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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

청소년과 나와 세계

정진세_작가
77호 2015.10.08
이번 리뷰는 첫 번째 연극이 끝난 후, <복도에서>의 이양구 작가와 <美성년으로 간다>의 김슬기 작가를 만나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오진, 정진세 작가는 질문을 했고, 김슬기, 이양구 작가는 대답을 했습니다.

두산아트센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

이번 리뷰는 첫 번째 연극이 끝난 후, <복도에서>의 이양구 작가와 <美성년으로 간다>의 김슬기 작가를 만나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오진, 정진세 작가는 질문을 했고, 김슬기, 이양구 작가는 대답을 했습니다. 웹진의 식구인 장우제 사진작가와 서명구 서울연극센터 매니저가 이야기를 거들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르게, 모두가 청소년인 시절이 있었기에 이야기는 매우 길어졌고, 그중의 일부를 추려 대화의 방식으로 풀어놓습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대사는 희곡집 『B성년』(『B성년』, 이음스토리 2013년 출간)에서 옮겨왔습니다. <복도에서>는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벌어지는 고등학교 2학년 청소년들의 이야기이고, <美성년으로 간다>는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시은이가 유일한 혈육이지만 떨어져 살았던 오빠 시훈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서경은 묻는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1층에 있는 거야? 2층에 있는 거야?” 현호가 답했다. “또 그 소리. 여기 안보여?” 현호는 비상구 옆에 ‘1F/3F’을 가리킨다. 서경은 말한다. “그건 우리가 입학할 때부터 있었어.” 현호가 답한다. “2층으로 약속한 거니까.” 서경은 강조하며 말한다. “난 약속한 적 없어” 현호가 답한다. “1년 넘게 그렇게 살았잖아.” 서경은 다시 말한다. “난 한 번도 동의한 적 없어.”- <복도에서> 중에서, 서경과 현호의 대화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은 누구일까요?

두산아트센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이양구

정진세
이 작품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더불어 취재과정도 궁금합니다.
김슬기
청소년극 제의를 받아서 쓰게 되었는데, 처음이라 막막한 거예요. 청소년극의 본질이 있다면 그게 뭔지도 잘 모르겠고. 저 역시 청소년기를 지나왔으니 그 시절부터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제 얘기에서 출발했어요.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은 열일곱 살짜리 친척동생들한테 물어보고. 지금과는 다르게 정말 많이 변한 것도 있어요. 이번 두산아트센터와의 작업에서는 두산 측에서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었어요. 대본을 같이 읽기도 하고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양구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목적보다는 우선 희곡집으로 내서 학교 연극반 스스로 이를 읽고 만들어 보라는 취지에서 쓴 거예요. 물론, <복도에서>는 작가로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4년째 가르치고 있어요. 점심시간에 그들이랑 밥 먹고, 쉬는 시간에도 같이 놀고. 이 작품 쓸 때는 “나 청소년극 할 거니까 좀 도와줘” 해서 인터뷰도 했어요. 집에 오면 그들과 카톡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고 그래요. 연극 수업시간에 그 친구들이 부모, 친구 등등 이야기를 해요.
