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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VaQi <그녀를 말해요>

세월호의 관객이 된다는 것 - 그녀가 말해요

이오진_극작가
90호 2016.04.21
인물 성수연 <그녀를 말해요> 배우 전강희 <그녀를 말해요> 드라마터그 이오진 <그녀를 말해요> 리뷰어 그녀(들) 어머니(들)

<그녀를 말해요>

인물
성수연 <그녀를 말해요> 배우
전강희 <그녀를 말해요> 드라마터그
이오진 <그녀를 말해요> 리뷰어
그녀(들) 어머니(들)

빈 무대.
다섯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질문들이 놓인다.

어머니, 이 안산에는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거예요?
지성이 태몽이? 기억나세요?
예은이 성격은 어땠나요?
그럼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맞벌이를 하신 거예요?
지현이 목소리가 어땠어요?
어머니. 죄송한데, 내부기록용으로 여기 지금 촬영 좀 해도 될까요?
예진이 방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저기… 책상의 머리카락은… 그럼?
예진이가 꿈에 나왔어요? 어떻게?
외로우셨겠어요?
그날 예슬이 전화가 왔었어요?
실례지만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오진, 무대에 빈 의자 중 하나에 앉는다.

이오진
4월 16일에 뭘 해야 할까 고민을 좀 했어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추모를 해야 될 거 같긴 한데. 작년엔 제가 개인적으로 좀 안 좋은 일이 있어가지고. 내 슬픔에 겨워가지고. 다른 생각은 전혀 못 했었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그냥 뭐, 음, 뭐든 해야 되지 않을까.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러다 <그녀를 말해요>를 알았어요. 세월호 사고 때 딸을 잃은 어머니들, ‘그녀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만든 공연이라고 하더라고요. 16일 날 공연 보고 배우님 인터뷰하면 좋겠다, 했어요. 음. ‘좋겠다’? 음. 좋긴 뭐가 좋아? 음. 추모의 방식으로 나쁘지 않겠다. ‘나쁘지 않겠다?’ 다 좀 그러네요. 추모의 방식. 이게 누굴 위한 건지 모르겠는데. 나 마음 편하려고. 그런 건데. 여튼. 나는. 그렇게 공연 보고 인터뷰 하면 할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들 거 같고… 그랬네요. 좀… 그러네요. 부끄럽고.

성수연, 오진의 옆 자리에 앉는다.

성수연
엄마랑 딸이. 몸으로 기억하는 게 있으니까. 서로 조금 더 긴밀한 거 같아요. 물론 아빠랑 딸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딸과 엄마의 관계가 더… 대부분의 경우 아이를 손으로 키우는 게 엄마잖아요. 공연 준비 하면서 저희 움직임을 봐주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 선생님이 지금 애를 키우시거든요. 연습실에서 런 보고 나서 담배 태우시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수연씨가 애를 안 낳아봤어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같은 여자니까,’ 하시면서. ‘애는 정말 손으로 키우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이를 보낸 엄마에게 그 없어진 손맛이라는 게 뭔지ㅡ 너무 알 것 같다고. 아마 동류의 생각을 이경성 연출님도 하셨던 거 같아요. 때문에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하신 게 아닐까.
이오진
4.16 앞에서는 도무지 당당해지지가 않아요. 계속 죄의식이. 안산에 안 가서 그런가. 피켓팅을 안 해봐서 그런가. 광화문에서 단식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충분히 성금을 안 해서? 이런 것들도 사실 좀 있긴 한데. 아무래도 제일 큰 거는 ‘아직 세월호에 대해서 쓰지 못하고 있어서’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 써야 할 것을 쓰지 않고 있다는 자책감 같은 거. 쓰려고 시도해본 적 있어요. 근데 세월호를 놓고 ‘이야기’를 만든다는 거 자체가. 부끄러운 거예요. 소재로 쓴다는 거가. 세월호를 소재로 해서 드라마의 형태로 무대 위로 올라온 작품들을 볼 때. 엄청 불편했거든요. 저게 ‘이야기’가 되다니. 보면서 내가 눈물이 나는 것도 부끄럽고. 울고 그 담에 뭘 어쩌려고 우냐 싶고. 이래도 부끄럽고 저래도 부끄럽고. 어찌 됐건, 이 리뷰가 처음으로 ‘세월호’에 대해서 쓰는 작업이 되겠네요.

