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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소극적창작단 & 큰새프로젝트

청년예술가를 만나다

김진아, 송이원
127호 2017.11.09
얼마나 소극적인 사람들이기에 그 이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소극적임을 내보이고 있는 것일까? 한껏 궁금증을 품으며 노량진에 위치한 소극적창작단의 연습실을 찾았다. 갑자기 찾아온 겨울 앞에 단 한 대뿐이던 연습실의 난방기가 다소 무력했던 탓일까, 아니면 때마침 연습하던 장면이 ‘차가운 밤공기 아래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었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그...

온 힘을 다해 소극적인, 소극적창작단

얼마나 소극적인 사람들이기에 그 이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소극적임을 내보이고 있는 것일까? 한껏 궁금증을 품으며 노량진에 위치한 소극적창작단의 연습실을 찾았다. 갑자기 찾아온 겨울 앞에 단 한 대뿐이던 연습실의 난방기가 다소 무력했던 탓일까, 아니면 때마침 연습하던 장면이 ‘차가운 밤공기 아래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었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그 공간을 물들였던 것일까 .필자에게 그들의 첫인상은, 그리고 그날의 그들을 곱씹어보며 떠올리게 되는 감각들은, 어쩐지 초겨울의 밤과 가깝다. 뭐랄까, 코끝이 조금 시리긴 하지만 바람은 없는 잔잔한 밤, 그래서 귀가 떨어질 정도는 아닌, 어쩌면 포근하기도 한 초겨울의 푸른 밤.

지키고 싶고 지켜야 하는 것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약 한 시간 정도 그들의 연습을 참관하였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제비마을의 럭키슈퍼, 그리고 이 슈퍼 앞에 놓인 한 평 남짓한 평상. 11월 말 공연을 앞두고 있는 소극적창작단의 마지막 “공간프로젝트” 연극 <럭키슈퍼>는 이 작은 평상을 중심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 또 머무르고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편의점 파라솔과 네 캔에 만원인 수입맥주 대신 낡은 평상 위엔 초록색 플라스틱 병의 ‘서울XX막걸리’가 여러 병 나뒹굴고, 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소위 현대적이라 여겨지는 형식 실험 대신 드라마와 연기에 대한 세심한 접근이 두드러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무례하였던 것 같아 마음에 걸리지만, 필자의 “늙수그레한 청년들”이란 농담조의 감상을 시작으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올 초 ‘서울시 청년예술단’ 사업을 계기로 모여 소극적창작단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된 하동기(연출/배우), 조원재(극작가), 최주희(기획), 김윤중(음악감독) 네 사람은, 종종 모여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해보자며 뜻을 모으게 되었다고 한다. 국가 원수의 국정농단과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참으로 비상식적이고 초현실적인 시간들을 현실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2016년이었다. 그렇게 2017년을 맞으며, 한 시민으로서 부패한 구조와 국가적인 거대 담론 앞에 맞서는 동시에, 혹은 그 이후에, 예술가로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고 한다. 단체의 정체성과 이름을 고민하던 자리에서 ‘구체적인 밴드’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윤중 씨의 아이디어로 소극적창작단이라는 단어들이 조합되었고, 사람들이 한 시공간에 모여 만난다는 연극의 장르적 특성을 살려 “소소한 이야기를 그 이야기가 생겨난 곳에서 직접 소통”하고자 하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출발점을 가지기로 하였다. 일상의 소외된 공간에서 촛불을 이어 밝히고, 그것이 꺼지지 않게끔 지키는 연극적 시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45년의 역사를 지닌 공간으로 ‘서울미래문화유산’에 지정된 헌책방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주의 불합리한 월세 인상 요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씨책방”이 그 첫 번째 “공간 프로젝트”였다. 분쟁 상황에 놓여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간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으면 공간도, 그 공간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으로 “공씨책방”에 대한 이야기와 음악을 만들었고 <그때, 거기엔 네가 있었다>란 제목으로 해당 공간에서의 낭독극 공연과 버스킹 공연을 진행하였다. 사라진 공간, 사라져가는 공간, 추억이 담긴 공간, 지키고 싶은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연극에 소담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은 곧 두 번째 공간인 오래된 술집 “서른즈음에”에서의 프로젝트 <그때, 거기엔 내가 있었다>로 이어졌고, 이제 그들은 ‘서울시 청년예술단’의 마지막 “공간 프로젝트” <럭키슈퍼>로, 이제는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사라져버린 공간을 연극이란 시공간으로써 기억하고자 한다.

