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일곱 번째 이야기
역사를 따라 행진하는 동시대 연극 : 도시화/산업화된 시공간에서 연극을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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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노니 <기억하는 사물들>(촬영_최용석)
1. 산업적/근대화 공간에서의 연극
산업유산(産業遺産)은 공업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남겨진 과학 및 산업 기술과 연관된 시설 및 공간으로 유휴 산업시설의 활용에 대한 모색으로 등장한 새로운 문화/공간적 개념이다. 최근에는 ‘재활용’의 가치를 인정받아 극장과 전시장 등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되고 있다. 2009년에 문을 연 서울시 창작공간의 하나인 금천예술공장과 갤러리, 극장을 구비한 예술가 레지던시형 스튜디오 인천아트플랫폼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서울역 건물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개관한 “문화역 서울 284”와 구의 취수장을 거리예술의 창작기지로 단장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공간은 극장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감각적 '리얼리티' 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도시의 이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이 주목하는 장소가 되었다.
노후된 시설/공간 재활용과 도시재생이라는 ‘경제적 효과’에 지역민과 공공기관이 주목한다면, 산업유산의 공간을 찾은 예술가들은 이와는 사뭇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창작집단 노니가 “문화역 서울 284”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선보인 <기억하는 사물들>의 연작들이 그러하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헤드폰을 주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게 하면서 곳곳에 설치된 무대미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관객들은 공간에 기입된 흔적들을 발견하면서, 들려오는 내러티브를 통해 자기만의 연극을 완성하게 된다. 요컨대 <기억하는 사물들>은 잊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근대화로 인한 '상처'와 '상실' 을 기억하면서, ‘경제적’ 가치에만 매몰된 현대인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노니의 공연은 기존의 '극장' 공간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형태의 작업으로, 대표인 김경희 연출가가 공간연출 및 무대디자인에 특화된 예술가임을 떠올려 볼 때, 퇴락한 산업유산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보이스 씨어터 몸MOM소리 <도시 소리동굴 프로젝트>(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제공)
최근 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있었던 보이스 씨어터 몸MOM소리의 <도시 소리동굴 프로젝트>(연출 김진영) 또한 ‘구의 취수장’의 환경적 조건을 십분 활용하였다. 비어있는 작업장의 음침하고 어두운 분위기, 공간의 깊이와 높이를 통한 소리의 울림 등은 시각적/청각적으로 독특한 무대 환경을 구축해냈다. 네 명의 여성 배우들은 노래와 울음과 절규 사이를 오가며, 몸으로부터( 혹은 오브제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소리를 관객들에게 전달했는데, 현대 도시인의 상실에 대한 공포와 근원적 슬픔을 ‘영성’의 감각으로 풀어내었다. 이 또한 산업장이 갖고 있는 분위기와 공간감을 발견하여 작품화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살펴보면,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산업유산이 공공에 개방되는 것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기존의 공공극장과는 ‘차별화’된 또 하나의 '극장' 이 문을 연 셈이다. 일시적 점유나 대관의 형태로 장소를 빌렸던 것과는 다르게, 창작공간이 된 산업유산 구역에서는 레지던시의 형태로 혹은 리서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공간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활용의 범위가 커지는 만큼 상상력과 창의력의 범위 또한 확장되는 것이다. 지역, 장소, 공간의 맥락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경우, 혹은 산업장 그 자체를 테마로 하여 작품을 만드는 경우, 텍스트중심의 극장주의적 연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의 공연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연극 미학이 대학로중심의 소극장과 제작극장중심의 중극장에서 비롯된다고 할때, 이러한 도시화/산업화의 흔적 위에서 시도되는 작품은 한국연극의 새로움과 다양성을 이끌어내는 바람직한 동력이라고 할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은 기존의 ‘장소 특정적 연극’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특정한 장소나 공간을 예술가가 선점하는 경우, 그 공간의 아우라는 그 작품 이후에 고유성과 개성이 점점 약화되는 반면, 산업유산에서의 공연은 작품화되는 과정에 있어서 그 새로운 쓰임새와 가치가 끊임없이 발견된다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간은 그간 한국연극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장소가 '되어줌' 으로써 다양한 드라마의 생성 또한 기대해 볼수 있게 하였다.
