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 대한 새삼스러운 질문들] - 네 번째 이야기
무대 위에서는 무슨 마술이 벌어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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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객석이 점차 없어집니다. 잔잔히 웅성거리는 소리, 프로그램 뒤적이는 소리, 휴대폰 끄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오늘 공연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시계를 흘끔 쳐다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질 즈음, 극장의 모든 빛이 사라집니다. 객석의 소리가 잦아듭니다. 완벽한 침묵, 완벽한 어둠. 그리고 빛이 있습니다.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 An Inspector Calls(1992) >(출처: theguardian.com)
“암전은 왜 있나요?”
혹은, 극장 문을 통해 관객석에 들어섭니다. 그런데 무대에 누가 있습니다. 연극이 벌써 시작한 걸까요? 관객들이 아직 소근 대는 걸 보니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관객 모두가 안 보는 척하면서 흘끔흘끔 무대의 배우를 쳐다봅니다. 배우는 우리가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한참동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혹은, 꼼짝도 하지 않고 마치 인형처럼 앉아있습니다. 혹은, 우리하고 눈을 마주치고 웃습니다! 뭐야, 뭐야 하다가 은근슬쩍 연극이 시작됩니다.
보통의 경우에 암전은 시간이나 공간의 맥락을 변화시킬 때 쓰입니다. 암전 전에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어느 날 시내의 어느 극장이지만, 다시 밝아진 여기는 역병이 감도는 테베1), 덴마크의 음침한 엘시노어 성2)입니다. 어마어마한 간극의 변화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공연 중에도 암전이 쓰이지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우린 시간이 바뀌거나 장소가 바뀌었다는 걸 압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끼지요.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조명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건 200년도 안 됐다네요. 우리를 온전히 다른 세계,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넘나들게 도와주는, 유행한 지 200년 된 마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무대 위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와 같은 세계라면?
우리는 연극에서 우리의 지리멸렬한, 혹은 전쟁 같은 일상과는 다른 세계의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연극도 있습니다. 우리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다른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 우리의 전쟁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연극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암전의 거대한 간극은 마치 우리 얘기를 다른 얘기로 착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지요. 우리가 극장에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보초를 서고 있던 군인들은 연극이 끝난 이후에도 이 세상 어디선가 계속 보초를 서고, 교대를 하고, 불쌍하게 죽어갈 테니까요.3)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2016)> (출처: 남산예술센터)
“여긴 어디지요?”
암전 후 밝아진 무대에 어떤 곳이 보입니다. 아늑하게 볕을 내는 벽난로에 피아노, 아기자기한 꽃 화분과 벽에 걸린 차분한 그림, 잘 가꿔진 크리스마스트리, 아빠가 덴마크 왕쯤 돼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엘시노어 궁궐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가질 수 없는, 그래도 성공만 하면 나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꿈의 집4), TV 아파트 광고에나 나오는 바로 그 집의 거실입니다. 이윽고 초인종이 울립니다.
혹은, 무대는 텅 비어있습니다. 느닷없이 배우들이 나와 텅 빈 무대 양쪽으로 줄지어 앉습니다. 우리가 힐끔힐끔 쳐다보건 말건 인형처럼 앉아있네요. 초인종 소리가 나자 한 배우가 갑자기 일어나 객석을 향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나머지 배우들은 여전히 꼼짝 않습니다. 초인종 소리가 또 나자, 또 다른 한 명이 일어나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누구한테 이야기하는 거지요? 난 누구지요? 또 여긴 어디지요?
새삼스러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 안에 관객은 “없는 걸로 치는”게 200년 전부터 유행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느 노르웨이 은행가 집 거실4) 의 한쪽 벽을 뚫고 훔쳐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배우가 우리와 눈을 맞추고 웃음 짓고 말을 거는 순간, 훔쳐볼 필요가 없어집니다. 덴마크 왕자나 테베의 왕이 아닌, 우리하고 같은 사람이 우리한테 말을 거니까요.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이런저런 복잡한 약속을 거치지 않으니 훨씬 직접적이고 명확하며 때로는 강렬한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알고도 모른 척 할 필요 있냐는 거지요. 난 관객이고, 여긴 극장이라는 사실을요.
