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창작집단 독 <터미널>

터미널에서 다음 여정을 기다리는 아홉 명의 작가

이오진_극작가
81호 2015.12.03
첫눈이 온 날이었다. 무지하게 추웠다. 코가 떨어질 것 같았다. 패딩에 장갑에 똘똘 싸매고 눈사람의 형상으로 극장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극장에 간다는 건, 진짜 귀찮은 일이구나.

첫눈이 온 날이었다. 무지하게 추웠다. 코가 떨어질 것 같았다. 패딩에 장갑에 똘똘 싸매고 눈사람의 형상으로 극장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극장에 간다는 건, 진짜 귀찮은 일이구나. 이 추운 날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며 TV 보는 걸 포기해야 하는 일이구나. 나처럼 리뷰를 써야 한다는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공연이 좋아서 극장에 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걸 보여줘야겠구나, 나 진짜 열심히 써야 겠다… 뭐 이런 다짐을 하면서 극장에 갔다. 매번 나와 비슷한 다짐을 하는 <미성년으로 간다>의 작가 김슬기가 동행했다.

'창작집단 독'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한 9명의 극작가들이 모여 올해로 10년째다. 예민하기로 치면 어디 가서 지지 않는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속살을 까놓는 일인 희곡쓰기를 10년째 함께 하고 있다. '독'플레이'라는 공동창작의 방식 아래 매번 새로운 주제를 정하고, 각자가 작품을 쓰고 함께 발전 시켜 무대화 한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 <사이렌>에 이은 이들의 세 번째 주제는 <터미널>이다.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고 떠나는 공간인 터미널에서 벌어지는 9개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공연을 본 날은, 박춘근의 <내게 이미 너였을 때>, 김현우의 <거짓말>, 천정완의 <소>, 고재귀의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 조인숙의 <가족여행> 이렇게 다섯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창작집단 '독'의 일원이자, 첫 책으로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세상에 내놓은 출판사 ‘제철소’의 대표 김태형 작가를 만났다.

창작집단 '독' <터미널>

오진
선배는 예전이랑 똑같아요. 되게 오랜만에 봤는데.
이렇게 마주 앉은 건 7-8년 만 인 거 같아.
태형
그렇게 됐나요.
슬기
희곡집 나온 거 축하 드려요. 책 참 예쁘네요.
태형
고마워요. 일주일도 안 돼서, 아직 서점에도 안 깔렸어요.
슬기
출판사에서 오래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태형
편집자로 9년 넘게 일하다 1년 전 쯤 그만 뒀어요. 주로 청소년문학을 다뤘죠.
오진
그런데 어쩌다 출판사를 열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셨어요?
태형
편집자가 수명이 짧거든요. 옮기기도 많이 하고. 관리자로 가기도 하고.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해서 오래 하고 싶었어요. 만들고 싶은 책들이 있기도 했고요.
슬기
‘제철소’는 희곡집 전문 출판사 인가요?
태형
그렇지는 않아요. 첫 책으로 희곡집을 내니까,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사실 희곡은 아예 시장이 존재 하지 않잖아요. 대형 서점에 가도, 희곡은 저기 구석 "예술" 코너에 꽂혀 있어요. 첫 책을 '창작집단 독'(이하 '독')의 희곡집을 내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장도 없긴 하지만, 자기 책 내려고 출판사 하나, 하는 시선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고. 하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책을 내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정체성 중 하나가 희곡 작가이기도 하고요. 오랜 고민 끝에 '독'의 희곡집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내기로 결정했어요.
슬기
그렇다면, 주요 독자층은 누가 될까요?
태형
소설의 독자층을 끌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 독자는 있는데 희곡 독자는 없잖아요. 저는 독자들이 희곡을 읽어보고 별로라서 안 읽는 게 아니라, 접할 기회가 잘 없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책의 카피는 "희곡, 문학의 자리로 돌아오다"예요. 소설을 읽어 온 독자들에게, 이 책이 발견되게 만들고 싶어요.

