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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작(作)인가 가(家) 인가 : 30대 희곡작가들의 연극생활 이야기

정진세_작가
82호 2015.12.17
10분희곡릴레이 페스티벌의 부대프로그램으로 30대 극작가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오늘 모임은 “작(作)인가, 가(家)인가” 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기획특집

일시: 2015년 11월 20일 오후 3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1층
사회·편집: 정진세(본지 편집위원)
참석: 석지윤, 오세혁, 윤성호, 이보람, 이여진
공동주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연극의 시작, 극작의 계기

정진세정진세

정진세
10분희곡릴레이 페스티벌의 부대프로그램으로 30대 극작가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오늘 모임은 “작(作)인가, 가(家)인가” 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극작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혹은 자기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서, 이를 온전히 누릴 수 없는 시대의 고민들도 나누고 싶다. 질문 중에는 선배 극작가들로부터 받은 것도 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연극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다.
윤성호
나는 연극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보지도 않았다. 가족 중에 연극계 종사하는 분이 있었지만, 서로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하고 싶은 게 딱히 없던 사람이었다. 제대 후 잠깐 쉬던 차에 책이나 읽어보자고 이것저것 읽다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다. 너무 재밌어서 이거 해볼까 했는데, 전혀 연고가 없어서... 무턱대고 조연출을 하다가 어깨너머로 배우고 지금은 하게 되었다.
이여진
나도 내가 창작을 할 줄 몰랐다.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했고, 그러다 신춘문예(<소녀=프랑켄슈타인>, 2012)에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서른 안팎이었다. 이미 숨 쉬고 마시고 이런 게 다 돈이라는 걸 아는 나이였다. 더 이상 가슴이 뛸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 앞에서 수년 만에 심장이 무척 뛰더라. 공황장애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흥분됐다. 사람이 이렇게 두근댈 수 있구나, 하는 감격을 수 년 만에 처음 느꼈다.
이보람
원래 만화를 좋아해서 하다가 그림을 못그려서 그만뒀다. 라푸푸 서원에 대사쓰는 공부를 해볼까 들어갔다. 차근호 작가님이 글 써서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다고 했다. 너무나 진실한 표정으로. (웃음) 그분도 힘들게 산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온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부귀영화 누리려고 이거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처음 들어올 때는 차작가님이 돈 벌 수 있다고 해서 들어왔고, 지금 버티는 건 고연옥 작가님이 십년만 더 해보라고 하셔서다.
석지윤
전공이 신문방송과였는데 학점이 안 좋았다. 복수전공을 찾다가 졸업논문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과가 문예창작과여서 거기 지원해 수업을 들었다. 학부에 이만희 작가님이 계셨는데, 뭘 보셨는지 날 불러서 진지하게 작품을 써보라고 얘기해주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에 그 말만 따라 넘어왔다. 그 때 연극을 처음 접하고 흥미를 느꼈다. 1년만 다녀보면서 공부해야겠다고 했는데, 오늘날까지 이러고 있다.

연극하는 삶, 작가의 생활

정진세
생활인으로 연극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부업이 있다면 혹은 벌이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질문 자체가 연극으로 자기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사람들의 상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되묻는 것 같다.
석지윤
현재 광고회사에 다닌다. 회사와 연극의 균형을 맞추려고는 하는데, 여느 회사처럼 시간이 잘 나지 않아서… 어떻게든 짬짬이 내려고 한다. 쓰다가 만 것들이 많다. 살펴보면, 쓰다가 중단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안타깝긴 한데 일단 살아야하니 회사를 열심히 다닌다. 오늘도 이 자리에 반차내고 왔다. 벌이라면 회사에 다니고 월급 받는 게 전부다.
이여진
예전에 회사를 다녔다. 당연히 작업할 때가 돈 벌 때보다 더 행복하다. 회사 퇴직금으로 버텼고, 그 후 2년간은 차비도 없이 지냈다. 그렇게 보내다가 다행히 복지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아서 또 몇 년을 버텼다. 최근에는 수상(<토일릿 피플>, 2014 창작산실)도 하고, 기금도 받아서 작품료로 받은 것을 나누어 쓰고 있다. 이야기할게 많지만 맨 정신에는 할 수 없을 거 같다. (웃음)