정진세
연극의 배경은 ‘동시대’잖아요. 나 때의 청소년과 지금의 청소년은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를지 궁금하네요.
김슬기
생각보다 비슷해요. 저는 다를 줄 알고 걱정을 했어요. 청소년들이 느끼기에 너무 나이 먹은 사람이 썼구나 생각하면 어떡하지 했는데, 생각보다 그들이 많이 공감하더라고요. 우리 때도 욕을 정말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정말 많이 해요. ‘X나’는 욕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디테일한 차이 말고는 알맹이는 똑같아요.
이양구
<복도에서>를 썼을 때는 아, 이건 완전 내 고등학교 시절인데? 이거 책으로도 나올 건데… 큰일 났다, 싶었죠.
김슬기
요즘 이야기 같던데요.
정진세
나는 희곡집에서 이 작품을 봤을 때, 어떻게 이양구 작가가 이걸 썼지? 이런 세계는 전혀 모를 것 같은데... 그래서 약간 충격이었어요. (웃음) 올 봄에 안산거리극축제에서 청소년들과 공동체 연극을 했었거든요. 그들 중에 학교 연극반에서 <복도에서>의 서경 역할을 연기했던 친구가 있어요. “너 이거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한 거니? 어렵지는 않았니?”라고 물었는데, 완전 자기 이야기라 하더라고요.
이오진
제가 참여한 이 희곡집(『B성년』)에 서문에서 썼지만 청소년극에서 낙태, 임신, 왕따, 자살, 일진 이런 건 그만 나왔으면 하는 게, 내 희망사항이에요. 물론 내 작품에는 나왔지만, (웃음) <복도에서>는 그걸 구현한 게 너무 좋았어요. 텍스트로 봤을 땐 두 번 봐도 잘 몰랐는데 무대화하니까 잘 다가오더라고요.
이양구
아까도 말했지만, <복도에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공연한다고 생각하고 만든 거예요. 그래서 특별한 왕따나 문제아가 나오지 않아요. 이전까지 청소년극의 특이한 점은 대부분 문제아가 등장하고, 문제아가 상황을 끌고 가잖아요. 나는 연극반 애들을 가르치다보니 알죠. 극 중에서 문제아가 나오면 애들이 벌써 ‘어, 이거 누가 하면 되겠네’하고 말하는 거예요.
김슬기
애들이 그러는데 <복도에서>의 ‘현우’랑 ‘서경’이 일진일거다, 라고 하더라구요. (웃음)
이오진
그렇게 특정한 누군가가 일진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에 대한 관습적인 시각은 아닐까 생각해요. 그 인물들은 공부를 잘할 수도 있고, 또 공부 못 하고 잘 노는 애들일 수도 있는 건데… 청소년극은 어른 관객들이 심지어 청소년들도 몇 가지 타입으로 묶는 것 같아요.
이양구
이 대본을 가지고 연습하게 될 애들한테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 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러다보니 가해자/피해자 구도를 만들면 안 되는 거야. 문제아나 어른 역할은 자연스레 빠지는 거죠. 제가 보여주려고 한 거는 아이들 사이에서 미묘하게 오해하고 갈등하고 표현하지 못해서 착잡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핵심은 애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어떻게 느끼도록 해줄까 하는 지점이었어요. 희곡에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알아서 에피소드를 만들라고 괄호 쳐놨어요. 연극반이 인원수도 다르고 남녀성비도 달라요. 필요에 따라 바꿔가면서 하게끔.
정진세
실용적인 대본이네요. (웃음)
이양구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대본이에요. 일부러 여지를 많이 준거죠. 연극반 아이들에겐 그런 극작법이 좀 낯설게 다가오는 것 같고.

