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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성북동 비둘기 <하녀들>

지하로 내려가는 일상의 계단, 천국으로 올라가는 연극의 계단

정진세_작가
82호 2015.12.17
연극을 본다. 무대 위의 나 자신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어떤 ‘나’인가. 권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나? 굴종을 강요받는 나? 나는 이러한 압제 속에서 가여운 피해자가 되어 길들여지는가?

* 극단 성북동 비둘기는 12월에 상연되는 <하녀들>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보금자리인 “연극 실험실 일상지하”를 떠난다. 웹진 [연극in]에서는 <하녀들>의 세 배우인 김미옥(마담 역), 조서희(쏠랑쥬 역), 이송희(끌레르 역)을 만나 일상지하에서의 마지막 연극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극을 본다. 무대 위의 나 자신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어떤 ‘나’인가. 권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나? 굴종을 강요받는 나? 가여운 피해자가 되어 길들여지는 나? 끔찍하고 불결한 세상에서 항거의 당위성을 꿈꾸는 나? 그러나, 하녀들은 아니다. 지금 여기의 하녀들은 마담의 억압에 의해 스스로 얼마나 망가졌는지, 그러한 망가짐을 어떻게 즐기는지, 힘을 가진 이들을 얼마나 동경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리하여 하녀들은 기존의 연극이 얼마나 억압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를 '이용' 해 왔는지를 되묻는다. 연극은 그런 게 아니야. 일상지하의 하녀들은 이제 막 살인을 저질렀고,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해 벌벌 떨고 있으며,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연극을 잠시 빌려와서, 논다. 놀지만 즐겁지 않다. 편하지 않다. 지금 여기의 하녀들은 곧 쫓겨나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것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더욱, 거칠게, 힘들게, 온몸으로, 연극을 놀고 있다.

인물 형상화에 대하여

정진세
하녀들이 실제로는 아름다우시네요. 무대에서 땀범벅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맨 얼굴로 보니 놀랐습니다.
조서희,
이송희
감사합니다. (웃음)
정진세
먼저, 마담의 역할부터 이야기를 해볼게요. 개인적으로 미옥배우님이 맡은 마담 역할은 한국 평론가들의 모습과 너무 흡사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말투도, 생김새도, 옷차림도. 특정대상을 모방한 것인가요?
김미옥
어느 날은 제 옆자리에 평론가 선생님이 앉아 있는데, 너무 비슷한 거예요. 저도 이렇게까지 똑같을까, 둘이 쌍둥인 줄 알았어요. (웃음) 직접적으로는 얘기는 못 해봤지만, 공연을 하다 보니까 마주치죠. 특히 이 공간에서는 평론가 선생님 얼굴을 본 적이 많거든요,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여기서는 어느 분이 계셨는지, 그 분들의 표정 하나하나 본 적이 많죠.
정진세
평론가가 연극을 관객처럼 보지는 안잖아요. 극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해야 되나? 얼마나 잘하는지, 어떤 게 미흡한 지를 보는 역할이고요. 그 의미가 그대로 이 작품에 적용되었던 것 같아요. 저들의 연극이 얼마나 합당한지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으로 느껴졌고요.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작업에서 인상적으로 여기는 건 여배우가 맡는 캐릭터들이거든요. 고정된 인물상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마담도 지적(知的) 이지만 굉장히 예민하고 한편으로는 되게 히스테리컬한 모습? 그리고 강한 자의식을 가진 한국사회 지식인 중년 여성의 모습이랄까. 어쩌면 겉과 속이 다른 속물일 수도 있고요. 그 해석이 재미있었습니다. 하녀들은 어떻게 인물과 만나게 되었나요?
이송희
연출님이 배우를 어떤 틀 안에 가두지 않아요. 연기하는 인물이 ‘나’니까 이송희라는 사람을 먼저 알게 하는 거죠. 그게 가장 큰 도움이 돼요. 그 인물한테 다가갈 때 무조건 이 인물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게 아니고, 나부터 생각하게끔 만들어요. 나를 통해 인물의 부분들을 만들어나가요. ‘놀아라’하는 주의예요. 딱히 뭘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하는 주문을 거의 못 들었던 거 같아요.
정진세
연습과정은 연극의 등장인물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네요?
이송희
그걸 가장 중시해요.
조서희
저도 똑같습니다.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잘 못 놀아서요. 연출님이 좀 놀아 보라고, 너 자신을 알아보라고…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주셨어요. 마지막에 안 되니까, ‘그럼 너의 멋대로, 그냥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해봐’ 하셨어요. 그게 결국에는 ‘나’로 하라는 거잖아요.
김미옥
그게 쉽지가 않아요.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거, 자기 자신한테 솔직해 진다는 거, 자기 자신을 알아간다는 거. 나의 액면가를 꺼내 놓는 거니까요. 배우들에게는 ‘빨간 버튼’이라고 해서 절대 누르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를 표현하고, 나의 본모습을 꺼내는 작업이면 괜찮을 것 같다가도, 막상 그것에 직면하면 숨는 배우들이 있죠. 다행히 이 하녀들은 원체 성격도 솔직하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도 빨랐구요.
정진세
연기가 인위적으로 그럴싸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보다는 뭐랄까, 좀 날것? 살아있는 것? 이라고 해야 될까요?
김미옥
그 지점이 우리의 연극성하고도 통하는 거죠. 만약에 어떤 캐릭터의 기술적인 부분을 보려면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나아요. 우리는 편집으로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보여주자는 것이고요. 인물들의 숨이 관객의 숨과 동일시될 때 그게 연극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극단 성북동 비둘기 <하녀들>이송희 배우

