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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센터 ‘PLAY-UP 아카데미’ 화술 편 - 연출가 고선웅

연극의 언어는 자연스러움을 넘어야 한다

채민_드라마터그, 축제기획자
96호 2016.07.21
서울연극센터의 세미나실에 들어섰다. 여러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지난 4월, <아오병잉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날의 어지러운 신발장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하나 신발을 정리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말끔한 신발장을 보며,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는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이거나, 혹...

이거... 배우를 위한 화술 수업인가?

서울연극센터의 세미나실에 들어섰다. 여러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지난 4월, <아오병잉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날의 어지러운 신발장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하나 신발을 정리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말끔한 신발장을 보며,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는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이거나, 혹은 이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이겠거니 하며 나도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꺼내 신었다.

책상과 의자가 한 방향을 향해 놓여 있었다. 그 끝에는 칠판과 스크린이 놓여 있었다.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컵에 주스를 따르며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편안한 옷, 왠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는 얼굴, 인사를 할 때면 일정하게 높아지는 톤, 귀에 꽂히는 단단한 목소리... 배우들이었다. 이곳은 온통 배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조용히 맨 뒷줄로 옮겨 앉았다. 나는 이렇게 맨 끝줄 소년이 되었다.

강연자가 들어왔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 내 기억 속에 그는 항상 담배를 물고 있었다. 혹자는 담배피우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독한 리더의 고뇌하는 모습이라고 이야기 했었다. 혹자는 나의 스승이었고, 나는 별 감흥 없이 맞장구를 쳤었다.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도저히 연극을 잊을 수가 없어서 서른두 살에 때려치우고 연극을 시작했다고. 그렇게 연극을 한 지 17년 째, 올해 마흔아홉이란다. 뒤늦게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서른두 살이면 지금의 내 나이. 근 이십년 동안 했는데도 쉰이 넘지 않은 그를 보며 지금 나도 뭐든 할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온 이유

맞지 않는 자리에 왔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다소 산만하던 차에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말을 배우려고 왔어요? 거기 맨 끝에 사람이 이야기 해보세요.’ 대체 맨 끝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왜 질문을 하는 건가. 사실 나는 이곳에 말을 배우러 온 것도 아니었건만. 귓불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극단 마방진 배우들이 대사를 왜 그렇게 치는 건지... 연출 의도가 궁금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수업을 참관하러온 극단 마방진 배우에게 소리쳤다. ‘거 왜 말을 그렇게 하냐는데?’ 배우의 입을 통해서도 연출가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도 나는 명쾌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니다. 그는 대답을 했고, 시간이 필요한 건 나였다. 이후 나흘 동안 계속된 그의 강의는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긴대답이 되었다.

나는 연극에서 이미 약속되어 반복된 말과 행동들이 어떻게 ‘반복’이 아닌 ‘되어지는 것’이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고선웅 연출이 여러 작품에서 시도한 - 성취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생각하는 - ‘되어지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또한 작가적 소양을 충실하게 갖춘 연출가로서 주어진 텍스트에 천착하기 보다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작품을 변주하고, 창작해온 그가 그동안 배우의 몸을 통해 실현해냈던 다양한 경험들과 그로인해 갖게 된 방법론 혹은 노하우를 듣고 싶었다. ‘되어지는 말’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다수와 이해를 함께 하지 못하고, 혹여 그 혼자서 사용하는 단어일망정 그것이 그의 지난 작업들을 통하여 나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첫 번째 수업을 마치며 다함께 반야심경을 읽었다. 스크린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맨 끝줄에 앉은 탓이다. 역시 맨 끝줄은 수업에 여러모로 집중하기 어려운 자리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앉으니 집중력이 귀로 쏠렸다. 대체적으로 서로에게 속도를 맞추어 함께 읽는 편이었고 목소리에서 체념의 감정이 느껴졌다. 다음날 나는 ‘어제 오늘 날씨 서울 도봉구 쌍문동 엄마 젖가슴처럼 무진장 포근하고 무진장 좋다.’라는 문장을 함께 읽으며 반야심경을 읽던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차츰 고선웅 연출의 의도가 보이는 듯 했다. 뜻을 알 수 없는 반야심경(그는 한자 없이 소리만 표기하여 읽게 했다.)을 만났을 때와는 달리 그들은 한 문장에 오만가지 소리, 박자, 투를 담아냈다. 마치 붙잡을 동아줄이라도 만난 것처럼 단어들에 매달렸다. 각자의 화술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배우는 자의 태도, 배우의 태도

고선웅: ...그런데 배울 때 보면 의심이 들 때가 있고 의문이 생길 때가 있죠. 의구심, 의아 이 중에서 제일 안 좋은 건 의심이에요. 배울 때 선생님의 실력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의심을 한다는 건 판단을 하는 거예요. 판단을 한다는 건 분별을 하는 거죠... 분별을 하게 되면 자기가 생각했던 것만 기억해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아만 남아요. 배운 게 없어요. 나를 증명하는데 그 사람을 쓰죠... 좋은 마음을 가지고 내 심장이 움직인 것만 질문을 해야 되요. ... 그냥 저를 믿어야 돼요. 빛의 속도로...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연출과 작업할 때... 의심하면 안 됩니다. 천형입니다. 안 좋을 때 있죠. 하지만 그런거 하지 마세요. 그러다 분란이 생기고 관계가 깨져요. 자기의 확신을 모두 유보하셔야 돼요.

