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그42 <오카다 토시키 단편소설전 - 여배우의 혼, 여배우의 혼 속편>
여배우와 나와 혼(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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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까지, 비평가였습니다. 웹진 [연극in]에 리뷰를 썼죠.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내가 비평가를 그만둔 건, 남의 공연을 평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걸 로는 돈이 안 되니까, 이제 곧 마흔도 가까워지는데…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어서라는 건… 거짓말이고요. 뭐 이미 이렇게 살게 된 거, 할 줄 아는 건 공연보고 글을 끄적거리는 거 밖에 없는데… 평생 그러고 살아야겠지 하는, 체념이 들더라고요. 내가 비평가를 그만둔 건 죽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어쩌면 유서일수도 있고, 혹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혼이 비정상이라 그러는 거니까, 읽는 분들은 이해해주시길.
그러니까, 나는 죽었는데요. 죽고 나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일단은 죽었기 때문에, 다음주부터 ‘연극이 끝난 후’에 원고를 쓰지는 못할 거 같아요. 독자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좀 슬프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원고 마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맘이 후련하더라고요. 이젠 비평이니 소통이니 생각하지 말고 원하는 공연이나 왕창 보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한번은 의식의 흐름대로 리뷰를 써보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퇴고니 뭐니 할 것 없이 앉은 자리에서 30분 동안 맥주를 홀짝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공연에 대해 막 쓰는 거요. 의식의 흐름이라는 게 얼마나 마음이 편하냐면, 머릿속에 대본이 있어서 그걸 보고 줄줄 읽는 그런 느낌? 그러니까 마치 극중에서 와카야마가 무대 벽에 기입된 대사들을 줄줄 읽어 내려가는 방식처럼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그러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보고 있는 리뷰는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죽은 나가 룰루랄라, 하면서 끄적이고 있는 글인 거죠. 왜냐면, 나는 <여배우의 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죽었는데요, 죽고 나니까 그냥 리뷰가 괜히 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주인 잃은 책상에 앉아서 허겁지겁 원고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잘 써야한다는 강박 없이 쓰니까 괜히 신났고, 글을 다 쓰고 나서 제목을 정하고 나니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제목은 바로 여배우와 나와 혼(魂)입니다.
공연 장면
오카다 토시키에 대하여
- 정진세
- 결말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새 연극은 끝을 어떻게든 내기 위해서 갑자기 인물들이 마지막에 즐거워지는데, 이 연극은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식당에서 코야마와 와카야마 둘이 나눈 이야기도 궁금해졌고요.
연출가 마두영
- 마두영
- 엔딩이 원래 이렇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뒤의 이야기가 있어요. 둘이 식사를 하러가서 코야마에게 와카야마가 자신의 환생이야기를 들려줘요. 거기서 와카야마가 미술가로 다시 성장하고, 대성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시각예술가인 와카야마는 미디어아트도 하고, 퍼포먼스도 해요. 나중엔 퍼포먼스 예술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죠. 나중에 부고란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퍼포먼스 예술가로 이름을 적게 돼요. 하지만 지금이 좋다고 생각이 들어서 바꾸지 않았습니다.
- 정진세
- 다원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연출가 오카다 토시키만의 어떤 특화된 장르이기도 하겠네요. 언어에 기반한 연극도 하면서 실험적인 신체 움직임을 쓰는 퍼포먼스도 하니까.
- 이홍이
- 네, 연극연출가이면서도 미술계에서도 활동을 하시는 분이라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 정진세
- 재작년에 그의 작품인 <지면과 바닥>을 봤었는데요, 그때도 죽은 사람의 캐릭터가 나왔어요. 유령이었던 배우가 나와서 자막보다 먼저 얘기를 한다든지 초월한 존재가 할 수 있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든지 했던게 기억이 나요. 제가 궁금한 것은 극중의 여배우처럼 배우들이 그렇게 자신이 하는 연기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이 가능한가요? 극중에서 너무나 명쾌하게 설명을 해서 놀라웠거든요.
- 마두영
- 저는 연출가이자 작가인 오카다 토시키가 더 신기했어요. 오히려 배우들이 연기 자체에 대해 더 생각을 많이 하고 정리하는데, 오카다 토시키는 구체적으로 연기를 어떻게 할 때 관객이 어떻게 반응을 하고, 그런 거에 대해서 내가 지금 하는 말을 할 때 어떻게 말을 할까, 어떻게 움직일까, 하는 생각을 극작가가 배우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 정진세
- 혹시 그런 점을 미리 알고 나서 작품을 하신 건가요?
