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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저작권, 어떻게 논의되어야 하는가】 마지막 이야기

공연계 저작권을 둘러싼 현장에서의 다양한 논의

유혜영_본지 편집위원
152호 2018.11.22
이번 기획의 오프닝은 이양구 연출님과 이성곤 선생님이 먼저 법리적인 용어와 사례를 들어서 열어주셨어요. 하지만 법은 현장의 다양한 맥락에 따라서, 장르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죠. 특히나 공연이라는 것은 어떤 매체로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일시 : 2018년 11월 9일 오후 6시

장소 : 좋은공연안내센터 세미나실

사회 박해성(연출가)

참석 : 이성곤(연극평론가), 박병성(<더 뮤지컬> 편집국장) 김일송(이안재 대표, 공연칼럼니스트)

국내 공연예술에서 저작권에 대한 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습니다. 뮤지컬이 산업화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장르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저작물에 대한 보호가 이뤄져 왔던 것과 반해 연극은 저작물의 법적 개념과 예술 현장에서의 적용과 실행이 여전히 다양한 층위에서 명확한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산권’으로서의 저작권 뿐 아니라 ‘인격권’으로서 창작자를 보호한다는 것과 창작의 범위와 확장의 경계에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느냐에 문제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연극계에서는 연출의 창작성과 저작권 차원에서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획득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몇 가지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고, 또한 2차 저작물, 공동저작물에 대한 개념과 범위에 대한 논의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논의되어 왔으나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안에 대한 법적 제도를 정비하는 것 외에 도덕적 가치와 시장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지적재산권으로서의 연극 저작물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좌담에서는 앞서 게재된 저작권의 법적, 제도적 사례 외에 실제 예술현장에서 함께 고려하고 논의해야 할 부분에 무엇인가에 대해 지속성을 갖고 고민하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박해성:
이번 기획에서 이양구 연출님과 이성곤 선생님이 법리적인 용어와 사례를 들어 공연예술계 저작권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하지만 법은 현장의 다양한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공연 저작권에 대해서는 이제 막 생겨난 법리적 용어들이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좌담은 법리에서 적용되지 않는 그 사이의 것들, 현장의 사례들을 통해서 오히려 법제화의 기준이 될 만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병성:
연출의 저작권 같은 경우 뮤지컬 쪽에서는 영상 기록과 공연을 개발해 간 기록이 있어서 그대로 따라 하게 되면 저작권 침해가 인정됩니다. 특히, 브로드웨이 작품들이 그렇고요.
박해성:
증명의 기준으로 영상을 말씀하셨는데, 보통은 ‘바이블’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조명이든 무대든 모든 세부 사항들을 기록해 놓은 바이블이 있어서 거기 기록된 것들은 배타적 저작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영상으로 증명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박병성:
핵심은 독창성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예요.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나도 똑같이 생각했다’라면서 따라 하면 그것은 사실 증명하기 쉽지 않을 수 있죠. 그런데 만약 희곡에도 없는 부분을 연출이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독창적인 거죠.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한 거잖아요. 연출가가 한 작업이 굉장히 독창적인 어떤 것이고 그걸 영상으로 기록해 뒀다고 했을 때, 누군가 그것을 봤고, 그대로 모방했다는 것을 증명해낼 수 있다면 법적 다툼에서 이길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게 문제예요.
박해성: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준이 정확하지가 않다는 것이고,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성곤
이성곤:
연극에서도 무대디자인, 음악, 대본 같은 것들은 독립저작물로 인정을 받고 있고, 어느 정도는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문제는 연출과 연기의 부분인 것이죠. 그런데 최근에는 법조계 전문가들도 연출저작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표절이다, 아니다를 창작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도 상당히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어요. 법리적으로 정확히 정리는 할 수 없겠지만 각 공연이 지니고 있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감각이나 생각들, 기준은 사실 각자가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어느 선에서 패러디나 모방이 되고, 어느 선에서 저작권을 위협할 정도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연극계에도 자리 잡게 된다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출과 연기 저작권에 대한 부분들도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엄격한 저작권 적용의 부작용은 없을까?
