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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위대한 모험 <위대한 생활의 모험>

살아있기 위한 몸부림, 그 자체가 모험이다

한현주_극작가
85호 2016.02.04
자고로 어떤 행위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면 피츠제럴드의 인물 ‘개츠비’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부자가 된 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되찾기 위해 그녀의 집 맞은편에 대저택을 짓고 화려한 파티를 여는… 물론 이는 1차 대전 직후의 물질 적 풍요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극단 위대한 모험 <위대한 생활의 모험> <위대한 생활의 모험>

자고로 어떤 행위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면 피츠제럴드의 인물 ‘개츠비’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부자가 된 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되찾기 위해 그녀의 집 맞은편에 대저택을 짓고 화려한 파티를 여는… 물론 이는 1차 대전 직후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 1월 31일에 막을 내린 연극 <위대한 생활의 모험>은 ‘위대한’이라는 이 수식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작가 마에다 시로는 일본의 장기 불황 속에서 청춘들이 어떻게 살아남으려 몸부림쳐왔는가를 생생히 그려낸다. 전 여자친구의 집 맞은편 대저택이 아닌, 그녀의 작은 원룸에 빌붙어 밤낮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게임을 하며 찌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남자가 있다. 겉모습만 보자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활을 모험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여자에게도 해당된다. 마트의 반찬코너에서 일하며 온갖 냄새에 찌든 채로 돌아와 그나마 쉴 수 있는 작은 방 한쪽을 내어주다니. 남자가 아무리 오갈 데 없대도 그렇지. 그저 습관처럼 남자에게 “가, 안 가?”를 연발할 뿐, 그를 내쫓지는 못한다. 이들의 이상한 동거에 대해 한번 들어보자.
작품의 남녀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김두봉, 남승혜 배우-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첫 리뷰와 인터뷰로 긴장한 내 옆을 지켜준 부드러운 미소의 소유자 이오진 작가, 그리고 작품 속 남자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는 정보 때문에 질문을 받게 될 장우제 사진작가도 함께. 나는 준비한 몇 가지 키워드를 하나씩 던져 놓았다.

극단 위대한 모험 <위대한 생활의 모험> 김두봉(좌), 남승혜(우) 배우

남자와 여자

한현주
작품에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확실히 그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김두봉 배우님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때문인지, 이따금 객석에서 찌질한 남자를 향한 여성 관객들의 깊은 탄식이 들려오곤 했어요. (웃음)
남승혜
보통 여자들은 빈둥거려도 그게 오래가지는 않는 거 같아요.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는 강박이 조금 더 있는 것 같구요. 삶을 대하는 그런 방식의 보편적 차이를 보여주려고 작가도 남자와 여자로 지칭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김두봉
음… 그런데 이 남자에게는 유쾌함이라는 무기가 있어요. 엄청난 치유의 힘이죠.
일동
맞아요.
남승혜
여자가 죽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할 때 남자는 괜찮아, 혹은 생각을 그만두는 게 어때, 라고 말해서 여자를 피식 웃게 만들죠.
김두봉
그런데 작품을 대하는 저로서는 그렇게 잘 안 되더라고요. 개인적인 상황도 그렇고…일본에 공연하러 가서 작가를 만났을 때 물어봤죠. 생각을 그만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그랬더니 작가가 하는 말이…

다들 기대하고 있는데,

김두봉
자라고.

일동, 피식 웃음.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그게 되냐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김두봉
저는 잠도 잘 안 왔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지금의 내 상황도 그렇고 어떻게든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겨요. 다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살아오고 있으니까요.
이오진
남자들이 갈등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더 있긴 한 거 같아요.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는 남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더 많고, 그게 더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김두봉
재작년 초연 때는 남자의 유쾌함을 재밌게 그려낼 힘이 저한테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남자의 긍정적인 힘이 점점 와닿더라구요.
남승혜
여자도 남자한테 위로 받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매번 나가라고 하면서 공간을 내어주는 상황이 꽤 여러 번 지속된 거 같거든요. 외로운 거죠. 아니, 고독한 거죠.
한현주
그 고독이 때로는 굉장히 위험하잖아요. 죽음과도 자꾸 이어져 생각되니까.
남승혜
맞아요. 죽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상대가,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상대가 있는 게 다행이기도 하니까요. 여자가 사흘 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왔을 때, 낮밤이 바뀌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그걸 세고 있었던 거 같거든요.

연출가는 소극장의 무대를 일부러 더 좁게 활용해 여자의 원룸을 재현했다. 그리고 키도 크고 덩치가 꽤 큰 남자가 여자 곁에 웅크리고 누운 모습은 마치 두 사람이 처한 시대의 현실을 압축해놓은 것만 같았다. 감상적인 배경 음악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지하철이나 기차가 근처를 지나는 듯 주기적인 진동 음향이 그들을 에워쌌다. 마치 쉽게 변하지 않을 현실처럼, 그들을 배제하고도 규칙적으로 잘 흘러갈 현실처럼.