- 마두영
- 아니요. 드라마터그인 이홍이 씨가 추천해줘서 번역본을 읽어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 정진세
- 이홍이 터그님은 어떻게 추천하게 되셨나요?
- 이홍이
- 사실 오카다 토시키가 직접 저한테 번역극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이 작품이 원래 소설이기는 한데 이게 일본에서도 공연이 됐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소설이지만 1인극으로 해도 재미있는 게 있다, 해서 한 번 읽어봐라 해서 보게 됐어요.
- 이오진
- 이게 원래 단편소설인데 작가 본인이 희곡으로 바꾼 걸 여기서 번역하신 건가요?
- 마두영
- 아니요, 그냥 소설이에요.
- 이홍이
- 소설이 독백 형식이에요. 이것을 그대로 연극으로 한 거죠.
<여배우의 혼>은 죽은 코야마라는 여배우가 나와서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인데요. ‘연극이 끝난 후’ 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조아라 배우가 배역을 맡았어요. 조아라 배우도 자의식이 강한 편인데, 극중에서 코야마도 자의식이 강하죠. 여배우는 스스로 강함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자의식이 강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실은 코야마의 이야기일 것 같은 부분과 조아라의 이야기일 것 같은 부분이 서로 겹쳐지면서 보는 사람의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담담한 톤과 가벼운 손짓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일전에 역동적인 판소리를 보여준 그녀와 딴판이라 이러한 연기변신이 흥미롭기도 했고요.
극중에서 코야마는 감정의 주름을 촘촘하게 만들어서 건조하게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연기스타일이라고 했는데, 조아라는 이 연기론을 말하면서 어떤 연기술을 펼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실은 이제 죽은 거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비평가니까, 모르는 척 하고 있지만 웬만한 건 다 알죠. 물론 작품의 심오함이나 그 성찰의 깊이는 관객들이 더 잘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연출이 어땠는지 그 효과가 성공했는지를 따지는 건 비평의 몫이니까요. 이 자리를 빌어 모르는 척 의문문으로 질문했던 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관객들은 생각 좀 해! 하는 게 동시대 리뷰의 특징이라서 그런 걸까요? (라고 또 질문형식으로 물어보았네요)
공연 장면
준비작업에 대하여
- 마두영
- 작품이 번역되고 읽으면서 홍이 씨하고 계속 어떻게 할까요, 독백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요, 하면서 진행했어요. 와카야마 역에 이상홍을 어떻게든 해 보자, 다짐하면서 홍이 씨랑 얘기도 많이 하고요. 대본은 코야마 1인칭으로 쓰여 있는 소설이라 공연을 위해 분리를 시켜 놓은 거예요. 딱 떼어서 이 부분은 이상홍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 정진세
- 1인칭 시점의 소설을 2인극화한 거네요?
- 마두영
- 그렇죠. 3인극처럼 보이기도 하고. 코야마도 있고 연기하는 와카야마도 있고 그 역을 맡은 이상홍도 드러나게.
- 이오진
- 세 사람 있어!
- 마두영
- 제가 홍이 씨한테 물어봤어요. 왜냐면, 소설 속편은 초연인데 괜찮겠냐… 작가가 쓴 거는 1인칭 소설인데 의도와 달라지니까 이런 식으로 공연해도 괜찮겠냐하고 했을 때, 괜찮다고 답을 했고요. 이상홍 작가의 캐스팅 제의도 드라마터그와 같이 했어요.
드라마터그 이홍이
- 이홍이
- 저는 그 캐스팅이 좋았어요. 처음에 얘기를 해 주셨을 때. 이상홍 작가가 배우로 출연한 <순우삼촌>도 관람한 상태였고. 제가 오카다상이랑 거의 2년 넘게 계속 얘기하고 같이 있었는데 그 분 작품에서 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커요. 오히려 텍스트에 담겨 있지 않은 미술적인 부분도 굉장히 크다고 느끼죠. 근데 정말 미술가인 이상홍 작가를 배우로 캐스팅을 한다고 하니까 좋았죠. 연습과정에서 영감을 많이 주실 것 같았고요. 생각해보면, 리얼리즘 연극만 하던 배우가 그 미술가 역을 맡게 되면 되게 위험할 수 있겠다 싶었죠.
