니까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인생을 잘 못 산 건 아니다, 나를 많이 순화시켜줬고, 사람답게 살게 해줬고, 좋은 거 같아요.
뿌
만약 그 때로 다시 돌아가서 선택을 한다면, 또 연극을 선택하실 꺼 같으세요?
박
아니요. (웃음) 자연 속에서, 자연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연극은 한 번 해봤으니까 딴 거 또 재밌는 것도 해봐야죠.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박상종(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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