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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통, 통이 있는 곳 ‘문화비축기지’

윤서비_열혈예술청년단
154호 2018.12.20
상암 월드컵 경기장 인근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는 2017년 9월 1일 개관한 시설입니다. 원래는 유사시에 서울 시민이 한 달 가량 소비할 석유를 비축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지입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폐쇄된 후 거대한 천덕꾸러기로 방치되다가 2013년, 시민아이디어공모를 계기로 지금의 모습으로 리모델링되었습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인근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는 2017년 9월 1일 개관한 시설입니다. 원래는 유사시에 서울 시민이 한 달 가량 소비할 석유를 비축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지입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폐쇄된 후 거대한 천덕꾸러기로 방치되다가 2013년, 시민아이디어공모를 계기로 지금의 모습으로 리모델링되었습니다. 사실 문화비축기지는 넓은 마당, 6개의 탱크, 매봉산 산책로까지 포함하는 일종의 근현대 유적 공원이라서 예술창작공간이란 생각이 잘 안 듭니다. 공원 중에는 내부에 전시나 공연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들이 꽤 많이 있는데 문화비축기지 역시 그런 곳 중 하나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건물들이 독특합니다. 실제 석유 저장을 위해 지어진 5개의 탱크와 리모델링 과정에서 나온 자재를 재활용해 만든 1개의 탱크는 T1에서 T6까지 번호가 매겨져있습니다. 번호순서대로 파빌리온, 공연장, 탱크 원형, 문화복합공간, 이야기관, 커뮤니티센터라고도 부릅니다.
출처: 문화비축기지 블로그
주 출입구로 올라가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탱크가 새로 지은 T6입니다. 원통형 건물 1층엔 카페가 있고 안쪽에 다시 작은 원통형 방(원형회의실)이 있습니다. 주로 동그랗게 앉아 회의하기 적합한 곳이지만 경우에 따라 공연장이 되기도 합니다. 음향시설과 프로젝터가 있습니다. 모든 탱크가 원통형 구조와 높은 천고로 소리의 울림이 심하지만 이곳이 그나마 덜한 편입니다. 1층에서 2층은 계단, 2층에서 3층은 경사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있습니다.) 3층의 ‘옥상마루’라는 야외 장소는 역시 원통형인데 천장이 뻥 뚫려있어 하늘이 동그랗게 보입니다. 3층에는 길쭉한 강의실이 있습니다. 마치 원통형 건물에 직육면체의 유리 박스를 반쯤 박아놓은 형태로 창을 통해 T6의 외부와 내부의 풍경이 모두 보입니다. 음향시설과 프로젝터, 암막커튼도 설치되어 있어 회의는 물론이고 작은 규모의 쇼케이스도 가능할 듯합니다. 처음 답사했을 때 저희 공연 장소로 고려했던 곳입니다. (작품 규모가 커지면서 최종적으로는 T1을 썼습니다.) 카페나 옥상마루 외에는 상시 개방된 곳이 아니므로 방문하려면 담당자에게 미리 연락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 열었다가 경보음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T6 구조 (자료 제공: 윤서비)
T1도 예술가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기울어진 벽을 중심으로 2개로 나뉜 복도를 지나면 온통 유리로 둘러싸인 원통형 장소가 나오는데 이름은 파빌리온입니다. 지난 2월에 저는 이곳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투명한 재질이 주는 인공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천장까지 유리로 되어 있어 눈이나 비가 올 때 특별한 기분이 듭니다. 밤에는 달뜨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울 때 조명을 켜면 퍼포머의 상이 24각 유리벽에 반사되어 몽롱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원통의 지름은 약 18미터 정도이고 천장 높이는 약 12미터이며 가장자리가 낮고 중앙이 높습니다. 소리 울림이 꽤 있습니다. 제 경우엔 스피커로 재생되는 음악과 라이브 기타 연주 모두 큰 무리가 없었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리버브 효과가 났습니다. 다만, 사람의 말(대사)은 명료하게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유리방 안에 냉난방이 안 되는 것이 가장 불편합니다. (복도는 냉난방이 됩니다.) 2월 공연 시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니었음에도 객석 쪽에 가스 난방기를 2개 설치하고 공연했습니다. 5월 대낮에도 꽤 더웠습니다. 지난여름 폭염 때 공연한 팀에게 굉장히 힘들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천장에는 바큇살 모양의 H빔 보가 있어 조명이나 세트 행잉이 가능합니다만, 디테일한 위치를 잡으려면 기술적 고민이 필요합니다. 저의 경우 2개의 보에 강철 파이프를 걸치고 고정하여 세트와 조명을 달았습니다.
