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씨어터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잃어버린 봄을 캐와 혜화동 1번지에 심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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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전윤환 연출은 광화문에 있었다.
사방이 차벽으로 둘러 싸였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던 그에게
애인의 문자가 당도한다.
“윤환 씨, 저는 당신이 가는 방향으로 갈 수 없어요.”
전 연출은 그 때,
서울의 봄을 잃었다고 했다.
2016년 5월 19일.
혜화동 1번지 빈 무대에
의자 몇 개가 놓인다.
앤드씨어터의
연출, 프로듀서, 조연출, 배우들이 나와
각자가 잃어버린 봄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전윤환 연출(좌)과 이오진 극작가(우)
인물
전윤환 극단 앤드씨어터 대표, 연출
이오진 「연극in」 리뷰어
장우제 「연극in」 사진작가
장소
대학로의 한 술집
조명 들어온다.
전윤환, 이오진, 장우제 술을 마시면서 인터뷰 하고 있다.
- 전윤환
- 그런 생각하면서 작업한 거 같아. 내 상실을 더 온전하게 바라 봐야겠다.
사이.
- 이오진
- 좀 부럽기도 했어요. 자기 헤어진 거.
저렇게 이야기하면 극복이 좀 되겠구나.
저들은 자기의 상실을 무대 위에서 극복하려 노력 하는 사람들이구나.
사이.
- 이오진
- 여튼. 연극하는 사람이면 극복도 연극으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내 상실을 어떻게 연극으로 확대 하는가가. 늘 고민이지.
아. 우리 술을 시켜야지.
소주와 안주가 온다.
- 이오진
- 연습 언제 시작했지? 2월 말?
- 전윤환
- 어. 다 같이 모아놓고
“나 이별했어. 나 봄을 잃어버렸어. 자, 다 같이 봄을 찾아보자.”
그랬어. 그리고 다 같이 봄 찾으려고 산 돌아다니고.
남산. 인왕산. 북한산. 산 진짜 많이 갔어.
그리고 공연에 안 나오는데 그녀가 나를 떠나고. 프라하로 여행을 떠났더라.
민주화 운동의 꽃이 “프라하의 봄”이잖아.
나한테 그렇게 얘기를 해놓고 어떻게 프라하를 갈 수 있냐? - 이오진
- 그건 오빠 생각이지.
- 전윤환
- 그치, 내 생각이지. 아무리 그래도.
- 이오진
- 헤어진 여자가 프라하를 가건 알래스카를 가건.
- 전윤환
- 그건 그런데. 여튼 배우들이랑 일주일 동안 서울의 봄 프라하의 봄을 막 조사해서 발표하고 그랬어.
- 이오진
- 근데 그게 이별이란 게. 나한테만 거대한 드라마지 남들이 봤을 땐
아무 일도 아닌 거잖아. - 전윤환
- 맞아. 우리 팀원들도 들어 주다 들어 주다 나중에는 막 “니 이별이 뭐.” 그랬어.
그게 연극에 그대로 나오고.

- 장우제
- 아까 공연 끝나고. 오진작가랑, 오늘 리뷰는 이 연극 자체보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얘기 했었어요. - 이오진
- 왜냐하면. 작품을 보는데. 완성된 한 편의 연극이라는 느낌보다는.
“과정의 결과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어떤 완결성보다는… - 전윤환
- 배우들이랑 굉장히 이야기 많이 나눴어요. “잃어버린 봄”에 대해서.
광주, 5.18도 생각하고. 세월호도 생각하고. 도시재생도 생각하고.
그러다 결국 깨달은 게
우리가 이런 이야기에 공감이 가나?
무대에서 각자의 언어로 그런 이야기 할 수 있나?
공연이 끝나고도 끝까지 귀 기울이고, 연대할 수 있나?
아니. 당장 내가 못하겠더라고. 다 빼자. 그 얘기 하지 말자.
각자의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
(사이) 근데 결국. 나는 배우들 각자 개인의 상실에조차 공감을 못하겠더라고. - 이오진
- 오빠가 자기의 상실로 꽉 차 있으니까.
- 전윤환
- 그래서 배우들이 나에게 “너는 우리의 상실이 공감이 가?” 라고 물었을 때.
바로 나오더라. “아니.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니 상실이 어떻게 공감이 가.”
나 작년 팝업 씨어터 사태 때. 막 피켓팅 하고. 광화문 가고. 그런 거.
나는 다른 연출들, 나 동료 연출들 걱정 되어서 거기 나간 거 아냐. - 이오진
- 그럼 왜 나갔어?
- 전윤환
- 나 밥그릇 뺏기니까. 나 연극하는 사람인데. 발언권이 뺏기니까.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 있는데.
