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네 번째 이야기
극장 밖으로 나온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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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극장 밖으로 나온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거리극 축제에서의 몇 가지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축제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무척 다양하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의미를 가진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거리극’의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현존하는 거리극 축제 프로그램들의 양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공통점은 공연이 극장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극장 밖으로 나온 다양한 형태의 공연들은 주로 축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것들
극장 밖으로 나온 프로덕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변수의 연속이다. 2014년 하이서울페스티벌 해외초청작 ‘마더보드 프로덕션’의 < 지하Underground >의 시민청 셋업 과정이 떠오른다. 서울 중심 어딘가의 지하 술집에서 펼쳐지는 소수자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음악극이다. 오래되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위해 필요한 소품들이 많았다. 호주에서부터 온 커다란 컨테이너가 시민청에 도착했고 주차부터가 문제였다. 본디 공연장이 아닌 탓에 건물에는 반입구가 없었고, 공간에 한 번에 닿을 수 있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여러 명의 스텝들이 밤새워 짐을 옮겨 가까스로 셋업 시작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이후에도 조명을 걸 수 있는 바텐, 전력 부족 등 공연 직전까지 문제가 끊임없이 벌어졌다. 한 숨 돌리고 서 있는 무대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이거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공연장이 아니라서 그래요. 여기가 원래 공연장이면 하나도 문제 될게 없지. 다 있으니까.”
같은 해 ‘페이퍼백 씨어터’의 <만담>은 시민청 건물의 반 야외에 자리 잡게 된 천막 극장에서 공연 되었다.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극장이 된다.’를 모토로 거리로 나온 그들의 ‘천막 극장’은 그것이 가진 간이성과 모토가 무색해 질 정도로 육중했다. 천막 극장 안에서 두 명의 배우가 꼬리에 꼬리를 잇는 이야기 형식으로 극을 끌어갔는데, 리허설을 끝낸 연출가가 걱정스럽게 이야기 했다.
“소음에 너무 취약해요. 비라도 오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요.”
극장 밖으로 나오면 우리가 극장에 얼마나 길들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익숙한 극장을 등지고, 다양한 변수를 끌어안는다. 내가 목격한 그들의 고민은 서로 닮아 있었다. 극장의 당연한 것들이 제거된 환경에서 창작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했으며, 이러한 고민에 대한 보상으로 크고 작은 의미들을 생산해냈다.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호모루덴스 컴퍼니+코끼리들이 웃는다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공연이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이진엽 연출은 공연장소로 본인의 집을 선택했다. 한 회에 관람 가능한 관객은 총 8명. 모두 사전예약을 받았다. 신청자에 한해 관객을 추첨 했다는 말이 옳으리라. 사전 안내에 따라 편한 옷을 입고서 로비가 아닌 현관마당에서 속절없이 해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둑어둑 해가 질 때쯤 반 강제적으로 무장해제를 당한 관객은 한 명씩 현관계단을 올라갔다.
이렇게 <201호...>에는 어느 것 하나 낯선 물건이 없었다. 낯선 사용법이 있을 뿐이다. 색소 가득한 녹색 캐러멜은 우리를 그들과 같이 만들어 주었으며, 외계인이 수평으로 들고 빙빙 돌던 대걸레는 피해야 하는 장애물이었다. 공연이 벌어지는 장소는 극장보다도 친숙한 공간인 ‘집’이다. 하지만 ‘낯선 사람의 집’이라는 맥락과 ‘응접실’, ‘침실’, ‘거실’등이 가지는 보편적인 인상들이 뒤얽혀 감정의 층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신나는 음악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사이, 현관벨 소리가 들렸다.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모두가 함께 요란스러운 장난을 치다가 걸린 사람들처럼 화들짝 놀라 현관을 바라본다. 연출된 상황인지 해프닝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상황을 수습하고 돌아온 외계인의 그저 덤덤하게 미션을 진행시켰다. ‘사건’은 이곳이 일상 속의 '201호'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뻔뻔한 상상력으로 응접실 바로 옆 침실까지의 거리를 ‘산 넘고 물 건너’는 거리로 바꾸어 놓는다. - 채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리뷰 중<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극장에 들어가는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걷어내고 주어진 공간에 집중했다. 그들이 집안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일상의 익숙함을 전복시켜 낯설음을 이끌어 내고 공간을 확장하는 동안, 관객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다. 극장의 용례를 깬 이곳에서는 바라보아야 하는 방향이 일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VaQi <소소한 극장>
<소소한 극장>
<소소한 극장>의 공연장소는 크리에이티브 VaQi 이경성 연출의 집이었다.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와 같이 전석 사전예약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관객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 큰 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앉았다. 얼핏 관객들의 신발을 정리 하고 있는 이경성 연출의 소소한 모습이 보였다. 짧은 에피소드들은 긴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작은 소리에도 가득 차는 좁은 공간은 자연스럽게 감정을 고조시켰다. 공간은 각각 십오 분 남짓한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 따라 간단한 소품의 도움을 빌어 전환되었다.
푸코는 사회 안에 실제하며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공간)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헤테로토피아’라 칭했다. 이것은 양립 불가능한 여러 공간을 실제의 한 장소에 겹쳐 놓는 원리를 가진다. 나는 <소소한 극장>에서 하나의 공간에 온갖 낯선 장소들이 연이어지게 만드는 ‘헤테로토피아’의 유난히 사실적인 일루전을 목격했다.
상암 월드컵경기장 내에 자리 잡은 2015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네 번째 이야기](/__FILEDATA_WZ/20151008140240.jpg)
2015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축제 싸이트를 온전히 서울월드컵경기장 내에서 구성하였다. 홍대에서 경기장으로 옮겨오는 과도기였던 2014년의 페스티벌 보다는 경기장 내 사용공간의 다양성이 떨어졌지만(사무실, 선수대기실 등 고유한 용도를 가진 공간의 제외-운영측면에서 봤을 때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페스티벌 참가작들은 어느 해보다 ‘공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공연 관련 설비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반 야외에 가까운 이곳에서 배우의 동선과 관객의 시선을 개발한 몇몇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이것을 보며, 페스티벌에 참가한 차세대 창작자들이 극장 외 공연공간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창작영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공간을 연다. 극장 밖으로 나간 예술은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다양한 규제에 부딪히지만, 동시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양해 받기도 한다. 이렇게 예술로 연 공간에서 창작자는 ‘시선’을 발견하고, 관객과 공유한다. 이때 예술은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극장 밖으로 나온 연극이 가진 힘은 바로 이것이다.
[사진: 각 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