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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극단 노마드 & 불의전차

청년예술가를 만나다

김진아, 송이원
128호 2017.11.23
퍼즐을 맞추는 유랑자, 극단 노마드

고정적인 장소 또는 삶의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방식을 찾아다니는 유랑자, 노마드. 극단 노마드의 김민경 연출을 만났다. 극단 노마드는 2008년 창단 이래 해마다 한 작품 혹은 두 작품씩, 꾸준히 고전작품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해온 ...

퍼즐을 맞추는 유랑자, 극단 노마드

고정적인 장소 또는 삶의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방식을 찾아다니는 유랑자, 노마드. 극단 노마드의 김민경 연출을 만났다. 극단 노마드는 2008년 창단 이래 해마다 한 작품 혹은 두 작품씩, 꾸준히 고전작품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해온 지 어느덧 10년차인 극단이다. 7명의 단원들이 20대 때부터 함께 하며 ‘젊게’ 시작하였으나 이제 모두들 30대 중후반의 나이인지라 딱히 젊지만은 않다는 그들, 10년이란 시간 동안 볼 꼴 안 볼 꼴을 모두 봐왔기에 서로가 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 같다고, 서로를 생각하면 애증이란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고 김민경 연출은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듣고 보니 그렇다. 가족이란 공동체가 어디 희희락락 화목하기만 한가. 미우나 고우나 시간과 정이 쌓여 함께 하는 공동체, 그래도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공동체, 이러한 애증이야 말로 가족이란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었다.

(김민경 연출의 말로는 30대 후반인 지금도 딱히 다르진 않다지만) 20대 후반의 시절엔 삶이 꼭 유랑 같다는 생각에, 또 연극이란 예술 역시 어딘가에 정착하기보다는 흘러가는 시간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연극이란 늘 극장이란 시공간에 한 세계를 쌓고 다시금 부수는, 흐름 속의 작업이니까. 그런데 이 멋진 이름 뒤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처음엔 관객들이 극장에 와서 근심과 걱정을 풀고 갔으면 좋겠단 생각에 팀 이름을 극단 해우소로 짓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원들이 팀의 운명은 이름을 따라가게 된다며, 극단 ‘똥통’이라는 별명이 붙을 거라며 극렬히 반대하는 바람에, 극단은 결국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극단의 운명은 그 이름을 따르게 된다는 미신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애초에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극단은 프로젝트 형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극단 작업이 없을 땐 다들 흩어져 각자의 작업을 하다가 극단 공연 일정이 잡히면 1년에 한두 번 정도 모여 함께 작업을 하는 식이다. 또 넉넉지 못한 제작비 사정으로 인해 대관료가 저렴한 연습실을 찾아 보따리 장사처럼 ‘유랑’을 하고 있다며, 김민경 연출은 그 미신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인터뷰 초반에 김민경 연출은 극단원들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애증의 감정이 떠오른다며 우스갯소리를 하였지만, 극단의 작업을 늘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그들이 고맙고, 10년간 함께 작업하며 한 번도 넉넉히 페이를 책정해주지 못 했기에 애틋하고 미안한 감정이 가장 크게 든다고 하였다.

험난했던 제작환경

공연 한 편을 올릴 때 마다 제작비가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니다 보니 아마 적지 않은 극단들이 재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극단 노마드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더 좋지 않은 것 같아 인터뷰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꾸준히 작업을 이어온 극단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재단의 공공지원금을 받아 공연을 올린 적이 없다고 한다. 10년 정도의 경력이라면 어느 정도 성과가 드러나야 할 텐데 아직은 극단이 활동한 만큼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며 김민경 연출은 아쉬운 마음을 내비췄다. 주변에 비슷한 시기에 작업을 시작하거나 보다 늦게 시작한 동료와 후배들이 모두 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정작 자신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속상하기도 하고 가끔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김민경 연출은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속얘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한정적인 자원과 예산으로 인해 지원금이 선별적으로 배분되고 있기에 지원 선정 여부에 따라 작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극단들이 수두룩한 것도 사실이다. 10년 동안 작업을 지속하며 한 번도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놀라웠던 점은, 극단 노마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꾸준히 공연을 올려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면엔 적은 예산으로 인해 겪어내야 했던 수많은 타협들과, 참여인원들의 배고픈 희생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단의 대표이자 연출로서 모든 제작비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김민경 연출의 외로운 시간들 역시 무시 못할 것이다.