오세혁오세혁

오세혁
극단이 운명 공동체다. 극단에서 모이는 모든 수입을 극단에 모았다가 다시 월급을 주는 방식이다. 2005년 창단 시 10만 원인데 10년이 지나 지금은 100만 원이다. 많이 올랐다. (웃음) 우리는 10여 년간 지원금을 못 받았는데, 지원금을 못 받으니 공연기회를 얻어야 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어린이극 있느냐, 하면 네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바로 쓰고, 연애극 있느냐, 하면 바로 작업하고.. (웃음) 최근에는 극장이 사라지니까 이에 대비해야겠다 싶어서, 카페에서 하는 연극이나, 길거리, 갤러리, 이것저것 동네 등에서 하는 공연을 개발 중이다. 다행히 극단에서의 작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극단 곁에만 있으면 별로 힘들진 않은 거 같다. 내 철학 중 하나가 10만 원 버는 사람이 혼자 있으면 못살지만 10명이 있으면 어떻게든 산다는 거다.
윤성호
열심히 알바를 하고 있다. 다행히 연극에 관련되어 있다.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환자들을 연기하는 아르바이트다. 그 자리가 경쟁이 세다고 하는데, 내 이미지가 그런지 담당 선생님이 좋아하신다. 어떤 아픈 증상이라도 다 소화하고 있다. (웃음) 작업과 병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한다. 얼마 전에도 생계형 지원금이라고 해서 신청해서 받고 알음알음 살고 있다.
이보람
연극놀이수업을 다녔다. 그래서 원래 글만 쓰는 방송 일을 했었는데, 병행하다보니 감각이 서로 달라서 이도저도 안 되더라. 다 끊고 있다가 장애인 대상 연극놀이를 하는 친구를 통해 같이 공연도하고 수업도 하면서 생계유지를 하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생활비가 적게 들고, 집값이 안 든다. 식구들이 집에 잘 없어서 방해도 안 된다. (웃음)
정진세
작가의 하루, 한 달, 일 년이 궁금하다. 아마도 작가들의 일 년 사이클이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봄과 여름에 희곡 공모가 있고, 연말에 공공예술기관의 기금 신청이 있다. 최근에는 대본 공모나 희곡상들도 건수가 줄고 있어서, 작은 기회에 많은 극작가들이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다들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
이보람
지원금이나 공모 사이클은 잘 모른다. 마감이 정해져 있고 마감에 맞춰 쓰고 그렇게 하고 있다. 작년에 했던 공연(<소년B가 사는 집>)이 좀 알려져서 그 후로 계속 공연을 의뢰받는 경우가 생겼다. 의뢰를 받으면 시놉이나 줄거리 단계나 자료 수집 단계에서는 낮에 일어나 아침형 인간 생활을 한다. 수정이나 대사를 풍부하게 쓰고 싶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서는 밤에 야간형 생활을 하고. 밤낮을 바꿔가며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석지윤석지윤

석지윤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 척을 하고 또 퇴근을 하는데… 항상 연극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연극 생각을 하게 된다. 일하다가 핸드폰에 써뒀다가 시간이 났을 때 한두 시간 정리하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한 시간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나는 시간이고… 시간을 내려고 노력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야근이 많기 때문에 작업이 어렵다. <하드보일드 멜랑꼴리아>(2015,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 선정작)도 회사 다니며 썼다. 쓰고 나서 보니까 작품접수를 하고 있더라. 후배가 알려줘서 지원하게 되었다.
오세혁
일주일 사이클이 극단에 맞춰져 있다. 공연이 매일 있어서 그걸 준비하고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대본 작업을 한다. 시간이 없어 핸드폰으로 메모해 보내고 밤에 들어가 정리하는 상황이다. 수입이 들어오면 절반정도를 극단에 낸다. 극단이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네다섯 개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극단 숙소가 있어 같이 생활했는데 쓰는데 집중하고 싶어서 올해 혼자 살고 있다. 하지만 집에 고양이가 있어서 밖에서 쓰게 된다. (웃음)
윤성호
나도 혼자 살고 있다. 무분별한 생활이다. (웃음) 조연출을 3년 했다. 쉬는 날 없이 어떻게든 작업을 하려고하고 애썼다. 작품 쓰고, 연출 하고 하니까 생활이 무분별해지더라.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끝나 있다든지. 별로 바람직하지 못했다. 1년 사이클이라고 하기엔 작품이 자꾸 바뀌니까. 작가할 때도 있고 연출할 때도 있고. 일정하지 않다.
이여진
나는 작업 전담이기 때문에 공모전에 붙을 때까지 쓰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려야했고, 그 기회를 잊으려고 글쓰기에 더욱 매달렸었다. 내가 재밌어야 쓸 수 있고… 그렇게 끝없이 기다리면 지냈다. 하루 일과는 일을 할 때도 있고 학교에 다닐 때도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산책을 한두 시간씩 했던 것 같다. 그걸 마치고 돌아와서 2시간, 길게는 7~8시간 정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정진세
크게 두 부분의 고민인거 같다.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을 고민하는 부분이 있고. 먹고 살아야 하는 부분이 있고. 지원금은 그 사이에 걸쳐져있는 셈이다. 얼마나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지 궁금했다.
오세혁
결국 나는 무슨 얘기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다. 연극이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빨리 무대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원금이나 경제적 보상을 생각한다면 드라마나 뮤지컬로 가는 게 맞다. 알겠지만, 창작 지원금은 작가에게 얼마 돌아오지도 않는다.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잘 쓰려다 보니 지원금 쪽으로 생각이 뻗어간 거지, 지원금이 먼저라면 애초에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것이다.