전강희 드라마터그(좌)와 성수연 배우(우)

이오진
작품은, 인터뷰의 충실한 기록이었어요. VaQi의 그간 작업의 경향, 특징이기도 한 거 같은데. 전통적 드라마의 관습을 따르는 게 아니라. 관객들에게 배우들 자신들의 시간의 기록을 들려준다고 할까. 감정적인 동요를 배제하고.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녀를 말해요>는 텅 빈 무대에 의자만 다섯 개 놓여있어요. 배우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서 자신들이 만난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여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어요. 첫 번째는 배우가 인터뷰 당시에 자신이 했던 질문과, 어머님의 대답에 대한 리액션을 재현하는 방식, 두 번째는 당시 어머니의 말을 배우가 연기로 재현하는 방식, 세 번째는 인터뷰를 통해서 배우 자신이 느낀 바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방식이었어요. 이 세 가지 방식이 계속 교차 돼요. 당시의 어머니의 말을 재현하다가, 인터뷰 때 느낀 걸 들려주다가, 갑자기 다른 배우의 인터뷰를 듣고 느낀 걸 이야기하기도 하고. 배우들은 ‘그녀’들의 문장을 단지 전달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아주아주 다층적으로, 자세하게 들려주었어요. 손동작, 호흡, 말버릇까지 전부 다요.
성수연
입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손, 눈도 같이 말을 하는 거예요. 손 제스추어를 많이 사용하시는데 저도 말할 때 손을 많이 쓰잖아요. 저는 좀 이렇게 정신없이 쓰는 편인데 그녀는 요 안에서 이런 방식으로 쓰면서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을 그리기도 하고, 말의 리듬을 그리기도 하고. 예를 들면 ‘이렇게 풀어내지를 못하니까 튕겨져 나간 거죠’ ‘너는 왜 그렇게 생각을 하냐, 우리랑 똑같이 생각을 해라, 그러면서 이렇게 올라올라 그러면 내가 자꾸 눌렀어요’ 또 음...습, 이런 호흡을 자주 쓰시는데 음... 하면서 다음에 말할 것을 먼저 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말로는 하지 않을 것들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습~ 하면서 막 달아나려는 그림을 여기로 확 가져오는 것 같기도, 말과 함께 쏟아지려는 감정을 습~하면서 다시 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오진
사실 무대 위에 실제로 어머님들이 오셔서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그녀’들은 배우의 말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거죠. 무대 위에 없는 그녀가 배우들을 통해서 무대 위에서 존재하게 되는 거. 그런데 무대 위에 없는 그녀는 이제는 이 땅에 없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고. 무대에 없는 이들이, 세상에 없는 이들이. 그렇게. 무대 위에 혹은 이 세상에 부재不在한 자가 배우들을 통해 존재 存在하게 되는.

“말하다. 말을 한다는 것은 숨을 쉬는 것이다. 말은 숨과 함께 몸에서 몸으로 건너간다. 또한 말은, ‘듣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듣는다는 것은 상대가 하는 말을 내 마음 속에서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말은 상대의 귀가 아닌 눈에다 하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다. 그 말 속에는 그녀만의 기억이 있다. 나는 듣는다. 본다. 그리고 말한다.”

성수연
작업을 하면서 그 분들의 슬픔과 고통에 100프로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쎘어요. 그래서 작품의 구조에서, 배우들이 드러나는 방식을 취한 것도. 배우들 개인이 지워지고 어머니들의 말만 무대에 그대로 올라오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 고민을 다 같이 했어요. 어머니들 말만 할거면, 그렇게 될 거면 어머니들에게 직접 듣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우리가 수많은 말들 중에 선택을 하고, 골라내고 하는 거 자체가 편집인 건데. 우리가 직접 말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무대에 그녀가 등장한다.
의자에 앉는다.

