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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작은신화 <토일릿 피플>

비데의 물줄기로 대한민국을 그려보다

한현주
87호 2016.03.11
북한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너도나도 소나무 껍질을 먹다 보니 산이 헐벗었다며? 인육을 먹기도 한다며? 이런 식의 풍문을 실체로 확인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욕망 한 가운데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 연극 <토일릿 피플>은 탈북 청소년들의 입을 향한 우리들의 눈과 귀를 그린다.

토일릿 피플<토일릿 피플>

북한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너도나도 소나무 껍질을 먹다 보니 산이 헐벗었다며? 인육을 먹기도 한다며? 이런 식의 풍문을 실체로 확인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욕망 한 가운데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 연극 <토일릿 피플>은 탈북 청소년들의 입을 향한 우리들의 눈과 귀를 그린다. 그리고 그 눈과 귀에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담으려는 마음이 작동하는가를 묻는다. 탈북과 정착 과정의 처절한 서사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려는 것이 이 극의 목표가 아니라는 얘기다. 어쨌든 극이 시작되자마자, 우리의 귀를 의심케 하는 증언이 펼쳐진다. 미국이 고안한 토일릿 보트, 즉 변기를 타고 600명가량의 사람들이 북한을 탈출했다는 거다. 황당하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세세한 우화적 설정 안에서 작가는 우리 사회의 면면을 담아낸다. 아이들을 지원금과 정착금으로만 관리하려는 정부의 태도, 그리고 역으로 아이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마치 변기 속의 부유물 같다. 버튼을 눌러 흔적도 없이 내려버리고만 싶은… 하지만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냉철하게 그 변기를 들여다보게 한다. 이 작품을 3년 동안 붙들고 버틴 이여진 작가와 그 과정에 톡톡히 힘을 보탠 배선애 드라마터그, 또 극 중에서 탈북 청소년을 위해 심리 치료를 하는 한주영 역을 맡은 김종태 배우를 만났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변기를 부지런히 들여다보며 작품을 만들었을 그들이다.

배선애 드라마터그배선애 드라마터그

작가의 멘토가 되어준 드라마터그

한현주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두 분이 긴밀한(?) 관계였다고 들었는데요.
이여진
배선애 선생님은 제게 제1의 독자예요.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관객의 반응을 유추해보곤 하죠. 이 작품의 초고도 맨 먼저 보여드렸어요.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분이고, 여러 아이디어를 전해주셔서 아카이브 같은 존재이기도 하죠.
배선애
이 작가가 등단했을 때 제가 『한국희곡』 편집장이었는데, 신춘문예 좌담 사회를 맡으면서 인연이 시작됐죠. 이후 <봄 작가, 겨울 무대>에서도 제가 드라마터그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을 읽어주는 관계가 되어갔죠.
이여진
선생님께서 극의 리듬과 흐름, 또 방점이 찍혔으면 하는 부분들을 피드백 해주신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배선애
제 피드백을 빠르게 수용해주는 편이라 관계가 더 긴밀했던 거 같아요. 제가 전하는 참고 서적이나 희곡들을 작가가 즉각 읽고 얘기를 나누곤 했으니까요.
한현주
흔히 보기 힘든 관계네요. 저도 그렇지만 작가들이 방어적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혹시 작가로서 피드백을 받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이를테면 작품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이여진
누구보다 제 작품의 세계관을 철저히 이해해주신다는 신뢰가 쌓였고, 제 편에서 말씀해주시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은 없었어요.
한현주
어떤 연출가가 이 작품을 무대화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나누셨겠군요.
이여진
배선애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제 작품이 지닌 세계관과 화두와 인물의 성격 등등을 가장 잘 이해하고 명확하게 간파해주실 분이 최용훈 연출님일 거 같다고. 저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김종태 배우가 지인들과 인사를 마치고 인터뷰 자리에 합석했다.

이여진 작가(좌)와 김종태 배우(우)이여진 작가(좌)와 김종태 배우(우)

작가의 머릿속 무대를 다채롭게 채워준 배우

한현주
이여진 작가님이 작품을 쓸 때부터 김종태 배우를 떠올렸다고 들었는데요. 잘 생겨서? (웃음)
이여진
초고를 쓰고 헤맬 때 연극 <데모크라시>를 봤는데, 그때부터 김종태 배우님이 영감을 주더라고요. 제 머릿속에서 배우가 동선을 그어가면서 스스로 대사를 외치는데 제가 그걸 받아 적게 되더라고요. 그게 너무 신났어요.
김종태
이 얘기 하나도 빼지 말고 다 기록해줘요. (웃음)

김종태 배우는 <데모크라시>에서 독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수상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자신을 향한 작가의 말이 쑥스러웠는지, 그는 너스레를 떨며 괜스레 술잔을 비웠다.

