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연우무대 <인디아 블로그>

상업극의 대안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이오진_극작가
86호 2016.02.18
요새 자주 하는 고민이다. 혜화역에서 내려 "예매 하셨어요" 언니, 오빠들을 외면하고 어딘가 비슷한 느낌의 포스터를 지나치면 하루에 3~4회 공연을 하는 극장 앞에 주말 데이트 커플들이 줄을 서있다.

연우무대 <인디아 블로그>박선희 연출(중앙)과 김다흰(좌) 임승범(우) 배우

'상업극'이 뭘까?

요새 자주 하는 고민이다.

혜화역에서 내려 "예매 하셨어요" 언니, 오빠들을 외면하고 어딘가 비슷한 느낌의 포스터를 지나치면
하루에 3~4회 공연을 하는 극장 앞에 주말 데이트 커플들이 줄을 서있다.

역시, 대세는 로맨틱 코미디구나… 관객이 좋아 하면 됐지 뭐.

그치만.
그래도.

더 걷다가 다시 생각한다.

상업극은 뭘까?
관객이 원하는 바에 맞춰서 특수 제작된 상품?

상업극을 잘 모르겠으니 상업영화를 생각해보자.
상업영화는 흥행을 해서 수익을 내려는 목적을 갖고 만드는 영화다.
그 시도는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그래, 중요한 건 목표지.
관객을 최대치로 모아서 수익을 내는 걸 '목표'로 만든다면, 그럼 그건 상업극이지.

그렇다면, <인디아 블로그>(이하 <인블>)는 어떨까?

<터키 블루스> <유럽 블로그>로 이어지는 여행 연극 시리즈의 원조.
배우랑 스태프들, 다 같이 여행을 다녀와서 만든 연극.
로맨틱 코미디 아님,
드라마 딱히 없음,
스타 캐스팅 아님,
뮤지컬 아님,
그런데 초연 재연 이번이 벌써 삼연.
그래, 상업극.

'어쩌면 상업극의 대안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기대감을 안고 극장을 향했다.

연우무대 <인디아 블로그><인디아 블로그>(에피소드2)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인도 여행 바람이 불었다.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배낭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는 회원이 폭발했다. '인도카페'라고 해서, 물담배를 피우며 바닥에 앉아 차를 마시는 찻집도 유행했다. 내 주변에도 인도를 다녀온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는데, 그들 중 몇은 인도를 찬양하며 몇 번이고 가방을 쌌고, 다른 누군가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떤 경우건, 인도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낭만이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연극 <인블>은 두 남자가 인도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심플하게, 이게 전부다.

인도풍 카펫과 조명과 음악으로 인도의 기운이 충만한 극장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여행가방을 멘 배우가 관객을 맞이한다. 연극은 자이살메르 향하는 기차를 놓치고 기차역에 앉아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부르는 ‘다흰’과 박수치며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는 ‘승범’의 첫 만남으로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인도 갔다 온 임승범입니다."
"안녕하세요, 인도 갔다 온 김다흰입니다."

배우가 관객과 눈을 맞추며 자신의 본명을 말한다.

이야기는 허구와 진짜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고, 관객이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가늠할 새도 없이 관객들과 놀고, 장난치고, 노래를 부르고, 인도에서 직접 찍은 영상도 보여주고, 발리우드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춤도 춘다.

전석호/박동욱 배우의 에피소드1과 김다흰/임승범 배우의 에피소드2는 각각의 배우들이 경험한 인도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에피소드2를 관람하고, 김다흰, 임승범 배우와 박선희 연출과 마주 앉았다. 인도에 두 번 다녀 온 한현주 작가와 인도에서 네팔 사람으로 오해를 받곤 했던 장우제 사진작가도 함께 했다.