<대학로예술생태프로젝트>(한국공연예술센터 제공)
2. 낯선 동네를 걷는 길 위의 연극
기존의 산업장에서 역사적/예술적인 맥락을 발견했듯이, 일상화되고 진부해져 버린 공간에 대해 ‘낯설게 보기’는 연극을 위한 '극장’ 에도 해당된다. 지난 해 남산예술센터에서 있었던 크리에이티브 VaQi의 <남산 도큐멘타>는 남산 드라마 센터였던 지금의 예술극장에 인격을 부여하여, 그(것)의 시선으로 스스로 자기 공간성을 증언하게 하였다. 무브먼트 당당의 <공장의 불빛-극장집회> 또한, 시위와 집회의 장소로서 70-80년대 ‘극장’ 공간의 기능을 '지금, 여기'에 다시 불러내었다. 이러한 작업들은 그 '장소' 에 내재된 정치적, 역사적 맥락을 재발견함으로써, 동시대 연극이 선 자리와 나아갈 방향을 성찰하게끔 하였다.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야심차게 시도했던 <대학로예술생태프로젝트>는 연극동네로만 인식되었던 대학로를 다양하게 감각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대학로의 모습을 예민한 예술가들의 눈으로 포착해내고, 연극사(演劇史)의 차원이 아니라 인류학적 차원에서 미시사에 관심을 두는 등, ‘연극’이라는 거대한 구호 뒤로 보이지 않던 가치들을 발견해내자는 취지였다. 올해 생태프로젝트를 마감하고 정리하는 쇼케이스 자리에서 연출가 적극과 안무가 밝넝쿨은 아르코 대극장에 모인 관객들과 함께 대학로의 거리를 행진할 것을 제안하였다. 손에 간단한 타악기를 든 관객들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서 흥겹게 박자를 맞춰 걸었다. 관객들은 상업화된 대학로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변질된 연극동네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왜소하고 초라하게 변해버린 연극의 모습을 반성하게 해 주었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일곱 번째 이야기](/__FILEDATA_WZ/20151119101552.jpg)
이러한 행진의 연극(성)은 올해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있었던 <안산 순례길>(연출 윤한솔, 기획 고주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작년의 세월호 참사로 인해 귀한 목숨을 잃었던 안산의 단원고 학생들을 애도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먼저’ 안산의 길을 찾아내어 걸었고, 그들의 작품에 관객들을 초대했다. 기존의 극장에서 안락한 좌석과 조용한 환경을 제공했다면, 길 위의 극장에서는 외려 신체적 고통과 불편함을 야기한다. 관객들은 5시간가량 지속되는 순례길을 힘들게 걸으면서, 세월호 참사로 인한 슬픔을 떠안은 ‘안산’ 이라는 도시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이는 국가의 일방적인 공업개발로 인해 소외받고 외면당한 도시의 면면이다.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순례길의 막바지에 맞닥뜨리게 되는 단원고등학교의 2학년 교실. 기존의 연극에서 갈등이 고조되고 사건이 터지면서 절정을 맞이하듯, 순례객들은 눈앞에 펼쳐진 학생들의 빈 자리에 감정적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연극이 멈춰선 지점이 고통의 현장이라는 점이 실로 의미심장하다. 관객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연극을 ‘보는’ 것을 넘어, ‘걷는’ 행위에 동참함으로써, 그 비극적 사건을 몸/기억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작년 하이서울페스티벌의 기간 중에 서촌에서 공연되었던 인스펙터샌즈와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서촌 오디세이>는 오디오 연극과 이동형 방식이 결합된 작품이다. 이 또한, 서촌을 단순히 둘러보는 관광(觀光)의 차원이 아니라, 동네에 새겨진 사소한 흔적과 내력들을 함께 듣고, 거닐면서 장소를 예술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고즈넉하고 운치 있었던 동네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로 점차 와해되어 가는 상황을 통해 도시의 이슈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3. 나가며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대학로’라고 하는 특정한 동네에 많은 수의 연극들이 몰려들었다. 그에 따라 '연극 = 대학로' 라는 등식이 성립되었고, 한국연극의 주요무대는 실내형 극장으로 한정되었다. 대학로는 창작자들에게는 하나의 소(小)우주로서 작용하였고, 연극의 공간적 상상력은 스케일과 다양성면에서 점차 축소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새롭게 진입한 연극세대와 다원적 형식으로 무장한 창작주체, 그리고 거리예술과 극장예술을 넘나드는 예술가 등으로 인해 이러한 협소한 미학은 점차 변화를 맞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변화는 - 산업사회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정치적/경제적 계급이 분화되어 가는 이 위기의 시대에 - '연극' 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의 고민에서 비롯되었으리라.그 와중에 연극은 세련되고 품위있는 장르이기를 포기하였고, 관객들은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탐험가, 순례자, 동행자로 호명되기에 이르렀다. 도시-부르주아를 위한 문화 '상품'이 아니라 의식있는 민주-시민으로 자각케 하는 예술 '활동'으로 역할하기 위한 예술가들과 공공 예술기관의 노력이 성과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 공공/국립극장의 상연물로 대표되어 각인되었던 ‘좋은 연극’의 의미와 실체가 보다 다양해지고, 그 과정에서 공공과의 관계성을 보다 주체적으로 확립하려는 예술가들의 자발적 노력도 점차 눈에 띄고 있다.
연극하기의 확장과 새로운 모색에 있어서, 예술가들은 도시화/산업화의 흔적 속에서 연극을 발굴하거나, 혹은 낯선 동네를 걸으며 자기만의 연극을 완성하였고, 한편으로 연극동네의 익숙한 풍경을 재맥락화함으로써, 지금 여기의 유효한 연극을 찾아내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한결같이 동시대 연극이 ‘본다’ 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성찰의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역사를 따라 행진하는 연극은 안락한 극장의 품을 벗어나 거리와 광장으로, 삶의 현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