연극을 본다. 무대 위의 인물은 고통을 당한다. 그것은 나다. 그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공감과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하녀들은 아니다. 너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미개하지 않아. 나는 짐승같이 울부짖지도 않아. 그대들은 내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의문이 잇따른다. 나 아닌 것들을 왜 봐야하나. 왜 서로 모욕하고 잡아먹을 듯 싸우는 두 여자를 봐야하나. 서로 다른 계급으로 모멸감을 나누는 상황을 봐야하나. 내가 보는 연극은 이런 것인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지하실이었다. 시퍼런 날이 서있는 작업등으로 공간을 밝히고, 저 옆에는 연습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있는 연습실이었다. 불쾌해. 불편해.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더욱, 힘들게, 온몸으로, 연극을 보고 있다.

텍스트의 어려움에 대하여

정진세
장주네의 <하녀들>은 텍스트 자체가 어려워요. 물론, <햄릿>도 <카프카>도 <자전거>도 다 어렵지만. (웃음) 특히 <하녀들>은 계속 연극놀이를 통해 역할이 바뀌잖아요. 게다가 극단의 스타일에 맞춰야 하니까,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풀기에 쉽지 않았을텐데.
이송희
많이 어려웠어요. 일단은 연극놀이를 해야 되는데, 이걸 왜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놀아야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왜 할까.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놀이를 왜 하녀들이 매일 같이 할까. 첫 번째 난관이었고요, 두 번째는 살인을 저지른 후의 두려움을 가지고 이 놀이들을 진행해야 하거든요.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공연하면서는 이를 염두에 두고 둘 다 가져가는 게 어려웠어요. 하나가 생기면 하나가 없어지고 그런 식이라.
김미옥
연출님이 여러 샘플을 많이 제시했었어요. 맥락을 하나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떤 놀이든 그 흐름을 하나로 풀 수가 있거든요. 어느 날은 연극하는 이야기로, 어느 날은 성폭행을 당한 여자의 일생으로… 지금은 이 친구들이 텍스트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외려 극으로 들어가면 더 쉬울 거예요.
조서희
매번 설정을 주시는데 그걸 제 걸로 또 바꿔야 하잖아요? 연출이 설명해 주시는 건 결국 연출의 흐름이고 결국 연출의 것이니까. 그걸 제 흐름으로 만들고 제 것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걸 만드는 게 힘든 거 같아요. 1장에서 벌벌 떠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장에 쏠랑쥬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걸 나의 흐름으로 가져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이송희
쏠랑쥬의 시나리오기 때문에 더 어려웠을 거예요. (웃음)
정진세
성북동 비둘기의 작품이 재미있죠. 그런데 작품에서 재미와 웃음과 놀이를 조금씩 구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기본적으로 배우가 재미를 통해서 놀이를 끌어오거나, 놀이를 통해서 재미와 웃음을 끌어올 수 있죠. <메디아>나 <열녀춘향>처럼. 그런데 <하녀들>은 놀이와 재미와 웃음의 포인트들이 각각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미옥
맞아요. 하녀들은 재미있게 하는데 보는 사람은 냉정하죠. 조명도 무대도 살벌하잖아요. 끔찍한 놀이를 웃으면서 볼 수도 없죠. 실제로 <하녀들>의 모티브가 됐던 파팽 자매의 이야기도 그랬다고 해요. 문을 딱 열었는데 그들이 놀고 있는 모습들이 섬뜩하고.
정진세
나중에는 인물들이 극을 주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 있겠더라고요. 각 장별로 성격이 나뉘어지는 것도 느껴지고. 점점 관객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동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 같아요. 극의 러닝타임은 70분인데, 전혀 길게 느껴지지도 않고요.