그녀
저희 바로 위에 언니가 어디 어깨가 뿌려졌다고. 뼈가 어긋났다고 셋째 언니한테 둘째 언니한테 문자가 온 거예요. 전화도 오고. 근데 받지도 않고. 그러니까 어깨가 골절이 되어서 수술을 하고 무슨 병원에 있다, 인제 겸사겸사 인제 연락을 해보고 싶어서 한 건데,

제가 바로 답장을 ‘스무 살도 안 돼서 죽은 조카도 있다, 팔 부러진 게 대수냐, 살았지 않았냐’ 이런 식으로 제가 하니까. 딱딱 끊는 거죠.

그럼 친구들이 예를 들어서 안부 문자 오고 이러면 “의찬이는 어떻게 하고 있니” “네가 좀 반찬 좀 해다 줘 봐, 말로만 물어보지 말고“ 이렇게 제가 얘기를 한 거예요. 좋은 말이 안 나온 거죠. 그러니까 이제 다가오지를 못 하는 거예요.
성수연
이 이야기를 실제로 듣던 당시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 모든 유가족 분들이 거치는 단계 일텐데. 제 친구들에게도 많이 물어봤어요. 너에게 만약 이런 일이 생겨서, 그렇게 니가 나를 밀어 낸다면, ‘딱딱 끊어버린’ 다면. 나는 계속 다가가는 게 맞을까? 아니면 밀리는 대로 밀어나는 게 맞을까? 만약 이런 비극이 내 곁에 누군가에게 닥친다면. 난 어떤 방식으로 있는 게 좋은 걸까? 관계들이 다 뭘까. 참 허무하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외로움이나 고통을 몸 안쪽에서 겪어내는 건데. 그렇다면, 우리가 사적으로 긴밀한 사람들일수록 우리가 나눠 갖는 법을 알고 있다면. 다음번에는 이 고통을 나누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번에 어머니들과 사적으로 알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들었죠. 각자가 자신의 거리에서 할 일이 다 있을 거 같은 거예요. 이 거리에서는 할 일이 뭘까. 좀 더 먼, 거리에서 할 일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이오진
크리에이티브 VaQi는 작년에 <비포 애프터>로 세월호 이 전과 이후, 각자의 배우들 내면의 변화를 소환 하는 작업을 했었어요. 이경성 연출은 프로그램북에서 “나는 <비포 애프터>를 만들면서 배우들에게 스스로의 ‘전/후’를 찾아내라고 주문했지만, 정작 나의 ‘전/후’는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 어머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 분들의 말과 눈빛과 호흡을 느끼면서 내 몸이 미세하게 변해감을 느꼈다”라고 썼어요. 배우들 자신의 이야기가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의 이야기로 가게 되는 데에는. 전작에서 했던 고민들의 확장이 있었겠지요.
성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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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정현선, 양대홍, 김문익, 안현영, 이묘희