공연을 제작하기 위해 진 빚을 그 다음 공연 프로덕션이 시작되기 전까지 벌어서 갚고, 또 빚을 져 새로운 공연을 제작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버는 돈에 비해 제작비로 지출하였던 빚들이 더 늘기 시작하며 이 순환이 깨지기 시작했다. 대학과 고등학교를 가리지 않고 강의를 나가며 돈을 버는데, 이 돈들이 모두 공연 제작에 사용되다 보니 빚은 쌓이고 손에 쥔 돈은 없는 실정이 되었다. 김민경 연출은 자신의 일상에 대해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듯 자신을 쥐어짜서 사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해주었다. 연극으로 인해 생긴 빚을 청산하기 위해 연극의 현장과 멀어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김민경 연출은 문득, 연극을 왜 ‘이렇게’ 해왔을까, 왜 빚을 지면서 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유명세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공연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저 생각하는 바를 무대에 구현해내고 싶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도 큰 욕심일까, 하루에 몇 번씩이나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다 안정적으로 연극을 지속하기 위해 연극제에서 상을 타면 지원사업에 긍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어 경연 위주로 작품을 올리기도 하였다. 작년에는 부산국제연극제와 신진연출가전에서 상을 두 차례 수상하였기에 올해의 지원사업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열 부가 넘는 기획서로 열 몇 종류의 사업에 공모 신청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모두 선정되지 않아 한 해 동안 열 몇 번씩이나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자괴감과 싸워야 했다고 한다. 10년 이내의 경력을 지닌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최초예술지원 사업에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한 해였지만 결국 탈락해버렸기에 이제는 어떤 지원사업으로 그 기초를 닦아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에, 탈락한 그 날엔 단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설상가상, 연극제 수상작을 기획공연으로 올리기로 한 모 아트홀 역시 그 계약을 유야무야 없던 것으로 하여 공연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아홉수

탈락한 서류에 대해서는 탈락 사유나 피드백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획서 글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쌓아온 경력에 무언가 하자라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탈락의 이유를 생각하다 김민경 연출은 결국, 아홉수의 탓으로 돌리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 결과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해버리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마음이라도 편하고자 자신의 서른아홉 나이를 이유로 내세워 본 것이다.

스물아홉과 서른아홉, 김민경 연출은 극단을 시작하고 두 번째 아홉수를 맞는 중이라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매 아홉수가 닥칠 때 마다 김민경 연출은 자신의 삶과 연극의 관계를 깊이 성찰해보게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의 쌓임이 있었기에 29살 시절 연극에 대한 고민과 39살 현재의 고민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인다. 29살의 김민경 연출은 자신이 과연 연극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연극을 하면서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등, 주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였다면, 현재 39살의 김민경 연출은 지난 10년을 계속 돌아보며 자신이 잘 살아왔는지, 연극 작업을 잘 해왔는지, 지금껏 걸어온 길을 많이 되돌아보게 된다고 이야기 하였다. 작년 연극제에서의 수상을 계기로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17년엔 보다 공연을 많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이제 깨어져버렸지만, 이제 올해도 4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며 묵묵히 웃어보이던 김민경 연출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29살의 김민경 연출처럼 39살의 김민경 연출도, 극장에서 무대 철수를 하며 새해를 맞게 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던 29살의 김민경 연출은 분장실에서 소품을 정리하다 1월 1일을 맞았는데,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제 이거 계속 해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3-4년은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작업을 하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올해 연말 김민경 연출은 1년 내내 지원사업에 수차례 떨어지며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였던 <보이체크 신드롬>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부디 스물아홉 시절의 고민이 새해를 맞으며 눈녹듯 사라졌듯이, 멋지고도 멋지게 공연을 올려낸 뒤 2018년을 맞을 수 있기를, 그리 수월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껏 잘 버텨왔으니 이제는 훨씬 수월한 중년기를 맞을 수 있기를 바란다.

