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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세 번째 이야기

동네출신 연극과 그 예술가들

지강숙_극작가
76호 2015.09.17
한양도성 성곽으로 한 소녀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간다. 지적 장애를 가진 소녀는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른들이 자기에게 던진 비수 같은 말들,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고 놀림 당하던 이야기.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세 번째 이야기2013 제1회 한양도성 문화유산축제 풍류순성 '북정마을 편' <성북문화재단 주관/서울괴담 제작>

내가 동네에서 본 연극들이란 게 대략 이런 거다.

서울괴담 ‘성북동 성곽마을 이야기’

한양도성 성곽으로 한 소녀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간다. 지적 장애를 가진 소녀는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른들이 자기에게 던진 비수 같은 말들,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고 놀림 당하던 이야기. 얼마 후 그녀는 성벽 돌 사이에 대고 소리친다.

“현정아, 사랑해”

소녀는 자기 이야기를 마친 후 사람들에게 꽃을 나눠준다. 공연을 관람하던 구의원, 주민, 다큐멘터리 감독 할 것 없이 꽃을 받아든다. 소녀는 웃으면서 말하는데 관객들은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성북동 뮤지컬 <심우>

만해 한용운 고택 심우장. 수학여행에서나 들를법한 고루한 한옥집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택이라고 한다. 그곳 심우장에서 만해 선생과 그의 딸 복장을 한 배우들이 나와 연기한다.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지우知友 김동삼 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죽임을 당하고 상을 치러야 하는데 아무도 오지 않은 일화를 가지고 극단 ‘더늠’이 뮤지컬을 만들었다. 관객에게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딸에게 성질머리 꼬장꼬장한 만해 선생이 시끄럽다고 꾸짖자 그녀가 나이 먹은 아버지를 달래듯 응수한다.

“아버지. 백년 뒤 이 땅은 자유와 평화의 땅이 될 거예요.”

울부짖는다. 그러자 호통을 치던 만해 선생은 물끄러미 관객들을 내려다보더니 묻는다.

“어서오시게. 그대들의 조국은 안녕한가?”

백 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 있었을 까치와 향나무에 취해 있을 때쯤 같이 공연을 보던 중고생들이 찔끔찔끔 눈물을 흘린다. 공연이 끝나고 젊은 여선생이 우는 학생 하나를 가만히 안아준다. 골목 끝에 사는 얼굴 새카만 아이, 친구들 데리고 와서 ‘우리 동네에서 하는 뮤지컬이야’라며 자랑한다. 문을 나서기 전 한 아주머니, 이 공연을 다시 보려면 구청에 민원을 넣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두 번째 이야기2014 제3회 성북진경 페스티벌 '심우' <성북문화재단 주관/극단 더늠, 성북문화원 제작>

처음 서울괴담의 공연을 봤을 때, 나는 이 공연이 세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왕조 때부터 마을과 함께 한 한양도성이 품어 온 도저한 역사와 현정이가 소리치는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자기 위안이 600년의 시간 위에 차곡차곡 포개지면서 시간과 공간을 사뿐히 넘어 초자연적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 삶의 고단함이 거대한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순간, 그 무한한 공간감과 아득한 시간 감에 숙연해졌다. 이게 다 유영봉 연출이 지난 5년 간 북정마을에 살면서 지지고 볶고 갖은 풍상과 기쁨을 누리며 만들어낸 작품이다. <북정마을 사람들>, <북정블루스>. <칠순잔치>까지, 그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지역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 스스로 또는 곁에서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고 특히 마을 평상인 북정 카페 앞에서 동네 아저씨들과 막걸리 마시고 춤을 출 때, 정말 즐거워 보였다. 나는 술에 흥건히 취해 동네아저씨들과 엉켜 노는 그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그러던 그가 엊그제 우연히 만난 길에서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본연의 직업이 있다 보니 마을에 집중을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그런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동네 전체가 서울괴담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건 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누가 나한테 서운해 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마을 전체가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은 이상한 거죠.” - 유영봉 연출가

