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연출가 강보름 & 김은정
청년예술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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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최초에 대하여’ - 연출가 강보름

스무살 입학 첫 해에 연극 동아리의 문을 두드리며 연극을 시작한지 7년, 어느새 스물일곱의 가을을 보내는 중인 강보름 연출은 그 사이 ‘대학생’에서 ‘연극인’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고 어엿한 ‘청년예술가’가 되었다. “청년예술가를 만나다”라는 기획코너의 인터뷰이(Interviewee)로 찻집에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청년예술가’라는 수식이 어색하다는 그녀,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올 9월 초, 이제 막 입봉작 <레디메이드 인생>을 올린 참이다. 익숙하던 학내 극장에서 홍대입구의 포스트극장으로, 수십 명의 동아리원과 함께 하던 동아리 활동이 열 명 남짓한 참여 배우 및 스태프와 함께 하는 외부 작업으로, 또 300만 원 안팎의 학내 연극 제작 예산이 1,300만 원의 공공지원금으로 바뀌는 등, 여러 환경의 변화를 막 겪고 난 강보름 연출의 ‘최초’의 경험을 들어보았다.
레디메이드 인생
포스트극장에서 상연되었던 강보름 연출의 <레디메이드 인생>은 동명의 원작 채만식의 소설을 각색하여 무대화한 작품이다. 숱한 취업준비생을 친구로 두고 있는 20대의 연출은 1934년 경성의 P, 그러니까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구직을 하지 못해 자괴하고 자조하는 엘리트 백수 P로부터 자신과 주변인들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차갑고 삭막한 도시 경성을 무채색의 무대로 표현하였고, 대체 가능한 ‘기성품 인간’으로 여겨지는 익명의 주인공 P를 연극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번갈아가며 연기하게끔 연출하였다. 엘리트의 상징 ‘화이트 칼라’를 각 장면의 P를 맡은 배우에게 돌려가며 달아주는 방식으로. 더 나아가 1934년 경성의 상황과 2017년 서울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이기에, 소설의 장면들을 쪼개어 여러 장으로 나누고, 각 장의 배경이 되는 경성의 공간을 2017년 서울의 이미지와 교차하여 보여주는 연출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공연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소설의 내용과 전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여러 연극적인 장치를 통해 상당히 감각적인 방식으로 연출을 시도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공연을 놓친 게 아쉬울 정도로 흥미로운 공연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전해주던 강보름 연출은, 의외로, ‘첫’ 작업이니만큼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실패를 많이 겪게 된 경험이었다며 작업 과정을 회고하였다.

최초 ‘실패’ 지원
4월부터 시작된 작업 과정 전반이 쉽지 않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기획의도와 작품소개, 참여인원과 예산 목록 등, 구체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기획서의 항목들을 ‘먹힐’ 문장으로 채우기 위해, 그리고 가늠도 안 가는 예산 계획을 짜기 위해 기획서 작성에만 2~3주 가량의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또 연극계에 아는 사람이 자기 자신 뿐이라는 농을 칠 정도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기획서의 참여인원 명단을 채우고 작업의 참여인원을 겨우겨우 섭외했다고 한다. 별도로 섭외한 몇 전문 배우를 제하면 대부분의 참여인원이 거의 동아리 선후배들로 구성된 프로덕션이었기에, 취업준비생과 대학원생 또 졸업준비생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공연 한 편을 올려냈다고 한다.