- 정진세
- 왜 그런가요?
- 이홍이
- 오카다상은 감정이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그런 연극을 해요. 그 분이 요코하마에서 연극을 시작했는데 그 극장이 벽이 다 하얗거든요? 근데 보통 극장은 원래 까맣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정말 불 꺼지면 완전 몰입하게 만드는데 그러한 이입을 아예 못하게 하죠. 그래서 너무 리얼한 연기를 하시는 분들은 오카다상과 근본적인 데에서 어긋나더라고요.
- 마두영
- 어찌 보면 큰 모험일 수도 있는데, 홍이 씨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오카다상이 미술을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러면 한 번 도전해 볼까? 그래서 하게 되었습니다.
- 이오진
- 공연을 보면서 배우들 말투에서 번역체가 조금 느껴졌어요. 완전히 다 바꾸신 건지 일부러 두신 건지 궁금했어요.
- 이홍이
- 번역은 할 때마다 늘 고민인 것 같아요. 저는 배우 분들과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러면서 배우 말투에 맞게 고친다거나 연습하면서 수정하는 걸 많이 해요. 그런데 이 작품은 원작이 소설이기 때문에 더 ‘안한’ 것도 있어요. 그리고 토시키의 언어라는 게 사실은 번역을 하기가 되게 힘든 구조예요. 그 자체가 일단은 굉장히 길고요. 어순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쓰는 글처럼 굉장히 흐트러진 말이어서 이걸 정돈해서 쓰면 너무 의도랑 달라지고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약간의 타협점을 찾으면서 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일본어 대본을 일본인이 봐도 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요. (웃음)
- 정진세
- 공연에 쓰인 말이 현대 일본어라기보다는 오카다 토시키의 언어가 아닐까요. 그래서 그 번역투가 의도라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관객들도 이 작품이 일본에서 왔다는 걸 아니까, 번역에 있어서 의도적인 부분은 그거대로 이질감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경우랄까?
- 이홍이
- 오카다 토시키는 연출로 되게 유명하잖아요. 독특한 움직임이나, 이번에는 한국 연출가가 이를 대신하기 때문에 ‘작가’ 오카다 토시키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런 작법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문체나 작가의 특징 같은 걸 되도록 살리고 가는 게 맞겠다, 라고 판단을 한 것 같아요.
- 마두영
- 그래서 혹시나 조금이라도 토씨나 말투를 수정할 때도 다 홍이 씨한테 다 물어보고 괜찮겠는지, 그럼 홍이 씨도 그걸 정리해서 오카다 상한테 대본을 보내줘서 다시 확인도 받고. 그런 식으로 했어요. 저도 사실은 번안극이면 번안을 해버리면 말을 더 편하게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번역극으로 올라가고, 어차피 일본 상황으로 올라가고 최대한 그걸 맞춰서 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요.
연극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퍼포먼스의 성패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 배우의 모습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나와 같은 비평가도 거의 비슷하거든요. 왜냐면, 작품이 잘나와야 비평도 잘나오는 거니까. 작품을 볼 때면 두근두근한 절정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여지껏 퍼포먼스가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고, 연출가의 설정이나 효과가 잘 먹혀들어가고 있을 무렵, 사실주의 드라마라면 클라이막스에 해당되고, 실험적인 퍼포먼스라면 그 개념이 변주되어 표현되는 순간일 겁니다. 그때, 비평가는 속으로 기도하죠, 제발, 잘 마무리해줘! 내가 이 작품을 칭찬할 수 있게 조금만 완성도를 더해줘! 우리 관객들이 좀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예술가의 미학력을 좀 더 발휘해줘!
하지만 이러한 기도는 대체로 허망한 것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비평가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연출가는, 배우는, 창작진은 아쉽게 그 치열한 승부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것이지요. 그것에 대해서 비평가는 식어버린 마음과 건조한 머리를 이용해서 기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참, 죽고 나니까 별 얘기를 다하네요. 물론, 한참 시간이 흐르고 문득 그 작품이 떠오르면 그런 생각은 합니다. 그 예술가도 잘 만들고 싶었을 거야. 그 마음은 기억할게.

디렉터그 42에 대하여
- 정진세
- 연출가와 드라마터그가 함께 있는 디렉터그 42 팀이 궁금합니다.
