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배우 강지희 & 창작집단 청목
청년예술가를 만나다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뛰는 여자”, 배우 강지희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주택 주민들의 네트워킹 파티에서 1인극을 상연하는 배우가 있다는 소식에 아현동 오르막길 골목 끝,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주택을 찾았다. 헥헥거리며 등반을 한 뒤 힘빠진 몸을 의자에 누이고 있으려니, 돌연 한 배우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아, 뛴다. 열심히 뛰며 대사를 치던 그녀는 또 돌연 멈춰 서서는, 언덕 아래 서울을 향해 선언하듯 “소비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창조되고 싶다 아아아”라며, 우렁찬 목청으로 외친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파티를 찾은 손님들을 ‘몰고 다니는’ 한 배우, 참으로 대단한 에너지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뛰고 소리치게끔 하였나. 이 글은 “뛰는 여자” 강지희와의 수다를 바탕으로, 그 삶의 온도와 감각을 전하고자 하는 글이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
어려서부터 배우의 꿈을 품어왔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3년에 걸쳐 끈질기게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세 번 연속 연극영화과 입시에서 낙방했다고 한다. 입시를 준비하던 기간 동안 이 공연 저 공연, 스태프 일을 하면서라도 연극과의 끈을 놓지 않고자 노력하였는데, 불현듯 어느 날 ‘이 마약 같은 연극을 끊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한다면 하는 확실한 성격인지 참 멀리도 멀리도 끊어내고는 무려 법대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하였다. 시간표에 전공 수업을 꽉꽉 채워 들으며 조기졸업까지 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연극이란 정말 마약과도 같은 것일까, 배우로서 무대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연극을 해야겠단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일단 변호사가 되고 연기를 하는 게 안정적이지 않겠냐’, ‘그게 훨씬 멋져 보이지 않겠냐’ 등등, 가족들은 수도 없이 만류를 하며 그녀로 하여금 사법고시에응시하도록 설득하였지만, 그 고집을 꺾기엔 무리였다. 끝내 설득을 포기하신 부모님께서 그렇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나라”고 던져주신 덕담(?)에 힘입어 방안을 가득 채우던 법학 서적을 모두 팔아버리고 2012년, 그렇게 돌고 돌아 극단에 입단하며 연극계에 발을 들였다. 언젠가 정 힘들면 법학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돌아볼 곳이 없으니 오히려 힘이 생기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침묵의 시간
그렇게 그녀는 꿈꿔왔던 배우 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같은 현재가 아니기에 이 기획글의 주인공으로 그녀가 선정된 것일 테다. 극단의 좋은 작업 환경과 동료들 사이에서 창작에 대한 고민과 작업들을 이어가며 활동하였지만, 연극 교육을 받지 못한 비전공자로서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 그 부족함과 관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극단 안팎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으며 고민을 해결하고자 했지만 점점 연극과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며, 과연 자신이 극단에 힘이 될 수 있는 배우인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가 되고자 다시 한 번, ‘뒤돌아보지 않고’ 극단을 떠나 홀로서기를 감행하였다고 한다.
홀로서기, 자뭇 단단하고 멋져 보이는 이 말의 이면엔 무수한 외로움과 불안이 쌓여있을 것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돌아볼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상황이 오히려 새로운 발판과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하였지만, 극단을 나온 당시의 그녀는 정말 불안했다고 한다. 그 동안 연극 공부의 필요성과 더불어 학연의 현실적인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할까 고민하기도 하였지만, 현실은 정작 계약직 행정직원, 미스테리 쇼퍼 아르바이트 등, 연극과 전혀 밀접하지 않은 일상이 주가 되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페미니즘 관련 전시를 보러 갔다가 한 작가의 드랙Drag 퍼포먼스를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어버렸다고 한다. 그를 이루고 있던 옷가지와 장신구들을 벗어던지고 더 나아가 뽕브라까지 벗어던지고, 삼각팬티 하나만 걸치고 맨몸으로 관객들 앞에 서서 예술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가의 모습에 그녀는 있는 모습 그대로, ‘아직은’이란 생각에 갇히지 않고,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극단 선배가 해주었던 말, 언젠가 기회는 올 테니 계속 준비를 하고 있으란 말을 다시금 새기며.