박해성:
연기나 연출에 있어서는 영상과 같은 매체를 통한 복제가 이제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각각의 독창성을 배타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 그리고 혹시 엄격한 저작권 적용이 산업적으로나 창작자의 지속성에 있어서나 부작용을 가져오는 사례는 없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병성:
특정 장면의 표현방식 하나만으로는 단순한 아이디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거기까지 제한한다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될 수 있겠죠. 전체적인 맥락에서 안에서 비롯된 독특한 해석과 연기일 때는 표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요. 하지만 정말 완전히 똑같이 하지 않는 한, 그 수준을 엄밀한 잣대로 여기까지는 표절, 여기까지는 허용이라는 선을 나누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한편으로 누군가 먼저 했다는 이유로 이용 가능성을 닫아버린다면, 그 산업은 폐쇄적이 되어서 발전에는 좋지 않을 수 있죠.
박해성:
브로드웨이 뮤지컬 같은 경우는 그런 부분까지도 아주 엄격히 보호하고 있지 않나요?
박병성:
라이센스 공연의 경우에 한국 배우들이 하기 때문에 이슈가 있어요. 라이센스 공연에도 레플리카가 있고 논-레플리카가 있는데 레플리카 같은 경우는 해외 프로덕션이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거예요. 연출이나 안무가가 직접 오고, 무대 세트나 의상조차도 해외에서 공수해오죠. 안 가져오더라도 해외 프로바이더가 국내에서 제작해요. 레플리카의 경우는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죠. 하지만 논-레플리카는 북(book)하고 음악만 가지고 오는 경우니까 국내 창작진들이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가 있죠. 디즈니 같은 경우는 정말 엄격하게 관리를 하거든요. 국내에서 논-레플리카로 공연되었던 작품이 있었어요. 당시에 디즈니 관계자들이 남몰래 그 공연을 봤어요. 혹시 안무나 연출 부분을 그대로 할까 봐,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청구를 하려는 것이었죠. 사 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별도로 노력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면 제재를 걸려고 했던 거예요. 계약서 자체가 산업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런 적용이 가능한 것이죠.
박해성:
듣고 보니, 레플리카는 품질관리를 강화하는 측면인 것 같고, 논-레플리카는 오히려 그 작품의 영향력을 더 확산시키게 되는 것 같거든요, 다시 말해서 더 퍼져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엄격하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요.
박병성:
사실 작품이 더 확산되는 것은 저작권 적용이 덜 엄격할수록 그런 가능성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논-레플리카의 경우는 작품의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아요. 심지어는 북하고 음악을 사 와서 창작자들이 멋대로 뜯어고쳐요. 사 온 게 너무 허술하니까 우리가 더 잘 만들어서 하겠다, 한국화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면서 고치는데, 어떤 것들은 원작자의 동의를 받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전혀 동의 없이 하는 거죠. 동의가 없었던 경우에는 제가 원작자라면 고쳐서 잘 돼도 기분 나쁠 것 같아요. 저작권에는 금전적인 부분도 있지만, 인격권도 있잖아요. 창작자로서 불쾌할 것 같아요.
박해성:
그 인격이라는 것이 증명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도 뮤지컬 같은 경우는 여러 목적에 따라 선례가 있어서 어느 정도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나 싶네요.
박병성:
무엇보다 계약을 하니까요. 법으로 갔을 때 그게 증거자료가 될 수 있죠. 이대로 해라, 하지 마라, 고칠 수 있다, 없다가 세세하게 계약서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걸 근거로 논의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 논의하는 일들은 계약관계 없이 무단으로 하는 경우라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박해성:
연극에서도 그럼 계약만 한다면, 기록만 세세하게 남겼다면, 최근과 같은 저작권 문제들이 안 생겼을까요?