다흰
(오진에게) 아, 리뷰 쓰시는 분이구나. 엄청 신나게 보시길래 누구신가 했어요.
오진
즐겁게 본 게 티가 났군요. (웃음)
승범
제가 그런데 오늘 대사를 엄청 빼 먹어서.
오진
아, 정말요? 모르겠던데.
현주
뭐 어때요, 인도에서는 더 한 일도 일어나잖아요.
다흰
인도 다녀오셨어요?
현주
예, 두 번 다녀왔어요. 확실히 인도에 다녀온 사람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었어요.

연우무대 <인디아 블로그>

오진
<인블>이 여행 연극 시리즈 첫 작품이죠?
선희
여행 연극의 시작은 2008년 태국이었어요. 여행과 공연을 매칭해보고 싶어서, 배우들과 태국 여행 다녀와서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공연했죠. 그땐 오필리어, 햄릿, 레어티즈, 이렇게 셰익스피어의 세 인물을 모티브로, 인물들이 태국에서 서로 어긋나는 이야기였어요.
오진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뚜렷한 극 구조가 있네요.
연출
근데 계획대로 잘 안 나왔죠. (웃음)
오진
덕분에 오늘 날의 여행 연극 시리즈의 스타일이 자리 잡힐 수 있었겠네요. 전 작품이 이렇다 할 플롯이 없어서 좋더라고요.
다흰
연출님 스타일인 거 같아요. 여행 연극도 '이렇게 만들어야 겠다'는 계획을 세워 가서 필요한 부분 위주로 만들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연출님은 먼저 여행을 하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만들길 원하세요.
선희
여행을 해야 그 안에서 뭐가 생겨야 진짜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거 같아서요.
오진
관객들은 연극을 보러 올 때, 이게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진짜'를 보고 싶다는 기대를 하잖아요.
선희
관객들이 “쟤네 배우 아닌 가봐, 진짜 여행 갔다 온 일반인들인가 봐" 하면서 집에 가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승범
그래서 마지막에 커튼콜에서 춤출 때 어색해요. 갑자기 배우 같아서.
현주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하죠. (웃음) 저는 승범 배우의 모습, 그러니까 해외여행 처음 가고, 사람들 다 인도 좋아하는데, 나는 어딘가 조금 불편하고. 그런 모습이 공감이 갔어요. 저도 인도에서 그랬거든요.
승범
처음에 인도에 다녀와서 저는 제가 인도가 좋았단 이야기만 많이 했어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았다고 하는데, 저만 싫다고 하면 어딘가 지는 거 같고. (웃음) 싫었단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이랄까?
오진
여행 다녀와서, 어떤 식으로 공연 대본을 만드신 거예요?
선희
연습실에 모여서 배우들에게 계속 물어봤어요. "어떤 기분 이었어?" "거기서 무슨 생각했어?" 보름 동안 얘기만 해요. 그런 다음에 이야기가 조금 진행되는 거 같으면 배우들 둘이서 대화를 나누어 보라고 하고. 그렇게 조금씩 이야기를 세워가는 거죠. 그런데도 공연하면서 계속 바뀌어요. 초연 때는 공연 하면서 연습 때는 1시간 10분 나오던 게 본 공연 때는 막 50분으로 줄고 그랬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싶고. (웃음)

연우무대 <인디아 블로그>

오진
홍대에서 인디밴드를 하다가 온 다흰의 이야기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기 직전에 인도를 향한 승범의 이야기도 진짜인가요?
선희
아뇨, 그 부분은 설정이에요.
오진
전부 다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설정을 넣으신 이유가 있나요?
다흰
사실 배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승범 배우 같은 경우는 본명인 '승범' 대신에 SB라는 닉네임을 쓰기도 했고.
오진
배우들의 자의식을 깨는 과정이 힘들었을 거 같아요.
다흰
처음에는 '연극에서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해도 되나? 그냥 내가 여행 갔다 온 이야기 하는 게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연극에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대학에서 배운 건 그런 연극인데… 싶고.
오진
대한민국 연극 교육이 여럿의 마음을 힘들게 하네요. (웃음)
다흰
(웃음) 2012년 공연부터 이번 공연까지 오면서, 저도 마음이 바뀐 거 같아요. 처음에 제 인식이 "관객들이 이걸 받아들 일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면, 이제는 그래도 된다는 믿음 같은 거. 덕분에 이번 공연 버전이 가장 배우들 개인의 경험과 정서에 가닿아 있는 거 같아요.