- 마두영
- 저는 원래 극단 12언어스튜디오에 소속된 배우입니다. 처음에는 그 안에서 연출을 하고 싶었어요. 극단 안에 연출가들이 많아요. 성기웅 연출, 김한내 연출, 정진모, 윤성호, 강민백. 어느날 성기웅 대표가 그러더라고요. 앞으로 연출을 계속 할 거면 단체를 만들어서 하는 게 좋다. 그게 연출가로서 경력도 쌓이는 방법이다. 원래부터 성기웅 연출가는 연출가들이 중심이 되는 그런 유니크한 단체를 생각했데요. 그래서 그러면 나도 극단을 만들어야 되는 건가? 생각을 했지요. 내가 배우니까 굳이 배우들이 있는 큰 극단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고, 제가 극작을 겸하는 연출은 아니니까 좋은 번역극을 국내에 소개시켜 주는 단체가 되자, 하는 생각을 했죠.
- 정진세
- 2015년에 결성된 팀이에요.
- 마두영
- <나는 바람>이라는 작품을 공연했을 때, 함께 했던 마정화 드라마터그님과 팀을 만들어볼까, 했는데 갑자기 이홍이 씨가 생각이 났죠. 정화 터그님은 영미권 희곡번역이 가능하고, 홍이 씨는 일본희곡 번역이 다 되니까 그렇게 두루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웃음) 물론 홍이 씨가 너무 바빠서 당연히 안될 줄 알았는데, 된다고 답을 한 거예요. 야, 이거 대박이다 싶었죠.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디렉터 한 명과 드라마터그 두 명이 있으니, ‘디렉터그’라는 신조어를 만들게 됐어요.
- 정진세
- 42는 마흔두 살까지만 하자?
- 마두영
- 마정화 드라마터그님이 셰익스피어를 전체 희곡을 다 다시 번역하고 싶은 꿈이 있거든요.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마흔두 편 썼대요, 그런 의미에서 42이고, 해외에서와 국내 ‘사이’ 를 연결하는 브릿지가 되고 싶다는 의미도 있고요. 마정화, 이홍이 드라마터그가 번역한 21편의 연극, 총 42편의 연극을 올리고 싶은 게 꿈입니다.
- 이홍이
- 드라마터그 혹은 번역가 입장에선 사실 동료라는 개념이 없거든요. 개인으로 활동해야 되고 외롭고 그렇죠. 특히 우리나라에선 일본 연극을 전공하시는 분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작품을 스스로 번역해서 여러 사람한테 보여드리게 되고 그게 맘에 들면 그게 작품의 추진이 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기 때문에 되게 힘든 것도 있고… 사실 <여배우의 혼>의 경우도 마두영 연출이 배우 출신이기 때문에 드린 것도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속으로, ‘아, 이건 어떤 연출가가 좋아하겠다’, ‘어떤 프로듀서가 좋아하겠다’를 미리 생각하는 거지요. 그렇게 하다 보니 너무 지치는 경우도 있고, 힘든 경우도 있고 그랬는데… 그래서 처음에 마두영 연출가로부터 연락 받았을 때 되게 기뻤어요.
- 마두영
- 저도 주로 배우 활동이 거의 80~90%고. 그 중에 1년에 한 편 정도를 연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1년에 한 편 정도 연출하는 걸 어떤 걸 할 거냐, 라고 생각했을 때 자연스레 번역극에 눈을 돌리게 됐어요. 국내 창작희곡은 더 좋은 연출들을 만나서 작품이 더 잘 되길 바라는 거고, 나는 그러면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 동시대성을 가지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 내가 연출로서 이런 작품 합니다, 보다는 재미있는 작품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한국 관객들이랑 같이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런 쪽이죠. 창작하는 사람들한테도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을 찾아서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이젠 드라마터그가 두 분이나 계시니 좀 더 마음 편하게 연출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이홍이
- 마두영 연출가는 배우들에게 배려를 많이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많은 연출가들을 만난 건 아니지만, 연극이 막 이론이니 개념이니 얘기를 갖다 붙여도, 결국 사람 대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거잖아요. 문제가 생겨도 늘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고요. 작품의 결과나 평가가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실은 그 안에 있는 인간관계인 것 같은데요, 마두영 연출은 배우들에게 배려를 잘 해준다는 점이 느껴졌어요.