김일송
김일송:
저는 사실 저작권이라는 것에 조금 회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어요. 연출가가 연출을 할 때 본인의 저작권에 대해 보호를 받으려면, 일단 작품을 받았을 때 작가를 존중해서 철저하게 작품을 보호해줬어야 하고, 각색과 윤색의 과정에 있어서도 사전 동의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본인의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보호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좀 더 느슨하게 풀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오히려 창작을 위축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한편으로 연출저작권이라고 했을 때, 어떻게 보면 공연은 단독의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스태프가 모여서 만든 공동의 저작물인데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극단에서 공연을 만들고 이후에 재공연을 하는데, 원래 했던 배우 한두 명이 일정이 안 돼서 다른 배우들이 공연을 하게 됐어요. 이때, 지난번 공연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처음 공연했던 배우가 ‘그건 내가 한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박병성:
뮤지컬은 완전히 시스템화되었고, 몇 백 또는 몇십 억이 드는 상품이니까 이것을 모방하는 것이 보호되어야 하지만 연극은 사실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셰익스피어 작품 가지고 연출을 너무나 다양하게 할 수 있잖아요.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게 오히려 부끄러운 것이죠. 그리고 연기도, 그대로 한다는 게 가능할까요? 완전히 똑같이 해낼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죠. 배우가 바뀌면 당연히 느낌이 달라지잖아요. 단지 작가의 부분은 작가가 작품을 썼는데, 무단으로 사용된다거나 자기도 모르게 각색되어서 공연이 올라가면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죠. 그런 사례가 여전히 비일비재하잖아요. 그런 경우는 보호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성곤:
일본의 신주쿠양산박과 정의신의 분쟁사례를 제가 글에서도 언급했었는데, 당시에 나왔던 논리 중의 하나가 저작권이 창작 의욕을 위축시킨다, 결과적으로 문화예술계에 역기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었어요. 또 하나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나라는 현재 저작권이 사후 70년까지 보장되는데, 일본은 아직도 50년이거든요. 이 문제로 일본은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요. 중요한 모티브가 될 수도 있는 것을 50년 동안 묶어놓으면 어떤 새로운 예술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입장과 재산이니까 보호해 줘야 한다는 입장의 대립인 것이죠. 창작을 위축시키느냐, 아니냐 부분의 충돌도 있고, 이권의 문제도 개입이 되는 것 같아요.
공동저작물의 경우 저작권은 어떻게 적용하나?
박해성:
연출도 세분화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형 연출과 오거나이저(organizer)로서 연출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할 텐데요. 연출이 작가 역할까지 한다면, 즉 공동창작이라든지 개념연출이라든지 희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형식 자체가 작품인 경우도 많잖아요. 그때는 작가로서의 권한을 인정받아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김일송:
작가도 그렇고, 연출가도 그렇고, 전작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지금 작품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자기 복제를 어느 정도 하고 있다는 거죠. 만약 한 연출가가 A컴퍼니에서 전작을 만들었으면 B컴퍼니와 작업할 때는 전작에서 썼던 아이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야 하지만, 사실상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연출가의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속적인 작품을 통해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일 텐데 그걸 어떻게 봐야 하는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요.
박병성:
공동저작물의 경우에는 너무 케이스가 많아서 작가의 저작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고, 참여한 사람들의 저작권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하는 문제가 늘 생기거든요. 그래서 계약서로 하는 수밖에 없어요. 연출이 아이디어는 내지만 드라마터그라든지 배우들의 역할이 크고 대본도 같이 만들어가는 공동창작 팀의 경우에는, 이 작품의 저작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 했을 때, 누구도 내 것이라고 말하기 힘든 것 같거든요. 결국 ‘엔 분의 일(1/n)로 하자’, 혹은 ‘메인 발상에게 몇 퍼센트 더 주자’ 이런 식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나중에 공연이 잘 돼서 수익이 나거나, 다른 2차 저작물이 생겼을 때 분명히 문제가 생기죠. 케이스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획일화시킬 수는 없고, 과정 속에서 공동저작권이 있는 사람들끼리 합의 하에 정리해놔야 하는 것 같아요.
박해성
박해성:
미세하게 다른 두 가지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한쪽은 표절과 창조를 경계 지을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한쪽은 재산권이 침해되고 보호받는 문제에 관한 것 같아요. 김일송 대표님은 참조와 표절의 경계를 되도록 유연하게 확장함으로써 상호 참조하도록 하고, 표현의 양상이 더 확장되도록 하는 쪽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관점이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로서 저작인격권과 재산권이 침해당하는 문제는 계속 발생하게 되는 것인데, 이 두 가지는 사실 평행선인 것 같아요. 과연 산업적으로 지속가능한, 확장가능한 관점은 어느 쪽일까요?