극작가의 정체성, 극작가의 관심사

정진세
김명화 작가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연출가들이 텍스트를 쓰고, 무대미술가도 작, 연출을 하고 있는 시기에 극작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비슷한 질문을 최원종 작가님도 전했다.
오세혁
연극의 시작이 광대라면 다들 직접 쓰고 연출하고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도 그렇고 몰리에르도 그랬다. 그러다 집중하는 분야가 생겨나 집중을 하게 된 거겠지만, 여러 군데 걸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계를 타고 다닐수록 썩거나 굶지 않을 것 이다. 걸판 같은 경우는 사실 1배우 1작가 1대본 시스템을 추구한다. 이게 옳다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렇다는 것이다.
윤성호
방금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 답이 쉽게 나진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글을 쓰게 되면서 지금이 과연 전문적인 작가를 필요로 하는 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컨템퍼러리 작업을 보면 감명을 받는데, 그러한 작업들의 구성에 있어서 다양한 주체들이 하는 노력들, 고민들이 많이 엿보인다. 극작가들이 글을 쓸 때는 아무래도 혼자 시간을 들여서 조사와 자료정리를 하게 되니까… 시의성와 관련해서도 개인이 하는 작업이 대중들의 정서에 딱 와닿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더라.

이여진이여진

이여진
희곡작가는 기본적으로 놀이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에 시나 소설을 하지 않고, 여기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도 그래서 희곡작가를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라는 건 일과 놀이가 분리되어있는데, 극장에서만큼은 관객이며 배우며 다 같이 놀 수 있어야 한다. 작가라고 다른 위치에 있는 것 같진 않다. 같이 호흡하며 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공연모드로 들어가면 나는 공연팀 소속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임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더라.
이보람
예전에 김현탁 연출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란 공연을 봤다. 고전 희곡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컨템퍼러리로 해체해서 만들었는데 작품이 너무 좋아 충격을 받았다. 극작가가 이 시대에 연극만 할 이유가 있나? 전공을 연출로 바꿀까? 친구들하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을 벗어나 생각을 해봤다. 나란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단어를 만지고 싶고 글을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상상하는 걸 좋아하고 그렇더라. 그래서 결국 작가로 돌아왔다. 인물에 대해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사람에 대해 연출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상한 인물을 연출이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배우를 데리고 와서 했을 때 훨씬 좋은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정진세
창작의 영감은 어떻게 받나? 실제 썼던 작품을 예를 들어도 좋다.
이여진
평소에는 내성적인 편인데,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작은 경찰서 장면이 있어서 박카스 한 박스 사들고 경찰서에 가서 앉아있었던 경험도 있다.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할 때 그나마 나에게 좋은 글이 오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에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는데,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삶의 한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더라. 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과 함께 긴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게 글쓰기 작업이 될 줄은 몰랐고, 나중에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그걸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보람
시장(市長)이 무대배경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신문사에서 취재 일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막상 갔더니 전혀 생각했던 걸 얻을 수 없던 때도 많다. 지금은 뭘 써야지 하고 어딜 가지는 않는다. 틈틈이 두루두루 다양한 경험 하려 노력한다. 이런 걸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그 때 만나는 사람들의 캐릭터가 들어오기도 하고, 사건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정진세
이보람 작가(<여자는 울지 않는다>, 두산아트랩 선정작)도 그렇고 석지윤 작가(<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대전 창작희곡 수상작)도 살인, 강간, 방화 등등의 끔찍한 사건들이 극에 등장한다. 이런 건 경험하기도 어렵고,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이보람
학부전공이 심리학이었다. 그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마 그게 도움이 되었나 싶다.
석지윤
끔찍한 영감을 받은 곳은 결국 사회였다. 기사라던가 흘려들은 이야기들에서 도저히 인간성을 발견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더라. 그런 걸 상상하는 거다. 나는 내가 아직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성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떠할지 상상해 보는 게 작품의 단초가 된다. 사건을 만들고 인물들에 살을 붙이다보면 이야기가 된다. 세계의 절반은 아직도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묘사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도 어떤 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끔찍한 이야기를 쓰지만 그게 좋다거나 변태적인 성향이 있어서 쓰는 게 아니다. 거기서 좋은 것을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쓰는 거다.
정진세
다양한 매체들이 서로 경쟁하는 시기다. 그런 시점에 작가들이 고민하는 연극성이나 연극적 화두가 궁금하다. 조광화 작가도 요새 극작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오세혁
요즘은 웹툰이 가장 보란 듯이 활약한다. 그만큼 파급력도 있고. 따지고 보면, 영화도 몇 년 전부터 제작이 될 텐데, 어쩌면 그렇게 지금 시대에 딱 맞게 등장을 할까. 올해 연희문학촌에 입주하면서 우리나라 소설책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 희곡에서 2010, 2011년에 관심 갖고 했던 것들이 이미 소설에서 2~3년 전에 다뤘던 것이더라. 각자의 장르들이 자기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은데 연극은 낯설어지고 이상해진 느낌이다.
정진세
장르의 퇴행현상 같은 건가?
오세혁
퇴행이라기보다는… 내 기준은 어머니나 여자친구가 봤을 때 좋아하고 이해하는 연극을 만드는 게 목표인데 그런 게 점점 없어지는 거다. 내가 연극이라는 장르로 계속 가는 게 맞나? 한국에서 모든 장르가 대중들로부터 오는 요구를 잘 알고 더 명확해지는 것 같은데 연극은 뭔가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고, 끌려가는 것도 아닌 이상한 반죽 같은 상황이다.
정진세
당대의 것들이 연극에 반영되지는 않고, 형식적으로만 컨템퍼러리를 취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로 들린다.
이여진
윤성호 작가가 말했지만, 연극계에서도 컨템퍼러리가 대세고 그 기세가 대단한데, 그런 작품들에 비해 내 글은 놀이의 여백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결국 놀고 싶어도 글자를 써야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글을 쓸 때 어디를 비워둘 수 있을까. 어디를 비워낼 것인가. 그래서 연출, 배우와 관객이 어떻게 놀게 할 수 있을까, 더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오세혁
이 말이 와 닿는다. 웹툰이나 영화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연극은 무얼까. 놀이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걸판은 극장을 작은 집회로 만들려고 한다. 에너지를 주고받는 쪽으로 가야한다는 말이다.