기존 학내 연극 제작비에서 1,000만 원 가량이 늘어난 제작비 1,300만 원도 막상 공연을 제작하려고 보니 결코 넉넉한 금액이 아니었다. 아니, 모자랐다. 원래 일주일로 계획하였던 공연기간은 결국 극장 대관료로 인해 거의 절반의 기간으로 줄여내야 했다. 또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아끼고자 학교의 빈 강의실들을 전전하며 연습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온갖 편의의 조건들이 죄다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이다 보니 아낀다는 것이 그저 근검절약의 미덕 같은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프로덕션 전원의 에너지로 직결되었으리라 쉬이 짐작된다. 더 나아가 한 편의 공연이란 것이 여러 사람의 시간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니 소위 인건비에 대한 고민 역시 빠질 수 없었다. 작업 참여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싶었지만 예산은 한정적이고, 또 그렇다고 금액에 준하는 정도의 작업량만을 요구하자니 작업이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바쁜 선후배들이 시간을 쪼개어 작업에 참여한 것이니만큼 온갖 잡일을 본인이 도맡아 하려다 체력이 방전되기도 하고, 한 번은 다리에 골절상을 입을 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 취업시장의 자기소개서 시즌과 대학생의 시험기간이 작업 일정과 겹쳐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보며, 과연 이 작업과 사람들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수도 없이 고민하였다고 한다. 불필요한 고생과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체계적으로 업무분담을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를 떠나 처음 하는 연출과 조율작업에 여러 모로 미숙하여 작업의 체계와 방법 면에 있어 수도 없이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은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보름 연출은 이 일련의 과정들이 소중한 실패의 경험이었다며, 4월부터 9월까지의 작업기간이 근래에 들어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하기야 각기 다른 상황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여럿 모여 하는 작업인 연극이, 어떻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레디메이드 기성품 마냥 찍어낸 듯 제작될 수 있을까. 연습의 기회도, 이에 따른 실패의 기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자신은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이번 ‘실패’의 경험이 앞으로의 작업에 단단한 밑바탕이 될 수 있으리라 조심스레 기대하는 그녀였다(물론 ‘운’에 따라 실패의 경험이 선별적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연극, 사람의 일
아무튼, 연극 동아리 활동을 시작으로 7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연극을 만들어왔고, 최근에는 대표적인 티켓 사이트에서 표를 판매해가며 공연을 올렸는데도 ‘청년예술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라 그 이유를 물었다. 몇 달 전 기사를 하나 읽게 되었는데 ‘예술인’의 정의 중 하나가 ‘현재 작업에 이어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가’, 즉 작업의 지속가능 여부였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고 그녀는 연극을 지속하여 ‘예술인’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다, 몇 년을 일해 돈을 모아둔 뒤 일을 그만 두고 연극 작업을 하고,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을 해 돈을 벌고 하는 식으로 작업을 지속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였다고 한다.이 이야기를 나누던 대목에서 처한 상황이 비슷했던 필자와 강보름 연출은 그렇다면 우리는 ‘간헐적 예술인’이 아닌가 잠깐 자조해보며 씁쓸한 웃음을 나누기도 하였다.
물론 이 수식어의 어색함에는 현실적인 문제만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분명 ‘연극’을 하고 싶고 ‘연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예술’을 하고 있다거나 ‘예술’을 하고 싶단 생각은 별로 안 드는 것 같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하였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에 관심을 많이 갖는 편이라는 그녀는 최근 커뮤니티 아트와 다큐멘터리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작업을구상해 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7년이란 시간에 걸쳐 관심을 놓지 않으며 무언가 한 가지를 이렇게 좋아해본 건 연극이 처음이라는 그녀는, 그 이유를 생각하다 사람과 함께한다는 기분이 또 외롭지 않다는 기분이 참 좋았다고 한다. 아마 그녀 나름의 ‘연극’과 ‘예술’에 대한 정의와 선호는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삶과 사람에 밀착되어 그 ‘함께 있음’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고민하고자 하는 욕구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다.
연극, 사회의 일
사람들이 모여 이룬, 사회의 여러 풍경에 관심이 많은 강보름 연출은 어떻게 하면 사회적인 관심사를 놓지 않으며 연극으로써 사회운동과 연대할 수 있을지, 그 형식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를 보내는 듯 했다. 막 상연하였던 <레디메이드 인생>에서도 1934년 경성의 P가 오늘날 우리 사회 청년들의 상황과 또 관객과 맞닿을 수 있도록 다양한 형식실험을 시도하고 싶었지만, 첫 작품에서 시도하기엔 배움이 부족한 듯 하여 많은 부분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번의 작업을 통해 일상의 다양한 순간들을 연극의 매체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경험을 얻은 그녀는, 극장의 안과 밖에서, 일상의 언저리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연극’을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하였다.
생각해보면 연극이란 참으로 많은 것들의 경계가 맞닿아 있는 만남의 장르인 듯하다. 이야기의 시공간과 현실의 시공간, 배우와 캐릭터, 무대와 관객 등등. 사람과의 만남이 좋아 공동작업인 연극을 이리도 좋아하는 듯하다고 말하는 강보름 연출이 앞으로 다양한 사람과 또 일상의 매체들과 만나가며 어떤 만남들을 주선할지, 이제 갓 첫발을 뗀 그녀이기에 무수한 가능성의 결들이 궁금하다. 만남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 듯하니 부디 연극계에 아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상황과는 하루 빨리 결별하길 바라며, 걸음걸음 자주 만나볼 수 있길 바래 본다.