대략적인 이해를 위한 그림이니 실제 사용할 경우 사전답사가 꼭 필요합니다. (자료 제공: 윤서비)
T2엔 넓이 18미터 깊이 6미터의 무대가 있는 실내 공연장이 있습니다. 무대에 깊이가 없고 객석도 높이차가 없어 공연장이라기보다는 강당에 가깝습니다. 올해 5월에 있었던 문화예술교육 국제심포지엄 오프닝 공연을 이곳에서 했습니다. 대체로 허술한 공연장이라 그다지 매력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2층 야외공연장이 특별합니다. 고대의 원형극장을 떠올릴만한 외벽과 사각형 돌 객석이 가지런히 박혀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출처: 문화비축기지 홈페이지
T3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한 탱크이며 일반에 개방되지 않은 곳입니다. T4는 문화복합공간입니다. 여기저기 박혀있는 높은 쇠기둥 외에는 텅 빈 철재 탱크입니다. 바로 옆 사람의 말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울림이 심합니다. 주로 전시장으로 활용되긴 하지만 공연을 위한 장소로도 쓰입니다. T5는 이야기관이라고 하며 문화비축기지의 건립 과정을 상설 전시하고 있습니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10분 이상 걸어야 하고 출입구에서 탱크까지 거리도 꽤 있으니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오래된 석유탱크를 개조했으니 간지(?)는 좋지만 그만큼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합니다. 연중 몇 차로 나눠 장소 사용신청을 받습니다. 홈페이지에 공지가 됩니다. 또한 건물별 자세한 도면도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이곳의 기묘하고 강렬한 개성이 창작의욕을 고취시킬 법도 한데 사실 저는 그냥 그랬습니다. 문화비축기지의 운영주체는 서울시 푸른도시국, 녹지관리팀, 서부공원녹지사업소입니다. 공원은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아쉬움이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은 잘 관리된 공원과 어울릴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작품은 창조적 파괴를 소중히 여깁니다. 제가 특별한 공연 장소를 찾을 땐 후자의 경우입니다. 뭔가를 다 때려 부수는 게 능사는 아니겠지만, 저는 어떤 장소가 저의 파괴본능(?)을 자극할 때 재미있어 합니다. 그러나 문화비축기지에서의 경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문화를 비축하겠다는 발상이 무척 촌스럽긴 해도 그 이름에서 뭔가 의지는 느낄 수 있었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예술가들의 용감한 시도를 기꺼이 품어주는 장소란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그냥 ‘문화’라는 말을 갖다 붙여서 억지로 예술 친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관리자들이 그곳에서 창작되는 작품들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술가의 도전을 시설을 관리하는 일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듯해서 답답했습니다. 예술가들에 의해 시시각각 뒤바뀌는 요지경은 아니었습니다. 제 느낌에 문화비축기지의 주인공은 문화비축기지였습니다. 물론 이곳이 실험과 도전의 정신이 충만한 창작공간이 아니라 애지중지 보호해야 하는 녹지이자 공원이라고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예술’비축기지가 아니라 ‘문화’비축기지니까요. 그러니 예술은 덤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안내 책자에 실린 압도적인 장소성에 대한 예술가들의 도전을 환영하다는 뉘앙스의 건축 의도는 확실히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공을 차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상상하며 만든 잔디밭에 ‘잔디를 밟지 마세요.’ 푯말을 꽂은 건 도대체 누구일까요? 서울시가 이 장소를 통해 도시를 재생시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문화’, ‘시민’, ‘공공성’ 등의 관제 언어로 울타리를 쳐서 이곳의 야성을 없애버린 것 같습니다. 모처럼 재발견된 생생한 장소를 박제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사랑나눔 큰 장터’나 ‘시민 소통 한마당’ 등의 행사를 추천합니다. 간지나는 인생 컷도 찍어보세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구체적인 일화에 대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끝내 안 썼습니다. 사실 그렇게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답답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애매모호한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구석구석 흥미로운 곳들이 많습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도 풍부합니다. 저같이 느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SYNCH06-BODY EXPANSION 열혈예술청년단, 문화비축기지 T1 파빌리온 (사진 제공: 이현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