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나라
연극 배우, 최나라입니다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136호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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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연우소극장에서 공연을 끝내고 나온 최나라 배우를 만났다.
방금 연우소극장에서 공연을 끝내고 나온 최나라 배우를 만났다.

- 뿌
- 소극장에서 공연 오랜만에 하셨죠?
- 나라
- 진짜 오랜만에 했어요. 제가 서울시극단(이하 시극단) 9년차인데, 들어오기 전에 했었으니까요. 정말 일루전이라고는 요만큼도 생길 수가 없는, 이렇게 관객이랑 가까운 데서… 근데 정말 좋아요. 떨리기도 하고요.
- 뿌
- 공연 보면서 그랬어요. 주로 공연하셨던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크기가 좀 있는데, 바로 관객 코앞에서 저렇게 과장된 연기하려면 쉽지 않겠다, 아주 일상적인 인물이면 몰라도 어렵잖아요.
- 나라
- 소극장 들어와서 대극장 연기하는 느낌이죠. 재밌게 하고 있어요. (웃음)
- 뿌
- 9년차시라고요. 와, 오래 되셨네요. 몇 년 정도 활동하시다 시극단 들어가신 거예요?
- 나라
- 5년 한 거 같아요. 졸업하고 바로 ‘서울공장’에 있었고, 밖에서도 하고 쉬기도 하고 그러다가 들어갔어요. 시극단 오디션을 보게 된 계기가 있어요. 피지컬에 관심이 많아서 임형택 선생님하고 ‘뷰포인트’ (공연예술가를 위한 일종의 트레이닝 방법_필자 주) 하면서 돌아다녔어요. 움직임을 하는 것도 좋았고, 아직 학생이었는데 선배들하고 작업하는 것도 좋았죠. 무대가, 연극이 너무 좋았어요. 근데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셨어요. 사람들이 저를 부잣집 외동딸로 많이 보는데 (웃음) 엄마 케어를 지금도 제가 하고 있거든요.
- 뿌
-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하고 계신 거예요?
- 나라
- 네. 처음 아프셨을 때 제 욕심을 차릴 수가 없어서 연극을 쉬어야했어요. 바디관리 하는 숍에서 매니저 일을 했어요. 카운터에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이었는데, 한 6개월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진짜 힘들구나, 그때 깨달았죠. 어떻게 연극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시극단 오디션 공고가 뜬 거예요.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왜냐면… 이런 말 해도 되나? 배우가 국공립 단체에 속하는 것에 대해 인식이 저도 그렇게 좋진 않았어요. 주변사람들한테 그런 얘길 한 적도 있고, 그래놓고 내가 오디션을 봐도 되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들었죠. 자신도 없었고요. 그 오디션이 되게 오랜만에 열린 거라, 지원자가 엄청 많다는 얘길 주변 선배들한테 들었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넌 어차피 안 될 꺼다” 그랬어요. 근데 저한테는 연극을 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니까, 그걸 놓치면 상처가 너무 클 것 같고, 고민을 정말 많이 하다가 마지막 날에 오토바이 퀵으로 원서 접수를 했어요. 결과는 합격을 해서, 지금까지 연극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너무 감사한 곳이죠. 물론 힘든 점도 있고, 제가 봐도 고쳐야 되는데 개인의 힘으로는 고쳐지지 않는 점들도 있어요.
- 뿌
- 어느 단체나 시스템상의 문제가 있겠죠.
- 나라
- 얼마 전에 아주 오랜만에 후배 단원이 한 명 들어왔어요. 젊은 단원들이 많이 들어와서 좀 달라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어요. 9년 있으면서, 저도 이제 선배 대열에 들어가게 되니까, 부담도 크고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깨가 많이 무거운 거 같아요. 제 후배들한테 좋은 환경으로 남겨주고 싶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은 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웃음)
- 뿌
- 일반 관객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연극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죠. 지금은 시즌단원으로 형태가 바뀌었지만 예전의 국립극단이라든가, 시극단은 지금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데, 단원이 고여 있으면 그에 따르는 문제가 생기니까요. 어떤 시선에서는 철밥통, 공무원, 이렇게 보기도 하는데, 좀 억울하지는 않으세요?
