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그린피그 <조치원 해문이>
만국이 삼촌 좀 이뻐해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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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해문이>(이하 <해문이>) 라고 들어는 봤는겨?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세종시 편입을 앞둔 2012년 충남 조치원 버전으로 다시 쓴 연극이여. 서른일곱 먹은 해문이는, 연극배우 헌다고 서울에 올라갔다가 아부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야. 헌디 고향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은겨. 사방팔방 붙은 현수막에는 “세종특별시”가 어쩌구 “행정수도 사수”가 저쩌구 해쌌구, 지난 몇 년 간 코빼기도 안 비추다 나타난 삼촌 만국이는 아부지 무덤에 흙 마르기도 전에 이장 자리부터 꿰찬겨. 그러곤 산 사람은 산 사람이네 어쩌네 하면서 동네잔치까지 벌이는 거여 시방. 이 와중에 고향 친구들은 밤마다 마을회관에 해문이 아부지 귀신이 나타난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대고 말이여. 아, 이거 무지하게 찜찜헌디. 해문이는 도저히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검은 정장을 벗어 버릴 수가 없능겨. 러닝타임이 2시간이 훌쩍 넘는 연극이 끝나구 작가이자 배우인 이철희와 마주 앉어서 인터뷰를 혔어.

- 오진
- 공연 잘 봤어요. 혹시 고향이 충청도 세요? 사투리가 참 구수하던데.
- 철희
- 고향은 대전이에요. 근데 부모님이 충청도 분들이세요. 예전에 시골 사람들은 다 대전에 와서 일을 했어요. 충남방적 같은 데. 저희 어머니도 원래 광천 사람이신데, 대전에 있는 천 공장에서 일하셨고요. 지금은 부모님이 대전에서 작은 철물점 하시는데. 삼 남매 중에 가업을 이을 자식이 없어 아쉬워하세요. 그래서 명절 때 내려가면, 답답한 마음에 저한테 뭐라고 많이 하셨죠.
"서울이 벌써 몇 번째여? 인자 너도 사십인디, 서울 가믄 누가 니 주뎅이에
밥숟가락 물려준다냐? 인생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살려고 허지 말어 이놈아!"
- 오진
- 15년 차 배우이신데, 처음에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셨어요?
- 철희
- 사실 배우가 공연이 올라가야 배우지 일이 없으면 배우라고 하기도 뭐하거든요. 다른 배우들은 일 없을 때 운동도 하고 이거저거 배우러 다니고 하던데. 저는 그렇게 잘 안되더라고요. 사람들 만나는 것도 별루 안 좋아하고. 저한테 잘 맞는 일을 찾은 거 같아요. 글 쓰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잖아요. 나를 확장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 오진
- 왜 <햄릿> 텍스트를 고르셨어요?
- 철희
- 사실 처음에는 햄릿이 아니라 <에쿠우스>였어요. 어릴 때부터 꿈이었거든요. <에쿠우스>의 소년 ‘알런’이 되는 것. <에쿠우스>를 코메디로 각색해서 써볼래다가, 주변 반응이 별로여서 고민하다 <햄릿>까지 왔죠.
- 오진
- 기능적인 선택이었네요. 그럼 세종시 이야기를 하려고 <햄릿>을 가져 오신 건가요?
- 철희
- 원래는 세종시가 없고 해문이가 미국 가는 이야기였어요. 초고 제목은 <충남 햄릿>이었어요. 미국 가서 9.11 터지고 동생들이 9.11에 다 죽고, 해문이만 살아남는 이야기였어요.
- 오진
- 와, 스케일이 엄청 나네요. 그런데 어쩌다 미국에서 세종시로 오게 되신 거에요?