극단 성북동 비둘기 <하녀들>조서희 배우

이들은 날마다 연극을 했다. 12월 한달도 그럴 것이다. 그 전에도 연극을 했나? 그렇다.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를 했고, <망루의 햄릿>을 했고, <열녀춘향>을 했고, <헤다 가블러>를 했다. <자전거>를 했고, 외국에서 <메디아 온 미디어>를 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하고, <성북동 갈매기>를 하고, <혈맥>을 예술의 전당에서 하다가 강남 아줌마 관객들의 무관심을 겪었다. <미스줄리>를 하고, <하녀들>을 했다. 일상 지하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니까 이들은 참나, 이런 뭐 지하실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제목도 한결같다. ‘Bye cycle’로 오태석 선생의 <자전거>를 보내버렸고, 열녀춘향은 졸지에 ‘십(씹)/녀 춘향’이 되었다. 메디아는 미디어의 채널(on media)을 담당했으며, 세일즈맨은 ‘데스맨(Death man)’이 되어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혈맥은 버스(inn)를 칸막이로 구분(dividual)했으며, 갈매기는 성북동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압권은 아무래도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 연극하는 어르신들이 오만상을 찌푸릴 장난스런 제목을 달고 나왔다. 시작부터, 우리 연극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 붙어라, 는 엄지가 곧추세워졌던 셈이다.

연기에 대하여, 놀이에 대하여

정진세
신체적인 부분이 강하잖아요. 에너지도 많이 소모하고. 앙상블의 합도 맞아야 하고요. 이런 점은 어떻게 맞춰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미옥
예를 들어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는 20분간 무한체력을 발산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그 20분을 만들기 위해 두 시간을 연습해야 돼요. 그렇게 연습을 해야 20분을 할 수가 있고. 인물들도 의자를 잽싸게 치우려면 어느 정도 기초체력이 있어야 하고요. 그 훈련들은 따로 하죠. 훈련을 계속 안 하면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기초체력은 꾸준히 다집니다. 물론, 우리 팀이 일부러 타고난 체력을 가진 사람을 쓰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 (웃음)
정진세
극단 성북동 비둘기 배우들의 미학은 인물이 기진맥진하는 데까지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 상태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랄까. 소진된 육체와 절박한 심리가 결합되어서 관객들을 사로잡는 지점이 있어요.
이송희
둘이 하는 부분에서는 완전히 상대를 믿고 가요. 이 친구가 잘 소화해주고 잘 받아주는 사람이니까 그걸 믿고 제가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 어떻게 될까봐 얘 다칠까봐 이런 거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죠. 내가 어떻게 해도 이 친구는 잘 피할 거야. 그냥 완전히 믿어 버려요.
김미옥
오히려 합을 맞추면 더 어긋나는 느낌이 날거예요.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
정진세
연기의 디테일들을 잘 살리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런 순간이 관객들을 사로잡는 것인데, 그런 섬세한 장면은 어떻게 만드시는지.
이송희
연출님이 시키는 거예요. (웃음) 연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데요. 짜인 틀에 의한 거라기보다는, ‘흐름’ 을 중요시 하는데, 그 범위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연출님이 일단 놀게 만들어요. 놀다보면 그게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 변주가 생겨요. 그러면 배우가 아까 하지 못했던 디테일들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쏠랑쥬가 연습과정에서 저한테 꽃을 던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 연출님이 찾아낸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조서희
아, 이렇게 하나 찾기도 어렵다고 하면서… (웃음)
김미옥
공연 전에 배우들이 준비하는 시간이 있잖아요. 하녀들은 그냥 놀아요, 둘이서. 대사를 가지고 놀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둘이서 놀아요. 서로 잘 못하는 걸 놀리기도 하고요. 이런 놀이의 관계들이 점점 호흡으로 맞아 가면서 공연 때 디테일로 잡혀가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막상 공연 때는 자기들이 이걸 잡았는지도 몰라요. (웃음) 그리고 다음 날, 또 새로운 놀이를 막 해요. 자기들끼리. 그러다가 공연 시작하자, 그러면 또 막 공연을 하면서 디테일들이 생겨나는 거죠.
정진세
의자놀이가 압권이에요. 오브제를 통한 긴장감이나 위태로움도 강하고, 일사분란하게 착착 정리하는 모습도 섬뜩해요. 하얀 조명아래 시멘트 바닥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은 이 공간을 마치 고문실처럼 느껴지게도 하고요.
김미옥
매일 그렇게 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죠.
정진세
<하녀들>의 텍스트에 위축되지 않으려면, 연습하는 일상에서 노는 것도 잘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미옥
네, 맞아요. 공연 전에는 이들이 마담이에요. 나도 하녀, 기획도 하녀, 연출님도 하녀예요. (웃음) 오늘은 저녁 5시에 밥을 먹는데, 갑자기 쏠랑쥬가 배가 안 고프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 스태프가 밥을 다 못 먹었어요. 자기가 연습을 해야 한다니까. (웃음) 근데, 갑자기 6시에 나는 밥을 먹어야겠대… 공연을 해야 되니까 자기는 밥을 먹어야 된대. 그러더니 밥을 차리고 먹는 거예요. 나는 하녀처럼 옆에 앉아있고.(웃음) 공연이 올라가야 하녀들인 거지… 평소에는 마담이에요. 이 안에 마담 끼가 가득해요. 우리가 지금 상황이나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은데 이 이들이 놀고 있는거 보면 재밌죠. 연출님은 하녀들 때문에 즐거워해요.

