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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이은진

미스테리함과 솔직함을 가진, 나에게 여전히 가장 재미있는 일. 연극

김정_연출가
127호 2017.11.09
정 ‘바바서커스’란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은진 극단을 만들 때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엄청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는 연출님이 갑자기 “그냥 ‘바바서커스’ 어때.” 그러시더라구요. “그냥, 너랑 잘 어울려.” 이러면서 (웃음) 그래서 제가... “좋은데요?” 이랬죠. 하하
정 ...

정
‘바바서커스’란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은진
극단을 만들 때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엄청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는 연출님이 갑자기 “그냥 ‘바바서커스’ 어때.” 그러시더라구요. “그냥, 너랑 잘 어울려.” 이러면서 (웃음) 그래서 제가... “좋은데요?” 이랬죠. 하하
정
그게 원래 있는 말인가요?
은진
원래 없죠. ‘바바서커스’로 일단 정한 다음에 의미를 찾기 시작했죠.(웃음) 제가 서커스를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연극이 다 ‘피지컬 씨어터’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예요. 어쨌든 배우의 신체성이 강한 연극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바바서커스’라는 이름이 거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바바’ 가 찾아보니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더라구요. 우선 ‘날 좀 바바(봐봐)’ 할 때도 쓰구요.(웃음) 프랑스에선 달콤한 쿠키 이름이기도 하구요. 어딘가에선 ‘똥’이기도 하고, 인도에서는 ‘어린 성자’ 라는 뜻도 있고. 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마녀 이름이 ‘유바바’ 잖아요. 그게 ‘못된 할머니’ 라는 뜻이래요. 다양한 캐릭터들을 담고 있는 이름 같아요.
정
재미있는 의미들만 다 담고 있는 거 같네요.(웃음) 어감이 좋네요. ‘바바’
은진
네. 기억하기도 쉬운 것 같아요.
정
연극...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은진
엄마가 중학교 때 대학로에 저랑 제 남동생을 데리고 나오셔서 공연을 하나 보여주셨어요. 어머니께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거든요. 자식들 문화생활 시켜주신 거죠.(웃음) 그게 ‘다리오 포’의 <안 내놔? 못 내놔!> 였어요. 연극을 처음 보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배우들이 눈앞에서 땀 흘리면서 연기 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세상에 이런 게 있었구나!’ 그때부터 (연극을)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냥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죠. 그러다가 대학 갈 때... (인터뷰에는 싣지 말아주세요!(웃음) 제가 공부를 좀 잘했어요. 하하! 학교를 괜찮은 곳을 갈 수 있었는데 갑자기 연극영화과 가겠다고 하니까. 난리가 났었죠.
정
어머니께서 꿈을 심어 주셔놓고서는...(웃음)
은진
그렇죠. 근데 어머니는 기억을 못하시죠. 6년 전 일이었으니까요.
정
문화 활동은 그냥 문화 활동일 뿐.(웃음)
은진
근데 생각해보니까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학예회 같은 거 할 때 제가 ‘콩쥐팥쥐’를 현대적으로 각색해서,(웃음) 연기도 하고 같이 대사를 고치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찍어서 방송도하고 공연도 하고 그랬더라구요. 근데 저는 제 자신이 막... 끼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은 안했던 것 같아요. 이 일을 하게 될지도 몰랐고... 그 땐 그냥 그게 신기한 일이었으니까요.
정
어떻게 연출을 선택하셨어요? 처음부터 연출 쪽으로 생각하고 계셨던 건가요?
은진
처음부터 실기 쪽으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수능보고 나서 정말 갑자기 연영과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인문학부나 사회학부 가느니 내가 하고 싶은 거 한 번 해 봐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뭔지는 모르지만.(웃음)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배우도 하고 연출도 하고 둘 다 너무 재밌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었던 것 같아요.
정
앞으로 배우도 병행하실 생각이신가요?
은진
대학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극단이 ‘수레무대’였는데 3년 반 정도 있으면서 거의 배우로 활동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극단을 꾸려나가는 역할이다 보니, 배우를 할 기회가 안 생기더라구요.(웃음) 계속 극단의 작품을 이어 나가야 했으니까요. 배우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너무 오래 안 서서 겁나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정
배우를 그래도 3년 반을 하셨는데. 왜 배우로 쭉 가지 않으셨어요?