홀로서기
2017년에 들어 그녀는, 쓸 수 있는 지원사업은 모두 써보겠단 결심으로 지원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선정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제는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사업으로 생계비를 벌고 또 생활비를 아끼며 ‘돈 들이지 않고’ 살아보고 배워보기를 실천 중이다. 서울연극센터의 PLAY UP 아카데미를 통해 배우 훈련의 방법들을 배우고,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스터디를 꾸리거나 작업을 기획한다. 글을 열며 언급하였던 1인극 <뛰는 여자>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하게 된 작품이며, 겨울엔 이를 다듬고 늘려 네 명의 배우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공연을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제각기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지만, 이것들이 한 데 모여 발화되면 사회를 향해 ‘한 덩어리’의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작업 중이라는 수줍은 목소리에서 어떤 단단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몇 가지 어려움을 제하면, 공동작업에 비해 홀로 하는 1인극 작업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좋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 <뛰는 여자>의 아이디어를 공유하였을 때 ‘배우는 당연히 아름다워야 하는 게 사실이지 않냐’, ‘영향력 없는 배우가 자신의 생각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은 다소 오만한 일이 아니냐’ 등의 이야기를 여럿 들었다고 한다. 물론, 한 배우의 영향력에 따라 풀어낼 수 있는 또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오히려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자리하는 혈혈단신 무명배우이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겠냐며,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한 번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제 단 하나 두려운 건 관객뿐이라며, 배우로서 그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 지, 어떻게 푸념이 아닌 재밌는 공연을 만들어낼 지, 요즘 그녀는 즐거운 부담감을 느끼는 중인듯 보였다.
몇 가지 어려움
결단력과 용기, 그 결단을 밀어부칠 실행력, 어려움 가운데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현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진취성 등, 나열한 이 특성들은 배우 강지희와의 대화 과정에서 그녀로부터 가장 많이 받게 된 인상들이며, 지금까지의 글에서 최대한 드러날 수 있도록 신경 쓴 그녀의 부분들이다. 다만 그녀도 얘기하였듯, 몇 가지 어려움을 제하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그녀가 당면하고 있는 고민들을 몇 전하고자 한다. 이것도 저것도 마냥 좋다며 현실을 덮어두고 긍정을 외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서 전했듯, 올해 지원할 수 있는 지원사업은 모두 지원하였지만 지금껏 붙은 사업은 없으며 한 사업은 아직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겨울에 그녀와 세 동료들은 어쩌면 전액 사비로 관객맞이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 하고 싶어서 하는 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공연이니까 조금 패기로워지기로 했다 치자. 다만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고민은, 지원에 지원을 거듭 거치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통과될만한 이야기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아니 그렇다면 애당초, ‘통과될만한 이야기란 무엇인지(알면 떨어지지라도 않았지)’ 등, 여러 반작용들 가운데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본질이 다소 흐려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얀 건 모니터 여백이오, 까만 건 텍스트 정보인 지원서 화면 앞에서, 이 작업을 ‘현실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끔 할 수 있을 것인가, 적정한 기획서 형식과 내용을 고민하는 일은 실제 작업 과정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고군분투 외로이 싸워내야 하는 1인 창작자의 평생 친구와도 같은 것이겠구나 생각이 드는 요즘이란다.