- 나라
- 저희 선배님들이 보시면 맹랑하다, 속상하다, 하실 수도 있는데, 저도 들어가기 전엔, 아주 나쁘게까지는 아니지만, 배우는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그 자유 속에서 계속 더 발전을 하려면 고여 있으면 안 된다, 그랬어요. 핑계일 순 있지만 저한테는 유일하게 연극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곳이고, 스스로는 고여 있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억울할 때도 사실 있어요. (웃음) 근데 제가 밖에서 바라봤던 시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시선이 어쩔 수 없이 생긴다고 봐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발버둥 치게 되고, 최소한 제가 있는 시간 동안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 개인한테는, 여기 들어오지 않았다면 엄청 뛰어다니고 노력해야만 만날 수 있을, 겨우 얼굴이라도 뵐 수 있을 연출님들, 다른 여러 분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감사한 시간들이죠. 시극단을 다녀가시는 좋은 분들이 많고, 또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그런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 되는 것 같아요.

- 뿌
- 얘길 들어보니까 예고를 다니셨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셨네요.
- 나라
- 원래 초등학교 때 꿈은 아나운서였어요.
- 뿌
- 잘 어울리시는데요.
- 나라
- 머리가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서. (웃음) 지난 번 김정호 선배님 인터뷰 보니까 비슷하던데, 저도 교회에서 처음 성극이란 걸 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연기구나, 생각했어요. 예고 시험을 어떻게 보는 건지 알아야겠어서 연기 학원을 알아봤어요. 집안 환경이 많이 어려워졌을 때여서 아빠한테 통 사정사정해서 딱 1개월만 등록을 했어요. 근데 3주째가 되니까 재등록을 자꾸 하라고, 그걸 안하면 다니기가 민망한 거예요. 2주반 다니고 그만두게 됐죠. 아무 것도 모르면서 열심히 준비해서 예고 시험을 보고 들어갔고, 거기서 소중한 분들도 많이 만났어요. 제 인생에서 제일 즐거웠던 시절이었고, 제일 열심히 살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집안 형편 때문에 스쿨버스도 1학년 1학기 때밖에 못타고, 버스로 첫 차 타고 가서 막차 타고 집에 오고 그러면서, ‘난 열심히 하고 있어’ 혼자 위안을 삼았죠. 첫 선생님이 ‘아르케’의 김승철 선생님이었는데, 연극정신이라고 해야 될까 (웃음), 연극의 순수성, 배우의 순수성, 진실함, 성실해야함, 그런 걸 배웠어요. 저한테는 정말 신 같았죠. (웃음)
- 뿌
- 사실은 사춘기 때 서럽잖아요. 옆에 있는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다 서포트 해주는 것 같은데 나만 안 그렇고. 사실은 안 그런데 괜찮은 척 하면서 지나온 거예요? 아님 원래 좀 씩씩한 편이에요?
- 나라
-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저에 대한 이미지가 ‘잘 자란 사람?’ 이었어요. 그래서 힘든 내색을 안 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희 집이 딸 둘인데, 언니는 저랑 성격이 정 반대여서, 부모님이 저한테 되게 아들 같은 걸 기대하셨어요. 자연스럽게 표현을 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저한테 연기는 처음으로 아픔을 표출할 수 있는 도구였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진짜 연기를 접했다기 보다는, 목 놓아 울 수 있고, 소리 지를 수 있고, 화낼 수 있고, 나는 못하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을 용기있게 살아 볼 수 있는 도구였던 거죠. 그런데 김승철 선생님한테 배우면서 연기가 그것만이 아니란 걸 느끼게 됐죠.
좋은 연기가 뭘까, 를 살면서 계속 생각하는데, 결국은 어떤 인물이든 제가 공감을 잘해야지, 관객들도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언젠가 들더라고요. 많은 경험들이 더 쉽게 다양하게 공감을 할 수 있게 해준 거 같아요. 제일 좋은 건 간접 경험보다 직접 경험이잖아요. (웃음) 저한테 아팠던 시절은 상처보다는 그런 장점으로 남은 거 같아요. - 뿌
- 후회는 안 되세요? 너무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셨잖아요. 그때 다른 걸 했더라면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 나라
- 중간 중간 아르바이트를 여러 가지 해봤고, 행사 사회를 본 적이 많아요. 옛날에 아나운서 꿈도 있었고 그래서, 진행하는 걸 재밌어 해서 대학교 때부터 꽤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나는 연기하길 정말 잘 했구나, 이게 직업이었으면 재미없었겠다. (웃음) 물론 저도 하지 말까, 했었던 순간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제 한계를 만났을 때? 지금 현재는 연기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예고에는 캐스팅 매니저가 와서 픽업을 해가거든요. 기획사에 제 의지랑 상관없이 들어갔다가 트로트 가수가 될 뻔도 했었어요. (웃음) 그때 장윤정이 유명해지면서 젊은 트로트 가수를 기획했던 거죠. 돈도 벌 수 있다니까 그냥 한 번 해볼까 해서 갔는데, 저하고는 맞지 않더라고요. 예고였으니까, 주변에 TV, 영화, 방송하는 사람들 되게 많은데 저는 그냥 무대가 좋더라고요. 영화도 찍어봤는데 호흡이 다르잖아요. 연극처럼 흐름대로 연습하는 과정 없이 배우가 혼자 해가야 하고, 현장에서 리허설 하고 순차 없이 찍으니까 저한테는 그 매체에 대한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 뿌
- 이거 보시고, 제안하려다가 안 하면 어떡해요. (웃음) 제안이 들어오면 열심히 잘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드릴게요.
