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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3040 극단] 네 번째 이야기

모두에게 모두의 역할과 자유를: 극단 작은신화

김슬기_공연저술가
94호 2016.06.23
* 작은신화는 1986년 서로 다른 대학 극회 출신의 4학년 학생들이 창단한 극단으로, 재정공동체와 공동창작 등 단원들 간의 동등한 역할과 기여를 극단의 주된 원동력 삼아 그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1993년 시작한 우리연극만들기는 현재까지 지속해오고 있는 극단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희곡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극단이 직접 제...

일시: 2016년 6월 13일 1시 반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사회: 최윤우
참석: 최용훈, 홍성경, 정세라, 전유경, 정승현
구성 및 편집: 김슬기

* 작은신화는 1986년 서로 다른 대학 극회 출신의 4학년 학생들이 창단한 극단으로, 재정공동체와 공동창작 등 단원들 간의 동등한 역할과 기여를 극단의 주된 원동력 삼아 그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1993년 시작한 우리연극만들기는 현재까지 지속해오고 있는 극단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희곡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극단이 직접 제작함으로써 한국연극계의 내로라하는 극작가들의 등단 창구로 기능해왔다. 200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색깔의 연출과 배우들이 작은신화의 이름으로 새로운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올해 창단 30주년을 맞아 크고 작은 여러 공연들을 통해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려 한다.

최윤우

최윤우
오늘 이 좌담은 극단 작은신화의 30주년을 함께 얘기해보는 자리입니다. 웹진 [연극in]이 올해 창단 30, 40주년을 맞은 극단들의 현재를 다시 살펴봄으로써, 이 시대 우리 연극계 극단의 역할과 기능을 재점검해보려는 취지로 마련한 기획입니다. 극단 작은신화 대표 최용훈 연출님, 그리고 홍성경 배우님, 정세라 배우님, 전유경 배우님, 마지막으로 정승현 연출님 나와 주셨습니다.
그럼, 창단에서부터 찬찬히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할게요. 작은신화는 서로 다른 대학 극회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모여 공동창작을 하는 것으로부터 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공동창작을 지향하는 작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움직임은 꽤나 드문 시도였을 것 같은데요. 최용훈 대표님께서 창단 배경에 대해 먼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우리의 방식으로