- 철희
- 초고를 남산예술센터 <초고를 부탁해>에 보냈는데, 김주연 선생님께서 원작의 번안 과정에서의 충돌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셨어요. 조언이 너무 감사하고 기뻤지만, 여튼 나는 글 쓰는 게 아닌갑다, 하고 접었죠. 2년 후에 배우 일이 없어서 집에 있다가, 예전 대본을 꺼내 고치기 시작한 거죠. 가이드해주신 거 토대로 고치다 보니까 세종시에 대해서 쓰게 되었어요.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 오진
- ‘자연스럽다’… 신기해요. 세종시라는 거대한 소재가 아무런 계기 없이 물처럼 스며드는 수가 있어요?
- 철희
- 솔직히 저는 그렇게 세종시에 관심 많은 사람은 아녔어요. 공연 보신 분들은 작가가 세종시에 대해서 뭐가 있나보다, 생각하실 수 있는데 공주에서 대학 다닌 거 말고는 별로…
- 오진
- 놀랍네요. 음, 이건 좀 예민한 부분일수도 있는데, 극단 그린피그는 그간 정치적 스탠스를 작품을 통해 구현해 왔잖아요. 음, “좌파”라고 해도 될까요. 사실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은 작가님도 그린피그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 같아요.
- 철희
- 전 정치적 성향이 전혀 없어요. 제가 세종시에 대해 썼다고 해서, 국가 혹은 정부 시스템에 대해서 고발을 하려는 의도가 있었냐 하면, 추호도 없어요. 물론 사회 돌아가는 거 보면 안 좋은 거 좋은 거 다 보이죠. 하지만 전 창작자가 작품에서 그런 성향을 드러내는 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 오진
- 관객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요.
- 철희
- 괜찮아요. 관객들이 제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하신다고 해도, 여전히 제 생각은 그대로 이니까요.

"이 씨부랄 놈의 거! 내가 살던지 뒈지던지 매조지(마무리)를 져야 되여!"
- 오진
- 각색의 관건은, [새로운 설정에서 원작의 드라마가 얼마나 매끄럽게 녹아드나]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해문이>는 참 좋은 텍스트였어요. 원작에 없는 문제 제기도 많고요. 배우 개인의 자아실현의 욕망과 현실과의 괴리라던가, 부모-자녀 세대 간의 소통의 어려움 등등.
그런데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삼촌 만국이 개인의 슬픔이 너무 갑작스럽게 “대한민국의 물신주의”로 연결된다는 거였어요. 소년 만국이의 상처가 마을 전체를 사단 내는 것까지는 납득이 가는데, 이게 대한민국 전체로 확대되는 지점은 어딘가 갸우뚱하게 되더라고요. 아마도 그 어색함은, 작가의 작의와 연출의 해석 사이에서의 괴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 철희
- <해문이>는 코메디를 표방하고 있어요. 그 안으로 들어가면 세종시라는 이슈가 나오고, 더 들어가면 돈 이야기가 나오고, 더 들어가면 인간의 상처가 드러나요. 연출님께서 푸신 <해문이>는 “성장만 바라보고 달려온 대한민국” 혹은 “물신주의” 쪽에 포커스를 두셨다면, 저는 “개인의 상처”에 조금 더 집중한 거 같아요. 엄마에게 사랑 받지 못한 소년 만국이가 결국 이러한 아수라를 만드는 이야기요. 그게 엔딩과 직결 되구요.
- 오진
- <해문이>의 만국이는, 음, 뭐랄까, ‘개새끼’가 아니었어요. 마음이 가는 악인이랄까. <햄릿>의 클로디어스는 순도 100% 악인이었잖아요.
- 철희
- 맞아요. 작품의 끝에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으면 하고 썼어요. 그런 면에서 오피리(오필리어)나 언년이(해문이 엄마)도 원작에 비해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잊고 있었네. 내 꺼는 다 성(형) 꺼인 것을"
- 오진
- 오늘 공연을 같이 본 정진세 작가가 저에게 말했어요.
- 진세
- 한국 연극이 이제는 <햄릿>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오진은 여자 작가로서 <햄릿>이 기분 나쁘지 않아? <햄릿>에 여자 캐릭터들은 늘 악녀거나 무력한 존재로 그려지잖아.