두산아트센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

지구상에 처음 발견된 생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눈길로, 남매는 서로를 깊숙이 쳐다본다. 시훈, 담배를 꺼내 문다. 시은, 역시 담배를 꺼내 문다. 시훈, 시은의 담배를 쳐다본다. 시은, “불 좀.” 시훈,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가 주머니에 넣고 담배를 갑에 넣는다. 시은도 할 수 없이 넣는다. 잠시간 다시 침묵. 시훈, “언제부터 피웠냐.” 시은,“ 중딩때 부터요.” 시훈 “나돈데,” 사이. 시훈, “어디서 났어?” 시은, “……아빠 서랍요.” 시훈, “나도 그랬는데.” 둘 잠시 각자 머릿속의 생각을 만진다. 그러다 시훈과 시은 동시에 입을 열고 “저기……” 둘 다 입을 다문다. 다시 잠시 침묵. 시은, “그 쪽이 내 오빠예요?” 시훈, “……그런가봐”.- <美성년으로 간다> 중에서, 시훈과 시은의 대화

인물은 어떻게 창조되고, 해석되었나요

두산아트센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김슬기

김슬기
저의 경우에는 청소년극 뿐 아니라 다른 극을 쓸 때도 애초에 영리하게 어떤 캐릭터를 가져와야 겠다, 생각을 못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제 안에서 꺼내거나 주변에서 가져오지. <美성년으로 간다>의 주인공 ‘시은’같은 경우도 제 모습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정진세
공연 프로그램북에서 김슬기 작가님이 쓴 ‘팬픽 쓰는 나’의 사연이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 시기엔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받고 싶죠. 워낙 상처를 많이 받는 시기니까. 아무도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상상 속의 존재들을 통해 자기 위로를 실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에 아이돌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무대 위의 아이돌 오빠들은 그렇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웃음) 이 작품에선 특별히 환상 혹은 상상의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김슬기
전 아이돌에 집착했어요. 팬픽도 실제로 쓰고 그랬거든요. ‘신화’ 팬픽. (웃음) 실은 초고에서는 환상이 아니었어요. 다 실제였고. 시연이가 팬픽 쓰는 아이돌 오빠들만 환상이었는데. 아이돌 그룹 이름이 ‘OX’가 ‘예스/노’가 됐다가 ‘TNT’가 된 거예요. (웃음) 공연대본으로 오기까지 되게 많이 고쳤어요. 이번 공연처럼 아예 환상으로 오게 된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봐요.
정진세
이번 공연에서는 다들 어떤 인물에 특별히 이입이 되던가요?
장우제
어디에 딱 이입되기 보다는 여러 캐릭터에게서 나의 모습들이 묻어나왔죠.
정진세
저는 <복도에서>의 ‘민우’ 캐릭터예요. 망상이 좀 심하죠. 서경에게 고백하고 나서 사실 자기가 피해자처럼 말하잖아요. 저의 경우에는 청소년기에 ‘타자’라는 걸 상상해보지 못했어요. 언제나 내가 제일 중요하고, 다른 사람은 어떨까, 하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는 거예요. 나는 약자다, 피해자다 그러니까 내가 옳고 세상은 그르다, 식의 논리가 강했고요. 그런 점에선 서경은 좀 주관이 뚜렷한 캐릭터가 아닐까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이양구
서경이도 못돼먹었잖아. (웃음)
이오진
난 서경이가 부러웠어요. 고등학교 때 그런 애가 되고 싶었는데 난 아닌 거야. 서경이 같은 애들의 특징은 어떤 현상에 대해서 남들이 어떻게 느끼나 보다는, 자기가 어떻게 느끼는가가 훨씬 중요하거든요. 중고딩들은 그런 애들을 좋아해요. 난 남들을 늘 신경 쓰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애들한테 열등감을 느꼈었고.
김슬기
나도 그랬어.
장우제
이번 공연에서는 서경이란 인물이 굉장히 ‘괜찮은’ 인물로 그려진 거 같아요. 저는 원래 그런 성격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도 예전에 그랬었던 동창들을 보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더라고요.
이양구
작년에 내가 이 작품을 연출했을 때는 서경이는 노랑머리하고 아주 불량하게 그렸었는데. (웃음)
김슬기
이번에 ‘재민’의 인물이 잘 살았다고 보였어요. 약간 찐따 같기도 하고…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계급’의 모습이 잘 보이더라고요.
이양구
연출가가 연습실에서 등장인물이 갖고 있는 사회적 계급적 위치들을 되게 강조했다고 그래요. 그것들에 의해 의상이나 사고방식, 행동패턴들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공연에서도 잘 보면 ‘재민’ 이 가장 허름해 보이잖아요.
정진세
작가의 의도랑 다르게 연출이 색다르게 표현한 지점이 있었나요?
이양구
상담교사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정진세
희곡에서는 굉장히 중립적으로 나오던데. 실제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죠.
이양구
무대 위에서 승현이나 반장이 취하는 태도는 선생이 정말 때릴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내가 생각한 거보다 더 못된 선생 느낌이 강해요. 교사는 도대체 애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는데.
정진세
관객이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 않도록 설정된 것이군요.
서명구
해석하는 사람의 경험에 따른 인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요? 청소년기라는 게 우리한테는 한정된 과거의 기억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걸 캐릭터화해서 관계를 인식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진세
나이를 먹고 학교라는 소(小)우주에서 사회라는 대(大)우주로 이동했을 때, 어떤 인물들의 특성은 그 효력을 다 하는 것 같아요. 선망의 대상이었던 캐릭터가 시간이 흐르면 좀 얄미워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 시절 그 세계에서는 굉장히 절실한 문제였는데, 막상 지나고 나면 작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이양구
실제 고등학생들이 광분하는 이유를 보면 굉장히 소소해요. 지금의 우리한텐 별거 아닐 수 있는데 애들한테는 큰 문제가 되는 거죠.