극단 성북동 비둘기 <하녀들>

마담. 평론가. 연극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자. 학교에서 극장에서 언제나 선생님 소리를 듣지. 누군가가 연극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가 연극을 할 수 없게도 만들지. 상상력? 감수성? 지성? 비평? 연구? 한국연극? 난 네가 싫지만, 너를 싫어하면 할수록, 왜 나를 혐오하는 것 같지? 내가 너인가? 나는 왜 온전히 너를 미워할 수 없지? 그렇지만 나는 왜 네가 되고 싶지? 아니야. 너를 죽이고, 나는 또 다른 네가 될 거야. 너보다는 나은 네가 될 거야. 쓰레기가 쓰레기를 사랑할 수 없다고? 하녀들에게 하는 말이야, 아니면 마담들에게 하는 말이야?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야?

기억나는 장면들

정진세
물가에서 자매들이 노는 장면이 서정적이고 뭉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조서희
이 자매는 누구보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잖아요. 그런 만큼 놀이를 하면서 서로의 치부도 말하면서 놀릴 수 있는 거고. 결국엔 두 자매의 애정이 어디에서 나올까, 애잔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님이 그 장면을 넣은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김미옥
놀이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숨바꼭질도 할 수 있는 거고, 쎄쎄쎄도 할 수 있는 거고. 이들이 눈빛만 봐도 가위바위보, 이렇게 나오듯이. 하나가 여기를 물가로 생각하면, 다른 하나도 여기가 물가인 거죠. 이 둘만 공유할 수 있는 게 있는 거죠.
정진세
순수했던 시절이 느껴져서 애틋했어요. 완전히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 더 잘 보일 수 있게 한 것 같고요. 동생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일 때와 동생을 등에 업고 가는 장면들도 교차하죠.
조서희
저는 세 살 위 언니가 있는데, 여자애들이 나름대로 놀고 싸우고 화해하는 방식이 있어요. 잘 놀다가 막 싸우고 그러죠. 연극에서도 마담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있고, 그래서 의자를 갖고 싸우잖아요. 의자를 쌓다가 와르르 무너지고, 그거를 보고 둘 다 직감적으로 놀이를 생각해내는 거예요. 자매니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공간이 있고요.
정진세
역시나 이 작품에도 총을 겨누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김현탁 연출님이 선호하는 장면 같아요.
김미옥
연출님이 <메디아 온 미디어>했을 때, ‘야, 이거 배우라고 하면 그런 장면은 굉장히 멋있지 않냐?’ 막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사실 연극에서는 그 장면이 쓰일 일이 별로 없거든요. 제일 많이 쓰는 건 사실 칼이죠, 아니면 몽둥이나 주먹. 근데 총격전을 만드는 건 가상의 공간을 우리가 세워야 하기 때문에 좀 유별나죠. 저도 그 메디아 씬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멋있거든요. 나 너무 멋있어, 그러는데 얘(조서희)가 따라하고.
정진세
비장함을 살리면서, 어떤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는 장면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김미옥
초연 때도 너무 좋아했던 장면이었어요. 의자 몇 개로 ‘야, 버스타고 도망가자’ 근데 딱 뒤집었는데 ‘기차타고 가자’ 그렇게 되고, 그럼 기차에서 뭘 하지? 인질극을 하자, 이렇게 쌓여 나가는 설정이 재미있었거든요. 지금 봐도 너무 좋은 장면이에요.