연극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은 바로 돈을 벌기 위해 미대 누드모델을 했던 코야마와 그 학교의 학생 와카야마가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자살로 생을 마친 와카야마는 미술지망생으로서의 자의식도 한줌 없는 인간이고, 타살로 생을 마감한 코야마는 여배우로서의 존엄과 자부심을 가진 인간이지요. 죽은 사람들이 서로의 장르와 예술관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코야마는 와카야마의 근성 없는 모습이 답답하고, 와카야마는 코야마의 강단 있는 모습이 멋지지만 부러워하진 않죠. 저승에서 현세의 직업을 유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두고 기뻐하며 여배우를 기입하는 코야마와, 인종을 바꿀 수 없냐고 되묻는 와카야마의 모습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웃음이 교차합니다. 언뜻 보면, 와카야마는 어린시절 나의 모습을 닮았고, 코야마는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을 닮았네요.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 주어진 지면과 바닥이 있다는 이유로 연극계의 일을 조금씩 해오던 지금의 나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괴로워하던 10년 전의 나가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술인과 연극인, 예술지망생과 예술가는 비슷한 듯 엄청나게 다른 느낌이잖아요!
공연 장면
어려운 시절, 힘든 연극, 괴로운 여배우
- 정진세
- 제가 아는 조아라 배우는 에너지도 강하고 몰입력도 강한 배우인데, 이번 연극은 본인이 얘기하듯이 좀 담담하게 말을 하더라고요.
- 마두영
- 조아라 배우가 말만 이렇게 주구장창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언제나 판소리가 들어가든지 움직임이 좀 더 많다든지, 아니면 노래를 하는 식이 많았죠. 그래서 조아라 배우가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좀 보여줄 거다, 라고 했던 부분들을 싹 빼고 정말 말만하는 조아라를 만들어 보자, 생각했어요. 조아라가 평상시에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대본도 의식의 흐름으로 쓰여져 있고, 그래서 힘들었을텐데 잘 해내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장면인데 얼굴에 흰 칠을 하고 움직이면서 말하는 대사를 그냥 일상적으로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건 조아라 배우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그걸 움직임을 하면서 일상적으로 말할 수 있고, 이렇게 옷을 벗기고 온 몸에 한 겨울에 이 추운 1월에 몸에 흰 칠을 할 수 있을까. (다들 웃음)
- 정진세
- 얼굴에 붓질 할 때, 장면이 너무 깔끔해서 전율을 느꼈어요. 깔끔하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말이죠. 안무에 가까운 동작들이 편안한 말하기와 어울려 잘 드러났어요. 제가 아는 오카다 토시키는 움직임이 굉장히 기괴한 쪽인데, 이 작품은 아름다운 현대무용처럼 느껴졌고요.
- 마두영
- 대본을 3장으로 나눈다면, 이 장면이 딱 중간에 있더라고요. 산 자와 죽은 자가 경계에 있는 어떤 응용을 하는 거라서요, 그러면 와카야마가 사후세계로 넘어가기 전에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지점에 연옥에 있다고 한다면, 그때 와카야마라는 사람은 오히려 퍼포먼스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어서 뭔가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토를 생각했는데, 공부해보니까 단시간에 흉내 내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 정진세
- 조아라가 하는 부토는 너무 무서운 것 같아.
- 이오진
- 저는 외려 부토를 하는 언니가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우리 여배우 중에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 정진세
- 배우의 연기는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는 영역이잖아요. 좋은 연기, 잘하는 연기에 대한 생각도 다양하고요. 어쩌면, 돌아가신 백성희 선생님처럼 온 삶을 연극에 쏟아야지만 위대한 연기자가 되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극중에서 여배우가 죽고 나서 자신의 연기에 더 힘을 다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 마두영
- 사실은 소극장에서 굉장히 디테일하고 정밀한 연기를 하는 것과 대극장에서 큰 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연기를 보여주는 건 사실 되게 다른 부분이에요. 그런데 코야마는 내가 지금부터 시작해도 수백 년에 걸쳐서 내 연기를 완성할 수 있다는 포부를 갖죠. 손가락 하나 딱 움직이는데 대극장 전체를 휘감은 어떤 걸 하고 싶다는 그런 꿈이 되게 재밌는 것 같아요.
- 정진세
- 한국의 많은 연극 배우들은 그런 인생의 백년대계를 세우지 못하잖아요. 당장 자신이 힘드니까, 대중들이 좋아하는 연기의 스킬을 가볍게 쓰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은 참 안타깝습니다.
