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영남
늘 시작이야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138호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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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엘렉트라>연습 중인 장영남 배우를 만났다.

한창 <엘렉트라>연습 중인 장영남 배우를 만났다.
- 뿌
- 선배님이 나오신 작품 마지막으로 본 게 <너무 놀라지 마라>였던 거 같은데, 몇 년 만에 연극하시는 거예요?
- 장
- 마지막으로 했던 게 국립극장에서 했던 <산불>이었고, 7년 됐더라고요.
- 뿌
- 오랜만이시네요.
- 장
- 그러게요. 중간중간에 작업 요청이 있긴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제가 마흔 넘어가기 직전 12월에 결혼을 했어요. 마흔이 되기 전에 꼭 결혼 할 꺼야, 그랬었는데 정말 애 쓴 거죠. (웃음) 그 시기쯤부터 매체 쪽 일에서 조금씩 분량이 늘어났어요. 연극이랑 두 가지 일을 다 하면 하루도 집에 제대로 붙어 있을 날이 없겠더라고요.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해서 배려도 해야 되고, 미안함도 있었죠. 그리고 매체 쪽 일이 늘어나면 연극 연습에 피해가 갈 수 있잖아요. 연극 팀에서 괜찮다, 다 양해할 수 있다, 그래도 막상 필요한데 제가 없으면 피해가 가죠. 무례한 일이기도 하고요. 매체 일이 스케줄이 자주 바뀌니까, 양쪽 다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되고… 나중에 좀 편히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예요. 7년이 지난 줄도 사실 몰랐어요. 기회는 많았죠. 좋은 작품도 많았는데 아쉽고 씁쓸하기도 했어요.
- 뿌
- 지금은 <엘렉트라>만 하고 계신 거예요?
- 장
- 네.
- 뿌
- 어떠세요?
- 장
- 처음에는 불안했어요. 요즘은 세상이 워낙 빨리 돌아가잖아요. 예전에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뭐, 6개월만에도 강산이 변하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되게 편해졌어요. 이렇게 연극 하나에만 몰두하기를 너무 잘 했구나, 싶어요. 이 여유로움이 좋고요. 사실 이 작품 하나만 생각해도 너무 쫓기고 있는데, 다른 거랑 같이 했다면 진짜 감당을 못했을 꺼 같아요. 한편으론 뿌듯한 마음도 들어요. 아주 잘 한 거 같아요.
- 뿌
- 같이 하는 게 참 어렵잖아요. 연극은 스케줄이 정해져서 가는데,
- 장
- 연극은 참 바른 생활이에요. 너무 좋아요. (웃음)
- 뿌
- 촬영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자주 스케줄이 바뀌잖아요.
- 장
- 맞아요. 그리고 새벽부터 계속 긴장을 하고 있어야 되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고요. 연극은 정해진 시간 안에 쭉 쌓아가는 시간이 있다면, 매체 쪽은 순발력 있게 그 순간순간을 잘 버텨야 되거든요. 지금 연극 작업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 숨을 좀 돌리게 되고 호흡이 좀 편안해지고요. 그 전에는 호흡을 꽉 차게 먹고 있었거든요. 지금 같이 하는 배우들한테서 얻는 에너지도 너무 좋고요.
- 뿌
- 매체랑 연극이랑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 장
- 전에 드라마 하면서 만났던 배우가 그러더라고요. 연극을 하면서 간간히 드라마를 하는 친구였는데, 현장 스태프한테 공연이 있어서 양해를 좀 구했대요. 그랬더니 공연 시간을 땡겨서 하실 수 없느냐고. (웃음) 좀 경험이 없는 스태프이긴 했는데, 그런 이유만은 아니겠죠. 그만큼 문화적으로 연극에 많이 친숙하지 못해서 그런 거 같아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웃음) 시스템에 관해서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서로 그런 면이 있죠.
- 뿌
- 이것도 시간이 좀 지나면 바뀔까… 잘 모르겠어요.
- 장
- 요즘 좋은 배우들이 TV드라마로 많이 넘어가시죠?
- 뿌
- 그렇죠. 좀 속상할 때가 있어요.