은진
저는 배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켠에 쭉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제 성향이나 이런 걸 봤을 때 연출이 맞는 것 같았어요.(웃음)
정
어떤 성향이시길래...(웃음)
은진
배우는 나를 잘 가꿔야 할 것 같고, 훈련도 끊임없이 해야 할 것 같고, 자기관리도 철저히 해야 할 것 같고.(웃음) 저는 배우가 연출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지금 대표도 하고 제작도 하고 연출도 하다보니까... 아, 연출이 제일 힘들고 외로운 일이구나. (하하)
정
‘극한직업’ 이지요...(웃음) 얼마 전에 ‘권리장전’에서 공연하셨던 <댓글부대>준비하실 때 공개 오디션을 보셨더라구요. 요즘엔 좀 드문 경우 인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은진
일단은 배우가 많이 필요했어요. 저는 지금까지 제 공연에서 배우가 제일 많이 출연 했던게 <연옥>에서 6명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10명의 배우가 필요했어요. 그것 뿐만은 아니고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보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저도 약간 폐쇄적이라서 (웃음) 사람들을 많이 아는 편은 아니에요. 그리고 단원 위주의 작업에서 프로덕션 개념의 작업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단원인 듯 아닌 듯 함께 해 나가는 사람들이 생기다 보니까 어려움도 같이 생기더라구요. 책임도 못 져주면서 책임을 지려고 노력은 하게 되고 그렇다고 그게 서로한테 충분한 보상이 되지도 않구요. 아무리 바쁘게 일을 벌려서 해도 크게 돌아오는 게 없으니까. 생계를 위해서 이들은 또 다른 일을 해야 하구요. 그러다가 극단 공연이랑 겹치게 되면 생계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그런 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럴 바엔 ‘2~3개월 여기에만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연을 만들어 보자.’ 싶어서 처음엔 저희도 되게 겁났지만 오디션을 진행해 봤어요. 과연 많이 올까 그런 걱정도 있었고. 원하는 배우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있었죠. 근데 요즘 오디션이 워낙 없잖아요. 저희가 2주정도 오디션 공지를 올렸는데. 100여명 정도가 지원을 하셨더라구요.
정
헉! 100명
은진
100명 조금 넘게? 신청을 했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아, 이렇게 연극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구나. 사연도 정말 구구절절해요. 다들. 그걸 보는데 마음이 좀 짠하더라구요.
정
그렇죠... 사람은 많고 그에 비해서 기회는 너무 제한적이니까요.
은진
그 안에서 30~40명을 만났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는 정말 정성스럽게 보려고 노력을 했어요. 근데 오디션 때 한 번 본 걸로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웬만해서는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도 참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따로 카페에서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고, 결국 배우진을 꾸렸는데... 너무 좋았어요. 배우들이.
정
오! 정말 다행이네요.
은진
하는 내내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배우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해줬어요. 많지 않은 액수의 개런티를 받으면서 하는데도 기꺼이 참여 해줬고 자기 역할들을 잘 품어서 표현해줬어요. 그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정
정말 쉽지 않은 일 일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겁이 나서. 무대에 선 모습을 한 번도 못 본 배우와 작업하는 게 아직은 선뜻 잘 안되거든요. 근데 그런 일들도 필요한 것 같긴 해요. 실력도 있고 매력도 있는데 기회가 없었던 배우들이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게 되고 그로인해서 순환이 되는 걸 텐데... 쉬운 일은 아니죠. 다음번에도 혹시 오디션을 보실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은진
네. 물론 <댓글부대> 재공연은 지금 이 멤버 그대로 가고 싶구요.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되면 오디션을 한 번 더 볼까. 한 번 더 시도 해볼까 하는 생각 중이예요.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서 만나게 된 배우들이랑 또 작업을 이어나갈 생각이구요. 생각해보면 그 전에는 항상 만났던 사람들이랑만 (작업으로) 만났어요. 거의 대부분을. 근데 이렇게 새롭게 만나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정
어쨌든 연출들은 어떤 성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연출님은 배우를 볼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보는 편이세요?
은진
음... 작품 할 때 너무 연출말만 흡수하려고 하는 것 보다는 대화하면서 갈 수 있는 배우가 이상적인 것 같긴 한데... 한 번은 너무 자기주장만 강한 배우를 만나서 많이 힘든 적도 있었어요.(웃음) 사실 소통이라는 게 인간적인 부분이랑 연관이 되어있는 것 같아서 단정 지어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정
그래도 ‘이거 하나만은!’ 이런 건 없나요?(웃음)
은진
자기역할 책임지는 배우. 자기역할 끝까지 붙들고 해내려는 배우요. 너무 절망에 빠지는 스타일의 배우는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너무 자책하며 고민하는 것 보다는 ‘이거 어떻게 해결하지? 지금 내가 가진 걸로 저기(목적)에 도달하려면 어떡해야 하지?’ 이렇게 고민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지만 대화가 가능한 것 같구요.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이.