두 번째 강의, 고선웅 연출은 배움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이를 작업의 태도에까지 연장 시켰다. 문득 유난히 고됐던 지난 작업이 떠올랐다. 분란의 연속이었던 연습을 지켜보며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연출의 실력 보다는 권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끌고 가면 일단 공연은 나올 테니 말이다. 경험에 빗대어 보았을 때 연극은 관계의 예술이다.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것은 권위에 대한 복종과 신뢰가 아닌 서로간의 믿음이리라. 싸워야 하는 존재(의심)가 무엇인지 분명해지자 다음 작업을 할 기운이 생겼다. 이렇게 빛의 속도로 믿어야 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후에 그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랑과 감사 그리고 깨어있음

그는 ‘되어지는 말’을 가능케 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했다.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가장 효과적이에요.’ 한손에는 ‘보컬 파워’라는 발성책을 든 채로... 문장이 가지고 있는 추상성과 종교적 편견 때문인지 말이 던져진 장내에 당혹스러움이 번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랑과 감사 그리고 깨어있음’, 이후 그의 모든 강의가 이 문장을 증명해 보이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리적인 상태가 ‘숨’과 ‘말’ 그리고 배우의 ‘몸’에 가져오는 영향을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 했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가 찾아낸 최고의 방법은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고선웅 : 대상한테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확신이 들지만, 그것이 없으면 부서집니다. 힘이 빠져요. 사랑하지 않으면 말이 안되는구나.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상태가 되면 에너지가 들어가고 소리가 단단해집니다. 확신에 차고 눈은 초롱초롱해집니다. 누구를 사랑하느냐. 제일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배우는 무대에서 존재감이 없습니다.

우리는-어쩌면 맨 끝줄에 앉은 나 혼자서- 곧 사랑과 감사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고선웅: 나는 사랑하고 있다. 나는 감사하고 있다. ‘마룻바닥아 밥 먹으러 갈래?’

대상을 선정하고 그의 주문에 따라 마룻바닥을 사랑하기로 한 배우들의 말이, 힘이 빠진 듯 한 그 소리가 내게 그럴듯하게 들려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그는 연극의 화학작용 이라고 불렀다. ‘연극에는 화학이 있어야 한다.’ 라는 그의 말이 흥미로웠다. 이는 후에 그가 이야기하는 ‘자연스러움을 넘어’와 일맥상통하며 극단 마방진의 스타일과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형식이 내용을 장악한다.’라는 그의 믿음과도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는 것이었다.

고선웅: 연극계가 힘들어지는 이유는 우리의 물리적인 접근 때문입니다. 연극은 화학이 있어야 합니다. A에서 바로 B가 되어야 합니다. A' B'를 거칠 시간이 없습니다. 확확 변한다는 확인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연극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함정에 빠지면 절대 안 됩니다. 말을 알고 이해해야 할 수 있다는 함정에 빠지지 말고 그냥 믿고 한 번에 손바닥 뒤집듯이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순간을 믿고 변할 수 있습니다.

고선웅: 반드시 연극은 자연스러움을 넘어있어요. 자연스러움은 기본인데... 그 뒤에 있는 어떠한 미학적인 감흥 내지는 성취, 감각적인 어떤 것들을 반드시 만들어야 비로소 연습으로 완성한 의미가 생기는 거죠... 연극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에요. 그래서 희곡의 언어는 자연스러움을 넘어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대본은 어때요? 당연히 넘어있어야 하죠. 그래서 누가 이렇게 말을 해? 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 되고, 어색하고, 왜 이렇게 말하지? 바로 여기서부터 연극이 시작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연극입니다.

고선웅: 저는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겉이 속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내면을 다 알고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속을 모르면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대본분석만 삼주동안 해야 해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 겉이 만들어 지나요?


마지막 시간, 각자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강의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배우들을 보며 고선웅 연출의 플레이업은 ‘힐링캠프’와 ‘연기수업’의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과 감사’, 비단 ‘되어지는 말’을 하기위한 배우의 마음가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응당 그래야 할 것인데, 세상풍파에 잊고 살다가 교회가 아닌 연극수업 시간에 듣게 된 것이다. 새삼스러움과 구절을 만난 의외의 맥락에 당혹스러웠지만,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말이 가지는 힘과, 그것을 연기에 접목시킨 고선웅 연출의 논리에 다시 한 번 설득당한 것이다.

그의 수업을 들으며 어쩌면 연출가는 배우의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에서 선택받지 못할까봐 갖게 된 두려움이 배우가 가진 고유의 매력을 가리고, 무대에서 드러나지 못할까봐 갖게 된 두려움이 다른 배우들과의 밸런스를 헤치고, 연극만으로는 생을 영위하지 못할까봐 갖게 된 두려움이 집중력을 헤치는 것. 그래서 모두가 함께 지치는 시간을 공연 끝날 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 플레이업에서 보여준 고선웅 연출의 보편적이지만 깊은 사유는 이런 고민들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 배우 아닌, 맨 끝줄 소년의 플레이업 관망기였다.

[사진: 서울연극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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