- 이오진
- 한국만 그렇게 어려울까요? 배우를 하면서 힘들지 않은 나라가 있을까요?
- 마두영
- 그것도 어떤 정부의 정치의 문제도 있겠지만, 복지의 문제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아비뇽 페스티벌(오프)에서 <코뿔소> 공연하고 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이 연극인들에게 보내는 존경 같은 게 있어요. 당시 한국문화원장이셨던 최준호 선생님께서 프랑스에서는 예술가 노동조합이나 사회적인 복지시스템이 탄탄하다는 점을 설명해주시는데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정해진 일수를 채워서 작품활동을 하면 그에 맞는 급여가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거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연극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정해져있죠.
- 이오진
- 무책임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시선이 있어요. (웃음)
- 정진세
- 연극인의 수식어는 ‘가난한’ 으로 굳어진 것 같아요. 가난한 연극인. 사실 굉장히 다양한 표현이 있을텐데... (웃음)
- 이홍이
- 일본도 비슷해요. 거기도 배우들이 다 아르바이트 하고요. 우리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죠. 근데 일본은 대학로 같은 곳은 없는데, 여전히 백년이 다 된 극단이 지금도 있고요. 근대 서구 연극이 들어오면서부터 소극장, 극단이 생겼는데 그게 쭉 이어져오고 있어요. 일본 연극은 버블경제 시기에 정점을 맞이했는데, 노다 히데키 같은 연출가는 잘 나갈때는 가수들이 콘서트하는 경기장에서 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두고 연극을 했다고 해요.
- 정진세
- 저는 말투가 재밌었는데요, ‘죽었는데 뭐 어때’ , 하는 정서가 느껴져서 였거든요. 아마도 그게 일본의 지금 세대를 대표하는 오카다 토시키의 세계관으로 이해됐어요. 빙하세대? 우리로 말하면 헬조선인 거죠. 결국 인류멸종이라는 공통감각인 거고. 가뜩이나 이렇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인데, 예술가들은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사실은 그 연극 안에서 일본 연극 여배우가 제일 힘든 것처럼 얘기했지만... 우리 연극계 여배우들이 제일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에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일필휘지로 써내려 가던 나는 갑자기 우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살아있을 때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막 떠올랐거든요. 그러니까 열심히 해서 정말 타기 어려운 상을 타본다거나, 작품을 잘 읽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창작자에게 듣는다거나, 나의 생각도 당신의 리뷰와 똑같아서 좋았다라는 댓글을 독자에게 받는다거나. 그러니까 나는 왜 살아있을 때 잘 못했을까. 근데, 또 생각해보면 살아있으면 또 일해야 하고, 마감에 쫓겨야 하고, 작품을 관극해야 하는 것은 예술을 향유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해야 하는 거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지금의 상태가 더 낫지 않겠냐고. 아, 나는 <여배우의 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빙판길에 넘어져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요. 넘어지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 마감을 끝내지 못했는데 그럼 그 원고는 누가 쓰지? 후임 필자는 누가 적당할까? 그래도 마지막에 <여배우의 혼>을 봐서 다행이다, 꽃점에 이상한 관객평을 쓰는 분은 누구일까? 이런 생각들이 흘러갔습니다. 자유롭고 싶어서 시작한 예술이고, 제대로 놀고 싶어 지속하는 연극인데, 죽는 순간에도 번뇌와 억압이 가득하구나, 하는 생각이 최후의 단상이었죠. 다시 살게 된다고 해도 잘할 자신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공연 장면
여배우의 삶에 대하여
- 정진세
- 아마 본인이 배우이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나오는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했을 거 같아요. 사실, 그냥 배우가 아니라 ‘여배우’죠. 여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해요.
- 이홍이
-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여배우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되게 비슷하거든요. 서양언어들은 어차피 남성, 여성명사가 주어진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동양권은 그렇지가 않아서 배우 앞에 ‘여’라는 글자가 붙었을 때, 그 정말 특유의 느낌이 드러나는 게 있어요. 그것을 공유할 수 있어서, 번역작업을 하면서 이 작품이 매력이 있다 싶었어요.