정
어쨌든 우리는 과정을 같이하는 관계니까. 저도 무슨 얘기신지 너무 알 것 같아요. 이게 정말 한 끗 차이인데. ‘지금은 고뇌하고 힘들어하고 있지만 결국엔 해낼 거야!’ 라고 생각하며 작업을 했으면 좋겠는데, 어떨 때는 너무 자학적인 부분까지 들어가서 그게 결국엔 연습과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더라구요.
은진
맞아요. 마음이 열려있어야 대화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확실히 영감을 주는 배우들이 있어요. 아직 서툴고 어린 배우지만 그들은 뭔가 해 보려고 달려들잖아요. 연출 입장에서는 그걸 통해 무언가 보여 지면, 그걸로 또 다른 접근을 해 볼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좋은 시너지가 생기고,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더라구요. 이번에 작품(‘댓글부대’) 준비할 때도 25살 배우가 있었어요. 학교 졸업한지 1년도 안된. 술집여자 캐릭터였는데 처음에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힘들어 하더라구요. 근데 연습을 해가면서 하나하나 (한계를) 깨 나가더니 결국 마지막엔 해냈어요. 그런 걸 보는 게 가장 만족감이 큰 것 같아요.
정
맞아요. 함께 해내는 거. 함께 깨나가고 결국엔 변화한 얼굴로 무대에 서있는 걸 볼 때. 쾌감이 굉장하죠.(미소) 혹시 연출님에게 영감을 주는 분이 또 있으세요?
은진
네. 미국에서 만난 우리 선생님. 항상 본질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고. 연극원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분. (공부하러 미국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해주셨던 말씀들을 지금 작업하면서도 계속 다시 돌아보게 되요. 당시에는 정말 요만큼(손가락 한마디) 이해했던 것 같은데.(웃음) ‘아, 그때 하셨던 말씀이 이거였구나...!’ 작업을 하면서 그런 순간을 만나면 뭔가 만족감이 확 들더라구요. 작업하면서 힘이 들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으로 버티는 순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정
어떤 선생님이셨나요? 더 듣고 싶어요.(웃음)
은진
그 분은 ‘클라운’(광대)이신데요. 클라운 작업도 많이 하셨고 피지컬시어터 작업도 많이 하신 분이세요. 그 분은 정말 연극밖에 모르세요. 그리고 정말 무섭고. 정말 단호하고. 정말 얄짤 없어요. ‘이건 아니야!!’(웃음) <액터 크리에이터>라고 해서 배우가 창작도 하고 연출도 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그런 수업이었는데, 안되면 멱살 잡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끄집어내시기도 하시고, 의자도 가끔 날라다니고.(웃음)
정
뭔가, 영화 <위플래쉬>가 생각이 나는데요?(웃음)
은진
근데, 그 정도로 악랄하진 않아요.(웃음) 결국엔 배우나 창작자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세요. 파괴적이지만은 않아요.(웃음) 열정이 대단하셨어요. 그리고 연극에 대한 질문들, 그 끊임없는 질문들로 기억되는 분이세요.
정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이 기억나세요?
은진
배우들 겸 창작자들한테 ‘개인을 뛰어넘는 인물’이여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당시에는 어떤 ‘유형적인 인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전형적인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최근에 <댓글부대> 작업을 할 때 기자 캐릭터가 있었는데 저는 단순히 특종을 잡고 싶은 ‘한 사람’의 욕망으로만 그 인물을 접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그 ‘한 사람’이 단순히 한명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잘못된 행태들을 함축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오더라구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개인을 뛰어넘는 인물이라는게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여러 가지 말씀들 중에 ‘연극은 미스테리함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라고 하셨던 말씀 역시 저한테는 아직 큰 숙제예요. 선생님께서 <미녀와 야수>를 예로 드셨죠. 야수의 모습을 우리는 보지 못했는데도 계단을 내려오는 그의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너무나 두근거리셨다며...(웃음) 그 ‘알 수 없는’ 두근거림. 우리가 보통 연극을 만들 때 장면 만들기 하면서 ‘설명’을 많이 하잖아요. 못 알아 들을까봐.(웃음) 혹은 내 이야기를 집어넣고 싶어서 ‘설명’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마다 그 말씀을 떠올려 봐요. 어떻게 하면 설명적이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또 너무 단순하지 않게 갈 수 있을까.