퍼즐 맞추기

현생에선 연극을 정말 좋아하지만 다음 생에 태어나면 다시는 연극을 하고 싶지 않다는 김민경 연출에게 연극의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이 애증의 연극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인 시절에도 ‘연극은 배고프다’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인문대 대학에 가서 극회 활동을 하고, 다른 직업을 가지며 취미 활동으로만 연극을 할 거란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입시요강 책자를 보며 연극영화과가 있는 학교만 찾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19세의 김민경 연출은, 이렇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건 연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연극학과에 지원해 입학을 하고 그렇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객을 만나는 것, 작업을 하는 것, 고전작품을 현대화시키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가장 가슴 뛰는 일이고 가장 즐거운 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였다.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이 시대에 들어맞도록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라고, 극단 노마드의 작업을 표현하였다. 처음엔 머릿속의 생각들이 흩어져있고, 손에 잡히지 않는 뿌연 느낌이지만, 배우들과 함께 연습을 하다 보면 차츰차츰 그림이 들어맞아 가며 형상을 만들어가는 퍼즐 맞추기 같다고. 연출, 배우, 스태프들 모두가 손에 퍼즐을 한 조각씩 들고 그걸로 코끼리가 될 지, 악어가 될지 모르는 작업을 한다는 게 정말 큰 희열로 다가온다고 하였다. 지원사업의 행운이 따라준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김민경 연출과 극단 노마드는 10년이란 세월에 걸쳐 한 조각씩 한 조각씩 퍼즐을 맞춰오지 않았는가. 곧 그 그림이 아주 멋진 모습으로 드러나리라 믿는다. 인터뷰를 하러 와서 징징거리고만 가는 게 아닐까 걱정하였던 김민경 연출이었지만, 오히려 그 강인함을 더욱 느끼게 된 인터뷰였으니, 그 유랑의 흔적을 조각조각 맞춰온 극단 노마드와 김민경 연출의 퍼즐그림은 어쩌면 세계지도 퍼즐과 같이 큼직하고 다채로운 색을 가진 그림이 아닐까.

[글: 송이원, 사진: 극단 노마드 제공]



거침없이 달린다, 극단 불의전차

“꺼지지 않는 불. 지치지 않는 전차. 우리는 극단 불의전차입니다.”

이름에서부터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느껴지는 극단 불의전차의 변영진 연출을 만났다. 창단 3년 차, 불의전차는 쉼 없이 달려왔다. 올해엔 1월 혜화동1번지에서의 <액땜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5월 “화학작용” <아무도 없는 이 밤>, 7월 <창조경제-공공극장편>, 9월 <낙화>, 10월 <꽃불>까지 총 다섯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 중 관객투표 경연의 형식으로 화제가 된 <창조경제-공공극장편>(이하 ‘창조경제’)에서는 1위를 해 이름을 조금 더 알릴 수 있었다. 상금 1800만원은 다음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었다. 그러나 ‘예술을 경쟁의 도구로 삼아버렸다’, ‘인해전술로 1위를 차지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들은 큰 부담으로 남았다. 만나자마자 <창조경제> 얘기부터 꺼내니 변영진 연출이 껄껄껄 웃어버린 이유이다. <창조경제> 작업 과정에서 일부 참가팀은 경쟁이 아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의견을 내었으나, 변영진 연출은 상금을 몰아주는 경쟁 구도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포함, 불의전차가 연극판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창조경제-공공극장편> 연습사진

’판’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연극계’, ‘연극동네’, ‘연극판’. 연극하는 사람들의 영역을 부르는 말들이다. 한 전문분야를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어휘는 ‘-계’이지만, 그렇게 부르기에는 좁은 바닥이라는 생각으로 ‘동네’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판’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 불의전차 변영진 연출이 보아 온 연극인 사회의 모습은 연극‘판’에 가까운 듯하다. 여기에는 ‘놀이판, 마당’이라는 긍정적 뉘앙스도 있지만, 한정적인 지원을 놓고 대결해야 하는 ‘승부의 장’으로서의 의미도 담겨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곳.

불의전차는 “우리가 가장 뜨거울 수 있는 순간에 집중하며 좋아하는 걸 하자!”라는 마음으로 한 작품 한 작품에 몰두해왔다. 하지만 공모사업에 수차례 떨어지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작업 여건을 견디다보면 때로는 공연 외적 요소들에 대한 고민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심사위원의 맘에 드는 기획서를 쓸 수 있는지, 어떻게 홍보를 해야 관객을 최대한 끌어올 수 있는지, 어떻게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는지, 이런 것들에 신경을 씀으로써 ‘잘될’ 수 있는 건지, 계속 하기만 하면 되는 건지…. 이는 아직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모든 신진 단체들의 고민일 것이다. 활동할수록 조금씩 내적인 성장이 일어난대도 돈 문제는 도무지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재단 지원금에 모두가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 판 안에서 기준을 알 수 없는 심사와 잦은 제도 변동에도 대처해야 한다. 판의 논리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인정받을 궁리에 빠져들지만, 답은 없다.