- 나라
- 네. (웃음) 아무튼 긴 호흡을 가지고 실수를 해도 제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만회할 수 있는 무대가 훨씬 더 매력적인 거 같아요.

- 뿌
- 주변에 벌써 막 스타가 되고 그런 친구가 많았을 텐데…
- 나라
- 그럼요. 비가 제 후배예요.
- 뿌
- 월드스타가 후배시군요. (웃음)
- 나라
- SES 바다 언니랑 같이 기도 모임하고 그랬어요.
- 뿌
-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막 있으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그럴 것 같은데요.
- 나라
- 애늙은이같다는 얘기를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어요. (웃음) 고등학교 때 IMF가 터졌었어요. 그때 한창 친구들하고 몰려다녔는데, 여행가자는 얘기가 나온 거예요. 그 때 제가 “너네 부모님 힘드신데 여행은 무슨 여행이냐” 그랬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맹랑했던 거 같은데, 친구들은 또 나라는 원래 저래, 그러고 받아줬어요. 어렸을 때도 김광석 좋아하고, 좀 예스러웠던 거 같아요. 언니들이 주변에 더 많았던 거 같고요.
- 뿌
- 아까 한계를 느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 나라
-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정말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연기를 되게 진지하게 열심히 하고 있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대학로에 5년을 있다가 시극단을 들어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대학로 소극장이랑) 극장의 크기가 다른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제가 알고있던 작업 환경, 시스템이 아니었어요. 만나는 사람, 작업 과정, 연기 방식, 연출과 배우의 관계, 선후배 관계, 모든 게 다르니까 완전 카오스였던 거죠. 누가 괴롭히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에 적응하는 데 5년의 시간이 걸렸던 거죠. 원형탈모가 올 정도였어요. 자칫 선배님들이 오해하실 것 같은데, 제가 예민한 편인데다가 스스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편이라 그랬던 거죠. 그 혼란기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확신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지 모르겠고, 또 모르는 상태로 계속 연기를 하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자연스럽게 평도 좋지 않았고요. 제가 알고 있던 연기는 다 무너졌고 다시 재정립을 해야 하는데,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 와중에 외부에서 공연을 몇 번 했는데, 거기서는 숨통도 트이고 너무 편안하고, 스스로 믿음이 생기고 평도 좋았거든요. 그러니까 난 여기랑 안 맞나보다, 그만둘까 말까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고민을 주변에 많이 털어놨는데 저를 아껴주시는 ‘미추’의 오일영 오빠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 나라야, 니가 지금 새롭게 발전해야 하는 지점에 와있는 걸 수도 있고, 거기 들어가지 않았으면 발견을 못했을 수도 있어. 그걸 해결하지 않고 나오면 너는 도망치는 사람이 될 꺼야. 나올 때 나오더라도 해결하고 나와야 돼. 안 그럼 넌 평생 찝찝할 거야. 그리고 중극장 이상의 무대에 서면 항상 무서울 거야.” 그게 정말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리고 용기를 내서 저하고 맞닥뜨려서 내가 어떻게 발전해야 될까를 고민했던 같아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 뿌
- 나라 씨가 좋은 사람인가 봐요. (웃음) 제가 나라 씨를 기억하는 공연은 <함익>이랑 오늘 본 <너와 피아노> 밖에 없긴 한데, 보기에는 되게 세련되고 좀 차가울 것 같고 그런데, 실제론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고 그런 거 같아요.
- 나라
- 네. 사람들이 저를 여우처럼 많이 봐요. 살면서 평생 그랬어요. 근데 제가 여우같은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웃음)
- 뿌
- 지금까지 나라 씨 얘길 했는데요. 요즘 시기도 그런데다가, 또 김수희 연출이랑 같이 작업하셨잖아요. 아직도 그렇지만 한참 힘든 시기에 가까이 계셨어요.