극단 위대한 모험 <위대한 생활의 모험>

이웃나라와 우리의 상황

한현주
뻔한 질문이지만 연출가(김현회)와 배우는 왜 이 작품에 매료되었나요.
김두봉
재작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일본 희곡들이 낭독 공연으로 소개되었을 때, 연출가가 그 중 한 작품(<허물>)에 출연했어요. 그 친구도 배우거든요. 얼마 후에 희곡집을 들여다보게 됐는데, 이 작품에 꽂히게 된 거죠. 저도 좋더라구요. 같이 제작을 했죠.

우리나라도 일본식 장기 불황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어쨌든 청년 실업과 고용 불안을 얘기하느라 정치인들의 입만 닳고 있으니,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관객들도 연극에 깊이 공감하는 것 같다, 등의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입만 오물거리고 있던 찰나 이오진 작가가 알아채기라도 한 듯, 말을 꺼내주었다.

이오진
사실 ‘헬조선’을 말하는 지금의 우리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기도 했어요. 주변에 이 극의 주인공처럼 사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김두봉
물론 그래서 오는 공감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작품이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어서 더 좋아요.

남자의 여동생은 5년 전에 죽었으며,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남자의 세계에 찾아온다. 연출가는 여동생을 맡은 배우의 흰색 의상과 약간의 조명 변화에만 포인트를 주었을 뿐 환상과 현실, 혹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연극적으로 크게 구분하지 않았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마치 죽음이 언제든지 집어삼킬 수 있는 삶을 그려내듯이.

한현주
죽지 않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반드시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이라는 근대적 생각에서 보면 남자의 상태는 죽은 것이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남자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것 같아 보여요.
김두봉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저항하는 거죠.
한현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기.
김두봉
그럼으로써 오히려 살아있다는 것 자체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거 아닐까요.
이오진
하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가 떠올랐어요. 19세기 월가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필경사(筆耕師)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상사의 작업지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반복하죠. 참담한 상황으로 몰리면서도 끝까지 그 말을 하는 바틀비의 정신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한현주
자본주의 구조에 대한 바틀비의 저항보다 이 남자의 저항이 어쩌면 더 근원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예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으니까요.

극단 위대한 모험 <위대한 생활의 모험>

치유의 또 다른 무기, 게맛살

한현주
여자가 사라진 동안 남자는 자신의 카메라를 팔아서 여자가 먹고 싶다고 했던 게맛살 통조림을 사다 놓죠. 현실의 마지막 무기였는데… (열심을 사진을 찍고 있던 분께 뜬금없이) 우제 작가님은 그러실 수 있어요?
장우제
전 못하죠. 이걸로 먹고 사니까. 하지만 남자는 삶의 수단이 이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집착하지 않기로 한 것처럼 보여요.
김두봉
그래서 멋있어요.
남승혜
남자는 카메라를 팔기 위해 아마도 오랜만에 세상을 마주했을 거예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참, 따뜻한 말이다.

이오진
그런 순간을 위해서, 괜찮아질 때를 위해서, 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를 위해서 방안을 뒹굴고 죽을힘을 다해 게임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한현주
그러네요. 참, 그리고 여자가 돌아오기 전에 드디어 게임 속 마왕을 죽이죠.
김두봉
검으로 죽일 수도 있는데, 일부러 아군들을 다 죽이고 난 후에 마왕과 일대일로 맞서요. 나무막대기로 힘겹게 무찌르죠.
한현주
그 장면에서의 연기가 너무 필사적이어서 게임이 아니라 남자의 현실처럼 다가왔어요. 자기 안의 무언가를 죽이려는 몸부림. 어쩌면 마왕은 살아있음을 가로막는 모든 것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했어요. 마왕을 죽이고 나서 남자는 살아있는 자신을 새롭게 확인하죠. 우문이지만 그 장면에서의 연기를 계산하신 거죠?
김두봉
음… 어… 현실에서 뭔가를 하겠다고 의식하듯이 그렇게 하지는 않아요. 그냥 그 순간에 필사적이 된 거죠.
장우제
지난 호 [연극이 끝난 후]에 실린 연극 <여배우의 힘>에 그런 대사가 있었어요. 배우는 감정의 주름을 얼마나 촘촘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멈추고 얼마나 잘 끌어안고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동
멋있는 말이네요.
이오진
다 같이 둘러앉아 남자가 사온 게맛살을 먹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장우제
심야식당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남승혜
가족, 추억… 뭐 이런 것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요. 외롭게 살고 있는 인물들이니까.
장우제
그 통조림은 제작한 거죠?
남승혜
네. 내용물은 크래미? 하하.

극단 위대한 모험 <위대한 생활의 모험> <위대한 생활의 모험>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것을 나눠먹는 모습 자체로 엄청난 치유의 힘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자꾸만 소설을 언급하여 그렇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위대한 결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감당하지 못한 부부가 한 빵집 주인에 대한 심각한 오해로 총까지 품은 채 그에게 달려간다. 빵집 주인은 진심어린 말로 오해를 풀어주며 갓 구운 빵을 내놓는다. “이럴 땐 뭘 좀 먹는 게 도움이 될 거요.” 이 작품에서의 게맛살이 꼭 그러했다. 그래서 각기 다르지만 저마다 ‘위대한 생활의 모험’을 하고 있을 지금 여기의 청년들에게, 한 편의 연극이 가져다 준 울림은 적지 않아 보였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극단 위대한 모험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