어떤 장치도 없이 홀로 관객과 또 세상과 마주하고자 하는 1인극 창작자이자 배우로서, 그녀가 당면한 어려움은 서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직 인지도도 전무하다시피 하고 갓 시작한 입장이기에, 사람들이 그녀를 믿고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낀다고 한다. “신진예술가”, “(여)배우”,이 이름들은 늘 무언가를 보이고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할까. 어느 정도 고통과 고충이 있어야 하지만 그 고통이 삶을 잡아먹을 만큼 심해서는 안 되고, 구체적으로 무슨 고충인지는 몰라도 그 고민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던져줘야 하고, 또 너무 오만해서도 안 되고, 언제나 적정한 어떤 선을 ‘연출’해내야 함을 갓 홀로서기 시작한 창작자로서 종종 느낀다고 한다. 기존의 일상에 균열을 내고 어떤 흔들림을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정작 현실은 자신만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또 현실적으로 끊임없이 타협만 하고 있는 것 아닌지 고민이라는 그녀, 결국은 “더 고민해 봐야죠. 아직은 더 뚫어야 될 것 같습니다.”라며 웃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그녀는 여전히 고민 중이고, 어쩌면 소위 ‘침묵의 시간’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결국 흔들리는 건 세상과 사회가 아니라 정작 자신인지도 모른다. 한 편으로는 하루를 셋으로 쪼개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너무 게으른 창작자이진 않은가 고민하고, 또 한 편으로는 작업 중심의 일상을 보내는 올 2017년이 너무 이기적인 시간들이 아닌가 고민한다. 하지만 고민에 묻히지 않기 위해 또 패배감에 젖어있지 않기 위해 그녀는 그 고민들과 흔들림을, 유랑과 방랑을 최대한 즐기며 끝까지 밀고 나가보고자 한다.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쉼표가 되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그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창조하고 창조되고 싶다고. 하고픈 것도 또 그것을 해낼 본인도 단단한 사람인만큼, 하루 빨리 편안한 호흡을 찾고 적절히 쉬며 또 달릴 지점들도 찾아낼 수 있는 ‘뛰는 여자’ 강지희가 되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글: 송이원,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할머니의 30만 원으로 빌린 연습실에서 시작하는 청년연극인, 창작집단 청목

작은 세탁소, CCTV판매 업체와 영재학원이 있는 낡은 건물 지하연습실. 현관에는 신발 일곱 켤레가 삐져나와 있고, 안에서는 연극 연습이 한창이다. 젊은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맞물린다. “이 사람은 직업이 배우니까, 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면 좋겠어.”, “형이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봐.”, “나는 여기서 이렇게 움직였는데.” …
푸른 시선, 창작집단 ‘청목’의 연습실을 찾아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는 연극인들의 작업 과정을 들었다. 청목의 대표 김진환 연출과 차성진 배우는 올해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에 선정되어 창단공연 <동물원을 탈출한 코끼리>를 준비 중이다. 연습실 위치를 알려주고 마중을 나온 김진환 연출은 연습실이 좋지 않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연습실이 너무 안 좋아서. 좀 습기도 없고, 거울도 있으면 좋을 텐데.”
연습 이주 차를 맞은 공연팀은 이제 막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였다. <동물원을 탈출한 코끼리>는 큰 틀거리만 잡아놓고 에뛰드(즉흥상황극) 연습으로 장면을 만들어가는 공동창작 작업인지라 매 연습 나눠야할 말들이 많다.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부터 각 인물의 목표와 세세한 행동까지. 자유를 찾아 동물원에서 탈출한 코끼리와 만나게 되는 청년들은 어떤 삶을 살던 사람들일까, 이 만남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 과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창단을 택한 두 사람은 어떤 변화를 찾고 있는 것일까? 학부 졸업 후 일 년 간 각자 활동을 하다가 극단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를 물으니 김진환 연출은 “양아치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기존 극단에 들어가 일년 여를 보낸 김진환 연출은 젊은 인력이 부족해 온갖 일을 시키면서도 보수는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실상을 더이상 견딜 수 없었고, 오디션으로 공연에 출연한 차성진 배우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성진 배우가 졸업 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참여한 공연은 ‘청년예술인들의 노력’으로 공연을 올리는 데에 취지를 둔 사업의 일환이었는데, 애초에 “페이를 못 드리고 소정의 교통비만 지급한다”고 공지가 되어 있었다. 연기과 전공을 하면서도 지원사업 등 현장에서 작업을 해나갈 때 필요한 정보를 접하지 못했던 차성진 배우는 연극은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5만 원 받고 공연을 하면서도 자신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이니 부당할 것 없다고 여겼다. 나중에야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조금씩 이런 착취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연극을 하며 그 정도 양아치는 되지 말아야지’라는 것이 이들이 세운 목표이다.