<구름을 타고(2015)>(출처: 두산아트센터)
자꾸 200년 전 이야기가 나오네요.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별일 있었겠습니까. 경사진 객석 저편에 깊숙한 무대가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당연할 정도로 익숙한 구조의 “실내 극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정도, 조명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가스등이 보급되기 시작한 정도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어떤 세계로라도 채워질 수 있는 백지상태의 극장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 이후로 200년 동안 그 백지를 시각적 환영으로 채워내는 무대, 조명, 음향 등 많은 기술들이 우리로 하여금 별 의심 없이 손쉽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줬겠지요. 모두가 다 아는, 새삼스러운 그 “극장”입니다.
무대 위 기술에 대한 새삼스러운 질문들을 몇 개 더 떠올려보긴 했습니다. 근데 사실 그 질문들이 새삼스러울 뿐 아니라 우린 그 기술 자체에는 “안물안궁5)” 아닌가요? 우리는 마술을 좋아하지 마술의 뒤에 숨어있는 기술을 궁금해하진 않으니까요. 가끔은 요만큼 궁금하긴 하지만, 그 기술을 알아버리고 나면 더 이상 마술은 마술이 아니게 되지요.
다만, 새삼스러운 답변을 하다 보니 ‘약속’이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많은 분은 이 약속을 두고 ‘양식’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많은 예술이 그렇겠지만, 연극은 특히나 많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약속들은 눈에 보이지만, 상당히 많은 약속들은 무대 저편에, 우리의 교육과 습관, 무의식 저편에 숨어있지요. 앞서 말씀드린 그 200년 된 극장의 약속들은 했는지 아닌지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종류의 약속들이었습니다. 덕분에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유행은 이어지고 있지요. 하지만 영화, 게임, 심지어는 VR의 시대를 맞아 연극은 특정 시기의 유행이 아닌 근본적으로 이어져왔던 약속들을, 혹은 새로운 약속들을 찾거나 만들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치정(2015)>(출처: 남산예술센터)
“어떤 연극은 왜 커튼콜이 없나요”
어떤 연극은 객석의 우리를 편안하게 만듭니다. 어떤 연극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대부분 그 ‘약속’ 때문이지요. 전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너무나도 익숙해서 약속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린 약속들 위에 이루어지는 연극입니다. 물론 후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거나, 창작자가 새로 만들어내 우리에게 제안하는 약속들이지요.
새로운 세계를 펼쳐준 연극이 끝나면, 우리는 그런 마술을 우리에게 보여준 이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면 ‘역할의 약속’을 벗은 배우들이 커튼 앞으로 뛰어나와 관객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지요. 아니, 아까 그 냉혹한 살인마가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니! 우린 그 ‘사람’으로서의 배우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커튼콜은 뭐 이런 약속이지요. 어떤 연극은 관객에게 그 잔상을 오래 지속시키고 싶어 합니다. 약속은 살짝 달라지지요. 여전히 연극의 분위기를 간직한 조명과 음악과 함께 역할의 약속을 간직한 배우가 인사하기도 합니다. 어떤 연극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연극이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가 극장을 나서더라도 일상 속에서 연극은 계속될 테니까요. 아니, 이 연극은 “특별한” 이야기로서의 연극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였으니까요.
시대에 따라, 작품에 따라 연극의 약속은 조금씩, 혹은 과격하게, 하지만 끊임없이 계속 변해갑니다. 더 다양한 약속이 제안되고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약속에 대해 관객과 창작자가 서로 눈과 귀를 열고 궁금해할수록, 연극의 마술은 더 새로워지고 다양해집니다. 혹은 연극이 마술을 넘어선, 더 치열하고 진지한 대화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네요.
- 1) 소포클레스 작 <오이디푸스>
- 2) 세익스피어 작 <햄릿>
- 3) 박근형 작, 연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 4) 헨릭 입센 작 <인형의 집>
- 5) “안 물어봤거든”, “안 궁금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