- 장
- 좋은 배우들은 계속 생겨나고 있을 거예요. 세상은 늘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새로운 배우가 처음엔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이전의 배우가 주지 못했던 새로운 만족감을 줄 수도 있죠. 연출이 어떻게 배우를 써주냐에 따라서, 그 배우가 우리에게 또 다른 굉장히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다 줄 수 있어요. 예전에, 전 아직 어려서 유럽을 가본 적도 없었던 때였는데, 오현경 선생님이 유럽에서 공연 보신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커튼콜 때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엄청나게 열 몇 번을 치더래요. 말을 잘 못 알아들었어도, 느낌상으로 그렇게 좋은 공연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열광을 해서 옆에 관객한테 물어보셨대요. 공연이 혹시 좋았냐고, 그랬더니 썩 좋은 공연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이렇게 응원해주면, 분명히 저들 중에 우리를 정말 기쁘게 해줄 좋은 배우가 생겨날 것이라고 대답을 했대요. 파이팅을 해주는 거잖아요. 그렇게 바라봐주는 관객이, (연출의) 시선이 있으면 배우들은 금방금방 성장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뿌
- 그 관객 분들이 정말 멋있네요. 매체 얘기 나온 김에, 영화 처음 하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저는 <박수칠 때 떠나라>로 선배님 영화를 처음 봤던 것 같은데요.
- 장
- <아는 여자>가 첫 작품이었고, 그게 두 번째 작품이었어요.
- 뿌
- 오! 초반부터 큰 역할을 맡으셨네요.
- 장
- 연극 <웰컴 투 동막골> 초연할 때 영화에서 강혜정씨가 했던 역할을 제가 했었어요. 그 때 잘 보셨던 거 같아요. <아는 여자> 제안하셨을 때, 거절하려고 했는데, “영화 한다, 그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르바이트 한다 치고 한 번 해봐” (웃음) 그러셨어요. <박수 칠 때 떠나라>할 때도, “이거 해, 그냥, 아르바이트처럼” 그러셨고. 얼렁뚱땅했는데, 사실 저한테 큰 기회를 주신 거죠. 너무 감사한 일이죠.
- 뿌
- 처음 영화 하실 때 어렵지 않으셨어요?
- 장
- 낯설긴 했지만 저를 신뢰해주는 든든한 분이 감독으로 계시니까,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감도 있었고요.
- 뿌
- 그래도 무대에서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랑 많이 다르잖아요.
- 장
- 이후에 다른 현장에 갔을 때 낯섦과 괴리감이 엄청 났었죠. 되게 긴장되더라고요. 장진 감독님이랑 할 때, 내가 잘 모르고 너무 편안하게만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뿌
- 얘기가 좀 돌았는데요. 오랜만에 무대에서 연기하시는 거 어떠세요?
- 장
- 힘들죠. 지금 막 발걸음 하고 있어요, 초짜. (웃음) 네 발로 기다가 이제 간신히 일어나서 두 발로 걷고 있는 것 같아요.
- 뿌
- 어떤 점이 힘드신가요?
- 장
- 일단 LG아트센터라는 큰 무대를 채워야 되고, 타이틀 롤이니까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되는 게 있죠. 그리고 감정적인 라인이나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쉽지 않은 점이 많아요. (각색을 해서 엘렉트라가) 게릴라 여전사이다 보니까 총도 잡아야 되는데, 폼이 너무 어설프니까 (웃음) 남자배우들한테 많이 배워요. 너무 살뜰하게 잘 알려줘 가지고 저한테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웃음) 너무 고맙죠.
- 뿌
-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경우는 사실적인 현대물이 대부분인데, 서양 고전을 하시려니 차이가 좀 있을 것 같아요. 말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 장
- (한태숙) 선생님한테 말이 너무 빠르다, 너무 현대말로 한다, 지적을 많이 받았죠. 저 지적 많이 받고 있어요.(웃음) 연극배우들한테는 연극적인 톤이 있다, 그런 말들 하잖아요. 그런데 큰 무대에 섰을 때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있어요. 우리는 이야기를 잘 들려주고 만들어가야 하는 사람이니까 대사가 잘 들려야 되잖아요. 그러려다 보면 대사를 더 씹어서 천천히 말하게 되니까 일상톤처럼,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들리지는 않겠죠.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말한다고, 형식적인 틀을 만들어달라고 하셔서 만들어가고 있어요.
- 뿌
- 만약 소극장에서 사실적인 작품을 하셨으면 크게 차이를 못 느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장
- 맞아요.
- 뿌
- 예전에는 큰 무대도 많이 서셨잖아요.
- 장
- 그렇죠. 시간의 괴리감이라고 할까요? 그걸 속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연기를 계속 쉬지 않고 했지만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건 또 다른 에너지고, 확실히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잖아요. 단련됐던 게 (무대를 떠났던) 그 시간 동안 없어진 거 같아요. 제가 새로 시작하는 것 같다는 게, 다시 단련을 하는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동안 내 것을 많이 소진하고 까먹지 않았나, 생각도 들고요. 지금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어가고 있죠.
- 뿌
- 근데 또 매체 작업을 했던 경험이 연극을 하는 데에 도움이라고 해야 될까요, 좋은 영향을 끼친 면도 있지 않으세요?