지원금을 받아 공연을 제작한다고 해서 절대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모은 대학 동기들, 오디션으로 뽑은 객원 단원들, 알음알음 섭외한 스태프들에게 벌써부터 미안하게 될까 신경 쓰이는 일들이 태반이다. 김진환 연출은 특히 대표로서의 책임감 때문인지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열악한 연습환경도 미안하고, 어떤 날은 연습 접고 소주 한 잔, 비오는 날은 막걸리 한 잔 사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마음만큼 사람들에게 대우를 해줄 수가 없다. 그런데 공연팀 페이를 들어보니, 경력 있는 프로 극단의 신진 배우들이 받는 정도의 금액을 책정했다. 여전히 넉넉하지는 않은 액수이지만, 자신들이 겪은 다른 집단에서처럼 제작진이 쓰고 남은 돈을 나눠주기보다, 배우와 스태프 페이를 먼저 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제작비를 운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조연출에게 가장 많은 금액을 주고, 오디션을 볼 때도 제작 일정과 페이부터 분명히 말했다. 작은 부분에서부터 서로를 소모하지 않고 작업을 지속해나가려는 노력들이 청목의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현재 부딪히고 있는 문제는 돈뿐이다. 단원들은 연기과 학부에서 최소한 다섯 번씩 같이 공연을 해본 친구들이고, 객원 오디션을 볼 때도 자신들과 사회를 보는 시선을 공유할 수 있는지, 유머코드는 맞는지까지 가늠하고 함께할 사람들을 정했기에, 팀 내 갈등이 생기더라도 생산적으로 풀어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가능한 합리적인 페이를 주고 남는 돈으로 제작 여건을 만들기가 어려울 뿐이다. 지난 8월 21일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린 청년예술인집담회에서 이들은 연습실 대여료 때문에 단원 중 한 명의 할머니에게 30만 원을 빌렸다는 일화로 ‘웃픈’ 현실을 얘기하기도 했다. 현재는 교부금을 받아 할머니께 30만 원을 돌려드린 상태이다. 무대와 분장은 당연히 스스로 해결할 것이고, 연습실과 극장을 대여할 때 어떻게든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대부분은 지인을 거쳐 부탁에 부탁을 했다. 갚아야 할 일들만 남아있다.

자본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연극을 제작하기란 불가능한 현실에서, 이들은 가능한 도움을 얻고, 가능한 창작자들을 존중할 방법을 찾으며 동시에 ‘이렇게까지 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차성진 배우가 5만 원을 받으며 공연을 할 때에도, 당장에 돈을 못 버는 것보다 공연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고민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물으니 “청년들의 시선”으로 말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다소 흔한 답이 돌아왔다. “청년들이 반성하고 노력할 것도 있다고 하지만, 청년으로서 조금만 더 사회 탓을 해보겠다”고. 결국에는 ‘청년’을 이야기하는 많은 청년연극인 중에서 더 치밀하고 진실한 공연을 만들어야 작업을 지속해나갈 원동력을 가질 수 있을 듯했다.
<동물원을 탈출한 코끼리>는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동물원 서커스에서 탈출한 코끼리와, 자살을 하러 온 ‘성진,’ 코끼리를 쫒는 조련사와 성진을 찾는 친구들이 숲에서 만난다. 작품의 모티브는 2015년 겨울 투신한 서울대 학생이 남긴 유서이다. 자살을 하는 것이 자신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글을 남긴 그는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이며, 자신과는 너무 다른 세상에서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진환 연출은 그가 서울대에 진학하고도 결국 수저 색깔로 모든 것을 결정 당하는 사회에서 느낀 허무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가 경쟁 사회라고 하는데, 실은 단 한 번도 경쟁을 시작한 적이 없으며 부모님 배에서 태어난 순간 경쟁이 끝나 있는 현실”을 까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 기존의 시스템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면 ‘왜 그러니’라고 묻지 않고 그를 파괴시켜버리는 사회, 원하지 않는 방식의 교육과 원하지 않는 진로를 강요하고 그에서 벗어나면 부적응자로 낙인찍는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창작집단 '청목'은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바보 같은 모습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낼 예정이다.
첫 연출 작업에 임하고 있는 김진환 연출은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기도 한다. 다시는 텍스트가 없는 공동창작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외치듯 말한 그는, 그래도 원하는 바대로 현재의 이야기를 하려면 다시 창작극을 하게 되지 않겠냐고 하자 크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차성진을 비롯한 배우들은 즉흥극 연습으로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상처를 반추하며 심리적으로 괴로운 시기를 겪었다. 이들은 작품 속 인물들이 코끼리를 만난다고 해서 생각이 바뀔지언정, 삶은 바뀌기 힘들 것이라 전제하고 있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삶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철없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려는 이들은 절대 미안할 것 없는 청춘들이다.
[글: 김진아, 사진: 창작집단 청목 제공]

- 김진아
- 경계를 건너, 거리를 가로질러 만나는 시간을 짓습니다.

- 송이원
-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