그 이야기 하면서 지원금도 받고 큰 극장도 서고 싶은데 그게 안 되면.
(사이) 안 되니까. (헤어진) 그녀 부모님한테 나 인정받아야 하는데…
결국에 나는 타인에 상실에 대해서 공감을 못해주는 사람이구나.
이번 작업 하면서 되게 많이 발견한 거 같애. - 이오진
- 되게 중요한 발견인 거 같은데. 작품에서 그게 잘 안 드러났어.
그 발견의 순간만 보여주고, 후루룩 지나가 버린 느낌. - 장우제
- 어, 이게, 제 개인적 취향 탓일 수도 있는 데요…
배우들이 관객의 공감을 원하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들
었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어떤 동작을 취하잖아요. 그 움직임이
좀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느꼈거든요. 물론 어떤 의미가 있었겠지만. - 이오진
- 저도 그 움직임들의 의미를 잘 찾지 못했던 거 같아요.
물리적 아름다움을 구현을 한다던가,
각자의 고통의 무게를 털어내려는 발악으로 보인다던가.
아니면 템포를 리드미컬하게 한다던가,
그 세 가지 중 무엇인지가 안 보였달까. - 전윤환
- 내가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지 못했어요.
우리의 슬픔을 놀이화 해보자. 그런 말도 난 못했던 거 같아요.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
언어를 잃어버린 거 같은. 내가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르나…
내 대화의 방식이 상대랑 핑퐁 되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드는데.
내가 연출 할 수 있을까? 내가 연극할 수 있을까?
내가 관객들이랑 대화할 수 있다고?
그 고민이 고스란히 무대에 올라가는 거 같아요.
요즘은. 모르겠어. 그냥… 다 구라 같애.
사이.
- 이오진
- 언젠가 연출님이 그런 말 한 적 있잖아요.
“오진아, 진실이면 된다. 그게 중요한 거 같애.”
근데. 진짜 진실이면 되는 걸까?
그 진실이 관객을 설득하거나 감화시키지 못한다면…
정말 진실만 갖고 되는 걸까? - 전윤환
- 제가 요새 고민하는 지점이. 내가 살면서 고민했던, 입 밖으로 던졌던 이야기를 관객과 나누고 싶단 거야. 정말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뱉었던 이야기들. 이 무대로 올라갔을 때. 다른 힘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무대 위에 삶의 이야기 조각들이, 파편적이더라도. 이 퍼즐을 관객들이 꿰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수고스럽게 가져가야 되지 않나. 당신들이 굉장한 수고와 노력을 해줘야 같이 대화할 수 있는 거에요.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사이) 과정 중인데. 그런 실험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사이) 나 방금 포장 엄청 했지.
- 이오진
- 아냐. 무슨 이야긴지 알겠어.
내가 포장하거나 변명해야 하는 분위기 만든 거면 미안해.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 강호
- 나는 봄 얘기 할 때마다 네 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너한테 있어서 봄은 뭐야?
- OO
- 음... 내가 활기 찰 때.
- 강호
- 아, 활기 찰 때. 그러면 나는 상실한 봄에 있어서도 계속 네 얘기를 하는데
너한테 상실했을 때는 언제 인 거 같아? - OO
- 그니까 나는 계속 싸워야 되는 사람이잖아. 강렬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잖아.
근데 그 싸우는 걸 그만두는 순간, 그 때가 나한텐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 강호
- 연애도 비슷한 거 같애. 우리 둘이 싸웠을 때가 가장.
가장 많이 싸웠을 때가 서로가 가장 사랑하고 있지 않았나?
그러면 우리가 헤어졌을 때 그 때 왜 나한테 더 이상 싸움을 걸지 않았어?
너한테 나는 어떤 경우였어?
아, 이제, 이제 좀 들어보자. - OO
- 너는 너한테 흥미가 떨어진 경우.
- 강호
- 그치, 그치? (사이) 그랬지.
- 이오진
- 예전 여자친구 만나서 인터뷰 한 배우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서사가 있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야기가 있었고.
그런 사적이고 내밀한 드라마가 작품에 좀 더 많았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배우들이 각자의 가장 바닥까지 꺼내어 놓았다면.
하나하나가 다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 전윤환
- 아니. 배우들은 다들 바닥까지 보여줬는데. 내가 못 담아낸 거 같아.
공연에서 그 상실이 내뱉어 지고 나서
그 배우가 느낄 상실에 대해서 연출로서 책임져 줄 수 없을 거 같아서. - 이오진
- 그럼… 오빠는 상실된 봄 이야기 하자고 모여서
배우들이 이야기를 꺼내게 한 다음에.
막상 이건 안 돼. 저건 안 돼. 그렇게 된다면. 검열 아닌가… - 전윤환
- 그건… (사이) 내가 못하겠더라고.