극단 성북동 비둘기 <하녀들>

하녀. 배우. 연극의 가장 밑바닥에서 노예처럼 부림당하는 여배우들. 선택받아야 하는 위치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검열하고, 상대를 검열하지. 학교에서 극장에서 언제나 선생님을 보며 고개를 조아리지. 그들의 권력에 덜덜 떨지. 그들을 죽이고 싶으면서, 그들을 거꾸러뜨리고 싶으면서. 그러면서도 스스로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자신을 낮추는 것이 그들의 눈에 띄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여배우의 존엄을 굴종과 맞바꾸지. 마담은 아름다우세요! 마담은 멋져요! 마담은 언제나 나의 연극을 보고 있어요. 나의 망가짐을 보고 평가해주세요. 나에게 베스트 타이틀을 주세요. 점수를 주세요! 나의 연출들에게 지원금을 달라고요.

관객들에 대하여

김미옥
요즘 관객들은 다양한 연극들을 많이 보니까 각자 나름대로의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본 만큼, 그 이상을 기대하기도 하고요. 처음에 우리가 이런 거 할 때는 낯설고 신기하니까, 재미있다 놀랍다 하다가 이제는 그런 공연들이 많아지니까 더 실험적인 걸 원하기도 하고. 좀 냉정해지시는 거 같아요. 자기의 시선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서.
정진세
예전에 이미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봐도 놀라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 작품은 새롭다는 인식과 연결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지요. 혹시 기억에 남는 관객 분들 있을까요?
조서희
저는 아직 관객들을 체크하거나 반응을 볼 만큼의 여유는 없더라고요. 그런데 두 가지 케이스는 있어요. 저를 그냥 편하게 봐주는 관객들이 있고, 저를 불편하게 보는 관객들이 있어요. 초반에는 불편해하는 관객 분들은 저를 싫어해서 안 보는 줄 알았어요. (웃음) 내가 지금 얘기하는 데 들어줬으면 좋겠고, 말을 막 해도 봐줬으면 좋겠고. 어느 날은 심각했다가 어느 날은 같이 웃어주시고. 저는 아직 체크가 전혀 안 되는 상태라서 관객 분들의 영향을 안 받는 것 같아요.
이송희
이야기를 들으니까 영향을 받고 있는데? (웃음)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 때와 비교해서 말하자면, 무대와 객석의 형태도 달라서 그랬지만, 그때는 제가 관객들을 좀 두려워했거든요. 강박도 심했고. 그런데 이번 <하녀들>은 마지막 커튼콜 때 되게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는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공연 중에는 분명 얼어있는데, 커튼콜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따듯하게 박수쳐주시고, 그 모습이 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정진세
오늘은 저와 장우제 작가님 그리고 중년 관객들 해서 총 6분 정도였는데, 다들 잘 보시더라고요. 중간에 나가실 줄 알았거든요. 불편한 장면들도 잘 넘기고, 나중에는 하녀들의 모습에 설득되어있는 모습이었어요. 살펴보면, 일상지하 이 공간은 찾아와준 관객들의 힘이 정말 컸던 것 같아요. 평론가 선생님들도 이런 곳을 오는 사람들이 아닌데, 정말 관객의 마음으로 여기에 와서 격려하고 기록하고 그랬죠.
김미옥
저희가 연습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여성분이신데, 여기서 공연을 지금 안 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조만간 또 할 거라고… 한동안 안 하는 것 같아서 궁금하다… 그러시더라고요. 이 동네 사시는 주민들도 여기 관심을 갖고 있었던 분이 있는 거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이곳을 좋아하는구나… 지금은 또 마지막 공연으로 <하녀들>을 하고 있는데, 마지막 순간을 관객들이 같이 봐주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커튼콜 인사를 그냥 하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정말 고맙습니다”는 말을 꼭 하고 인사를 해요.