- 마두영
- 어차피 연기를 하는 건 여배우든 남자 배우든 똑같고 그래서 특별히 어떤 접근을 시도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연출하면서 생각이 드는 게, 결국은 똑같이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하더라도 남자배우들과는 다른 묘한 차별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부분으로 여배우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죽고 나서도 연기를 하고 싶은 그 마음에 집중했어요. 한편으로는 죽어서도 또 자살할까봐 걱정하는 사람을 같이 바라봤지요. 예술가 전체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동시대에 공연하는 사람들이 와서 좀 많이 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정진세
- 저는 남자배우들이 극중에서 기능적인 도구로 쓰일 때는 불편함이 없는데 여배우들이 그렇게 쓰일 때는 좀 불편하더라고요. 다른 상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죠.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를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이상홍’ 이라는 특별한 배우가 캐스팅 되었습니다. 극중에서는 와카야마(남)와 코야마(여)를 번갈아가면서 연기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정말 극중에서의 전공처럼 시각 예술가이기도 하지요.
- 마두영
- 제가 제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코야마(배우)와 와카야마(미술가)와 이상홍(실제)이 같이 공존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를 두지 않고 계속 연결 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이상홍 배우를 통해 미술 공부를 많이 했어요. 현대미술이 뭐냐, 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 최근 어떤 미술계의 경향이라든가 아니면 퍼포먼스 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들, 어떤 게 있는지 같이 찾아보고, 자기가 했던 작품들, 혹은 지인들이 했던 작품들 등등. 정말 미술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어느 순간에, 아 이런 사람이 무대에 올라가야겠다, 그런 실감나는 이상홍이 무대에서 필요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무대 위에 있는 작품 다 이상홍 배우가 만든 거고,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고, 그걸 보여주는 게 되게 의미가 있겠구나… 잘 된 것 같다고 생각해요.
- 정진세
- 이번 작품은 조아라 보러왔다 이상홍 보고 나가는 상황이었죠. (다들 웃음) 연기 분량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어요.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여전히 비평작업을 할 수 있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재미없다는 이유로 혹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밀려난 무수히 많은 작품들에 대해서 납득할만한 코멘트를 성심성의껏 달아줄 수 있을까. 발전적인 의견을 듣게 된 우리의 연극은 조금씩 나아질까. 연출에 대한 리뷰만이 아니라, 배우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연기술을 하나씩 기록할까. 관객들이 극장에서 만나는 배우들의 존재론을 대하 소설처럼 집필해볼까? 그렇다면 '한국의 여배우들'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여전히 어렵고 힘든 무대에서 혼신을 다하는 그녀들을 위해 나의 영원을 써야지.

죽음과 예술에 대하여
- 정진세
- 이 작품을 보면서 연극이 굉장히 제약이 많은 예술이구나, 현실적으로 어려움도 많고. 근데 죽으면 그런 제약이 없어지니까 되게 편하게 연극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 마두영
- 공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죽었는데 나도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데 내가 계속 의상을 만들고 있을까? 죽어서도? 막 그런 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잠을 안자도 되니까, 어떻게 보면 하루 종일 일을 할 수도 있는 건데, 과연 내가 사후세계의 영겁의 세월이 반복되는 그 긴 시간을 이 한 직업을 가지고 계속 할까? 그런 얘기도 많이 하더라고요.
- 정진세
- 그러니까 나도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 되는데, 돈을 버니까 작업이 지속성을 갖지 못하는 거예요.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돈 안 벌고 계속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내가 글을 잘 못 쓰는 건 살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다들 웃음)
- 마두영
- 근데 이건 오카다 토시키가 만든 사후세계니까 실제 사후세계는 또 다를 수도 있어요.
- 이오진
- 예술 작업이 인과과정이 있고 시작되고 나면, 그 다음에 나아지고 그러면서 내 작품에 집중하면서 진화를 계속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점점 나아지는 걸 내가 볼 수 있는게 엄청난 희열이 있네요. 극중에서 집중해서 연기를 발전시키는 여배우의 모습도 공감이 되고요.
그러니까 어쨌든 나는 죽었습니다. 아마도 다음 리뷰로 만나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고요. 그래서 작별을 고합니다. 물론 극중에서 와카야마는 환생하여, 제2의 인생을 살아가지만요. 그러고 보니 저승에서 코야마가 활약하는 동안 이승에서는 와카야마가 활약하네요. 나도 생전에 좀 잘할 걸. 이렇게 예술가로서 의젓하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흐뭇해지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합니다. ‘흐뭇’은 알겠는데, ‘울컥’은 왜일까요. 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슬슬 의식의 흐름을 멈춰야겠지요.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죽으면 다시 만나요~ 안녕!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play for life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