최용훈

최용훈
1986년이면 아직 군사정권 시절이었으니 정치 상황은 암울했고, 연극계에서는 프로그램 구입 초대권 남발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던 때였죠. 그러니까 상업극이라 불리던 대개의 작품들은 천 원짜리 프로그램북을 구입하면 볼 수 있었고, 연극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만한 것을 수행하는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나마 연극을 하려던 젊은 친구들에게는 연우무대가 가장 이상적인 곳이었지만, 특정 대학 출신들이 모여 있어서 외부에서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죠.
말하자면 연극은 하고 싶지만 들어가고 싶은 극단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끼리 해보기로 한 겁니다. 창단 주축 멤버들이 다들 4학년 졸업반이었는데,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연극을 시작한다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서강연극회 출신 7명, 그리고 각기 다른 학교에서 모인 6명의 친구들과 신촌로터리에 있던 진선미다방 5층 옥탑방에서 극단을 시작했습니다.
최윤우
지금은 단원 수만 해도 100명이 넘는, 연극계에서도 정말 덩치가 큰 극단이 되어서 그 이름을 두고 농담들을 많이 주고받잖아요. 극단 이름을 작은신화로 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용훈
요즘은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김영인이라는 친구가 처음에 ‘신화’라는 이름을 제안했어요. 신성한 이야기이면서 새로운 이야기라는 의미도 담고 있었고요. 그런데 어쩐지 갓 대학을 졸업한 우리가 쓰기엔 너무 거창한 게 아닌지, 혹은 너무 건방져 보이지는 않는지, 그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앞에 ‘작은’을 붙이기로 결정했죠. 그렇게 되니까 어쩐지 어감도 좋고 괜찮더라고요. 물론 나중에, 오히려 ‘작은’ ‘신화’가 더 건방져 보인다는 얘기도 듣긴 했어요(웃음).
최윤우
그런데 처음에는 카페 순회공연을 하셨잖아요. 지금의 찾아가는 공연들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최용훈
극장 자체가 부족하기도 했고, 혹여 극장이 비어 있다 할지라도 우리처럼 근본 없는 젊은 극단에 극장을 빌려줄 만한 데가 없기도 했죠. 그런데 반드시 극장에서가 아니더라도 연극은 관객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또래들을 만날 수 있는 대학가 카페들이 가장 끌리는 공간이었고, 그렇게 시작해서 90년대 중반까지는 미술관이나 각종 시설들, 노인 혹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찾아다니는 공연들을 많이 했습니다. 공간의 다양화는 물론 수용 계층의 다원화까지 생각했던 거죠. 당시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건 하에서 모든 가능성들을 최대한 찾아보는 게 과제였어요.
최윤우
그렇다면 공동창작은 어떤 의미였나요? 대개 기성 극단들에서는 한 명의 대표가 연출가를 겸하는 작업을 하던 때잖아요.
홍성경
그때는 우리 모두에게 연출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고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말 하고 싶은 친구들끼리 모여 있었고 누가 무엇을 더 잘한다는 생각도 없었고요. 서로 얘기를 통해 그것으로부터 주제를 잡고 장면을 만들어나가고 이런 일련의 작업을 해나간 거죠. 나중에서야 그걸 공동창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건데, 그때만 하더라도 원래 연극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 믿었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 그거였어요. 대부분 연극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던 거죠. 연극을 하기 위해 토론을 정말 많이 했던 기억이 있어요. 연기를 모르는 사람들끼리 심오한 주제를 다루려다 보니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최용훈
극단을 만들 때 대표를 정하긴 했지만 1인 체제보다는 팀이라는 개념이었죠. 결국 동일한 선상에서 발언하면서도 모두 같은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번역극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때만 하더라도 창작극이 그리 활발히 발표되던 시절이 아니었고, 우리에게 작품을 허락하는 작가도 거의 없었다는 명백한 한계도 큰 이유가 됐죠.
최윤우
정세라 배우님과 전유경 배우님, 그리고 정승현 연출님, 세 분은 왜 작은신화라는 극단을 선택하셨나요? 창단 당시 멤버들과는 분명히 다른 동기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정세라
실은 처음에는 연극을 하고 싶은 마음에, 길에서 발견한 포스터를 보고 무작정 극단 광장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뮤지컬 공연에 참여하면서 내가 원하던 연극이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하는 작업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죠. 당시 감사하게도 한 선배님이 제 고민을 듣고 작은신화라는 극단을 추천해주셨어요. 마침 그때 작은신화는 연우소극장에서 우리연극만들기를 하고 있을 때였고, 극장 앞에 대표님을 만나러 갔다가 너무 젊은 분이 오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전유경
저는 연극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도 않아서 선후배 개념조차도 잘 몰랐어요. 그래서인지 작은신화가 저한테는 뿌리와도 같아요. 연극이 무엇인지 모르니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연극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저 작업을 하면서 같이 하는 것,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연극이라는 걸 배운 거예요.
정승현
저 같은 경우는 대학 동아리에서 연극을 했고 비전공자라서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졸업한 이후에 고민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최용훈 대표님을 뵙고 연습실에 찾아갔을 때 작은신화의 작업들이 대학 때 했던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극단에 들어오게 됐죠.

