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3040극단] 첫 번째 이야기
지금 우리시대에 ‘극단’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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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고 익숙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호흡만 내려놓고 바라보면, 나의 생각과는 달리 더러 당혹스러운 순간이 생기기도 합니다. 앞서 진행됐던 연재 ‘연극에 대한 새삼스러운 질문들’은 연극을 보면서 당연히 알고 있었던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그런 ‘새삼스러운’ 것들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최근 변화하고 있는 연극의 창작과정과 한 편의 무대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다시 한 번 짚어봄으로써 조금 더 가깝게 연극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래봅니다.
이번호부터 다시 시작되는 연재는 ‘연극’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30년, 40년 동안 같은 색깔과 언어를 지니고 흔들림 없이 살아온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인 몇몇 극단의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하나의 극단이 한 세대를 넘는 세월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힘, 단순한 ‘생명연장’이 아닌 늘 새로운 창작의 열정을 놓지 않고 진화를 거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보고, 우리 시대에 ‘극단’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편집자 주
극단 76단 <관객모독>
여기에 연극(극단)이 있다
10주년, 20주년… 우리가 어떤 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은 의식하지 않고 지나왔던 순간들이 어느덧 값을 매길 수 없는 특별한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흐른 궤적만큼 켜켜이 쌓여온 세월의 무게를 한번쯤 자축해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6년은 한국 연극에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해가 된다. 특별한 생일을 맞는 극단들 때문이다. 특별한 생일이라! 그렇다. 알게 모르게 한 세대를 지날 만큼의 세월을 뛰어넘고 현재까지 자신만의 언어로 무대를 지키고 있는 극단들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하는 극단 76단을 비롯하여 30주년을 맞이하는 극단 작은신화, 연희단 거리패, 극단 아리랑 등이 그렇다. 1986년 창단 시기가 같아 함께 거론되는 극단 작은신화나 연희단거리패, 극단 아리랑은 물론 극단 이름 그자체로 알 수 있듯, 1976년 창단 이후 지금까지 한국연극의 또 다른 모태로서 자리하고 있는 76단은 한국 연극에서 ‘극단’이라는 이름의 존재감을 빛나게 하는 특별함이 깃들어 있다.
물론 이들보다 오랜 세월을 한국연극의 산 증인으로 살아온 극단들이 있다. 1960년 창단한 실험극장을 필두로, 극단 자유(1966년), 극단 산울림(1969년), 극단 뿌리(1976년), 극단 현대극장(1976년), 극단 연우무대(1977년), 극단 목화(1984년) 역시 이미 30주년을 훌쩍 넘어 한국연극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물론 여전히 그 이름값을 묵직하게 무대로 그려나가는 이름들이 있다.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 나름의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연극의 밀도를 조금 더 확장하고 있는 이들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극단이라는 공동체의 특성과 그 힘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 <햄릿>
극단이라는 이름이 갖는 다름과 같음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한국연극이 ‘소극장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부흥기를 맞이하면서 연극계에는 뜻과 의를 함께 하는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극단’이라는 이름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이후 하나둘 등장했던 수많은 극단들의 창단은 분명 한국연극의 발전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연극은 하나의 무대를 위해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지는 말 그대로의 종합예술이다. 특별한 누군가의 능력으로 빛이 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이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된다. 하여, 극단이라는 것은 연극을 재미있게 만드는 ‘앙상블’을 이루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
2016년, 지금과는 명확하게 다른 것 중의 하나가 있다. 즉, 15년 전만해도 연극 활동을 위해서는 극단에 소속되는 것이 필수였다. 지금처럼 기획, 제작사가 오디션을 중심으로 배우를 캐스팅하기 이전에는 소속 극단의 작업이 평생의 무대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간혹 극단 간에 서로 배우를 공유(?)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조차도 소속 극단의 스케줄이 우선이기 때문에 대표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고, 다른 극단의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용기 있게 말하는 어떤 배우들의 경우, 다음 날 극단의 이름에서 제외되었다는 에피소드는 또 다른 추억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이렇듯 극단은 연극 창작활동의 절대적인 공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면 불합리한 제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극단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기도 했다. 하여, 극단의 색깔, 즉 각각의 연극언어가 명확했다는 것이 바로 한국 연극에 새겨놓은 극단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
즉, 사실주의 연극을 보기 위해서는 어떤 극단의 작품을 보면 된다든지,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전위연극은 어떤 극단의 작품을 봐야 한다든지, 해외의 우수한 명작들, 창작극, 파스(소극), 코미디극, 전통극, 몸(신체)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 등 관객의 취향과 욕구에 따라 극단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독특하고 특별한 언어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지금의 극단은 이전처럼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과는 조금 구별된다.