[글: 송이원, 사진: 강보름 제공]
자기 자신을 찾기, 그리고 ‘함께’ 하기 - 김은정 연출의 균형 감각

지평막걸리, 알밤막걸리, 여수개도막걸리, 해창찹쌀막걸리, 해물파전, 머리고기, 간재미찜…. 대학로 연극인들이 자주 찾는 ‘성북동 막걸리’의 메뉴다. 소박한 외관이지만 맛깔스러운 술과 안주가 가득한 이곳을 8년 째 운영하는 이들은 김은정, 박상준 부부이다. 이들이 지금 공연을 하나 준비하고 있다. 추석 연휴 말미부터 여행자극장에서 상연하는 음악극 <서울의 착한 중이>. 직접 대본을 쓰고 작사, 작곡, 연출을 맡은 김은정 씨를 만나 그녀의 삶과 연극에 대해 들어보았다.
자신을 만나는 시간, <서울의 착한 중이>
<서울의 착한 중이>(이하 <중이>)는 김은정 연출이 딸의 성장을 보며 느낀 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딸 박이현 씨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3까지 대안학교에 다녔다. 그녀는 녹음에 둘러싸인 학교에서 밤이 되면 지붕 위에 올라가 별을 보며 노래하고 지냈다. 그에 비해 제도권 입시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밤이면 야간학습이나 학원에 매어있었다. 미래를 위한다며 현재의 행복을 미루며 사는 것은 아이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어른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모두가 무의미한 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현실을 보며 김은정 연출은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지만 사람들 마음에 무엇인가가 생겨야만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딸은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친구처럼 대했다. 엄마와 싸우고 나서 기분이 나쁘면 피아노를 치러가고는 했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경험이 생기면 곧바로 작곡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음악인이 된 딸은 지금 <중이>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친구 같은 존재를 스스로 찾아낸 딸과 같이, 극 안의 주인공, 중2 여학생 ‘오중이’ 또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꿈을 찾아나간다.
극의 전반부에 반복되는 부모의 노래는 “일등만, 한 번만, 그게 우리 소원!”이다. 착한 딸이 되고 싶은 ‘중이’는 신께 기도를 한다. “한 번만 만점 받게 해주세요.” 오랜만에 듣는 순진한 인간의 기도에 뿌듯해진 신들은 중이의 소원을 들어준다. 그러나 아이가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에 부모는 더 큰 욕심을 부린다. 낙담한 중이 앞에 중이의 수호천사,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신1, 2, 3’을 끌고 온다. 신들은 제비뽑기를 해서 한 명이 중이의 몸에 들어가 그녀의 역할을 대신하기로 하고, 자유의 몸이 된 중이는 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신과 몸이 바뀌는 설정은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에서 차용, 변형한 것이다. <사천의 선인> 속 신들은 자신들에게 선의를 베푼 셴테에게 은화를 선물하지만, <중이>의 신들은 중이의 몸에 직접 들어가 봄으로써 그녀의 고충을 이해하는 시간을 겪는다. 중이의 학교, 학원을 대신 다녀보다가 곧 포기하고 나가떨어지지만 말이다. 김은정 연출이 생각하기에, 중이에게 필요한 도움은 그녀가 ‘조건 없는 사랑의 가능성’을 경험하고 자신감을 찾도록 관심을 가지되, 스스로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놓아두는 것이다. 중이가 천국에서 보는 아름다운 풍경들, 또래 남자아이의 노래를 듣고 느끼는 감동이 결국 중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가꾸어나갈 힘이 된다.
김은정 연출은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인간 안에 과연 어떤 신성이 남아있는 것일까’고민하며 극을 썼다. 그녀가 생각하는 답은 ‘창조성’이다. 인간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몰입하여 창조력을 발휘할 때, 가장 신과 가까운 본질을 발현하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이>를 보는 관객들 또한 ‘쫓기듯 살지 말고, 자기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본모습으로 살아갈 힘을 키울 시간을 갖는 것’, ‘<중이>를 보는 시간이 그 시간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 김은정 연출이 바라는 바이다.