이여진
극 중의 주영은 지적인 학자이면서 활기도 가지고 있고,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욕망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인물이에요. 그런 다채로움을 김종태 배우가 채워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김종태
연습 초반에는 작가님이 영감을 받은 <데모크라시>에서의 연기를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거기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렸죠. 작가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질문을 하면 항상 그래요. 자기가 말하는 건 절대적인 오답이 될 거라고. 그래서 그냥 해보기로 했죠. 하하.
한현주
배우들이 탈북자들의 고통에 가닿기 위해 작가나 드라마터그의 도움이 필요했을 거 같은데…
김종태
작가님이 주신 두꺼운 사례집을 읽었죠. 처음에는 내용이 너무 ‘쎄서’ 좀 힘들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일일이 색인을 해놓은 부분들을 따라가면서, 아이들이 처한 각기 다른 상황과 심리 상태 같은 것들이 정서적으로 와 닿기 시작했어요.
이여진
저도 처음 고증을 접할 때, 한 번 읽으면 두 시간씩 걸었어요.

작가의 걸음이 상상되었다. 무거운 숨을 내뱉으며 무게를 털고 다시 자신이 구상하는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한 걸음… 그래서 더더욱 작가는 그들의 고통을 그럴 듯한 드라마로 엮는 작업을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다른 장치가 필요했을 지도.

토일릿 피플<토일릿 피플>

극 중의 다양한 설화들이 가지는 힘

주인공 ‘주영’은 탈북 청소년들의 심리 치료에 설화를 활용한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이 그것을 새롭게 지어가는 놀이를 통해 치유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한현주
작품 속에서 다양한 설화들이 그려지고 있잖아요. 관객에게 쉽게 전달되기 힘든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김종태
배우로서는 쉽지 않았어요. 설화와 진행 중인 이야기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했지요.
배선애
아이들의 고통과 ‘주영’의 무의식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연극적 장치인데요. 무대에 잘 그려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기도 했어요.
한현주
이 설화들이 서사를 적절히 지연시키는 역할도 하는 것 같은데요.
이여진
사실 작품을 이미 무대에 올린 상태에서 이런 설명을 하는 게 조심스러운데요. 음… ‘과정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주영은 진상 조사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결국 달성하기는 쉽지 않죠. 이 사회는 진실에 쉽게 가 닿지 못하게 하니까… 그래서 더더욱 ‘과정성’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설화의 비극적인 결말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객이 그 이야기의 과정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어요.
한현주
이런 연극적 장치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준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이여진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들, 특히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하멜린> 같은 작품의 영향도 받은 것 같고요. 당연히 브레히트도 포함되겠지요.

내겐 너무 먼 당신, 그럼에도…

한현주
관객들은 주영을 통해 질문을 안을 거 같아요. 타인의 고통, 그 구체성에 우리가 얼마나 가닿을 수 있는지…
배선애
사실, 우리는 자기 삶의 구체성만 들여다보기에도 버겁죠.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의 화두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이 사회는 점점 더 타인을 바라보기 힘들게 하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이여진
타인의 고통에 가닿으려고 노력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되더라도, 그 노력 자체가 희망일 수 있겠죠. 또 그 노력을 가로막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성찰하는 것도 의미 있는 것 아닐까요.
김종태
작가님이 그리고자 했던 우리 사회의 지형도는 일종의 큰 그림이겠죠. 그리고 제가 이 작품을 통해 경험하는 아이들의 고통은 아주 구체적인 거잖아요. 제가 연기한 ‘주영’이 그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아이들을 통해서 토일릿 보트의 실체를 밝히려는 주영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안타까운 건 아이들 역시 ‘주영’이 겪는 고통의 구체성에 가닿지는 못했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그런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거겠죠.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니까요.

이 사회의 수많은 ‘토일릿 피플’에게 눈과 귀를 열어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만을 섣불리 예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부정적인 건 무력감 그 자체일 뿐.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극단 작은신화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