창작집단 '독' <터미널>

오진
<터미널> 이야기를 해볼까요. 프로젝트 박스 시야에서의 공연 이후 2년 만의 재공연이네요. 재공연을 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은 뭐였을까요?
태형
관객 반응이죠. 사실 2년 전 첫 공연을 하기 전에는 이게 될까, 짧은 이야기를 여러 개를 붙여 놓는 게… 작가들도 제작사도 많이 불안 했었어요. 하지만 막상 공연이 올라가고 나니, 각각의 관객들이 가져가는 부분이 다르더라고요.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오진
작품이 여러 개니까, 관객 각자가 자신의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장점이 있겠네요.
태형
오늘 공연은 어땠어요?
오진
아쉬운 작품도 있고, 좋은 작품도 있고 그랬어요.
태형
호불호가 있을 수 있죠.
오진
오늘 본 게 전체 아홉 작품 중 다섯 작품이었죠.
태형
그죠.
오진
작년에 공연한 <로스트>랑 이번 공연 <터미널>, '독'의 두 작품을 본 건데ㅡ 마치 '독'의 여덟 작품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여덟 개의 단막극을 본거니까…
개인적으로 전 이번 공연이 더 좋았어요. 작년 공연에서는 희곡의 언어가 여전히 작가의 언어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이번 공연은 여전히 남아있는 아쉬움 반. 반짝이는 작품들을 발견한 반가움 반이었어요.
아쉬웠던 지점은, 지난 번 공연 때도 느낀 건데, 여전히 작품 간의 편차가 크다는 부분. 그 간극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아홉 명의 극작가들이 함께 가는, '독'만의 시스템이 있는데,
태형
오진 씨가 말하는 아쉬운 지점이 어떤 건지 알아요.
그런 문제 제기들은 그 동안 쭉 있어왔고, 우리도 알고 있어요. 그만큼 민감한 문제기도 하죠. 저는 그게 작품의 편차일수도 있지만 취향 차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또 작가마다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테마가 있어요. 어떤 테마에서는 이 작가의 작품이 빛나고, 다른 테마에서는 저 작가 작품이 좋고. 우리가 친목모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같이 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렇다고 우리는 무조건 평생 9명 다 해야 돼, 이런 건 아니고요. 유닛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요. (웃음) ‘소녀시대 태티서’처럼.
오진
(웃으며) 태티서라니! 태티서라니!
슬기
레인보우 블랙!
오진
시스타 19!
태형
그래요, (웃으며) 그렇게 서로 제안도 해요. '독'의 초반 분위기는 무조건 같이 가자, 였어요. 다 같이 가는 게 아름답잖아. 조금 늦게 쓰는 작가도 있더라도 기다려주고. 왜냐면 같이 가는 거니까. 그러나 이제는 여건이 안 되고, 힘이 달린다면, 끝까지 가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도 해요. 꼭 전부 다 참여하지 않더라도,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죠. 예를 들어 이번에는 "사랑"에 대해 쓰고 싶은 작가를 모아보자. 그러면 우리 중 몇 명이 참여할 수도 있겠고.
슬기
단막극을 모아서 공연을 올렸을 때, 여러 작품 중 하나라도 내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을 발견하게 되는 장점이 있잖아요. 반면에 단막의 특성상 이야기가 더 갈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선에서 그쳐야 하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때문에 두세 작품에 집중하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태형
맞아요. 단막이라는 옷에 맞는 이야기도 있지만, 큰 그릇이 필요한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렇게 해보자고 제안 받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작가가 많은 건 연출에게 큰 부담이에요. 이번에 전인철 연출이 힘들었을 거예요. 9명의 작가를 상대하는 게 얼마나 징그러운 일이에요.
오진
살아있는 작가는 한 명도 많은데…
슬기
9명이나… (웃음)
태형
9명의 작가는 연출뿐 아니라 프로덕션에도 부담이에요. 제작비도 많이 들고. 그래서 오히려 공연 기회를 만들기에 어려운 점도 있어요. 아마 앞으로는 그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시작은 다 같이 하겠죠.

창작집단 '독' <터미널>< 터미널 - Love so sweet_4 >

오진
'독'은 매번 주제가 있잖아요. 이번에는 ‘터미널’이라는 공간적 조건이 있었고, 지난번 공연 때는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주제 아래 "겨울임에도 매미 소리가 울린다"는 식으로, 공통 미션을 주기도 하셨잖아요.
하지만 특정 조건하에 글을 쓰는 게, 어쩌면 작가 개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과는 오히려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쩌면 각 작가에게 "당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20분 분량의 희곡을 써 봐"하고, 그 다음에 최소한의 무대로 그 결과물들을 엮는 것이 작품을 모아놓았을 때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보았습니다.
태형
이해해요. 하지만 우리에게 "독 플레이"라는 게 의미가 되게 커요. 물론 공통으로 가는 소재 혹은 조건이 "독 플레이"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죠. 몇 년 더 이렇게 하다가, 어느 순간 각자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걸로, 진검을 꺼내 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직은 이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는 해요. 아직 이런 실험들이 재미있어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있지만요. <로스트>의 경우, 텍스트와 무대화 된 작품이 많이 달라요. 인물들이 작품의 경계를 넘나들게 만드는 연출적인 시도를 했기 때문이죠. 쉬운 일이 아니었죠. 작가 하나하나가 또 다른 세계인데. 구조적으로 어려운 문제더라고요. 그럼에도 우리는 시도를 했고, 가능성을 봤고, 한계도 느꼈어요. 지금은 그 과정인 거죠.
오진
대학 때부터, '독'은 늘 제가 동경하는 선배들이었어요. 대학로에서 거의 유일한 극작가 집단이기도 하시잖아요.
태형
그래서 잘 해야지, 생각 많이 해요. 잘 해야지. 욕먹지 말자. 우리가 잘 해야, 후배들도… 음. 연극원에서도 학번이 높고. 요즘에 사람들이 몇 학번인지 물어서 대답하면 나도 대답하고 깜짝 놀라요. 나 98학번이야. (웃음)

