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 대한 새삼스러운 질문들] - 다섯 번째 이야기
무대 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 연극을 만드는 무명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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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의 희곡 <노이즈 오프(Noises Off)>(1982)에는 연극을 만드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등장해 무대 안팎에서 다양한 해프닝들을 일으킵니다. 싸움을 벌인 배우들이 공연 직전까지 분장실에서 안 나오겠다고 버티고, 무대조감독과 여배우는 연출을 사이에 놓고 삼각관계에 빠집니다. 공연은 점점 대본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배우들은 애드리브(ad lib)를 남발하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렇게 극적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네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맥박을 뛰게 만드는 사건들이 왕왕 일어났습니다. 주연배우가 맹장염에 걸려 1주일 공연을 연기한 적도 있었구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직전 그 배우와 마주보며 농담으로 “설마 맹장염은 아니겠지” 했더랬습니다.) 공연 직전 배우가 개인사정으로 빠져 조연출이 급히 그 역을 대신 맡았던 적도 있습니다(조연출이 배우 출신이었기에 망정입니다). 작년 <조씨고아> 공연에서는 임홍식 배우께서 공연을 3회 남겨두고 급성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 하신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연출진과 배우들이 공연을 계속할지 많이 고민하다가 선생님을 위해 끝까지 공연하기로 결정했고, 다른 역으로 출연한 유순웅 배우가 밤새 임홍식 선생님의 역을 연습해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재)국립극단 <조씨고아>
따지고 보면 연극은 리스크도 많고 품도 많이 드는데 이익은 별 볼 일 없는, 요즘 세상에 딱 망하기 좋은 업종입니다. 그런데도 여기 연극을 계속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일까요? 아님 그냥 그 무엇인가에 끌려서 계속 하는 걸까요?
이번엔 이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연극은 ‘배우예술’이라고 하지만 사실 한 편의 연극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노력이 수반됩니다.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공연을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들, 소위 스태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작가, 연출, 조연출, 드라마투르그, 번역가, 각색자, 프로듀서, 무대디자이너, 조명디자이너, 의상디자이너, 음악감독, 소품디자이너, 분장디자이너, 영상디자이너, 음향디자이너, 안무가, 화술지도, 무술감독, 무대감독, 제작감독, 컴퍼니매니저 등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물론 이 모든 사람들이 매 공연마다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담당분야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연출이 음악을 선곡할 때도 있고, 무대디자이너가 무대미술 전 분야를 책임질 때도 있고 배우들과 연출이 같이 작품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위에 열거한 스태프 중 상당수는 직함만 봐도 그 업무가 짐작이 갑니다. 그런 스태프들은 제쳐 두고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는 스태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재)국립극단 <국물 있사옵니다> 연습스케치
프로듀서(producer)부터 갈까요. 사실 저는 제작극단(producing theater company)인 국립극단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국립극단의 경우 예술감독이 한 해의 작품제작방향과 라인업을 정하면 공연기획팀장이 업무의 큰 그림을 잡고, 프로듀서들이 각 작품의 실무적인 제작을 진행합니다(규모가 작거나 민간 기획사의 경우 프로듀서가 작품선정부터 진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작품조사에서부터 작품에 참가할 제작진과 배우 섭외, 계약, 전체 연습, 제작과정 조율, 예산 관리 등 연출가가 작품을 만드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제작관련 업무들을 총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프로덕션을 운영하다 보면 많게는 30~40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연출을 비롯한 제작진, 배우, 영상작가, 사진작가, 홍보물 디자이너, 기술스태프, 인쇄업자 등등. 극단 내부적으로도 홍보·마케팅 담당자, 기술스태프와 지속적으로 작품에 대해 협의합니다. 그 작품의 기획의도와 공연 제작방향에 대해 제작진, 배우, 홍보마케팅 부서가 명확한 그림을 가질 수 있도록 정확히 전달하는 것도 프로듀서의 역할입니다. 방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경우 공연의 성격과 전혀 다른, 독특한(?) 포스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공연제작진행 외에도 3~4년 앞을 보고 장기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합니다. 