김기웅, 구춘미, 이현우, 방현수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이오진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공연 러닝 타임의 마지막 20분의 시간을 온전히 304명의 희생자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어요. 사실, 관객에게는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거든요. 성수연 배우가 그 많은 이름을 외워서 한 명 한 명 또박또박 발음 하는 동안ㅡ수행 修行으로 보였는데ㅡ다른 배우들은 옷을 탈의하고 아주 천천히, 무대의 바닥을 굴러다녀요. 그러다가 수연 배우가 다음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고 잠시 멈추는 그 순간. 나머지 배우들은 맨몸으로 누운 채 움직임을 멈추거든요. 그러다 이름이 이어지면 다시 구르기를 반복하고. 어쩌면, 저 지난하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어머니들이 딸을 잃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는 시간이 아닐까. 감상적인 접근일수도 있는데, 내 몸은 그렇게 느꼈어요. 어차피 닿을 수 없는 크기의 슬픔이니까. 다만 헤아려보는 거니까. 304명의 이름을 들으면서, 배우들의 수행을 지켜보면서. 그런데 이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이 세월호 어머니들의 인터뷰를 기록한 기록물이긴 하지만, 하나의 연극으로 보자면. 저거 말고는 대안이 없었을까, 생각도 하게 되는 거예요. 의미로써의 연극. 분명 그 이름들은 기억되어야 하고. 괴롭지만 발설되어야 하는 이름들인데도. 우리는 극장에 공연을 보러 오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아 지루하다, 혹은 이 부분이 꼭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거예요. 아, 이거 지루하면 안 되는데. 그 때 공연이 내 안의 의무감을 인지하는 거죠. 작품을 온전히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가 세월호 이 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시민으로, 길고 긴 이름의 열거를 견뎌야 하는구나. 이 부분이 VaQi가 나에게 요구하는 바인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성수연
우리가 하는 작업이. 음. 너무 잰 체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는 이거 만들면서, ‘다 같이 기억해야만 해’ ‘우리 이렇게 애쓰고 있어.’ 라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긴 한데. 자칫 잘못하면 한 끗 차이로 관객들한테 그렇게 다가갈 수도 있으니까. 물론 사람들이 어차피 다 똑같이 생각할 수 없는 거고. 나도 관객으로 볼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하니까. 만약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래, 그런 거니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우리 안에 그런 생각을 할 여지가 있는 태도가 우리도 모르게 있었다면, 그 다음에 우리가 더 고민하면 되는 거겠죠.

전강희, 무대로 나와 의자에 앉는다.

전강희
강요와 잘난 척이 될까 봐 조심스러운 게 있었어요. 마지막 지성이 어머니 말씀 있잖아요. 첫 공연 때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텝들 모두가 무대에 다 나가서 그 말씀을 반복 했어요. 의도 한 거는, 어머니 한 명의 목소리가 복수로 퍼져서 극장 밖으로 나가고… 그런 의미가 있었는데 (웃음) 그게 좀 강요나. 계몽이나. 그래 보일 수 있는. 미묘한 것들이 있어서. 두 번째 공연부터 배우들만 하는 걸로 했어요. 만약 우리가 (잘난 척 한다는 말들이나) 그런 걸 듣는다고 해도 상처를 받진 않을 거 같아요. 순간 속은 상할 수 있겠지만. 한 편으로 우리가 그렇게 관객에게 다가갔다면, 작품의 어떤 한계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좀 해보고. 우리가 아직은 거기까지 밖에 못하는 거고. 그 다음 작품을 향한 숙제가 되는 거고.
그녀
나는, 우리 아이가 비록 갔지만, 이 아이의 죽음이, 이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거든요. 비록 몸은 죽었지만, 이 땅의 생명들을 위해서 죽은 목숨이라면. 이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변화될 수 있다면, 이 아이들의 몫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죽음이, 그냥 헛된 죽음이 아닌 값진 죽음이었으면 좋겠단. 그냥 이렇게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그게 다시 사는 거 아닌가 싶어요. 얘네들 생명이. 인제 애들은 말을 못하니까.