마을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마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고, 어떤 활동을 하든 마을에서는 으레 부딪히는 문제였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연출의 수심이 깊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아내>, <왕을 바라다>등을 창작한 극단 ‘더늠’ 차지성 연출의 <심우>는 작년 초연을 한 작품이지만 이제는 명실상부 성북동을 대표하는 뮤지컬이 되었다. 1년 동안 한 달 걸러 한 번 꼴로 재공연이 실시되었으며 지자체 차원에서 상설화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매번 공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작품료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는다. 관에서는 공연을 치를 만큼의 예산확보가 힘들고, 무엇보다 한 예술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두 연출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가끔 가감 없이 얘기해준다. 내가 그들의 후배 예술가인 동시에 재단에서 일하는 풋내기였기 때문에 혹은, 잊을만하면 동네 맛집에서 마주치는 동네 어중이떠중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공유성북 원탁회의’(이하 원탁회의)라는 이름으로 이분들을 만났다. 제1회 원탁회의의 목적은 성북에 사는 문화예술인을 초대해서 일단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제1회 원탁회의를 준비하는 팀이었던 나는 성북동에 자리한 ‘메타기획 컨설팅’에 건너가서 그릇을 빌려오고, 어느 김밥집, 꽃집, 통닭집에서 어떻게 음식을 세팅해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를 수첩에 받아 적었다. ‘기획의 완성은 디테일’이라는 진리를 터득함과 동시에 얼마짜리 꽃과 통닭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그것을 담는 그릇, 모아내는 소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북도원’이라 불리는 북악산 끝자락 어느 오두막에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때 성북동에서 오래 활동한 건축연구소에서 나와, 성북동의 지형과 주거형태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미술가와 연극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쭈뼛 주뼛 소개하기도 했다. 뮤지컬 <심우>를 창작하는데 영감을 준 성북문화원 직원들도 거기서 만났다. 문화원 옥상에 가면 성북을 둘러싸고 있는 북악산자락 능선이 모두 내려다보이는데 거기서 정치, 역사 이야기를 마치 오래된 선배처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원래 북악산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성의 북쪽 동네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은 순환하고 있었다. 다만 ‘공유성북 원탁회의’라는 잘 닦인 소반이 하나 나타났을 뿐이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세 번째 이야기2014 공유성북 원탁회의 준비모임

‘공유성북 원탁회의’라는, 거창하고 정책적인 이름으로 만났지만,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수다를 떨고 고민을 나누는 담화를 즐기는 일이었다. 하루는 원탁회의에서 앞서 언급된 심우장에서 야간개장을 해서 밴드공연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지역콘텐츠개발이라는 그럴듯한 PT까지 만들어 와 방향성과 가능성까지 발표하는 극단 대표님은 진지했으나 거기에 대고 많은 동료들이 소중하고 심플한 정보를 제공했다. ‘야간개장은 주민들이 원하지 않으므로 절대로, 절대로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의견을 낸 극단 대표님은 바로 수긍했다. 그리고 얘기는, 심우장 말고 다른 데서 놀 데가 없는 지로 이어졌고, 미아리고개 고가차도 아래 음침한 창고에서 예술활동을 하고 싶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이처럼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 현장의 상태가 원탁회의를 만든 토양의 질감이었다고 생각한다. (성북에는 전국 연극인의 60%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예술을 시작할 수 있는 동료를 얻었고 서로의 정보를 교류했다. 그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자원을 협력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원탁회의’라는 완충창구를 통해 ‘관’과 소통한다는 것이다.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었다. 10년간 문화예술계의 숙원과 논의 끝에 문화예술향유에 관한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은 글 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던 나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나 예술활동의 안정성 보장 측면에서 다행스런 일이지만, 세금으로 운영되는 예산책정의 근거를 찾기 위한 성과지표가 예술의 존엄을 침범할 수 있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관은 관대로의 어려움이 있고, 민은 민대로의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말하는 내내 진지했던 유영봉 연출은 “지역 예술은 공리적이어선 안 된다”는 말로 짧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동기 없이 순수하게 만나지 않는 이상 마을을 먼저 보는 게 아니라 목적, 부담감을 갖고 시작하게 된다. 나는 누구고 당신은 누구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관에서 판을 짰을 때는, 그 판에서 빠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결과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예술가들에게는 시간이다. 이거다 했을 때 확인하는 시간에 비례 한다”고도 전했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세 번째 이야기2014 제4회 공유성북 원탁회의

커뮤니티 아트가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실 예술이란 본래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치열하게 혼자 고민해야 하는 것. 하여 지고한 예술혼을 발휘하기 위해 내안의 더 깊은 골방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고 읽어왔다. 하지만 골방 끝에서도 예술가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얼굴 새카만 아이가 ‘우리 동네에서 하는 뮤지컬’이야, 라고 말할 때의 자부심어린 표정 같은 것. 골방에서 만든 작품으로 더욱 사람 가까이서 소통하고 싶은 이들, 지역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고향에서 올라와 마을이라곤 생각해 본 적도 꿈꿔본 적도 없다. 그것은 비단 지역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나고 자란 지방 소도시에서도, 그런 개념은 애초에 없었다. 80년대 생인 내 서른 몇 해 인생에서 마을이란 정체성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서른이 넘어서, 지금 죽어도 요절이라 볼 수 없는 애매한 이 나이에, ‘예술공동체’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해 본다. 학교에서도 배운 적 없고(선생님도 모르니까), 부모님도 가르쳐준 적 없는(느껴본 적 없으니까), 마을에서 배우는 ‘정신’이나 ‘마음’ 같은 거다. 예술가가 관객을, 주민이 예술가를 응시하는 힘. 예술가가 예술가를, 사람이 사람을 응시하는 힘. 마을이, 마을이 되게 하는 힘이 탯줄처럼 이어져 양분을 공급받고 자생한 지역의 작품들이 굉장히 ‘쿨하고’, ‘세련됐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80년대 생인 내가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자세와 태도를 담고 있는 예술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북으로 이주를 검토 중이다. 직장 살이 2년 정도 되었으니 ‘쿨하고 세련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 사는 즐거움’을 만끽할 때도 됐다. 제멋대로 살고 있지만 내 작품들을 어서 동네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사진: 성북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