극단 성북동 비둘기 <하녀들>김미옥 배우

우리 삶의 구원을 현실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연극을 보는 것일까. 무대 위의 허구적 존재들을 통해 세상의 현실적 존재들이 힘을 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자기기만일지도 몰라. 마담은 타도할 수 없고, 하녀들은 구원받을 수 없어.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매순간 연극으로 빠져 들어야하고, 또 그 안에서 깨어나야 해. 내가 나를 얼마나 기만하고 있는지 기록해야 하며, 그 기만과 자각속에서 조금씩 발전하고 퇴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해야해. 이 절망의 변증법이 김현탁의 하녀들을 보면서 느낀 나의 소감이야. 귀하고도 천한 것, 아름답고 추한 것이 온전히 살아있는 이 시공간에서 나는 연극을 하고 있음에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을 느껴.

일상지하에 대하여

정진세
이번에도 역시나 팝송 ‘Stairway to heaven’이 연극을 정리해주더라고요.
김미옥
이 공연은 음악이 없기 때문에 하녀들이 엔딩 음악을 해주죠. 구성진 목소리로. (웃음)
조서희
반짝거리는 것은 모두가 금이라고 생각하는 한 소녀가 있는데 그 소녀가 천국으로 가는 계단마저 사려고 한다. 이건 제 해석이에요. 저는 그 노래를 연출님을 생각하면서 부릅니다. 제 생각이지만, 연극을 시작할 때, 이것만 가지고 살아도 내 삶이 엄청나지 않겠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면 행복하지 않겠나…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은데 10년이 지나온 지금도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또 그 답도 없는 것 같고, 막히는 부분이 하도 많으니까요. 그래도 이 공간이 사라져도 연극을 할 걸 아니까…
정진세
극중에서 평론가가 쓴 문장을 마담이 읽잖아요. 지하 소극장도 아닌, 그냥 지하실에서 이들은 실험을 하고 있다. 그 장면이 되게 짠하더라고요. 아마 그 극단 성북동비둘기가 처음 여기서 절박하게 공연했을 때와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죠. 이렇게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본 장면을 구성했을 텐데… 가장 웃겼을 그 장면이 지금은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실은 배우님들도 그 장면이 짠할 것 같아요.
김미옥
울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정진세
앞으로 일상지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김미옥
저희는 이제 12월에 나가는 거죠, 공연이 끝나고. 계약이 만료가 되면. 저희가 이 건물의 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요.
정진세
일상지하에 처음 왔을 때가 기억이 날 것 같아요.
김미옥
답이 없었어요. 절체절명이었죠.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 이거보다 훨씬 열악했거든요. 물도 바닥에 엄청 있었고, 쥐도 있었고. 지금은 너무 훌륭해진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저녁 공연하고 낮에 다른 작품 연습하고… 그런 생활이었죠. 앞으로 우리 숙제예요. 우리가 어떤 걸 다시 시작하는 것. 안정적인 거는 바라지는 않지만, 저희가 뭐 안정적이었던 적도 없었고요. 송희 말대로 다시 또 일어나겠죠. 어쨌든 저희는 이 공간이 없었을 때도 연극을 했었고, 이 공간을 만들었을 때도 다시 일어날 거라는 걸 확신했고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고 하는 소녀. 그곳에선 그녀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당신은 지하로 내려가는 일상의 계단을 딛게 될꺼야. '일상지하' 라는 한국연극의 최전선에 위치했던 ‘망루’ 를 오르고 내리며 연극을 해 왔던 그들에게, 성탄절 인사와 새해 인사를 건넨다. 가장 누추한 마굿간에서 고귀한 존재가 탄생했다는 걸 잊지 않을게. 그리고 부디 행복하기를...(Happy new year)

극단 성북동 비둘기 <하녀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극단 성북동 비둘기 제공]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