이성곤:
아까 작가적 연출과 오거나이저로서 연출을 말씀하셨는데, 이 두 가지도 경계가 흐릿한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한 연출가가 아이디어를 제시해서 배우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배우들이 가져온 다양한 장면들을 가지고 작품을 연출한다고 해볼게요. 배우들은 며칠을 고민해서 장면을 만들고 대사를 써오고, 연출이 그것을 조합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자신의 작가로서의 창작적 능력을 더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요. 이때 연출가는 이것은 내가 조합하고, 쓴 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배우들도 내가 만들어낸 장면과 대사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경우마다 너무 달라서 일관된 기준을 만들기도 힘들고, 결국은 가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창작에 가치를 둘 것이냐, 창작자의 재산에 가치를 둘 것이냐.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들을 예술가로서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이냐를 주로 판단해야 할 것이고. 나머지는 법률가들에게 맡겨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의 창작과 향유를 더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접근은 없는가?
박해성:
관객의 관점도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인 추정인데요, 예전에는 우리가 독점된 몇 가지 채널에서 소개하는 음악이나 영화만 접하다가 90년대 중후반 불법 다운로드가 횡행하게 되면서 관객의 눈높이가 올라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90년대 말 전후로 창작자들의 사운드 퀄리티도 많이 달라지고,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문법들도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 것 같은데요. 이렇게 보면, 불법복제가 관객의 눈높이를 높여서, 창작자들이 새로운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도록 자극하고 긴장을 유발시키게 된 부분도 있겠죠. 그런 관점에서 참조나 표절 등의 판단 범위를 확장시키는 게 관객의 미학적 기준을 높이고 결국은 창작의 질을 높이는 것이 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성곤:
최근의 열성 관객들은 단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연의 요소, 요소를 감별하는 눈이 생긴 것이죠. 이것을 놓고 미학적 기준이 높아졌다고 얘기하기는 힘들다고 보고요. 오히려 지나친 정보의 공유와 타 공연 정보에 기대어서 본 공연을 판단하려는 태도가 창작의 위축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모 극단에서 기획공연을 하는데 기획자들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공연을 봤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아티스트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이 부분은 어디에 나오고, 또 이 부분은 어디에 나온다고 말하면서 표절이라고 얘기하게 되는 것이죠. 막상 작품의 창작자들은 그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순수한 본인들의 아이디어로 작업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혐의 때문에 창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거든요. 최근에 기획공연들이 많아지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마치 기획자들이 표절을 판별하는 감별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창작의 의욕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굉장히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병성
박병성:
한국 뮤지컬이 발전할 수 있었던 과정 중에는 90년대의 해적 공연들이 큰 영향을 끼치긴 했거든요. 우리나라는 97년도부터 베른협약을 적용받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일정 기간에는 불법이 아니기도 했어요. 사실 지금도 시장이 작은 어떤 나라에서 뮤지컬을 올린다고 했을 때, 그 시장이 크기 위해서는 이미 검증된 작품들, 좋은 작품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국가가 큰돈을 들여서 시장을 육성 하지 않는 한, 민간에서 정식 로열티를 주면서 공연을 사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시장이 크기 위해서는 초창기에 어느 정도 저작권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현재 브로드웨이에 이익을 주고 있죠. 사실, 학생들의 공연에 저작권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좀 더 열어주고, 단계별로 적용해야지만 오히려 그 산업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절차는 중요한 것 같아요. 원저작자를 존중하는 태도로 저작인격권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부분은 좀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김일송:
상대적으로 문학작품의 경우에는 각주를 달거나 출처를 표시해서 원작자를 쓰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건데,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출처를 밝힌다면 어떨까요? 프로그램북에 쓰거나, 문학에서는 책에서 밝히듯이 공연에서는 공연 상에서 이걸 밝힌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이성곤:
법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만약, 연출가와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밝히는 식이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체홉의 작품을 원안으로 한 공연을 봤는데, 사실 원안을 밝히지 않더라도 무방할 정도의 창작극이었어요. 그런데 굳이 원안을 밝힌 것은 그 창작의 공을 체홉과 나눠가진 것으로 보였거든요. 유사하게 모 연출가는 독일의 한 페이지짜리 미완의 소설을 가지고 작품을 새롭게 다시 썼는데, 원작자를 밝혔거든요. 이런 사례를 봤을 때 최근 작가들의 경우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철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박해성:
음원 시장의 경우, 저작권의 혼란기가 있었다가 현재 좋은 플랫폼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게 되었잖아요. 연극의 경우에 재산권의 행사가 어렵더라도 이름 즉, 크레딧에 대한 행사가 좀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어떤 플랫폼을 통해서 연극계를 더 활성화시킬 수 있지는 않을까요? 예를 들어 영화의 IMDb나 인터파크의 플레이DB 같은?