윤성호윤성호

윤성호
연출을 할 때는 좀 더 논다고 해야 하나, 연극적인 재미, 배우, 디자이너들과 소통을 통해 이야기 맞는 적합한 작품을 만드느냐, 재미있게 만드느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나 스스로는 극작가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작가일 때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주로 하게 되는 것 같고. 작가로서 관심은 사회 속에서 혹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느냐’이다. 처음 썼던 작품이 <해맞이>인데, 내가 A를 얘기하면 저쪽에서 A로 받고 있나? 나는 저쪽에서 B를 얘기하면 B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극작의 계기가 되었다. 뇌손상 케이스들을 살펴봤는데 어느 부위를 다치느냐에 따라 다른 실어증 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증세는 문법은 완벽한데 내용이 없다든지. 어떤 실어증은 내용은 있는데 문법이 엉망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우리도 소통에 있어서 한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그런 식으로 ‘나’로부터 출발하는 게, 어느 정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보람
극작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이슈를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어서다. 오세혁 작가는 극단이 있어서 바로바로 쓰는 즐거움이 있겠지만. (웃음)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답을 평생 내리지 못할 것 같은 것들이 나에게 화두가 된다. 중학교에 수업하러갔는데 담임선생님이 왕따 문제에 있어서 가해자와 방관자에게 각각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치유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한 의문이 들었다. 인간적 결함이라는 게 있다는 거다. 되고 싶은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는 상황에서 상처를 받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지윤
여러 화두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사나?’하는 질문이다.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뭘 살고 있는 거지? 무엇에 기대어 사는 거지? 질문이 부정적일 수도 있는데, 개개인이 이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그에 대한 정답을 들을 수 있는가, 그것을 바로 대답할 수 있나, 하는 궁금증이 화두라면 화두다.

작가에 대한 거리두기

정진세
극작가는 혼자 작업하는 사람이니까 일정부분 고립될 수밖에 없는 위치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객관화 혹은 거리두기는 어떻게 하는지.
이여진
아이러니하지만, 내가 내 글에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즐거워하는지가 중요한 척도가 된다. 그 외에 다른 욕망을 지양하는 게 최고의 거리두기가 된다.