<창조경제>는 이런 ‘판’의 현실을 그대로 무대 위에 재현하는 공연이었다. “나의 창조활동이 나의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진솔한 선언에서 출발해 네 개의 공연팀이 각 10여 분의 공연을 선보이고 관객의 투표를 받았다. 누구도 예술을 경쟁의 도구로 삼을 의도는 없었다. 당시 변영진 연출의 1위 소감에 따르면 어느 팀도 서로와 경쟁하는 마음으로 작업하지 않았으며, 연대와 협업 응원을 하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공동으로 싸웠다. 하지만 경쟁의 프레임 안에서 결국 모두가 상처를 받았다고 변영진 연출은 소회했다. 앞서 말했듯이 참가자들 간 대화를 통해 프레임 자체를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애초의 목표였던 상금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로 모두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자 자괴감을 느꼈다. 항변할 지점은, 참가 섭외 당시 다른 팀들은 총연출에게 ‘연극의 공공성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를 안내받았으나, 불의 전차는 ‘이것은 연극 <쇼미 더 머니>이며 상금이 2,000만 원이다’라는 골자의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상금이 아니라면 반드시 참여할 이유는 없었고, 다음 공연 제작비를 생각하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자괴감이 드는 부분은, 공연을 만드는 데 노력을 들인 것이 많은 이들에게 ‘경쟁적 태도’로만 비춰졌다는 점과, 그렇게 스스로와 다른 참가자들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선택을 밀어붙이고서 얻은 돈으로 공연 하나의 제작비를 충당하기가 빠듯했다는 점이다. 모두가 궁핍해지는 판 안에서 계속 싸우며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불편한 고민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낙화>

지치지 않는 ‘바보 극단’

변영진 연출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희는 되게 긍정적인 극단이어서요! 바보극단이에요, 바보.”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가끔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고, 생존에 위기감을 살짝 느끼기도 하지만, 크게 불만을 갖지 않고 서로 다독이며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한다. 욕심과 인정욕구가 앞서면 작업에도 불필요한 긴장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들이 즐겁게 연극하면 찾아주는 관객들도 즐거워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연극을 만든다. 어느 선생님의 조언대로 ‘동대문에서 밤새 옷 장사를 하다가 쉬는 날에 온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연극’을 한다. 주로 즐겁고 힘이 넘치는 연극으로, 변영진 연출이 직접 대본을 쓸 때가 많다. 극단 신주쿠양산박, 목화, 골목길의 작업에서 본 날것의 에너지를 불의전차 무대에서도 보여주고자 한다. 그들처럼 숙련된 방법론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전심전력을 다해 배우의 발바닥으로부터 동력을 끌어올려 객석에 눈빛으로 쏘아지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 뜨거움이 연극의 색깔이 되고 극단의 색깔이 되기를 바라며 작업해온 결과, 2년 차부터는 배우들의 몸이 쭉쭉 거침없이 뻗는 것을 느끼며 뿌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 내년 일정이 안정적이지 않아도,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돌이키며, 앞으로도 성장의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변영진 연출과 극단원들의 성향처럼 작품 안의 인물들도 어딘가로 치열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아무도 없는 이 밤에>의 주인공 유기차는 남루한 삶의 골목을 죽도록 달린다. <꽃불>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일찍 지나버린 가수 마츠다 세이코는 과거를 회상하며 기억 속을 달려간다. <바람이 멈추는 곳>에서는 신탁을 받은 소녀가 전쟁을 멈추기 위해 바람이 멈추는 곳을 찾아간다. 지칠만한 삶이지만 쓰러지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삶을 무대 위에 스펙터클하게 그려냄으로써 불의전차는 관객의 삶에 힘을 더하는 연극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꽃불>

공존의 길을 찾아

아직까지는 지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달려왔다. 그러나 앞으로 몇 십 년을 더 달려도 열정이 소진되어버리지 않을 체제가 필요할 것이다. 다른 대안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변영진 연출은 공모사업 심사의 다변화를 이야기했다. 1차 기획서 심사, 2차 면접이라는 일반적인 절차가 효율 면에서 가장 합리적일 수 있지만, 작업의 성격에 따라 일부 장면 발표 등의 방식을 도입해 기획서에 적힌 ‘개념’이 아닌 실제 무대에서 발생할 ‘감각’들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케팅, 관객 유치 계획’ 등 기획서의 항목들에서 보이는 성과주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가능한 창작자들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한 최종심사에서 탈락한 팀들에게는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이 주어져야 심사 기준에 대한 논의가 생길 수 있고, 논의된 내용이 그 다음 해에라도 적용되어 조금 더 다양한 기준의 심사와 공평한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나누었다. 불의전차는 앞으로도 거침없이 즐거운 연극을 할 계획이다. 그들의 선로가 이상향으로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김진아, 사진: 극단 불의전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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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건너, 거리를 가로질러 만나는 시간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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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