해외공동제작공연의 경우 사전에 조율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 보통 3~4년 전부터 사전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양국 공연 스태프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배우를 섭외하고 공연제작방향을 논의하고, 후원 등 제작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합니다. 프로듀서는 공연과 관련된 다양한 부대행사도 기획합니다. 공연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소개 자료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제 일이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다음은 ‘드라마투르그(dramaturg)’입니다. 사전적으로 ‘극작술을 연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학자이자 비평가로서 희곡의 창작과정에서부터 프로그램의 제작ㆍ리허설ㆍ공연 후 평가에 이르기까지 공연의 전 과정에 관여합니다. 희곡 텍스트를 해석하고, 희곡이 쓰인 시대적 상황을 개괄하고, 경우에 따라 희곡 텍스트를 공연에 맞게 조절하기도 합니다. 무대에서 희곡이 잘 구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지금 제작하고 있는 <국물 있사옵니다>의 경우 1966년에 쓰인 한국 창작극인데요. 드라마투르그를 통해 그 작품이 쓰인 당시의 사회적 상황, 작가에 대한 심층적 이해, 작품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바에 대해 많은 정보와 조언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화술지도(voice coach)’입니다. 기본적으로 배우들이 관객에게 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지도하지만 공연에 따라, 연출과의 협력방식에 따라 세부역할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발성법을 지도할 수도 있고, 캐릭터에 맞게 배우의 톤을 잡아주기도 하고 대사의 어미처리를 같이 고민하기도 합니다.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발성워밍업도 지도하구요. 우리나라에 ‘화술지도’의 개념이 도입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점점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안무가(choreographer)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요? 장면에 맞게 배우들의 동선과 동작을 구성합니다. 극중에 나오는 춤을 지도하기도 하구요. 미묘하지만 이런 동작들이 씬마다 철저히 계산되어 들어감에 따라 관객들은 지루하지 않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무용과 달리 연극은 연출과 같이 작업하기 때문에 안무가는 연출의 의도를 숙지하고 그 방향에서 동작, 스타일, 속도(pacing) 등을 결정해야 합니다. 무대 위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무대디자이너, 의상디자이너, 작곡가 등 다른 제작스태프들과의 의견교류도 필수입니다.
마지막으로 무대감독(stage manager)입니다. 연출자의 의도가 무대에서 제대로 구현 될 수 있도록 예술·기술 두 방향에서 실제적인 관리와 연락을 책임집니다. 연습과정에서는 모든 연습, 스태프 미팅, 기타 공연제작 관련 일정을 관리하고 공지합니다. 연습공간에 실제 공연공간을 표시하고 가설무대, 가소품 등을 책임지고 준비합니다. 디자이너들과 무대제작진, 공연운용스태프들에게 연출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도 무대감독의 역할입니다. 연습기간을 지나 공연이 무대에 오르면 연출가의 지휘봉은 무대감독에게 전달됩니다. 무대 뒤에서 모든 공연진행상황을 총괄하면서 연출자의 의도가 공연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체크합니다.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련스태프, 배우들과 공유하면서 작품의 색깔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 씁니다. 프로덕션의 엄마와 같은 존재랄까요.
(재)국립극단 <국물 있사옵니다> 연습 시 무대감독과 조명디자이너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열거하다 보니 한 편의 연극을 만들기 위해 모인 프로덕션은 하나의 유기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제작’이라는 목적 아래 구성체들이 서로 필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장하죠. 유기체가 균질함만 받아들이면 멸종을 초래하듯이 연극도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이견이 생기더라도 대화와 교감을 통해 생각을 교류하고 발전시킬 때 관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각 스태프의 역할에 대해 놓친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 분들의 넒은 양해를 구합니다. 공연을 보실 때마다 무대 뒤에서 북적이며 준비하고 있을 스태프들을 떠올려보세요. 늘 하는 일인데도 매번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게, 이게 연극의 매력인가 보다고 오늘도 최면(?)을 걸어 봅니다. 앗, 지금껏 사진촬영 진행을 수도 없이 했는데 정작 필자 사진으로 제공할 만한 번듯한 사진 한 장이 없네요. 정녕 무명 씨 같은 존재인가요.
[사진: (재)국립극단 제공]

- 지민주_(재)국립극단 프로듀서
- 의정부음악극축제, 국립극장, 명동예술극장을 거쳐 현재 국립극단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urim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