쌓고 부수기와 머무르기

나는 아직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그날들 생각하다 남겨진 이야기들, 잊혀진 선언들을 떠올리며 잔을 비운다.
- 구체적인 밴드X소극적창작단 ‘남겨진 이야기’ 가사 中

공간이란 하나의 물리적 실체이기도 하지만, 사람 또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 공간엔 사람들의 기억들이, 흔적들이, 또 삶이 고이고 밴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 특히 서울에서는, 그것이 건설과 계획이라는 근대의 기획이든, 이윤 추구라는 자본의 기획이든, 하루가 멀다 하고 공간들이 부서졌다 새로 지어지고 또 부서지고를 반복한다고, 그 허물어지는 듯한 빠른 시간 앞에 자신들의 일부가 덩달아 사라지는 듯한 무력감을 느낀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필자 또한 그들의 노량진 연습실로 가는 길에 20년 된 레코드점이 폐업하여 휑한 콘크리트 벽을 노출하고 있는, 음악도 이야기도 남지 않은 광경을 목도한 참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 세계의 속도는 이제 극장이란 공간에 한 무대와 세계가 세워지고 다시금 철거되는 연극적인 시간성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연극은 어느 세계에 기대어 그 ‘가상성’이란 것을 구축하여야 할지 고민을 나누기도 하였다.
“모두가, 모두의 이야기를, 모든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이란 지향점을 가진 그들이기에 그 호흡과 걸음은 (어쩌면 이 세계의 속도와 맞지 않게)한 걸음 한 걸음,느릿하고 묵직한 듯 보였다. 소위 ‘청년예술가’들에게 으레 기대되곤 하는 형식 실험과 참신한 아이디어 등은 그들과 맞지도 않고 잘 하지도 못 한다고,이를 ‘늙수그레한 것’이라 표현한다면 아무래도 그들은 ‘올드한청년들’이라고 하동기 연출은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발화하는 방식에는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소외되어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한 자들이 잠정적으로 거(居)할 수 있는 새로운 연극적 언어와 시공간을 찾는 방식도 있을 것이고, 또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그 언어에 담긴 울림과 결을, 그 온도를 담아내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한 단체의 작업 방식을 쉽게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소극적창작단은 그 후자의 방식을 충실히 ‘실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청년靑年

인터뷰를 끝마칠 즈음, 하동기 연출은 “청년예술가가 적극적으로 실험도 하고 아이디어나 에너지 같은 것도 발산해야 되는데, 이 기획에 뭐 쓸 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식의 이야기를 하였다. 글쎄, 청년이, 또 청년예술가가 대관절 뭐길래. 푸를 청(靑)과 해 년(年), 포털 사이트의 국어사전에 “청년” 두 글자를 검색하니 두 한자와 더불어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그들을 표현하기에 뭔가 마땅치 않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에 다시금 푸를 청(靑)자를 검색해보았다. 1번 푸르다, 2번 젊다…. 동어반복적인 뜻풀이에 김이 새려다 3번“고요하다(조용하고 잠잠하다)”에서 속으로 짧게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가진 푸른빛은 무르익어 곧 터질 것 같다거나 사방으로 발산하는 한여름의 무성한 푸르름과는 달랐다. 따뜻한 무르익음, 포근한 푸름이랄까. 초겨울의 차가운 밤공기 아래에서 차분하게 그 추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추위 앞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려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방식으로 ‘소극적’이며 모든 방식으로 청년인 그들 덕에, 그 푸른 밤의 쌀쌀함이 어쩐지 포근하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글: 송이원,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지향하는 것과 지양하는 것들 사이에서, 큰새프로젝트 장한새 연출가

“예술을 통해 삶의 정도正道를 찾아가 본다”

권리장전 2017의 <#장례식>으로 네 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는 '큰새프로젝트'의 단체 소개 글에 늘 등장하는 말이다. 작년 7월 작가 모집 공고 글에서는 ‘예술의 계몽성에 초점을 두고 활동’한다는 말도 볼 수 있었다. 예술에 정도正道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계몽성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품은 채 '큰새프로젝트'의 대표, 장한새 연출을 만났다.

지향하는 것

장한새 연출은 ‘본질’, ‘가치’, ‘시대,’ ‘시스템’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천착하며, 그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 ‘인간의 본질’과 ‘현대사회의 시스템’을 탐구하는 듯 했다. 모든 예술은 계몽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계몽적’이라는 어휘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다. ‘무지한 사람들을 일깨운다’라는 뜻은 아니며, 자신들의 작업이 다른 이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의무감,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2016년 2월의 창단공연 <테레즈 라캥>부터 현재 준비 중인 <#장례식>까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자신들의 고민을 나누고자 공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답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정도正道’를 찾아가본다는 말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들을 추구하는지 계속 물어보게 되었다. 단지 ‘고민까지를 보여주고 관객들이 함께 체험하게 한다’는 것이 지향점이라 해도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작품에 따라 세세한 목표가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 <테레즈 라캥>에서는 인간의 어떤 본질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한국 고유의 들놀음 형태로 <노부인의 방문>을 재창작한 <노부인야류>에서는 어떤 가치들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는지 질문하자 각각의 작품 특성과 그 안에서 시도한 바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첫 작품 <테레즈 라캥>을 통해서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인간의 욕구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장한새 연출에게는 에밀 졸라의 “나는 이들이 하는 행동이 왜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이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원작의 선정성이 무대 위에 거칠게 표현되었기에 호불호가 갈리는 공연이었다고 한다. 무대 위 인물의 감정 표출만으로 관객의 몰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연극적 구조를 구축해야한다는 점을 간과해 아쉬운 공연이었으나, 이십 대 젊은 청년들이 모인 극단에서만 보일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장한새 연출은 소고했다.