- 이오진
- 근데 그거 오빠가 배려한 거잖아.
- 전윤환
- 아니, 그거보단, (사이) 내가 그 상실에 공감을 못한 거 같아.
- 이오진
- …그게 핵심이 아닐까. 상대의 상처가 걱정해서라기보다는.
내가 그 상실에 공감을 못하니까.
무대에 올릴 수가 없었던. - 전윤환
- 그치.
사이.
- 이오진
- 배우님들 나이대가 어떻게 되세요.
- 전윤환
- (일곱 명 중) 두 명 빼고 전부다 이십 대.
- 이오진
- 그래서 그런가. 아니 이건 나이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이상하게. 보고 있는데. 막. 되게 배우들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어.
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 처음 이하이가 나와서 춤을 췄었는데.
되게 잘 추거나 하는 건 아니고, 묘하게 엇박인데. 눈을 뗄 수가 없었거든.
오늘 배우님들 보면서… 그랬어. - 전윤환
- 너 지금 솔직하게 말하는 거지?
- 이오진
- 어.
- 전윤환
- 리뷰에 나나 공연 아쉬운 거 쓰는 건 괜찮은데. 배우들은.
- 이오진
- 무슨 말인지 알아. 그리고 나 리뷰에다 거짓말 안 해.
- 혜진
- “윤환 씨 꼭 그 곳에 서 있어야 해요? 안 하면 안 돼요?”
- 윤환
- 우리는 안전한 삶을 안전한 사랑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 강호
- 연출은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끊이지 않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에 팀원 중 한 명이 연출에게 물었습니다.
- 현수
- “있잖아. 우리 상실은 공감이 가?”
- 이오진
- 남들의 상실을 공감 못하는 그 약함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겉으로는 상대를 공감해주는 척 해도. 집에 가면 종일 자기 생각만 해요.
사이.
- 전윤환
- 요새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어.
도시 삶에는, 개인의 상실을 바라볼 시간이 없어.
왜 이렇게 살지 싶은 거야. 연극하면서 행복 하려고 하는데.
내 삶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온전하게 바라보고 싶어서 하는데.
존나 달리기만 하는 거야.
세상도 그런 거 같아. 작년의 사회적 상실들이 해결되지 않고 올해가 오는 거지.
사회적 상실뿐 아니라 내 상실도 바라볼 수 없는. 도시에 삶이. 거기에 우리가 모여 있는 거 같애. 그게 짜증이 나. 연극 했던 이유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연극하면서 살아남으려면 자기증명 해야 하고. 타이틀을 따야 하고. 이런 나를 발견할 때 괴롭지. 그 고백이 작년 혜화동 1번지 가을 페스티벌 <창조경제>였는데. 이번에 여전히 난 거기에 머물러 있는 스스로를 발견해. 여전히 세상이 원하는 속도에 맞춰서 살고 있어. 내 상실 하나. 타인의 상실 하나 바로 보지 못하고. 사회적 상실까지는 가지도 못해. (사이) 그딴 모습들이 존나 추하고 병신 같은 거야 그런 모습들을 내가 고백을 해 온 거고. - 이오진
- 어쩌면. 그 고백을 넘어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는.
사이.
- 장우제
- 음. 불친절 하지만… 작품에서 발견한 퍼즐들이 맞춰지는 거 같네요.

- 전윤환
- 사실 이게 어떻게 들릴 진 모르겠지만. 관객들 너무 감사하고 고맙지만. 그래 봤자 타인이야. 타인의 상실에 대해서 공감도 못하면서. 내가 어떻게 그들한테 감동을 줄 수 있겠어. 그니까. 나는 연극하는 사람이니. 연극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거야.
봄을 그대에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갖가지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 걷는 사람만
언젠간 한 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라.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상실을 찾기 위해
애써 하는 행동들이
다시금 또 다른 상실을 낳기도 한다.
상실을 찾아 떠났던 앤드씨어터 앞에 공연이 하나 놓여있다.
이 공연은 그들의 상실에 대한 작은 보상이나마 되어줄까?
인왕산에 오르고,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헤어진 여자친구와 만나고,
서명을 받고, 광장에 서고, 도시재생을 연구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앞에서 피켓을 들었던 그들에게
잃어버린 것들을 마주 한 용기 앞에,
연극은 또 다른 봄을 건네어 줄 수 있을까?
연극에게
그럴 힘이 있기는 한 걸까?
하지만 그런 믿음도 없이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여기,
도시에 연극이 있다.
조명, 어두워진다.
완전히 암전.
** 박스 속 이탤릭체로 표기 된 부분은 대본에서 발췌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앤드씨어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