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그룹 빠-다밥 <데리러 와 줘!>
지옥으로 데리러 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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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연출가 겸 극작가 모토야 유키오의 희곡 「來來來來來(라이라이라이라이라이)」가 <데리러 와 줘!>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고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이다. 시골의 작은 마을, 야생조류공원과 튀김공장을 겸하는 집으로 시집 온 여자 "요코"를 중심으로, 외로운 여자들이 분수처럼 욕망을 터뜨리는 이야기다. 오늘은 "요코"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았다. 가출한 남편 야스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서이다.
<데리러 와 줘!> 공연 사진
안녕, 야스오 씨.
연극이 며칠 남지 않았어요. 혹시 오늘은 보러 오지 않으셨을까 객석을 둘러보았지만, 당신은 보이지 않네요. 보러 오시면 좋을 텐데. 하지만 괜찮아요. 요코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언제나처럼. 오늘도 극장에 온 관객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애매한 얼굴로 박수를 쳐댔어요. 자기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에요. 어제는 공연이 끝나고 한 여자 관객이 저에게 그랬어요. "요코 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고. 나는 그 관객이 어디 앉았었는지도 기억나요. 조류공원 입구 쪽 좌석이었는데. 아마 거기 앉았으면 공연 내내 귀청이 떨어져 나갔을 거예요. 어머니가 워낙에 저한테 소리를 많이 지르시잖아요. 야스오 씨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집을 나간 것이 나 때문이라고 믿으시니까요. 나는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는 않아요.
야스오 씨가 여기 소식을 궁금해 할지도 모르니, 몇 가지 소식을 전할게요. 치즈코 형님이 얼마 전에 공작새랑 같이 기름통에 뛰어들어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고는 말했죠? 덕분인지 도련님은 더 이상 치즈코 형님을 때리지 않으세요, 다행이죠. 형님이 불구가 된 이후로는 제가 조류공원 관리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해오던 일이라 익숙하지만, 가끔 형님의 천 기저귀를 빨다가 얼굴에 똥이 묻어요. 힘들지 않느냐고요? 아뇨, 전혀요. 전 괜찮아요. 살면서 시련이 닥치면, 나는 도망가는 것보다 극복하는 게 좋거든요. 요코는 잘 극복하고 있어요! 앗, 미안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여기 사람들 소식을 전하던 중이었네요. 음, 튀김공장에서 일하는 아키는 여전히 시아버지를 연모하고 있어요. 슬프게도 둘이 아직도 안 잤다고 하더라고요ㅠㅠ 아키의 남편이 돌아오려면 3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아키의 시아버지는 정말 금욕적인 남자에요. 착한 히로코는 여전히 마을의 모든 남자에게 착한 아랫도리를 선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어머니는 여전하시죠 뭐. 여전히 조류공원에 살다시피 하셔요. 매일 새들을 돌보시고, 그 중 한 마리를 저녁 식탁에 올리시고.
기억나요? 당신이 처음 나 여기 데리고 오던 날, 공작새 앞에서 프로포즈 했었잖아요. 얘네들 날개 폈을 때가 제일 예쁘다고, 그 광경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야스오 씨. 내가 엄청난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나 드디어 공작이 날개를 편 모습을 봤어요! 치즈코 형님이 공작을 기름통에 넣고 튀기던 날,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펼친 거예요. 물론 기름에 튀긴 공작새 날개는 아무리 봐도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이건 또 이거대로 잊지 못할 광경이었어요. 역시나 조금 서운한 건. 이제는 공작을 생각하면 자꾸 그 튀김의 모습만 떠오른다는 거…? 야스오 씨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데….
야스오 씨. 아까 말한 그 관객 말이에요. 공연 보러 와서 조류공원 입구 바로 앞좌석에 앉았던 여자. 내가 땀 흘리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라고 했던 여자. 그 여자가 그러는데요, 이 작품은 분명 코미디인데, 도저히 맘 편히 웃을 수가 없대요. 내가 시련을 주렁주렁 매단 채 “간당간당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에게 미안해지기만 하고 하나도 웃기지가 않대요. 실은 연출님도 비슷한 말을 해요. 공연 중반 이후로는 웃기가 힘들대요. 아, 연출님이 만날 나한테 그랬거든요. “네가 견디고 있는 게 드러나면 안 된다.” 나 견디는 거 아닌데? 자꾸 사람들이 내가 견디고 있는 거래요. 음, 그냥, 시련을 적극적으로 극복해나가고 있는 건데. 나 괜찮은데. 진짜 괜찮은데. 미치루도 만날 나한테 화내요. 미치루 기억나죠? 우리 조류공원에 오는 한 명 밖에 없는 손님. 학교에서 이지매 당하는 여고생. 매일 공원에 와서 그림을 그리며 우는 애요. 참 예쁜 아이인데. 요새 나보고 왜 이 집을 나가지 않느냐고 따지면서 막 울곤 해요. 나보고 나르시스트래요. 내가 내 생각 밖에 못 한대요. 날 보면 머리가 텅 비는 거 같대요. 나 너무 화가 나서, 그 아이를 새 우리 속에 가두고 한참을 꺼내주지 않았어요.