두산아트센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

“고마워” “뭐가?” “대답해줘서. 넌 내 말 듣지도 않았잖아.” “듣고 있었어.” “정말? 근데 왜 대답을 안했어?” “꼭 대답할 필요 없는 말만 했잖아.” “아깐 대답을 했어야지. 이를 건지 말건지” “대답할 필요가 없잖아” “왜?” “내가 왜 일러? 당연한 걸 물어보니까.” “그게 당연한 거였어? 몰랐어. 미안.” - <복도에서> 중에서, 서경과 민우의 대화

청소년극의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정진세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니까 편하게 보지만, 청소년극을 보는 청소년 관객들은 불안한 상태에서 보게 되잖아요. 어른들이 추억화해서 즐거워하는 거랑 다르게 뭔가 더 생생함을 느끼고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오진
어른 관객들이 웃을 때 보니까 무대 위 청소년들 캐릭터가 귀여울 때 웃어요. ‘아이구 요즘 애들이 이렇구나’하면서.
이양구
청소년 관객들은 그런 장면을 되게 불편하게 봐요.
이오진
이를테면 <복도에서>의 ‘민우’가 “나 서울대 가면 고백할거야”라고 말할 때, 관객들은 막 웃지만, 나는 하나도 안 웃겼거든요, 기가 막혔죠. 그 장면에서 웃는 어른 관객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바로 옆에 속상해하고 있을 어린 관객들이 앉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양구
그 장면이 작년 공연에서도 어른들은 웃는데, 아이들은 속마음 들킨 것처럼 보더라고요. 안 웃어. 웃을 수가 없어. 현실로 다가오니까.
김슬기
청소년기를 지나온 어른이 자기 청소년기를 떠올리면서 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찌질했던 자기의 옛 시절이 웃음을 일으키는 것 일수도 있죠.
정진세
반대로 어른들은 부끄러운데, 청소년들은 즐거워하는 장면이 있을 거 같아요.
이양구
프로포즈할 때, 민우가 서경에게 ‘우리 엄마가 이대정도까지는 괜찮대’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 장면에선 상황이 역전되죠. 어른들은 못 웃고, 청소년들은 빵 터지고.
이오진
청소년극인데 극장에서 청소년 관객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이양구
우리 청소년극은 청소년들이 보기 힘듭니다. 다 학원가고, 공부하느라.
정진세
그나마 연극을 보는 학생들도 연극을 지망하거나 전공하려는 친구들이 많죠.
이오진
청소년극이 극장의 프로시니엄 무대를 나가서 공연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달에 한 번은 학교에서 공연하고 그랬으면… 요즘 애들은 연극을 보면 상점 2점을 받는대요. 그래서 보러오는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지금보다 훨씬 청소년 관객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김슬기
청소년극을 그들이 보라고 쓰기도 했지만, 저는 어른들도 좀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극단 그린피그 <조치원 해문이>

정진세
최근의 청소년극에서는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갖지 않더라도 드라마를 완성하는 방식들이 엿보여요. 살펴보면,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비껴간다는 건 강력한 교훈이나 계몽적인 입장을 갖지 않겠다는 태도잖아요. 대신에 절정의 순간, 대립했던 인물들 간에 최선을 다해 소통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살짝 엿보이고요. <美성년으로 간다>에서는 ‘시은’이 오빠와의 대화에서도 그랬고, 새언니와의 대화에서도 그 소통의 여지를 아주 조금씩 넓혀가요. 그러다가 결국 마음이 살짝 풀어진 시은이가 저도 모르게 울게 되죠. 이렇게 슬픔 혹은 현실을 외면하던 인물이 자기감정에 충실해져서 눈물을 흘릴 때에는, 강력한 갈등이 해결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해소감이 들더라고요.
이오진
<美성년으로 간다> 를 보면서 자꾸자꾸 내 속을 긁는 것 같았어요. 자기 자신조차 모르고 지나간 감정들을 다시 끌어낸 달까. 무엇을 느끼면서 사는 지도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말하는 느낌? 너도 사실 이런 거 있지 않아? 실은 이런 거잖아.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
김슬기
<美성년으로 간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원래는 시은이가 문을 열고 “엄마! 아빠!”하는 거였어요. 근데 이오진 작가가 아이디어를 줬어요. 그냥 문고리를 잡는 걸로 끝내도 된다.
이오진
지금 생각해보면 문을 열고 엄마 아빠와 말하는 건 정말 힘들어요. 문고리를 잡는 것만으로도 어렵죠. 그리고 초고에서 시은이 승옥과 명백한 연인관계였는데, 지금은 썸 타는 정도의 관계로 바뀌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정진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울 줄 모르는 애들, 웃을 줄 모르는 애들 정말 많은데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 감정표현을 알려주는 거죠.
시은, “어떻게 웃을 수가 있어요?” 선지, “용서했어.” 시은, “그게 돼요?” 선지, “그래도 그 사람들 덕에 이렇게 태어나서, 맛있는 돈까스도 먹고, 연애도 하고, 돈도 벌 수 있구나... 그랬더니 됐어” 시은, “사랑받은 적도 없는데 용서를 해요?” 선지, “사랑. (잠시) 근데 그거 꼭 받아야 하나?” 시은, “…….” 선지, “사랑받고 인정 받고, 예쁨 받고…… 그러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날 깎고 다듬게 되잖아. 그럴 필요 있나? 내가 돼야 할 건 칭찬 받는 어린이가 아니라 김선지, 바로 나니까. 내가 나 일수만 있다면, 내가 내 맘에만 든다면, 다른 건 중요치 않아져. 난 그랬어.” - <美성년으로 간다> 중에서, 시은과 선지의 대화