살아있는 우리가 해줘야 되니까.
이오진
세월호에 대해서 쓰고 싶다, 는 생각과 쓴다, 라는 행위 사이에서 나를 가장 두렵게 했것은.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내가 타자화 하는 거였어요. 어떻게 해도 완전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아는데. 그래도 만약 내가 유가족들을 만나고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다가가서 말을 거는 일을 내가 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상처를 더 후빌 거 같고. 아이들 이야기 안 하고 싶어 하실 거 같았고. 그런데 공연 보면서 아. 또 전 좀 놀라웠던 게, 어머님들이 아이에 대해서 물어보면 되게 슬퍼서 외면하고 싶으실 거라고. 제가 애를 안 낳아봐서 그런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 않다는 부분이.
전강희
순간만은 어머님들이 생생해져요.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시고. 다시 그 순간 현재형이 되는 거예요. 그 순간은 아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전달을 하시더라고요. 저희도 되게 조심했거든요. 초반에는 심각한 질문들만 많이 드렸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가면서, 아, 이런 질문해도 되는구나, 하고 캐치한 게 있거든요. 구체적인 질문을 처음에는 할 수가 없었는데. 이건 저의 생각인데, 우리도 말을 할 때 하면서 정리하는 것도 있잖아요. 누군가 적극적인 마음으로 들어주러 온 거잖아요.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인데. 미수습자인 허다윤양 어머니랑 청운 동사무소 피켓팅 나갔을 때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혹시 나 하고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는데. 아이를 아직 못 찾았는데, 아이한테 미안해서, 그 아이에 대한 말을 할 수가 없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얘기를 할 수 없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를 찾은 엄마와 찾지 않은 엄마의 마음.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수연
미수습된 이들의 유가족들은. 음. 관계가 유예되어 있잖아요. 수습자의 경우에는, 그 몸들이 바다에 있었고. 건져왔고, 수습했고, 안산이든 어디든 옮겨왔고, 장례를 치뤘고. 죽은 가족의 몸을 갖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는데. 미수습자의 가족들은 아직 첫 단계에 머물러있는 거잖아요. 기다리고 있는 단계. 그 방식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고 있으니, 그게. 무슨. 첫 발짝도 못 뗀 분들이 아니었을까. 그랬을 거 같아요. 이 작업을 하면서 초반에 허다윤 어머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말씀 하셨다고 했을 때, 그럴 수 있겟다, 생각했지만 하면서 더 알겠어요. 왜 못하고 하셨는지.
이오진
<그녀를 말해요>라는 공연은, 나에게 공연 자체로도 좋았고, VaQi가 하고 있는 게 꼭 필요한 작업이구나 싶어서 고마웠지만. 더 크게는,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공연이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그 동안 두려워했던 것. 세월호를 무대화 하는 것. 그 방식을 어떻게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몇 가지 방법론을 제시해 주었달까.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가에 대한.
C.S.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 이란 책을 보면,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줄 때, 반드시 그 반대편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어요. 책에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한 부인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 부인은 남편의 1주기에 바닷가 근처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었대요. 물을 사려고 앞에 슈퍼에 들렀는데, 아무래도 좀 슬퍼 보였나 봐요. 계산대 앞에 노부인이,

“괜찮아요, 그 물 그냥 드세요”

라고 했대요. 물을 들고 나오던 그녀가, 슈퍼로 다시 돌아가 계산대에서 일하는 그 노부인에게 말하죠.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사실 1년 전 오늘이,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간 날이라 기분이 좀 울적했거든요.”


그러자 노부인이 말해요.

“그렇다면 부인, 초콜렛을 좀 드셔야겠군요.

나는 이 이야기를 생각 할 때 눈물이 나요. 그 노부인이 준 초콜렛이 너무 고마워서. 나한테 주는 거 같아서. 그런데. 이번에 공연 보고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난 건. 앞서 수연 배우가 고민한 것처럼. 음. 그러니까,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는 거구나. 각자의 거리에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의 답을 주는 구나. 저 노부인이. 그리고 <그녀를 말해요>가. 세월호는 어떻게 무대화되어야 하는가? 이거에 대한 고민이 연극을 만드는 대부분의 이들의 머릿속에 있을 텐데. 공연을 보고 오면서, 초콜렛 먹으라고 한 노부인 생각하면서. 세월호를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 최대한 그 슬픔의 중심에 있는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고민되어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어, 쓰는 거 자체보다, 어떻게 하면, 그 분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수 있나. 괴롭지만. 그 방법론을, 물론, 한참은 더 고민해야 되겠지만.

<그녀를 말해요>

어쩌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세월호 이 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VaQi의 일원들처럼 곁에 누군가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

나쁜 경우의 수는 피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우리는 아무도 세월호 이 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는 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연극이고.

결국 연극이니까.

** 이탤릭체로 표기 된 부분은 <그녀를 말해요> 대본에서 발췌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남산예술센터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