- 나라
- 기사 나고 나서 얼마나 큰 용기를 내셨을까, 되게 많은 생각이 들고 뭐라고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마음으로 연습실에 갔던 거 같아요. “용기 내셨어요, 잘 하셨어요.”라고 해야 되나, 내가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는 뭔가 일시정지가 됐던 거 같아요.
그러고 시간이 지나면서 ‘미투’가 확산되고 제 모교 교수님도 대상자가 됐어요. 곁에 있는 누군가의 상처를 위로하고 힘을 실어주다가 갑자기 아주 가까이 이 일이 닥친 거죠. 믿어지지가 않고… 블랙아웃이라고 해야 될까요? 요즘 왜 “No”라고 하지 않았느냐, 질책하는 얘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전해 듣는 사람도 블랙아웃이 되는데 당하는 사람이 바로 그 당시에 "No"라고 할 수 있을까(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데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금도 그렇고. 제 뿌리 중의 하나가 뽑혀서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리고 그 20대의 찬란했던 시절이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럽게 돼버렸다는 게 너무 참담하고요. 뭐라고 다 표현을 못하겠어요. 그리고, 왜 몰랐어? 라고 질책을 많이 하는데, 제가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고, 그런 사람이 훨씬 많았던 거예요. 알게 됐을 때 정말 경악했어요. 동문들이 다 너무 힘들어하고 굉장히 분노하고 있어요. 비대위도 만들고 이 일을 해결하려고 앞장서고 있는 동문들이 있는데 너무 고맙죠. 앞으로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잘 성장해서 현장으로 나올 수 있게, 선한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 뿌
- 어디 출신이라 그러면 꼬리표가 붙고, 그것 때문에 또 말 못할 괴로움을 겪게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 나라
- 제 후배 중의 한 명은, 누군가가 그 교수랑 친하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내는 바람에 강의며, 하던 일을 다 그만뒀어요. 근데 억울하다고 말을 못하는 거예요. 무슨 죄가 있어서 그 젊은 인생이 왜 여기서 다 스탑이 돼야 하나… 속상하죠.
- 뿌
- 그렇죠. 피해자의 고통에 비할 바도 아닌데 지금 이 판국에 이런 얘길 할 때인가, 그런 마음이 들죠. 새로운 사람들 만날 때마다,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요. 지금 상황이 너무 예민해서 말 한마디도 너무 조심스럽네요.
- 나라
- 맞아요. 누군가를 걱정하는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잠깐 쉬는 시간
연극계 미투에 관한 애기는 더 길게 이어졌지만, 이쯤으로 줄인다.

- 뿌
- 이렇게 세상은 좋아지고 있구나, 생각은 들어요.
- 나라
- 미투 운동 초반에 “몰랐겠지, 남자들은, 여자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통괘함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 뿌
- 이쯤에서 미투에 관한 얘기를 마무리하죠. 앞에 (싣지 못했지만) 꿈 얘기를 잠깐 하셨는데 꿈이 뭐예요?
- 나라
- 최근 2년 전에 꿈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그냥 평생 배우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 였는데, 예술인센터 같은 걸 만들고 싶어요. (웃음) 제가 공연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인맥을 잘 관리하고 돈을 많이 모아서, 정말 열심히 하는 후배들한테 장을 열어주고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워크숍의 형태로라도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요. 꿈이 생긴 지 얼마 안돼서 좀 뜬구름 잡는 것 같지만 점점 더 나이 먹어가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돼서 작게나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연기를 사랑하고 뜨겁게 이 일을 놓치 않는 좋은 젊은 배우들이 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 뿌
- 문화부장관 하셔야겠네요. 큰일을 도모할 사람. (웃음) 혹시 덧붙이고 싶은 얘기 있으세요?
- 나라
- 인터뷰 제안 받고 정말 너무 감사했어요. 인터뷰 한다니까, 김수희 연출님이 대학로의 많은 사람들이, 대학로를 찾는 많은 관객들이 너라는 배우를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시는데 너무 뭉클하고 감사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자꾸 시극단 배우라는 명찰이 달리는데, 지금은 그냥 배우 최나라니까요.
- 뿌
- 최나라한테 연극이란?
- 나라
- 삶의 돌파구. 살아가는 의미를 확인하는 곳. 화려함이나 성공보다는, 아프고 힘든 걸 버티고 견뎌내면서 발전하는 걸 확인하는 곳. <갈매기> (4막의) ‘니나’ 대사 같은 거 같아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 최나라(배우)
- 주요작품
<옥상 밭 고추는 왜> <너와 피아노> <왕위 주장자들> <함익>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