<데리러 와 줘!> 연출가 김한내(좌)와 배우 배선희(우)
야스오 씨,
김한내 연출
배선희 배우
내가 말한 적 있나요? 당신과 결혼하기 전 자위대에 있었을 때, 나를 무척이나 미워하던 상관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나를 죽일 작정이었는지, 매일같이 윗몸 일으키기를 시켰어요. 토하고 내장이 끊어질 것 같을 만큼- 그 사람의 취미는 나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하는 거였어요. 내가 할 만하다 싶으면 자꾸 횟수를 추가하는 거예요. 결국 나는 자위대에서 도망 나왔지만. 나는 여기서는 더 이상 도망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모르잖아요, 당신이 돌아올지도. 미츠루는 당신이 딴 여자랑 팔짱 끼고 가는 거 봤다면서 그림까지 그려왔지만. 나는 믿지 않아요. …내가 이상한가요?
있잖아요, 야스오.
가끔은 관객들이, 나와 여기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비상식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그냥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아키 보고도 다들 이상하대요. 시아버지랑 자고 싶어 한다고. 어머님보고도 다들 마귀할멈이라고 그러고. 히로코는 걸레래요. 히로코는 걸레는 맞지만 착한 걸렌데. 모두에게 친절한 착한 걸레. 히로코도 인정했어요. 그런데요 야스오.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익숙하지 않은 타입의 사람을 만나면 너무 쉽게 미쳤다고 말 해버리는 거 같아요. 음, 나 지금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을 비난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다만, 나와 내가 속한 이 세계가 꼭 모든 관객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요. 모두가 우리의 삶을 긍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는 거예요. 음. 아니면 우리가 일본 사람이고 관객들은 한국 사람이라서 문화 차이 때문에 그런 건가 싶기도 한데. 사실 일본에서도 우리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되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괴상망측하다 그러고 그랬거든요. 히타와 오리자 같은 작가. 막 <과학하는 마음>하고. 막 절제하고… 일본 관객들 그런 이야기 더 대중적으로 좋아하잖아요. 모토야 유키코는 일본에서도 어차피 매니악한 작가 맞는데. 이 작품을 한국 관객들이 더 공감하도록 번안해야 하나 생각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거 같았어요. 연출님도 그랬어요. 결국 관객이 받아가기 나름이라고. 결국 관객은 나름의 몫을 가져가는 게 아닐까요? 얼마 전에 아주머니 부대가 오셔서 공연 보던 날이 기억나네요. 저랑 치즈코 형님이랑 어머니랑 싸우는 거 보면서 격정적으로 좋아하시더라고요.
<데리러 와 줘!> 공연 사진
그냥 좀 궁금해요.
관객은 우리가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일까? 관객이 우리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작품을 잘못 만든 건가? 그렇다면 관객이 모두 다 이해를 하는 걸 목표로 연극을 만들어야 하나? 열 명 중 한 명의 관객이라도, 연출의 마음을 알아주면, 인물들에게 사랑에 빠지면, 그로써 충분한 걸까? 연출은 관객에게 친절한 방향으로, 텍스트는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상한 인물들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인물들로 바뀌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연출은 관객들이 모두 이 세계를 인정하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일까요?
그냥, 이 이상한 세계가,
이상하게 그냥 남겨지면 안 되는 걸까요?
작가 입장에서는 관객을 설득을 하려는 의도를 썼다 하더라도. 연출이 어느 정도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다면. 위태로움이 느껴지는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어쩌면 전부 다 설득이 되지는 않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나, 사실, 개의치 않아요.
웃건 울건 상관없어요.
어차피 우리가 다… 좀 이상하잖아요. 그렇죠? 이 세상사는 사람들 다,
이상하잖아요.
서로 전부 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계가 얼마나 될까요.
야스오 씨, 언제 오나요?來
야스오 씨, 데리러 와 줘. 이 지옥으로.來
야스오 씨, 근데 오긴 오나요?來
야스오 씨, 안 오면 안 올 거라고 연락이나 주지 왜….來
야스오 씨, 아, 됐다. 그냥 오지 마요.來
나, 지금도 충분히 좋아요. “장밋빛 인생” 이야.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Play For Life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