두 번째 작품은 카렐 차펙의 희곡 [r.u.r]을 각색한 <호모 로보타쿠스>이다.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카렐 차펙의 원작에서는 감정없이 일만하는 노동자들을 로봇으로 상징화하고, 로봇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부유계급을 비난하고 노동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면, <호모 로보타쿠스>에서는 ‘호모 로보타쿠스’를 만들어낸 ‘인간들’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호모 로보타쿠스’를 피지배계급을 만들어낸 인간들이 각자 어떤 이상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는지, 그 이상 속에 존재한 모순은 무엇인지를 그려내면서 ‘자기 신념과 이기주의 사이의 애매한 경계, 나아가 이기심이 잘못된 신념으로 포장되어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이었다.

두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장한새 연출이 말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맥이 잡히는 듯 했다. 그는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인 ‘인간성’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인간성이 사회의 시스템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살펴보는 작업들을 해나가고 있다. 세 번째 작품인 <노부인 야류>는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을 들놀음 중 ‘수영 야류’의 형식으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물질만능주의 사회의 인간 군상을 풍자한다. 총 네 과장으로 구성된 공연에서 첫 세 과장에서는 각각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 ‘물질에 길들여져 있는 인간의 모습’ ‘물질에 취해 도덕성을 잃은 인간의 모습’을 풍자하고 마지막 4과장은 우리 전통대로 권선징악의 내용으로 마무리하였다. 11월 말 상연 예정인 “권리장전2017_국가본색” 참가작 <#장례식>에서 또한 ‘국가’라는 시스템과 개인들의 관계를 탐구한다. 큰새프로젝트의 첫 창작극인 이 작품에서 ‘국가’는 ‘사회적 분위기와 현상이 모여 만들어진 실재하지 않는 허상’으로 상정되며, 그 중 이들이 주목하는 현상은 ‘아노미 현상’이다. 한 사람의 자살생중계로 인해 일어나는 가치관의 혼란을 관객들이 함께 경험하게 하는 것이 이 작업의 목표라고 한다.

내용적으로는 ‘인간 본질의 탐구’를 추구하는 큰새프로젝트의 형식적 지향점은 공간 연출 혹은 공간 선정에서 나타난다. <호모 로보타쿠스>에서는 관객들이 가상의 극중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해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애고 4면에 영상을 사용했으며, 입장 티켓을 로봇을 생산하는 공장의 ‘Visitor’ 명찰로 만들었다. <노부인 야류>는 인사동 남인사마당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서울로 만리동광장에서 상연했으며, 신랄한 풍자와 활달한 유흥이 포함된 들놀음의 특성 상 관객이 실연자들과 호흡을 절로 주고받게 되었다.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 길을 가다가 멈추고 공연을 보는 순간 하나의 광장이 만들어지는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언제나 공연이 관객에게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장한새 연출이 의도하는 바이다.

지양하는 것

‘정도正道’와 ‘계몽성’을 논하는 연출이라면 자신의 작업에 확신이 큰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장한새 연출은 고민이 많고 신중한 신진 연극인이었다. 지향하는 바들에 대한 질문을 여럿 들고 갔다가, 지양하는 바는 무엇인지 물으니 바로 ‘확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작업을 할 때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들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깨닫는다고, 큰새프로젝트가 전달하고자하는 모든 메시지는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관객을 가르치거나 감정이입을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했던 사고의 흐름을 한 번 경험해보게끔 할 뿐이라는 것이다. 거의 지인관객만 있었던 첫 공연을 지나 점차 많은 관객들을 만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안 되겠다,’ ‘동시대 관객들과 무엇을 공유해야할지 끊임없이 생각해야겠구나’라는 고민 또한 쌓였다. 연출이자 극단의 대표로서 가장 신경 쓰는 것 또한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고 구성원들의 생각을 듣고 조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큰새프로젝트 밖에서 참여한 작업까지 모두 다섯 작품을 무대에 올린 올해는 매우 바쁘게 달려온 한 해로, 젊은 창작자로서 더 새로운 질문을 더 깊게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수박 겉햝기 식의 작업을 지양하고 여유 있게 한 작품 한 작품을 파고들겠다는 것이 2017년 마지막 작품을 앞둔 장한새 연출의 다짐이다.

신념을 갖되 확신에 사로잡히지 않고

공연 하나 하나가 창작진과 관객 서로에게 특별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질문을 하자 또다시 조심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하나의 주제의식을 강요하거나 사회를 고발하고 비판하기만 할 생각은 없다고. 그러나 인터뷰 중 그는 분명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음속에 그런 신념을 가지되, 확신에 사로잡혀 관객에게 한 가지 생각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자세일 것이다. 극장에서, 광장에서, 점점 더 다양한 관객을 만나가고 있는 큰새프로젝트는 내년에는 단편 영화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여러 공간 뿐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 큰새프로젝트가 탐구하는 ‘인간의 본질’이 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기를 기대해 본다.

[글: 김진아,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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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건너, 거리를 가로질러 만나는 시간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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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