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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당연히, 극장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혜화동1번지와 회기동 옥탑방 사이

한현주_극작가
95호 2016.07.07
멋들어진 도시를 건설하고 싶지만, 시민들의 불만은 끝이 없다. 혐오시설 때문에 난리가 나기도 한다. 확장과 발전을 외치는 사람들과 도시민의 행복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팽팽하다. 결국 정해진 세금 안에서 어떻게 행복을 유지하며 도시를 확장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누가 고민하느냐고? ‘심시티’ 게임의 플레이어...

멋들어진 도시를 건설하고 싶지만, 시민들의 불만은 끝이 없다. 혐오시설 때문에 난리가 나기도 한다. 확장과 발전을 외치는 사람들과 도시민의 행복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팽팽하다. 결국 정해진 세금 안에서 어떻게 행복을 유지하며 도시를 확장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누가 고민하느냐고? ‘심시티’ 게임의 플레이어가... 그(녀)는 가끔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정치가나 행정가가 이 게임을 교본으로 좀 삼았으면 좋겠다고.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이 봄 페스티벌에서 일으키고자 했던 담론은 도시경영게임시리즈 ‘심시티’에서 비롯되었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작품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도시 담론에 ‘연극제작 담론(?)’을 끌어들인다. 1인극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배우다. 그러니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의 동인 구자혜 연출의 제안에 따라 그녀가 이끄는 극단의 여배우 이리가 주연을 맡아 싱글 여성으로 살기와 배우로 살기를 얘기하는 작품이다. 극 중 화자는 회기동에서 그 중 싼 옥탑방과 대학로에서 그 중 작기로 유명한 극장에서의 일상을 통해 도시 생활의 비용과 연극 생활의 비용을 조목조목 열거한다. 구질구질하다고? 원래 산다는 게 그렇지 않나? 까놓고 얘기하면서, 왜 우리네 일상의 필요 가치들이 언제부턴가 가 닿기 힘든 꿈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지... 좀 누추해지는 것을 두려워 말고.

왼쪽부터 구자혜 연출, 이리 배우, 김은진 무대디자이너

제작의 위기를 작품의 콘셉트로

한현주
드라마가 있는 1인극이 아니니 물어볼 수밖에 없네요. 작품의 기획을 연출과 배우가 함께 했나요?
구자혜
처음에는 번연극을 하려고 했어요. 잘 짜여진 미국 작품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대 제작을 할 엄두가 안 났어요. 제작비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까지 공연에서 밝히기도 했죠. (웃음) 어쨌든 그래서 일인극을 하기로 했죠. 개런티가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또, 웃음) 일단 ‘주거’를 테마로 삼기로 했는데, 저는 사실 감각적으로 잘 와 닿지가 않았어요.
이리
연출이 지금 사는 집이 나름 괜찮으니까.
한현주
? (나름 금수저인가 생각. 근데 극 중에서 연출은 카페에서 알바한다고 했는데?)
구자혜
고시원에서 5년 살고 친구의 옥탑방에 얹혀살고 하다가, 드디어 혼자만의 주거 공간이 생겼기 때문에 저는 그랬어요.
한현주
(속으로 소심하게, 아!)
구자혜
근데 이리 배우에게 얘기를 했더니 침을 튀겨 가면서 주거 문제를 얘기하더라구요. 극단에서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다 매우 민감하게 공감을 했어요.
한현주
대본 구성의 과정을 좀 얘기해주세요.
구자혜
연습 기간이 대본 쓰는 과정을 포함해서 6주였는데, 처음에는 이리 언니와 일주일에 대 여섯 번 만나서 얘기를 나눴어요. 한 사람이 말하면 한 사람이 쓰고. 그게 한 100페이지가 넘었죠.
이리
저 개인적으로 쓴 걸 연출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그러면 연출이 방향을 잡아서 다음에는 이런 부분을 더 다뤄보자... 이렇게 진행했어요.
구자혜
주거를 비롯한 삶의 비용 전반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예를 들어 이리 언니가 문화생활비로 한 달에 얼마를 썼나... 정말 얼마 안 되더라구요.
일동
웃음.
구자혜
근데 굵직한 얘기들보다 아주 사소한 얘기들이 오히려 선택되더라구요. 기록을 하면서 ‘잔여 대사 폴더’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담긴 얘기들을 더 풀어내게 됐죠.

이 작품이 통계청의 수치를 바탕으로 한 사회면 기사나 르포르타주는 아니니까.

구자혜
집요하게 서로의 일상을 말하고 또 그것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대본 쓰기였죠.
한현주
근데 유독 섹스 얘기가 많았어요.
구자혜
대본 작업할 때 폴더가 따로 있을 정도였어요.
이오진
그 폴더 훔치고 싶다.
일동
웃음.
구자혜
나중에는 무대 디자이너가 섹스 얘기 좀 그만하라고 버럭하기도 했죠. 사실 섹스 얘기 자체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섹스를 전제로 돈 얘기를 하려던 거죠. 분량을 더 줄이라는 단원들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작업했어요. 하하.