연우무대 <인디아 블로그>

현주
인도 영상 속 여행자들 인터뷰 중에 "인도는 정이 붙을 만 하면 떨어지는 나라"라는 표현이 공감 갔어요. 인도가 질리는 데가 있잖아요. 좋다가, 미칠 것 같다고 한 거. 바라나시에서 맨날 길 잃고. 그 카오스가 인도라고 생각하는데. 그 혼돈이 작품 안에서 좀 더 드러났음 싶기도 했어요.
선희
저희도 그게 고민이었어요. 인도가 마냥 좋은 나라는 아니잖아요. 뭄바이 같은 데서는 여기가 사람 사는 데인가 싶고. 관광지 뒤에서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주워 먹고 있는데, 앞에서는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이 '위치 컨트리?" 이러고 있고.
승범
연극 같네요. 우리가 관광객으로 접한 인도의 모습과 그 뒷면의 인도가.
선희
사실 인도는 계급도 장난 아니고… 끔찍한 면이 많죠. 깔라면 한도 끝도 없이 까게 되는 거예요. 무대 위에서는 어떤 인도를 보여줘야 할까?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데. 우리가 섣부르게 인도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건 오히려 경솔한 거 아닐까 싶었어요. 그 고민의 끝에서 결국 각 인물들의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죠.
저는 <인블>이 고정된 텍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나갈 거고, 언젠가 우리가 더 깊어지면, 우리가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인도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진
오늘 <인블>을 보는데… 내가 만약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퇴근길에 대학로에 들른 관객이라면, <인블>을 보고 싶을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집 오빠가 인도 여행 다녀와서 그 이야기 해주는 느낌이랄까. 인도에서 만든 노래라며 어딘가 어설픈 노래 불러 주고, 소원을 빌라면서 촛불도 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기도 하고. 그게 되게 따뜻하더라고요. 드라마의 고저에서 오는 감정의 격동 같은 게 없어서 오히려 편안했어요. 다음번에는 에피소드1도 보러 오고 싶어요.

연우무대 <인디아 블로그><인디아 블로그>(에피소드1)

'상업극이란 뭘까?'

작년 혜화동1번지 가을 페스티벌 <상업극>의 프로그램북을 보면, 송경화 연출이 상업극 관계자의 말을 빌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관객의 니즈를 찾아가는 공연"이라고 적고 있다.

창작자가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보다,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보고 싶은 것이 무언일까를 고민하는 것.

아직은 상업극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관객들이 많이 보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

10명 중의 1명의 세계관을 바꿀 수 있는 연극도 좋지만,
10명 중 7~8명의 저녁 시간이 뿌듯한 연극을 만들고 싶다.

좋은 상업극을 보고 싶다.
좋은 상업극을 쓰고 싶다.

그런데, 좋은 상업극이 뭘까?

좋은 상업극과 나쁜 상업극 나누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지만…
창작자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정직하게 쓰고, 그 이야기를 관객들도 많이 볼 수 있다면,
아마 이것이 좋은 상업극의 조건이 아닐까.

<인디아 블로그>는 좋은 상업극 이었다.

갠지스 강에 소원을 담은 띠아를 띄우며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고 고백했던 나의 벗들이, 인도를 여행 하며 그 나라에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에서 오는 폐단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아픔을 목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의 어느 지점을 만지는 순간을, 인도에서 맞이했던 것일 게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아 블로그>의 자이살메르 사막 장면에서 두 청년의 머리 위로 무대를 가득 채운 전식 조명이 아스라이 반짝일 때, 그걸 진짜 별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 날 밤, 나는 그렇게 <인디아 블로그>에게 위로를 받았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연무무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