- 오진
- 진세 작가님 말이 뭔 뜻인지는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 치면 <햄릿> 말고도 버릴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고대 그리스 연극부터 시작해서 남성 중심적인 텍스트 다 버리면… (웃음) 그래서 저는 <해문이>의 여성 캐릭터 묘사는 이정도면 충분히 땡큐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만국이 삼촌이 빛나는 거에 비해서는 아쉽지만요.
- 철희
- 사실 우리나라에서 형수랑 결혼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언년이 캐릭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서, 엄마랑 아기랑 둘이 있는 방이 뜨겁게 끓어오른다고 해봐요. 엄마는 자기는 죽어가며 애기를 배 위에 올려놓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살기 위해 애기를 깔고 갈까요? 저는 언년이가 후자 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기적인 면이 있잖아요. 뜨거운 방에서, 누가 애기를 살리고 싶었겠어요. 지가 살고 싶지. 인간의 중심은 “우리”가 아니라 “나”. 오로지 “나” 그렇게 살아가는 이 마을. 이 세상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언년이가 그렇게 뒤집히길 원했던 거예요. 완전히 이기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삼촌에게 붙는.
- 오진
- 이 작품에서 언년이는 악녀라기보다 인간적인 캐릭터로 보였어요. 그녀의 입장이 이해가 갔거든요. 만국이 삼촌이 와서 더듬으면 은근슬쩍 발로 방문을 닫으면서도, 막상 뭔가 더 하려고 하면 만국이 머리통을 때리면서 “내가 누구여!”라고 소리 지르는. 감정의 층위가 다양했어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뒤집는다”라는 부분은 언년이가 완전한 악녀가 아니라 지금처럼 납득이 가는 한 인간처럼 보일 때 진짜 “뒤집는”게 되는 거 같아요.

- 오진
- 이번에 작가이자 배우 1인 2역을 하셨잖아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 철희
- 어디에나, 사람이 모이는 데는 에로사항이 있어요. 연출님도, 작가가 연습실에 있으니 조금 신경이 쓰이셨을 거예요. 연습 중에 가끔 연출님과 눈이 딱 마주치면, 괜히 민망스럽기도 하고. (웃음) 그랬거든요. 그치만, 만약에 앞으로 다시 이러한 작업을 할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백 프로 합니다. (웃음) 믿으실지 모르겠는데, 벽산희곡상을 내고 꿈을 꿨는데, 박상현 연출님이 연출을 하시는 꿈이었어요. 참 신기하죠. 연습실에서 연출님께 배우로 질문을 하면 작가를 향한 대답이 오고, 작가로서 질문하면 배우를 향한 답이 오고 그랬어요. 이 시너지가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참 많이 배웠어요. 인간 자체는 자기 그릇 넓히는 게 참 어렵거든요. 그릇 넓히려면 몸으로 부딪치는 것만 한 게 없는 거 같아요.
- 오진
- 정리하는 질문 할게요. 작품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철희
-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해문이>에는 저희 아버지 얘기가 많이 들어있어요. 아버진 명절에 큰집에 가면 늘 형제들과 싸우셨어요. 조부모님이 재산을 다 형님들께 물려주셨거든요. 집에 오는 길에 트럭을 운전하며, “씨부랄 놈에거, 다 매조지 져야 한다”고 화를 내시던 아버지가 기억나요(<해문이>의 대사). 그렇게 집에 와서 깡소주 드시는 거죠. 아버지 가슴에 송곳이 박혀있어요. 근데 그게 말이죠, 자식한테 그대로 대물림되거든요. 그걸 끊을 수가 없어요. 부모세대의 분노를 나도 갖고 있는 거예요. 형들에게 물려준 재산을, 형은 또 자기 자손에게 물려줄 거 아니에요. 아버지는 늘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 때 그 돈 있었음 내 새끼들한테 한 푼이라도 더 해줬을 텐데…’ (사이) 그런 개인의 분노가 점점 커져서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해문이>를 통해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만국아! 다들 백힌 채로 사느니라. 가슴이 시뻘건 송곳 하나씩 안 꼽고 사는 사람 없느니라.