돈 없어서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한다. 그런데 밥 먹고 영화 보는 것만 돈이 드는 게 아니다. 김애란의 단편 소설 「성탄특선」에서 가난한 연인이 성탄절에 모텔을 찾지 못해 헤매던 장면이 떠오른다. 연극은 콘돔 하나의 비용까지 말하며 일상의 바닥을 훑어낸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이것은 메타연극인가

한현주
연극하기의 비용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잖아요. 메타연극을 지향한 건가요?
이리
우리가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을 하고 연출은 동인이니까 앞으로 계속 여기서 공연을 해야 하고...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우린 여기서도 거주하는 거 아니냐, 뭐 이런 식의 얘기들을 더해서 풀어보게 된 거죠.
구자혜
저 개인적으로는 메타 연극을 굉장히 좋아해요. 특히 연극 제작 환경이나 제도에 대해 발화하는 걸 의미 있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 작품이 메타 연극인 건 아니에요. 대본을 쓰면서 제작비와 극장의 월세, 내 통장의 구체적인 수치들을 다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이 작품은 누군가의 삶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많이 삭제했어요.
이리
작년에 올렸던 <일회공연>이라는 작품에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제가 직접 쓴 희곡이 들어 있어요. 팜플렛 촬영 때문에 다이어트 한 거, 사귀던 애인과 관련된 에피소드, 연기에 관한 이야기 그런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죠. 이번 작품을 그 글쓰기의 연장과 확장으로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쉽지는 않았죠. 연출이 100페이지를 18페이지의 대본으로 구성해왔을 때 감탄했죠. 근데 저에 대해 너무 많은 얘기를 해버려서 공연을 본 제 지인들은 이제 제 월세 날짜까지 알게 됐죠. 친구들이 짠하다고 손을 잡는데, 끝까지 다 허구라고 우기면서 손을 뿌리쳤죠. 하하.

메타연극은 아닌데, 여배우의 일상이 털렸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연기의 어려움

한현주
연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구자혜
극장에 들어와서야 깨달은 부분이 있어요. 이 작품은 한 캐릭터를 구현하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이 발화하는 형식이니까, 객석과 거리를 두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했어야 했다는 걸...
이리
연습 과정에서 고려를 안 했던 건 아니에요. 진짜 제 얘기를 할 때는 거리를 두고 남의 얘기를 할 때는 오히려 좀 깊이 들어가서 얘기를 하자,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듣는 대상이 누구냐, 하는 문제가 컸어요. 어떨 땐 연출한테 어떨 땐 관객에게 얘기를 하는데, 대상에 따라 제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좀 더 디테일하게 잡아놨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더 찾아가기 시작했죠. 이제 알았네, 탄식하면서.

극 중에서 화자는 객석에 앉아 있는 연출에게 자주 말걸기를 시도한다. 그녀와 연극하기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니까.

구자혜
연출과의 작업에 대한 하소연과 푸념이 아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관객에게 좋은 에너지가 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마치 사랑하는 두 사람의 2인극처럼 해달라고 주문했어요. 대본에다 구자혜 짱!, 이라고도 써 놓고 배우님 이 부분에서 저 비행기 좀 태워주시죠!, 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어요.
이리
장면마다 새로운 패를 꺼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문제였던 거 같아요. 물론 그래서 리듬감은 생겼지만.
구자혜
원래 그런 거는 잘하는 배우니까, 화자와 듣는 이 사이의 거리에 대해 더 치밀하게 생각했어야 했어요.
두 사람
안일했어요, 안일했어.

극 중 화자의 말에서 ‘안일하다’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연출이나 배우의 말하기 습관일 수도 있지만, 안일하게 연극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반복처럼 들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대본 작업을 하면서 어디까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아야 하는 건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난 데 없이 화자가 캔자스 주에서 날아왔다는 설정을 했다. 마치 캔자스의 시골 소녀 도로시가 오즈라는 마법의 도시에 떨어진 것처럼. 이는 그들이 가진 거리두기의 고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그 거리두기의 녹록치 않음까지 연극적으로 살릴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심시티’ 홈페이지에 열거된 게임 설명 일부는 다음과 같다. (게임 장려 차원의 소개 아님)

이 작품은 역사상 가장 방대한 도시 운영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다양한 도시로 구성된 실감 나는 규모의 지역을 관리하면서도 저마다 다양한 특성이 있는 도시를 16개까지 운영할 수 있습니다. (중략) 자신의 결정이 자신의 도시와 광역 전체에 영향을 주며,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해 업적을 달성하는 새로운 플레이 방법을 즐겨 보세요.

위의 설명을 참고하여 리뷰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이 작품은 대학로에서 손꼽히는 소극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연극인의 일상을 다룬다. 관객은 실감나는 배우의 일상을 통해 첨단 도시 한 가운데 있는 소극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중략) 연극인과 관객의 사유가 도시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내 한 몸 누일 공간을 걱정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도시인이 있는 한, 1993년에 지어진 이 극장에서는 이 같은 담론이 계속해서 더 깊이 있게 다뤄질지도 모른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컬쳐버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