모든 스케줄이 공동체로 묶여지는 것도 아니다. 같은 의미를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와 생각을 파편화시키고 그것을 하나의 언어로 재창작하는 무대가 많아지기도 했다. 창작자의 활동은 이전보다 더 자유롭고, 대표제로 운영되지만, 절대 권력(?)을 갖고 있지도 않다. 하여, 연극이 창작되고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연출이자 대표의 선택으로 작품이 정해지던 것이 100%였던 지난 시절과 달리, 지금은 공동체의 수행성을 기반으로 한 작품 창작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저마다의 형식으로 새로운 언어를 발견해내기도 하지만, 극단의 색깔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힘들어 특징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와 시절을 떠나 극단의 욕망은 변하지 않았다. 서울에만 300여개의 극단이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 2016년 역시, 극단 또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들은 저마다의 특별한 연극무대를 만들기 위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관객’을 어떤 주체로 받아들이는가에 있다. 확언하기는 힘들지만, 예술적 담론을 공유했던 것이 이전 극단의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예술적(사회적) 담론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주된 공유의 방식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보고 듣고 감동을 받는 것을 넘어 이슈를 공유하는 방식이 확장된 것이 지금 극단의 활동방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전과 지금의 활동성이 사뭇 다른 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0~40년간 한국 연극에서 극단은 그 이름값만큼의 선구자적 역할을 자임했다. 연극이 지금처럼 다양하게 변주되고, 그 속에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이 바로 그러한 명확한 예술적 관점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지금 세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근거지를 마련하는 토양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극단은 한국 연극의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이 된다는 사실에도 이견이 없다. 양상은 다르지만, 같은 언어를 고민하고, 같은 시간을 살아냄으로써 획득되는 힘이야말로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 연극에서 극단은 지난 40년을 저마다의 투쟁으로 각기 다른 연극적 시도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극단 작은신화 <사랑입니까>
진화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아주 단편적이지만 30여 년 전의 극단의 활동과 지금의 극단의 특성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한 가지다. 지금 우리 시대에 극단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앞서 밝힌 대로 30년을 넘게 지속적인 활동성을 기반으로 존재하고 있는 극단들에는 과연 어떤 특징들이 있는가는 반추해 볼만한 지점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역사적 기록으로 존재하는 것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흥미롭지 못하다. 결국 올해로 30, 40주년을 맞고 있는 극단들에게 엿보고 싶은 것은 장수의 비결을 넘어, 현재 고민하고 진화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76단의 경우가 그렇다. 2000년 중반 이후 이전처럼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 못했던 76단은 올해 40주년을 맞으며 새로운 전환점을 꿈꾸고 있다. 즉, 극단 골목길, 극단 동숭무대, 극단 竹竹 등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견 극단들의 모태가 되는 76단이 지금 2016년을 어떤 고민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40년을 넘어 새로운 1년을 준비하는 이들의 방향성은 어디에 있을까에 대한 궁금함이다.
창단당시에는 낯설었던 ‘공동창작’이라는 실험적 창작과정을 통해 창작극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왔던 극단 작은신화의 30년은 지금 어디에 맞닿아 있는지, 독특한 메소드로 한국적 연극언어를 지향해왔던 연희단 거리패가 말하고자 하는 ‘연극이 연극다운, 징그럽고 화끈한 작품’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지금 이 시대와 어떻게 공유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함이다.
분명 30~4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함부로 이야기 될 수 없는 시간이다. 그 긴 여정 동안 지나갔던 수많은 창작자들이 남아있고, 주옥같은 작품들이 현존해 있으며, 기록된 역사가 한국연극의 큰 흐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진화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혹 시행착오를 겪을지라도 그 흔적이 남아 새로운 발견의 토대가 되는 것처럼, 지난한 세월을 어렵게 견뎌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새로운 비전을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공력만큼의 내밀하고 밀도 있는 지향성이 숨겨 있으리라. 이번 연재를 통해 바라보고자 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 각 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