박병성:
공연에 대한 영상물을 다 아카이빙할 수 있다면 굉장히 좋겠죠. 저작권 문제에서도 많은 경우에 증명 자료로 사용될 수 있고, 학습의 도구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는 사실 그것 자체로 완성된 상품이지만, 연출은 정말 여러 버전으로 계속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공연은 완성된 상품이 아니니까요. 저작권을 보호받기 위한 플랫폼이라면 조금은 다른 형태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박해성:
외국 희곡집을 보면 초연의 연출, 디자이너, 배우의 크레딧이 첫 페이지에 나오죠. 이건 재산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크레딧으로서의 권위가 행사되는 것이겠죠.
이성곤:
심지어 희곡집을 낼 때, 수록된 작품이 출판되기 직전까지의 모든 공연 크레딧을 책의 뒤편에 싣는 경우가 일본에는 있어요. 공연사가 정리되는 것이죠. 저는 저작권이라는 것이 우리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점차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연출이나 연기에 대한 부분도 지금보다는 더 정리되어 갈 것이고, 법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더라도 연극인들 사이에 암묵적 합의들 이뤄져 갈 것이라고 보고요. 그러나 창작을 위축시키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병성:
브로드웨이의 옛날 포스터를 보면 빼곡하게 누가 뭐 하는지 나와 있거든요. 어디, 어디에 내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이 다 계약서에 있어요. 분야별 노조와 여러 집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 간 것이죠. 사실 우리도 표준계약서에 그런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 제대로 지키는 곳이 많지 않고, 사실 창작자들이 굳이 잘 챙기지 않는 부분이기도 해요. 창작자 본인들도 잘 챙겨야 하고, 표준계약서에 있는 해당 조항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아져야 해요.
박해성:
지적재산권이라는 것이 반드시 현금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크레딧으로 인해서 이후 창작자에게 주어질 수 있는 기회 즉, 잠정적 재산이나 잠정적 권리까지 포함하는 것 같아요.
김일송:
재산권이라는 것은 내가 취할 수 있는 또는 있었던 잠재적 이익을 취하지 못한, 잠정적 손실에 대한 부분이 큰 것이겠죠. 저는 강화를 한다면 이 재산권을 강화하고, 인격권은 완화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정반대의 입장도 있을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 만약 제가 작가고, 저의 작품을 한 명의 연출가가 연출했다고 할 때, 그 연출가의 버전을 통해서만 제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제 이름이 훼손이 된다고 하더라도 작품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것이 좋거든요. 인격권은 약간 포기하는 것 같아요.
이성곤:
사실 작가의 저작인격권이 침해당했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자의적인 거예요. 토씨 하나만 바꿔도 작가의 인격권이 침해당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사실 모든 공연에서는 그것이 영리든, 비영리든 관계없이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게 되는 것이니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작인격권은 아예 인정을 못 하기도 해요.
박해성:
창작자의 권리와 불특정 다수인 관객, 연극계 전체의 이익이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작권이라는 게 여러 가지 관점이 존재하고, 단순히 돈을 잃고 얻고의 문제가 아니라, 잠재적 가능성과 기회까지 맞물려있는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여러 관점에서 얘기된 적도 없었던 것 같거든요. 오늘 좌담은 논의의 시작으로서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