같이 ‘놀다보니‘ 하게 된 연극
<중이>를 같이 만들고 있는 이들은 모두 ‘같이 놀던’ 친구들, 친구의 친구들이라고 한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라는 게 뭔가요? 성북동막걸리에서 술 마신 친구들?”하고 물으니 십여 년 넘도록 작업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라고 한다. 친구의 의상 일을 돕다가 연극을 시작한 김은정 연출은 전공을 살려 음악감독으로 연극, 영화, 뮤지컬경력을 쌓아왔다. 연출은 이제 두 번째일 뿐이지만 그간 만난 친구들이 모여 좋은 팀을 이루었다. 경험도 많고 ‘파이팅’이 넘치는 이들은 다양한 장르의 노래와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청소년기의 위기와 방황을 다루더라도 밝고 힘찬 어조를 유지하고 싶었던 김은정 연출에게는 너무 고마운 팀원들이다.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만들었어요.”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항상 꾸준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영화 음악을 지향했지만 경력도 인맥도 없던 어린 시절에는 일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결혼과 출산 후에는 오랜 기간 육아에만 전념했다. 그러다, ‘나 이제 뭐하고 놀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친구의 소개로 공연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소개받은 극단에서 10여 년 음악 감독을 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좀 더 다양한 곳에서 놀고 싶어 극단을 나왔다. 그러다 지금 만들고 있는 <중이>는 그녀가 구상한 새로운 놀이판, “올빼미 컴퍼니”의 창단공연이다. 공연 일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성북동 막걸리를 차렸지만, 그곳에서도 친구들과 <성북동 막걸리>라는 단편영화를 찍으며 작은 동네잔치를 벌였다. 그러고 보면 <중이>는 딸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김은정 연출 자신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가꾸어나가기’. 김은정 연출과의 대화에서, 작품 안에서 계속 발견되는 모토이다.

함께 하기
최근 런을 시작한 연습실 한켠에는 앳된 얼굴의 3인 밴드 세션이 눈에 들어온다.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최윤혁은 이십대 초반, 드럼, 건반의 한주형, 임예나는 고등학생이다. <중이>의 주 관람층인 청소년들의 시선을 고려해 비슷한 연령대의 세션을 섭외했다. 아직 런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김은정 연출이 매 곡마다 시작 타이밍과 볼륨을 조정해준다. 작사 작곡은 모두 김은정 연출이 했지만 편곡은 이들에게 맡겼다. ‘요즘 감성’으로 완성된 선율과, 위트있는 가사가 귀에 그야말로 쏙쏙 들어온다. 가사 전달력이 좋다는 점은 시인이 꿈이기도 했던 김은정 연출이 자주 듣는 장점이기도 하다.
“혹시 거기 누구 있나요. 혹시 제 말도 들리신다면 대답해 주세요. 제 소원도 한 번만 들어주세요.”(중이)
“오랜만에 들리는 저 작은 소리. 소원을 얘기하는 가늘고 귀여운 목소리. 생전 처음 우릴 부르며, 참 소박도 하지. 올백 한 번만, 만점 한 번만. 만점 한 번만, 일등 한 번만. 참 소소하기도 하지. 아이야, 네 기도가 이루어졌니라!”(신들)
“아아, 발바닥에서부터 소오름이 돋는다. 아아,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전율이 올라오온다아아아. 기특하기도 하지 내 딸. 기특하기도 하지 내 딸.”(부모)
이렇게 글로만 봐도 이야기가 이어지는 단순한 가사들이, 적절하게 다이나믹한 운율로 배우의 몸에서 흘러나와 <중이>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노래도, 대사도, 캐릭터도 모두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 또한 김은정 연출이 중요하게 여기는 지향점이다. 예전에는 자신만의 실험성과 예술적 성취를 먼저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게 목표가 되었다. 팀원들 또한 그녀의 가치관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기에 무대 위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시너지를 쌓아간다. 남편 박상준 씨는 조연출을 맡아 모든 고민을 함께 하며, 연습 진행을 도와준다. ‘즐거운 일을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이 생생히 전해지는 연습실이었다.
그녀만의 균형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할 방법을 찾고, 가게를 열어 생활을 유지해나갈 방법도 찾고, 가는 곳마다 친구들을 만들며, 가족과도 동료로 함께하는 것이 김은정 연출의 삶이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기에 어려운 점이 있어도 힘을 내고, 고민이 있으면 연극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김은정 연출은 열 명이나 출연하는 대본을 쓰는 바람에 규모가 커져서 고생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상과 예술’ 사이,‘나와 모두’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글: 김진아,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 김진아
- 경계를 건너, 거리를 가로질러 만나는 시간을 짓습니다.

- 송이원
-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