- 장
- 그런 것도 있죠. 좋은 것도 있고 또 나쁜 것도 있고요. 근데 연극이 확실히 좋은 거 같아요. 비교불가인 거 같아요. 그쪽에 있으면 대중적으로 알려질 수도 있고, 돈도…
- 뿌
- 출연료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죠.
- 장
- 그런데 비교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나의 정서나 정신세계가 그런 걸로 다 충족되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어릴 때부터 이걸 해서 그런가 봐요. 어떤 땐 되게 죄의식 같은 걸 느낄 때가 있었어요. 내가 원했던 삶이 이런 거였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혼란스러웠어요. 특히 애기 낳고 한 5년 동안은 스스로 많이 위축되고 의심을 너무 많이 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뭔가 되게 갈증이 나고, 내가 텅 비어있는 것 같고. 내가 해왔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이 그냥 한순간에,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꿈꿨던 것이 이거였나? 뭐였지? 너무 이상한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 뿌
- 연기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었을까요?
- 장
- 애기 낳고 한 2년 뒤에 온 것 같아요. 연기하는 게 너무 행복하고 너무 즐거웠는데 어느 순간 별로 즐겁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막 미치는 거죠. 이게 너무 좋았거든요. 너무 잘 해보고 싶었고. (웃음) 그런데 내가 무기력해진 느낌? 여태 해왔던 걸 다 까먹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해요. 여태까지 해왔던 게 뭐가 있겠어? 늘 새롭게 하는 건데, 늘 새로운 작품이지, 똑같은 작품 아니잖아요, 그냥 늘 시작이야, 맞아, 그게 정답인 거 같아, 그런 마음으로 다잡고 있는 거 같아요. 사실은 그런 와중에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거예요.
- 뿌
- 되게 잘 만나신 거네요.
- 장
- 그렇죠. 지금 연기를 잘 하고 있지는 못해요. 찾아가는 중이고 찾아가야 할 게 많죠. 그런데 너무 행복해요. 이거 때문에 속상해서 짜증도 나고 그러다가도, 배우들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정말로. 너무 귀해서, 시간이 너무 빨리 갈까 봐 겁이 날 정도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끝날 게 아쉬워요. 끝나고 나면 병 나겠어요, 어떡해. (웃음)
- 뿌
- 무대 처음 서는 배우들이 끝나는 거 엄청 아쉬워하잖아요. 꼭 그러신 거 같아요.
- 장
- 그런가요? (웃음) 연극에서 시간의 깊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잖아요. 사실 연습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되니까, 연극하는 게 좀 두려운 게 있어요. 그런데 막상 연습을 하니까 이 시간의 깊이가 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건지, 새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 뿌
- 영화나 연극이나 드라마나,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 별로 없잖아요.
- 장
- 그렇죠. <엘렉트라>가 욕심나는 이유도 바로 그거예요. '클리타임네스트라'랑 함께 여성이 중심이 되는 극이죠. 매체 쪽에서는 치고 빠지는 조연을 많이 했으니까 더 그렇죠. 희랍비극 중에서도 누구나 다 탐낼 만한 그런 역할이기도 하고, 한태숙 연출님을 만나는 것도 좋고요. 너무 욕심 났죠. 보러 오실 거죠? (웃음)
- 뿌
- 시간만 되면 가고 싶어요. 궁금합니다. (웃음)


- 뿌
- 연극데이트 마지막 질문입니다. 장영남에게 연극이란?
- 장
- 이루 말 할 수 없어요. 연극을 생각하면 눈물 나요. (정말로 글썽해진) 생각하면 짠한 것 같아요. 지지고 볶고 했던 시간들에 대한 코 끝 찡해지는 그런 마음? 너무 좋은데 계속 못했으니까.소중하다고 얘기하기에는 닭살스럽고, 늘 그리운 엄마처럼 짠하고, 어디 한 구석에 찜찜하게 남아있는… 그리고 뜨거움이죠. 가장 날 뜨겁게 해주는 거죠. 또 저한테는 둥지 같은 거죠. TV에서 본 건데, 갓 태어난 새는 되게 징그럽더라고요. 걷지도 못하면서 어미새가 물어온 먹이를 먹겠다고 막 애를 써요. 제가 그렇게 받아먹겠다고 막 용을 썼던 그 둥지, 날 많이 감싸주고 보듬어줬던 어미새 같은 게 연극이었던 거 같아요.
- 뿌
- 마지막에 과거형으로 말씀하셨는데 지금은요?
- 장
- 지금은 ‘행복함’입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 장영남(배우)
- 2002년 제38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 수상
200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연기상 수상
주요작품
<엘렉트라> <산불> <너무 놀라지마라> <갈매기> <경숙이, 경숙아버지> 외 다수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