공동의 호흡,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홍성경

최윤우
먼저 1993년 공연했던 [Mr. 매킨도·씨!]부터 시작을 해볼게요. 이 작품의 엄청난 흥행 수익으로 이후 우리연극만들기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홍성경
그간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그 작품에서 폭발력을 발휘했던 것 같아요. 내용적인 것들이나 형식적인 것, 그리고 작업의 방식까지 좋은 합을 이루어냈던 거죠.
최용훈
그간의 노하우가 쌓이기도 했고 서로 무엇을 잘하는지 완전히 익숙해져 있을 때였죠. 그런데 공연이 매진되고 흥행 수익을 올렸던 건 사실 <전쟁음?악!> 때부터였고, 한편으로는 연극평론가 구히서 선생님께서 저희 공연을 보시고 처음으로 『한국일보』에 리뷰를 써주셨던 게 굉장한 도약의 발판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 기사가 나간 날 저녁부터 모든 공연이 보조석까지 매진될 정도였으니까요.
최윤우
초창기 작업들과는 다소 다른 의미나 맥락에서 각자가 생각하시는 극단의 대표작이나 기억에 남는 다른 공연들을 얘기해주시면 어떨까요.
정세라
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저에게는 <돐날>이 가장 크게 남아있습니다. 운 좋게도 저 역시 참여했던 공연이었고, 여러 상을 받은 작품이라 그 이후에 더 극단이 알려지기도 했고요. 당시에 들었던 정말 즐겁고 감사한 평가 중 하나가, 저런 호흡은 작은신화가 아니면 결코 나올 수 없다는 얘기였어요. 요리하고 청소하고, 모두가 너무 고생을 했지만 그만큼 값진 결과를 얻어낸 작품이었죠.
정승현
당연히 <돐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극단에 막 들어왔을 때 <코리아 환타지>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 작품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제 또래 중에는 그 작품을 보고 극단에 들어온 친구들도 많고요.
홍성경
우선 <전쟁음?악!2>를 얘기해야할 것 같아요. 그리고 사라진 걸작 중에 <매직 아이스크림>이라는 작품이 있어요(웃음). 왠지 모르게 그 공연을 떠올리면 굉장히 아련한데요. 지금 올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공연이었어요. 사회의 부조리함과 상실에 대한 거대한 담론들을 담고 있었죠. 그 두 작품을 통해 저희의 스타일과 개성이 분명히 드러나면서도 향후 활동의 방향성이 잡혔다고 생각해요.
최윤우
공동창작과는 다른 맥락에서 작은신화의 또 다른 방향성으로 우리연극만들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텐데요. 단순히 한 민간 극단의 프로그램을 넘어 한국연극계에 기여해온 순기능이 있으니까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최용훈
아까 말씀하셨지만 [Mr. 매킨도·씨!]가 정말 어마어마한 수익을 냈거든요. 지금도 우리는 재정공동체를 지향하고 있고, 그때도 그 수익을 나눌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수익을 나눠 갖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방지하면서도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목돈을 써보자는 데 의견을 모으게 된 거죠. 당시에 제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많이 연출했는데, 그들이 등단 이후에 사라져버리는 게 매우 안타까웠거든요. 그리고 그때는 연극계에서 신작을 발견할 수 있는 창구가 서울연극제 외에 거의 없었고요. 그런 여러 조건들이 만나 시작하게 되었던 게 우리연극만들기입니다.

정세라

최윤우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민간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희곡 공모를 지속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 프로그램은 단원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나요?
정세라
우선 저희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거의 고스란히 무대에 올리려고 해요. 신진 작가들은 물론이고 이미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도, 작업하면서 이렇게 존중받아 본 경험은 드물다는 말씀들을 많이 주시거든요. 배우나 연출도 마찬가지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게 굉장한 힘이 되잖아요. 그리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한다는 것을 넘어 결국엔 우리도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것이니 큰 동력이 될 수밖에 없죠.
최용훈
우리연극만들기를 통해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 그 이후에 저희와 꾸준히 작업들을 했거든요. 사실 친(親) 작은신화 작가들을 만들겠다는 의도도 있었죠(웃음). 물론 지금은 공공 공모가 많아지면서 응모 편수가 줄기는 했지만, 우리연극만들기는 저희 극단에게 여전히 중요한 작업 중 하나에요.
홍성경
우리끼리만 작업을 하다가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니 아무래도 지평이 확장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이전에는 오로지 우리 안에서 세상에 대해 발언하고 부조리한 것에 저항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면, 우리연극만들기를 통해 인간에 대한 서사를 다양하게 접하면서 세계와 연극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었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보다 내밀해지고 섬세해지면서도, 구호가 아닌 삶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최윤우
그러면 같은 맥락에서 조금 다른 질문을 드려볼게요. 연극을 통해서 극단 작은신화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그 화두 같은 것을 여전히 이어오고 계신지요. 앞서 연극의 사회적 발언을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어떤 것들을 우선적인 가치로 설정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최용훈
초창기에는 아무래도 창단 멤버들이 모두 젊어서 그랬을 텐데, 연극이라는 게 사회적 발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지금 그런 기조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극단에서 되도록 많은 연출들을 키우고 그들이 각자의 색깔대로 작업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거예요. 작은신화라는 극단을 플랫폼 삼아 연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기능 그 자체가 극단의 색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30년, 완결이 아닌 새로운 시작

최윤우
지난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렇게 극단을 키우고 운영해 오신 노하우를 공유해주신다면 어떨까요. 매달 단원들이 만 원씩의 회비를 낸다고 들었어요.
홍성경
재정공동체라는 게 말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누구 한 사람의 극단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 이것을 운영해나간다는 가장 근원적인 약속이에요. 책임과 의무를 동시에 주는 거죠. 하다못해 월세와 전기세를 내면서 공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몰라요. 그게 유지가 안 되었다면 이름만 남고 프로젝트 그룹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윤우
한편으로는 재정적인 것 이외에도 극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공력이 중요하잖아요. 지금의 작은신화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세대별로 고민하는 것들이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전유경