슬기, 흠칫하여 본다.

태형
나 보는 것 봐. (둘 다 웃는다) 내가 이렇게 고학번이라는 것에 가끔은 깜짝깜짝 놀라요. '독'은 좋은 프로덕션을 만나서 꾸준히 공연을 해왔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늘 좀 더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죠.
오진
'독'의 공동창작 시스템에서 오는 한계를, 팀원들도 알고 있고, 또 시스템 내에서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고민하고 계시다는 게 되게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태형
첫 공연 날ㅡ 작가들이 다 모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두 작가의 표정이 조금은 이상했어요. 이상하기도, 또 비슷하기도 했는데. 술자리에서 두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창작집단 독의 처음과 끝을 본 기분"이라고. 제가 그 뜻을 다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어요. 10년 전 시작할 때 그랬대요. 10년만 재밌게 놀아보자. 그럼 그 다음엔 뭐가 보이지 않을까? 그래요, 이제 10년 지났네요.

창작집단 '독' <터미널>< 터미널 - 소 >

오진
어느 기사에서, 태형 선배가 '독'을 "점잖은 사람들"이라고 표현 하셨던데.
태형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10년을 온 거 같기도 해요. 그 때문에 한계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 같기도 하고.
사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이거 써서 공연을 어디 올리자, 이렇게 마음먹고 써본 적은 제 기억으로는 없어요. 오진 씨가 선배들 면면을 봐서 알겠지만ㅡ 우리가 막 외향적인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친구도 별로 없고 (웃음) 혼자 글 쓰면 외로우니까… 심심하니까. 우리끼리 놀아보자. 하면서 시작된 게 '독'이고.
슬기
그럼에도 공연의 가능성과 관객을 아예 배제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태형
여전히 모색을 하고 있어요. <터미널> 공연을 보면서 작가들이 무언가 느끼고 있겠죠. 작가들이 왜 모르겠어요. 아쉬운 부분들. 그걸 아니까, 다음 작업에서는 또 다른 모색을 해보지 않을까요.
오진
다른 모색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로스트>처럼 작품들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태형
다음에는 서울에 대해서 써보려고 해요. 작가들이 동네 하나씩 정해서 써보려고요. 누구는 연희동. 누구는 공항동 이렇게.
오진
아, 너무 좋네요.
슬기
재미있을 것 같아요!
태형
재밌는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해요. 100%의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 이것저것 시도해보자, 하고 있어요. <터미널>이 끝나면 오랜만에 스터디를, "독 플레이"를 다시 시작하게 되겠지요.

극단 인어 <변태>

<터미널>의 아홉 개 작품 중 다섯 개를 보았다. 어느 공연은 조금 힘겨웠고, 또 어느 공연은 고마웠다. 그 간극에서 헤매었다. 극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형태로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이다. 극장에 오는 관객들은 응당 작가의 최대치의 무대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를 맡기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연례행사로, 혹은 매섭게 추운 날 목도리를 친친 감고 불편한 걸음으로 극장에 온 관객들에게, 자신의 실험의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것은 작가들에게도 모험일 것이다. 어쩌면 이 모험은, 관객보다는 작가들 자신을 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혼자 쓰는 일도 어렵지만, 아홉이 쓰는 일은 몇 배로 더 수고로운 일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독'은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함께 쓰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가능성을 발견하며 진화(進化)하고 있는 실험의 문턱에서, 왜 당장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지 않느냐고 탓하는 관객이 아닐까. 그러나 관객은 진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이기 이전에 '오늘의 공연'을 보는 사람이 아닌가. 어쩌면 이런 질문을 하는 나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종류의 실험을 애초에 포기하고 있는 작가는 아닐까.

막차시간이 다 되어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집에 돌아와 <터미널>의 나머지 네 작품을 읽었다. 작가들이 수없이 만지고 품었을 희곡의 언어를 가만가만 따라가 보았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이었다. 희곡집을 읽는 일.

그들의 다음 작업 <서울>을 기다려 본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Story P 제공]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