두산아트센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

청소년 혹은 연극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정진세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의사소통을 잘 하게끔 가르쳐줘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죠. 커뮤니티, 동아리 등등 공동체 활동을 주선해줘야 하는데, 다들 학원가기 바쁜데다 성적으로 상위권/하위권, 경제력으로 부잣집/가난한집 지역적으로 강남/강북, 서울/지방 이렇게 서로 대화 못하게 갈라놓고 쓰는 언어도 다르게 해놓고요. 제대로 자기의 말을 하는 애들이 없어요. 말을 잘하는 애들도 드물고요. 답답하겠죠. 그런 점에서 청소년극을 쓴 작가들은 그 상태를 정확히 담아내기 위해, 조용히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 길게 이야기했음)
이양구
제가 무슨 메시지를 보느라 제대로 못 들었어요. 뭐라고요? (그는 요새 연극판에 불어닥친 외풍 때문에 바쁘다)
김슬기
아 저도 죄송해요. 잠시 딴 생각을 했어요. 다시 물어봐 주세요. (그녀는 요새 자신의 차기작 문제로 정신이 없다)
정진세
안 해! 안 해! 안 할 거야!
이오진
이 오빠 또 삐졌네.
이양구
프로그램북에서 내가 이런 글을 썼어요. 작년의 세월호 사건이 뜻하지 않게 우리사회의 ‘청소년’을 다시 발견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발견했다기보다는 함몰되어 사라진 자리에 ‘있어야 할’ 청소년의 빈자리를 느끼게 해준 사건이다, 뭐 이런 거예요.(프로그램 재참조)
정진세
사실 그 전까지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약자고, 소수자라는 생각을 많이 안했었잖아요. 젊으니까 무한한 가능성 있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이양구
청소년들을 다루는 이야기가 이제는 동시대를 가장 잘 비추는 ‘거울’이 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최근에 국립극단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이전까지 청소년극은 어른들이 보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그렸어요. 있는 그대로 청소년모습이 출연하면 충격적이라서 못보고. 청소년들을 보면 한국사회가 어떤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정말 투명하게 보여요. 학교 수업을 하다보면, 학교는 감옥이에요. 현대사회에서는 그 감시의 구조가 사라져서 잘 안 보이는데, 여전히 학교는 그 구조가 완벽하게 보여요. 시공간, 의복 구획도 정확해요.
김슬기
청소년들에 대해 대체적으로 어른들이 부정적인 감정이 있어요. 앞으로는 그런 걸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서로가 깨달을 수 있는 의미로 청소년극을 쓰고 싶어요.
정진세
그런 섬세한 지점을 포착하고 드러내야만 하는 청소년 연극은 만들기가 참 어렵네요. 영화는 그런 예민한 지점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할 수라도 있지. 그런 점에서 잘 만든 청소년 작품을 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오진
최근에 영화중에 <파수꾼>(윤성현 감독)이라고 있잖아요. 청소년을 다룬 좋은 영화인데, 그걸 가지고 뮤지컬로 만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양구
이강백 선생님의 <파수꾼>?
이오진
왜 이래 이 오빠…
정진세
공동체 연극 작업하면서 같이하는 안산의 고등학생 배우들에게, 이양구 작가 아냐? 걸판 극단 아냐? 물어봤더니, 이양구는 한국 최고의 극작가고, 걸판은 한국 최고의 극단 아니냐고 그러더라고요.
이오진
좋다. 그 시절에 자기가 좋아하는 연극 작가가 있다는 게 어디야.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두산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