전유경
제 기억에 작은신화의 작업들은 선후배들이 서로 기대어 얻는 힘이 굉장히 컸거든요. 그런데 현재로서는 저 또한 후배들이랑 많은 교류를 하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것들을 좀 찾아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단원 수가 워낙 많고 각자의 개성도 다르다 보니, 그때그때 모일 수 있는 이들끼리 주로 작업을 하게 되는데, 몰론 아주 용기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박수쳐주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를 떠올려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단원들이 워크숍을 할 때면 선배들이 오퍼를 봐주시거나 조연출을 해주시던 게 큰 힘이 되었거든요. 결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조합들이 생겼을 때 나오는 힘이 있었는데 그런 활동들을 좀 더 해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제는 세대들이 조금씩 나눠지는 경향이 있는데 같은 공동체로서 더 엮이고, 서로 부딪히면서 알아가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승현

정승현
제 또래 혹은 후배 연출들 중에 각자의 극단을 만들고 활동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작은신화에 있다고 하면 부러워하는 것들이 있어요. 극단의 이름이 있으니 지원금 신청할 때도 더 유리하지 않을까, 혹은 작업할 때는 극단 차원의 든든한 지원이 있지 않을까, 그런 것들일 텐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고요(웃음). 지금은 지원금이 없더라도 ‘10분 연극’ 같은 작은 작업들을 자생적으로 계속해나가는 게 목표예요. 한편으로는 너무 짧게 공연을 하고 사라져버리는 작품들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들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싶고요.
홍성경
지금 ‘10분 연극’ 얘기를 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극단에 자유무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던 건데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는 것보다는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이죠. 저는 이런 게 연극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본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극단에서는 정말 빠듯한 예산으로 장소만 지원을 해줘요. 돈이 없기 때문에 가진 것 안에서 최대치를 뽑아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렇게 자생적인 연극 만들기로 근육을 기르지 않으면 아마도 이 많은 단원들이 활동을 지속해나가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훈련을 해야 한다는 차원보다도 이 그라운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것들이 또 다른 자양분이 될 수 있겠죠.
최윤우
자유무대 같은 프로그램은 극단 내에서 단원들이 하는 것을 넘어서 외부에도 열려 있는 건가요?
최용훈
얼마든지 열려 있는 거고요. 자유무대의 첫 번째 공연을 통해서 여행자라는 극단이 탄생했고, 김명화 작가도 이 플랫폼에서 작업한 적이 있어요. 극단 초창기에 활발하게 하다가 한동안 단원들이 바빠지면서 좀 소홀해졌는데, 올해부터는 다시 이런 움직임들을 활성화하려고 해요.
최윤우
그런데 한국 사회의 연극 창작 환경은 계속 변하잖아요.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양한 움직임들이 있었고요. 이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작은신화만의 계획이 있을까요?
정세라
극단 내부적으로 아직 의견을 모으진 못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극장을 장기 임대해서 수익구조를 만들면서도 배우들이 훈련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작은신화만의 레퍼토리 공연을 올리는 거죠. 무엇보다도 우리는 같이 봐줄 수 있는 선후배들이 있으니, 단지 장기공연을 한다고 해서 쉽사리 느슨해지거나 풀어지면서 레퍼토리 공연이 흔히 이르게 되는 함정에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승현
저는 최근에 현장에서 또래 연출들과 교류하면서 이런 저런 소극장들을 기반으로 극단 간 협업을 해보려고 노력하는데요. 그런 차원에서 작은신화와 다른 극단들의 교류가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애써볼 생각입니다.
최윤우
네, 이제 오늘 좌담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올해 30주년을 기념하는 극단의 계획이나 지향점들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세라
무엇보다도 인원이 너무 많다보니 같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을 텐데, 30주년을 기념해서 서로 더 원활히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많은 작품들을 올려서, 더 많은 배우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려고요. 더불어 한동안 쉬면서 공연을 하지 않았던 단원들도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계기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최용훈
지난 연말 창단 30주년을 맞이하는 총회에서, 완결성을 지향하기보다는 거칠게 다시 시작해보자는 데에 다 같이 뜻을 모았어요. 30년이나 활동을 해왔으니 안정감은 당연히 생겼을 텐데, 그로 인해 도전이나 실험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했겠죠. 작은신화 특유의 공동체를 꾸려나가면서도 경제적인 지원에 기대지 않고 맷집을 키울 수 있는 작업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극단의 여러 연출들이 각자의 작업을 잘 펼칠 수 있게 지원해주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최윤우
창단 10주년을 맞이했을 때, “지금 여기 변화하는 자유로움”을 극단의 모토로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린 가능성들과 단단한 의지로 한국연극계에 좋은 작업들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