정
‘연극은 미스테리함을 가져야 한다.’ 정말 와 닿는 거 같아요. 저도 거기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공연을 보러가거나 내가 직접 공연을 만들고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동시에 ‘왜 굳이 연극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같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배우와 관객이기 이전에 우리는 ‘동물’로서 한 공간(무대,극장)에서 많은 느낌과 정보들을 본능적으로 주고받게 되고, 그로인해 생겨나는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긴장감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본능적인 감각으로 교감되어지는 것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 ‘왜 굳이 교감의 도구가 말뿐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그런 질문을 잊고 있을 때, 연극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은진
맞아요. 결국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연극만이 가진 알 수 없는 방식의 교감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의 그런 말씀들 때문에 현실에서 회의감이 들고 힘이 들어도 버티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의 양식’처럼.(웃음)

정
아까 ‘연출로서의 한계, 혹은 연극을 하면서 느끼는 회의감’ 들을 말씀 하셨잖아요. 그건 어떤 감각인가요?
은진
예전에는 공연을 한 편 올리고 나서 ‘그 다음에 이걸 어떻게 이어나갈까.’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동력이 끊어지지 않게 모터를 돌리고 있었어요. 근데 요즘은 좀 쉬어가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시작이 <연옥>이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게, 기회다.’ 라고 생각하면서 욕심을 낸 거죠. 공연을 마치고 나서 ‘그 욕심이 과했구나.’ 라는 게 느껴지더라구요. 초연보다 더 큰 무대에 서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이 작품을 어떻게 더 ‘잘’ 만들어야 할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잘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잘...(웃음)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거겠죠. 그러다 보니까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하더라구요. 예전의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엇이 없는 상태에서 뭔가 더 좋은 것을 바랐던 것 같아요. 그렇게 욕심을 내다보니 스텝들과 대화도 잘 안 통했고 결과물들이 생각했던 대로 나오지도 않더라구요. 모든 게 다 어긋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나중에 돌아보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하고 싶어했구나.’ 공연을 다 끝내 놓고, 처음엔 ‘나는 병신이야. 나는 하면 안 돼.’ 하면서 괴로워하기도 하고.(웃음) 그렇게 깨달은 거죠. ‘내 욕심이 과했다.’ 그러고 나니 ‘숨 쉬면서 가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뭔가 성과를 만들어 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더 괴롭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회복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너무 목매서 연극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러지 말아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그래야 더 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생각했죠. ‘내 작업을 남의 작업하듯 하자.’(하하) 그리고 작품도 1년에 여러 작품이 아니라 스터디도하고 시간도 충분히 가지면서 각색하고, 배우들 만나서 워크숍도 하면서 일 년에 한 작품 정도만 올려도 괜찮겠다. 지금 그런 단계예요.
정
많이 정리가 되신 것 같은데요?
은진
그런데 이게 내 안의 변화이다 보니까 아직은 정리라기보다 이걸 수용하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내가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일정 부분 포기 한 건지, 열정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 편안해 진건지 모르잖아요. 어떨 땐 괜찮고, 어떨 땐 괴롭고... 그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정
아마, 작업을 들어가면 자연히 알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항상 그렇잖아요.(웃음) 자, 할 때마다 뻘쭘한(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은진에게 연극이란?
은진
하하, 멋있게 말 못 하겠어요. (웃음)
정
그런 거 안하셔도 돼요. 그냥 느껴지는 대로!
은진
연극... 사실 저한테 제일 재미있는 게 연극 인 것 같아요. 살면서 제일 재미있는 게... 내 피를 끓게 해주는 것. 어제는 내 꿈에 대해서 생각 해 봤어요. 어렸을 때 난 이것도 되고 싶고 저것도 되고 싶고 탐험가도 되고 싶고, 비밀요원도 되고 싶고.(웃음) 그래도 그 많은 것들 중에 감각적으로 가장 날 살아있게 해주는 건 연극이었던 것 같아요. 하면서 힘들고 지긋지긋하고 그래서 증오하게 되는 순간도 있고... 근데 또 재밌어서 돌아오게 되고.(웃음) 그런 거예요. 저에겐 연극이.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이은진(연출가)

바바서커스 대표


대표작
<댓글부대> <코믹환상극 코> <연옥> <외투, 나의 환하고 기쁜 손님> <손님> <셰익스피어 여인숙>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