거기에 피가 몰캉몰캉 나두, 안 아픈 척 이빨 꾹 깨밀고 사느니라. 지들이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느니라.
<해문이>에 나오는 사람들은 죄다 지 속에 송곳 하나씩 품고 살어가. 해문이 친구 상수는 복숭아 농사를 조져놔서 속이 타구, 배농사 하는 전무는 배밭에 배가 다 떨어징께 빚이 쌓여 괴롭구. 어디 농사 망한 사람들만 속이 쓰리것어? 고등학생 세익이는 풍을 맞아 온 몸이 뒤틀렸잖여. 아부지랑 애인 다 잃은 피리 속은 어떠겄어. 하이구. 그리고… 해문이. 불쌍한 해문이. 새마을운동 조끼를 입은 아버지 유령이 자꾸만 나타나는 우리 해문이…
그란디말여. <해문이>에 나오는 피리, 상수, 하수, 방수, 호식이, 부원, 세익이, 추자, 염쟁이 유씨… 이름도 정겨운 이 배우들. 참 귀하대. 해문이가 아부지 귀신에 홀리는 거마냥. 배우들이 관객들을 홀리게 만든다는 거 아녀. 이거이 딱 보니께, 배우들도 귀신이고 작가도 귀신인겨. 조명 딱~ 들어오면 기냥 인물들이 대사를 팍팍팍! 갈등이 딱! 그렇게 쭉쭉 흘러가다가 배우가 빡! 하고 찍어주면 조명 아웃. 암전. 허이고, 홀린 듯 보고 있었다니께. 열 일곱명이 딱 조치원읍 주민들 마냥 기가 막히게 연기를 하는디. 알잖여. 원래 귀신들이 그렇게 불쑥불쑥 나타나 갖고 사람들 놀래키고 그러잖여. 그게 다 마음에 맺힌 게 많어서, 내 말 줌 들어달라고 그러는 건디. 배우들이 딱 그 짝이라니께.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서는 조명만 들어오면 그렇게 혼자서 떠들어 대잖여. 관객들은 대답도 없는디. 원체 배우들이 잘 노니께, 2시간이 훌떡 갔어. 뭐 중간에 씨름 장면이나, 자꾸 마이크 잡고 노래하는 거나 좀 쳐내야 될 게 보이지 만서두. 재공연 때는 알어서들 수정 하시겄지, 귀신같은 분덜인디. 암튼 오랜만에 긴 호흡으로 진득하니 밀어붙이는 공연 보니께 오는 길에 마음이 참 좋드라고.

…헌디 이거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여. 주변 사람들헌테 물어 보니께 뭐 재미 한 개도 없었다는 사람도 더러 있고 그러드라고. 그러니께 <해문이>는, 유별나게 관객들 평이 갈리는 연극이라는 말이여. 뭐, 사람헌텐 누구나 제 취향이라는 게 있는 거니께. 웹진 연극인에 이오진은 허벌나게 좋았다 하는디, 난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거겄지. 거기, 이 리뷰 읽고 있는 양반. 혹시 <조치원 해문이> 봤는가? 워뗬어? 좋았음 좋았다구, 영 아니었음 아녔다구 말을 좀 혀줘. 아래에 덧글 창 있잖여. 혼자 이렇게 리뷰 쓰고 있다 보믄, 이걸 누가 읽기는 있나, 읽고들 뭔 생각들을 헐까 싶어 궁금하고 그래가지고 그려. 이왕에 덧글 쓰는 거 이메일 주소도 같이 줌 적어 줘. 한 명 추첨해다가 다음 리뷰허는 공연은 같이 좀 보게. 아, 공연 표는 내가 쏘는 거여. 그럼 다다음 주에 봐. 잉? 아, 그리고… 사투리가 이 모냥이라 미안혀. 내가 서울내기 다마내기라 그려. (끝)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컬쳐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