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저작권, 어떻게 논의되어야 하는가】 첫 번째 이야기
이마의 땀을 흘려 창작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권리를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지난해 10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공연 저작권 분쟁과 관련하여 눈이 가는 판결을 하나 내놓았다. 원고는 모 대학 연극영화학부를 졸업한 후 극작 및 연출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고, 피고는 원고의 대학 동기로서 모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희곡 등 수업을 담당하면서 학생들의 연극동아리 지도교사로도 근무하였다. 원고는 대학 시절 대본을 하나 써서 실험 목적으로 공연한 후 공연실황을 영상DVD로도 제작하여 가지고 있었다. 피고가 원고에게 대본을 읽어본 후 희곡 수업에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공연DVD를 달라고 하기에 피고는 원고에게 공연DVD를 넘겨주었다. 피고는 학생들과 도내 청소년연극제에 참가하면서 원고의 연극 대본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공연실황이 담긴 DVD도 참고자료로 제공하였다. 그 결과 무대에 올라간 공연은 원고의 공연 대본은 물론 공연 대본에는 특정되지 않았던 주요 소품의 종류와 배치 등을 포함한 연극 내용이 DVD 내용과 거의 동일하게 되었다. 심지어 공연 당시 배포된 프로그램북에는 참가신청서에 기재된 원작자 원고가 아니라 출연진과 스태프진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인 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피고는 원고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한편 피고는 대학 시절 합평을 목적으로 전달받았던 원고의 다른 대본을 원고의 동의 없이 이용하여 연극 대본을 만들고 역시 마찬가지로 교내 연극 동아리에서 공연하기로 하고, 등장인물은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단지 주인공의 이름을 바꾸거나 영화 대본인 원작의 장면수를 줄이고 서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연극 대본으로 만들어 사본을 출연 예정인 학생들에게 배부하였다. 공연 포스터도 배포 부착되었지만 포스터에는 원작자의 표시도 없었다. 원고는 공연 직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저작권 침해 주장을 하게 되었고, ‘대화’를 통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원고는 학교 앞 시위를 거쳐 검찰 및 법원에 사건에 대한 해결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법원은 먼저 첫 번째 저작물 침해와 관련해서, 피고가 원고에게 허락받은 것은 희곡 수업에서 리딩일 뿐이므로 희곡 수업에서 리딩과 무관하게 대중을 상대로 한 청소년 연극제에서 공연 목적으로 대본을 복제하고 배부하고 학생들이 공연하게 지도한 것은 원고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공연DVD를 참고하여 주요 소품의 종류와 배치를 그대로 반영한 것도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올라가 있는데, 만약 공연DVD를 참고하여 (대본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은) 주요 소품의 종류와 배치 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것으로 최종 인정된다면 이는 일종의 연출가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여서 주목하게 되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공연 포스터 및 실제 공연에서도 원고가 원작자라는 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도 하였지만, 이 판결에서 가장 눈이 간 것은 ‘재산상 손해의 범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었다. 일반적으로 저작권법을 침해하였을 때 인정되는 손해배상의 범위는 저작권자가 그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통상 받을 수 있었던 금액에 상당하는 금액을 의미하고, 여기서 ‘그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이란 침해자가 저작물의 이용허락을 받았더라면 그 대가로서 지급하였을 객관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말한다(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0637). 그런데 이 사건 저작물의 경우 교육 과정에서 창작한 저작물이어서 손해 배상액 산정을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법원은 학생들의 창작활동의 결과물을 도용할 경우 성장 과정에 있는 창작자의 정체성을 초기에 훼손하고 그 성장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서 그 특성에 맞는 적정한 보호를 제공해야 하고, 이 점을 손해 배상 산정에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한 때 대학 동기였던 친구 사이에 대법원까지 가게 된 이 사건에 대하여 생각하면, 저작권이란 것이 결국 무엇이고 저작권법이 보호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1) 신동룡(2004), 「저작권법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연세대 박사논문.
죽은 척하는 프리텐더(pretender)와 살아있는 입회(living entering),
책임의 건축학
문제는 어떤 작가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우란 없다는 데 있다. 모든 작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나서 살아가기 때문에 공동체의 문화예술적 유산 속에서 성장하고 그러한 유산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활용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게 된다. 완전히 독창적인 창작물이란 있을 수 없다면, 저작권자의 ‘이마의 땀’은 어떻게 배타적 권리를 정당화 할 수 있을 것인가. 법학자 신동룡은 바흐친의 대화주의적 관점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풀어간다. 바흐친은 작품도 일종의 넓은 의미에서 ‘대화’로 바라보는데,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대화 참여자들의 이해 지평을 반영하는 것은 ‘주어진 계기(The given)’이고 그것을 토대로 작가의 독창적인 맥락적 의미와 가치 평가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적 계기(The created)’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주의적 입장에서 저작권은 작가가 표현한 모든 것에 대하여 인정되지 않고, ‘창조적 계기’에 의거한 ‘독창적 표현’에 대하여만 인정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문제가 된 두 작품 사이에 주제, 플롯 및 전개과정, 분위기, 배경, 캐릭터 등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는 점만으로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지는 않는다.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는 것은 ‘특정한 아이디어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구체적인 독창적 표현’에 국한되게 된다. 단순히 표현하였다는 것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것’을 표현하였을 때만 ‘살아 있는 입회자’로서 윤리적 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아서 해당 부분만 저작권법상 보호의 대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2) Bakhtin, “The Problem of the Text”, 119-120쪽. 위 논문에서 재인용.
저작권법 제4조는 저작물의 예시로 ‘각본’, ‘연극 및 무용•무언극 그 밖의 연극저작물’도 들고 있다. 공동창작의 작업방식이 확대되고 있는 공연 제작 현실에서 심도 있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저작권법 제2조 제21호가 규정하고 있는 공동저작물이 아닌가 싶다. 공동저작물은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한 저작물로서 각자가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하여 이용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공동의 창작물이 되려면 2인 이상의 주체가 각각 ‘창작적 표현’에 관여하고, 개별적 이용 가능성이 없으면서 공동창작자 사이에 주관적 공동창작 의사가 있어야 한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공동저작물의 경우 저작인격권자 전원의 합의에 따라서만 행사할 수 있고, 각 저작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합의가 성립되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제15조 제1항) 배우, 연출가, 작가, 디자이너, 기획자, 제작자 등 공연 창작 과정에 참여한 각 행위자들의 ‘창작적 표현’에 대한 기여는 어떻게 평가되어 왔으며, 향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뮤지컬 ‘제작자’에 대하여 ‘표현의 공동창작’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하여 공동저작자의 지위를 부정한 고등법원 판례가 우선 보인다.5) 공연 창작 과정에 참여하여 ‘이마의 땀’을 흘려 ‘창작적 표현’에 기여한 제작진에 대하여 공동저작권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인정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3) 1997. 11. 25. 선고 97도2227 판결 등. 조영선(2017), 『지적재산권법』, 박영사, 265쪽에서 재인용.
4) 조영선(2017), 『지적재산권법』, 270쪽. 박영사.
5) 서울고등법원 2004. 7. 5. 자 2004라246 결정(확정). 같은 책, 292쪽에서 재인용.
신동룡(2004), 「저작권법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연세대 박사논문.
조영선(2017), 『지적재산권법』, 박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