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竹竹 <맥베드-이것은 또 하나의 굿이다>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켜져라 무대 위의 조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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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너무 잦은 인용으로 이제는 진부해졌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운 문장이다. 루카치는 1차 대전 직후 황폐해진 유럽 사회와 그 속에서 젊은이들이 전쟁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위의 문장이, 유럽이 상실해버린 정신적 고향으로서의 그리스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염원을 말하는 것이든 간에, 시적인 아름다움의 보편성은 여전하다.
“그대 요지부동한 대지여 내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든 그 소리를 듣지 말라.
별들이여 숨어라.
빛이여 검고 깊은 내 욕망을 보지 마라.”
『맥베드』1막 4장에서 맥베드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말하는 ‘대지’와 ‘별’ 역시 인간을 이끄는 이상, 혹은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던컨 왕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자신의 욕망이 내는 소리와 발산하는 어둠을 대자연이 듣고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김낙형 연출은 이 작품의 힘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보다는 인간과 대자연(그는 ‘초자연’이라는 용어 대신에 이 말을 쓰고 싶어 했다), 인간과 그 내면을 그리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 하나의 굿이다’라는 부제를 붙여 맥베드와 그의 욕망을 그려내는 일을 제의로 형상화했다. 그가 이끄는 ‘극단 竹竹’은 이미 8년 전, 의자와 책상 그리고 촛불이라는 오브제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작품에 역동적인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연출가와 초연 배우들이 의기투합하여 관객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남아 있는 그 작품을 다시 무대에 불러냈다. ‘竹竹의 맥베드’가 돌아왔다.
연출가 김낙형
8년 만에 재회한 연출가와 배우, 배우와 오브제
- 한현주
- 재회는 기쁘나,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 김낙형
- 배우들의 평균 연령이 43세가 되었더라구요. (웃음) 하지만 크게 망설이지는 않더라구요. 당시에 60회 정도 공연을 했는데, 좋은 기억을 많이 안겨준 작품이죠. 극단이 새로운 작품을 모색하고 있던 와중에 먼저 레퍼토리화 할 수 있는 작품을 좀 올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뭉쳤지요.
- 한현주
- 8년 전에는 어땠나요.
- 김낙형
- 그때는 6개월 정도 연습을 했어요. 오브제의 활용 등 형상화 과정에서 배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 시간을 함께 견뎌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죠. 한강 공원에 의자 하나씩 들고 가서 연습도 하고 그랬어요. 당시에는 작품을 정치적 상황이나 위정자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기도 했는데요. 그래도 역시 인간 본연에 대한 고민, 연극의 고유성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죠. 얼마 전 단양에서 한 시간짜리 야외 공연을 했거든요. 조명기도 몇 대 없고 바람이 불어서 소품이 막 날아다니고 하는데도 남녀노소가 집중을 하더라구요. 첫날은 별빛 아래서, 마지막 날은 뙤약볕 아래서 공연을 했는데 그런 자연 속에서 <맥베드>를 올린다는 게 매력이 큰 거 같아요. 작품 안에 그런 대자연의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야외 공연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볼 작정이에요.
- 한현주
- 작품에서 오브제는 또 하나의 배우라고 여겨질 정도에요. 십여 년 전을 돌이켜보면, 아니 더 됐나… 가물가물… 어쨌든 혜화동1번지 3기 동인 시절에 발표하신 <나의 교실>에서도 의자나 책상의 활용이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맥베드>의 오브제도 전작의 영향인 건가요?
- 김낙형
- 초연 연습 당시 배우들과 한두 달을 고민하다가 전작의 장면 일부분을 확장해서 넣어보는 시도를 했어요. 의자는 그 자체로 기호성을 띠고 있기도 하잖아요. 이 작품에서는 시체가 널브러진 상황 등 다양한 극적 상황에 대한 메타포로도 작용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생이 교실에서 많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또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다양한 기하학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의자와 책상이 배열되고 쌓이는 형태에 대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보기도 했구요.
<맥베드>
희생물로서의 맥베드
- 한현주
- ‘이것은 또 하나의 굿이다’라는 부제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주시죠.
- 김낙형
- 이 무대 위의 배우들은 하나의 인물이면서 환영이기도 하죠. 이때의 환영은 인물 혹은 우리 내면의 환영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등장하는 무대는 어둠의 공간이면서 우주적 공간이기도 한 거죠.
작품은 환영들의 제의적 퍼포먼스로 시작되며, 그들이 나지막이 맥베스를 불러 무대로 데리고 나온다.
- 김낙형
- 모두가 에너지를 모아 맥베드를 불러내는 겁니다. 이건 일종의 회고일 수도 있고 제의일 수도 있지요. 제의에서는 희생물이 있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형태로서의 굿을 표방하는 건 아니고, 제의적 공간화를 시도하는 거죠. 이 우주에 있는 맥베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맥베드를 그곳에 불러냄으로써 우리도 깨어나는 겁니다. 몸과 사물을 두드리고 긁고 하는 것은 그 깨어남의 의식적 행위인 것이고요.
르네 지라르는 자신의 저서『폭력과 성스러움』에서 원시사회에서부터 있어온 희생제의나 종교제의에 대해, 인간이 희생물을 바쳐 신의 은총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공동체 혹은 인간 ‘내부의 폭력을 진정시키고 분쟁의 폭발을 막는’ 것에 그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폭력은 모방성을 띠고 있으므로, 제의는 복수의 연쇄를 막는 역할을 해왔다는 견해다. 이런 면에서 김낙형 연출이 말하는 <맥베드>는 우리 내면의 ‘맥베드적 욕망’을 살펴보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같은 제의적 속성 때문인지 문어체인 대사가 마치 축문(祝文)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네온사인이 별빛을 가린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 한현주
- 우린 이미 대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채 살고 있잖아요. 이 연극 안에서라도 그것을 인지하기를 바라는 건가요?
- 김낙형
- 저는, 인간은 그저 지구라는 돌덩이 위에 있다고 생각해요. 하늘은 늘 까만데, 착시 현상으로 파랗고 노랗게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드넓은 우주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늠조차 할 수도 없구요. 결국 우린 ‘대자연의 아가리에 매달려 있는’ 거죠.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을 마냥 무력하다고만 얘기할 수는 없겠죠. 모호하긴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얘기하고 신을 얘기하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연극 역시 일종의 착시일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들을 하는 거죠. 우리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안과 욕망 등을 말입니다.
- 한현주
- 맥더프가 맥베드의 눈을 찌르는 장면에서는 오이디푸스를 연상하게 만드는데요.
- 김낙형
- 자연이 인간을 만들었지만 맥베드는 자연에 대적해본 거죠. 그러고 나서 ‘나만이 들었고 나만이 보았다’고 말합니다. 리어왕이 광야에서 우주의 본질을 보듯, 오이디푸스가 그랬듯, 우주에 버려진 맥베드를 통해 우리의 말과 사고와 욕망이 이 거대한 우주에서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둠의 공간에서 쉴 새 없이 오브제들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배우들의 호흡이 놀랍다. 그런데 시종일관 극장 안에 흐르는 역동성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긴장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위태롭게 쌓여가는 욕망의 의자들, 끊임없이 흔들리는 촛불, 무채색의 무대는 조금은 낯선 ‘맥베드’일 수도 있겠다. 음습하면서도 뜨거운 이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손꼽을 수 있는 <맥베드> 공연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짧은 촛불’에 불과한 인생에 대해 맥베드는 껴져버리라고 외치지만, 그를 불러내기 위한 무대 위의 조명은 켜지고 또 켜진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