이보람이보람

이보람
수정을 많이 한다. 초고를 쓰면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다. 열 명 정도. 취합을 해서 고친다. 그리고 어차피 배우들과 함께 리딩을 하면 깨지게 되어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윤성호
한 번 쓴 걸 수정하는 게 엄청 어렵다. 그래서 수정하면 그것보다 안 될 거 같단 생각이 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줄일수록 좋더라. 이것도 저것도 들려주고 싶어 하다 보니 결국 짬뽕이 된다. 다시 하나씩 줄여 가면… 나중에 되려 러닝타임이 안 나왔다. (웃음)
석지윤
나는 합평이란 시스템이 의아했었다. 여러 의견을 들어서 수정을 하는 건데, 주체성이 보장될 수 있을까, 작가가 성장할 수 있을까? 연극이나 소설이나 어떤 내적인 완결성은 우선적으로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게 글 쓰는 데 있어 유일하게 반짝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객관화의 단계를 거치면서까지 외부에 대한 인식을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선 좀 회의적이다.
정진세
작품이 막힐 때는 어떻게 하나?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이 궁금하다. 이 질문은 김은성 작가님이 해주었다.
오세혁
막히면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한다. 그럼 주변에서 말해준다. 일정 단계에 다 다르면 어지간한 것은 다 뚫리는 것 같다. 슬럼프가 오면 택시타고 안산에서 서울, 서울에서 안산 넘어가서 7시까지 술 마시고. 같이 있는 사람들이 큰 힘이 된다.
이보람
좋은 예술가의 좋은 작품을 본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혼자서 그를 나의 ‘선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석지윤
나도 보람작가와 비슷하다. 예술에도 천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들면서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고생하며 만들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좀 힘들다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생각한다.
이여진
세 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그러면 허리가 굽어져서 집에 오게 된다. (웃음) 걸을 때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돌린다. 감각을 떠올리려면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된다. 언어도 논리기 때문에 비논리적 영감이 잘 안 떠오르는 것이다. 길게 걸으면서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배우와 연출가를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런-쓰루(run-through)를 5번은 해본다. 그 다음에 짧게 앉아서 쓴다.

기획특집

국가 혹은 자기 검열시대, 극작가의 모습

정진세
마지막 질문이다. 극작가에게 가해지는 사회적인 강요나 예술적인 억압이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 많은 선배작가들이 “안녕(安寧)하신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오세혁
나는 뭐 걸판을 창단할 때 목적 자체가 의미 있을 이야기를 재밌게 하자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집회나 문화제에서 돈을 마련했는데, 압력은 외려 정권이나 국가기관이 아니라, 우리를 불러준 곳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자기가 넣었으면 하는 장면, 자기가 바라는 엔딩 등. 극중에서 미사일을 하나 날려줄 수 있냐, 이렇게 촌스러운 질문들을 한다. (웃음) 걸판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석지윤
나의 경우는 외부적인 문제보다는 내 안의 문제다. 글을 한두 편 올렸다고 작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스로를 작가로 정의하려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한다. 스스로 억압을 하면서 너는 양쪽 중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을 거라고 따끔하게 스스로를 나무라기도 한다. 분열적인 자아를 겪는 괴로움을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보람
술자리에 가면 연극이 무엇이냐, 배우는 뭐고, 연극은 뭐다, 하는 정의 같은 것들이 항상 있었다. 최근에는 분위기 자체가 야만적인 사회와 맞물리면서 점점 연극도 거칠어(?) 간다. 좋은 연극의 조건이란 게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다. 사람마다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른데, 연극은 이래야한다는 기준이 하나로 모아져간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자유롭게 연극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다.
윤성호
국가에서는 정치이슈가 없는 작품을 원하고, 연극계에서는 사회적 발언이 있는 작품이 좋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골방에 틀어박혀 실어증에 대해 쓴다면, 나 같은 사람이야 좋다고 하겠지만 그것에 대한 시선들은 곱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사적(私的)이고 코믹한 작품들도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현시대에 ‘좋은 연극’의 범위는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이여진
극작가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이 안녕하지 못할 것이다. 일상이 무너져서 고민과 해답이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작가로서 느낀 점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된 이념의 경직성이다. 부모와 자식. 정당과 정당, 국가와 예술가 사이의 여러 경직성을 봐왔다. 다양성을 해치고 획일화된 목소리로 나아가는 것이 권력을 가진 이들의 목표다. 그에 반하여 우리 작가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배척하기 보단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작가라면 외부의 압력이 누군지 간에 자기가 할 이야기를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