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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플레이 테제21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 달나라 동백꽃 <15분>

검열의 가위에 맞서는 '나'의 주먹

이오진_극작가
97호 2016.08.04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공연이 8주차에 접어들었다. 작년 한 해 연극인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던 검열 사태에 대한 연극으로서의 저항이다. ‘텀블벅’ 모금으로 제작비를 모았고, 6월 둘째 주부터 5개월간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리뷰는 김재엽 연출이 이끄는 드림플레이 테제21의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공연이 8주차에 접어들었다. 작년 한 해 연극인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던 검열 사태에 대한 연극으로서의 저항이다. ‘텀블벅’ 모금으로 제작비를 모았고, 6월 둘째 주부터 5개월간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리뷰는 김재엽 연출이 이끄는 드림플레이 테제21의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과, 달나라동백꽃 윤혜숙 연출의 < 15분 >, 두 작품을 다룬다.

< 15분 >

작년 10월,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까페에서 공연 중이던 김정 연출의 <이 아이>가 공연 방해를 받았다.1) 당시 공연예술센터의 임 아무개 부장은 작품 속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노스페이스' 점퍼를 입고 있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공연을 취소할 것을 종용했고, 생각대로 안 되자 극장에 찾아와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을 옮기고 음악 볼륨을 올렸다. 당시 담당 직원이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김정 연출과 다음 공연 팀이었던 윤혜숙과 송정안 연출은 공연 취소를 결정하고 이 사태에 대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2) 이후 젊은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대학로예술극장 앞에서 15분의 릴레이 시위가 이어졌다.

< 15분 >은,
사건의 당사자였던 윤혜숙 연출의 자기고백이다.

작품은 갓 입봉 한 연출가 '나'가 처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측으로부터 팝업씨어터 연출 제안을 받던 2015년 9월부터, 릴레이 시위의 과정을 지나오기까지의 심리의 변화를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팝업씨어터 사태의 또 다른 당사자였던 송정안이나 김정 연출의 심정이나 태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피케팅을 함께 했던 동료 연극인들의 마음이나, 사건을 공론화시키며 결국은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담당자의 마음도 미루어 짐작하지 않는다. 심지어, 공연을 방해하고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전)문화사업부장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사건을 대하는 '나'의 상태만 말한다.

공연의 말미, 관객은 당시 문화사업부장이었던 임 모 씨와 윤혜숙 연출의 긴 전화 통화 내용을 듣게 된다. 그녀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성마른 성미'로 일어난 '개인적인 문제'라며, 일을 크게 만들지 말 것을 애절하고 일방적으로 설득하고 있었다. 자신은 나중에 김정 연출에게 '술 한 잔 사면서' 사과하려고 했으며, '명령'에 '불복'한 자신의 부하직원에 대한 분노였다는 설명을 반복했다.

작품은 정갈하니 아름답다. 강혜련 배우가 말없이 윤혜숙 연출로 무대에 존재하는 동안, 조의진 배우는 멀지 않은 곳에 앉아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나레이션으로 들려준다. 최소한의 무대와 조명으로 공간은 매 순간 자유롭게 변용되며, 영상은 연극언어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무대 위에서 연극이 해야 할 이야기를 영상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흔치 않은 공연이었다.

오로지 '나'로만 수렴되는 이 작품은, '창작산실 + 팝업씨어터 + 국립국악원' 등 일련의 검열 상황 앞에서 이 모든 사태가 '우리'의 일로 천명되고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앞에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지던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모든 사건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게 했다.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은 권리장전의 첫 작품으로, 이번 정부의 검열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고, 검열의 주체들이 예술인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 왔는지에 대한 개괄이다. 검열언어와, 검열언어를 대사로 치러야 하는 배우들의 고뇌와, 검열언어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함의를 파헤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정부에서 벌어진 검열을 이해하기 위한 해설서 같았다.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윗사람 눈치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저러는 걸까?
왜 자꾸 본질을 회피하는 발언을 하는 걸까?
검열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등등의 질문을 안고 있던 나에게,
작품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문화부
장관
블랙리스트라든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 같고요. 최근에 일부 작가들 같은 경우에 보편적인 예술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이슈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가지고 유명세를 늘리려는 일부 작가들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런 부분도 사실 경계하고 있습니다.

2015년 9월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질답에서
<검열언어의 정치학> p.11

문예
위원장
사실 '표현의 자유'의 천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오줌 통 속의 예수'라는 그런 전시 작품을 지원했다가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면서 미국 문화예술 위원회의 폐지론까지 나왔었고, 다음 해에 예산이 절반으로 깎였던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게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그래서 공공기금으로 운영되는 창작지원 작품에서는 항상 표현의 자유의 범위가 어디인지 그걸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15년 10월 7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정 감사 중에서
p.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공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달성하기 위한 '우리 모두 ARTIST'라는 핵심가치 아래 "준법/책임감, 페어플레이, 고객행복/나눔"을 설정하여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는 문예위원장의 윤리경영이념
p.26

"욕먹을 각오 돼 있다. 창작 예술 획일적 지원 꼭 바꿀 것."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순수예술과 문화 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다. 한 해 2,000여억 원을 집행한다. 예술지원은 겉으론 아름답지만 늘 시끄럽다. 지원금을 못 받으면, "배후가 있다", "예술을 말살한다"고 거칠게 항의하기 일쑤다.

2016년 3월 30일 자 <중앙일보>의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인터뷰 중에서
p.29


<검열언어의 정치학>은, 매 공연 직후 새로운 게스트를 초대해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가 공연을 본 날은 국립국악원의 검열 사태(국립국악원이 ‘금요공감’ 프로그램에서 공연예정이던 <소월산천> 중 박근형 연출가가 맡은 연극 부문을 제외하라는 압력을 가한 사건)3) 이후 공연을 거부하고 1인 시위를 이어갔던 정영두 감독이 함께했다. 공연이 끝난 후 거의 모든 관객이 자리에 남아 ‘토크가 아니어도 좋은 토크’에 함께 했다. 어딘가 좀 뭉클했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 오래 고민해 왔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토크가 아니어도 좋은 토크’에서부터 술자리로 이어진 질문과 답변을 싣는다.

관객1
동료 배우가 이 공연을 저보다 먼저 보고, 저에게 그랬어요. '마음도 알겠고 얘기하고 싶은 것도 정신도 알겠으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친구의 마음 이해 안가는 건 아닌데. 글쎄요, 제가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재엽
음, (사이) 사실 어제 공연을 봤다고 오늘 이렇게 바뀔 거야, 라고 말하는 게 더 위험한 거 같기는 하고요. 사실 인식의 변화를 행동으로 이끄는 거까지는, 각자 개인마다 어떤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 자기 삶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 순간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 생활의 일상의 감각에서 나올 수 있는 것부터 시작이 되는 게 중요한 거 같거든요. 그 분은 분명 '그러고 싶지 않다' 말씀하셨지만, 그것이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실 이 공연을 보러 왔다고 하는 거 자체가, 뭐랄까. 포스터 자체가 보고 싶은 공연은 아닌데도 (일동 웃음) 그럼에도 보러 온 게. 어떤 의식의 변화가 아닌가, 싶네요.
영두
연대에 참여하지 않는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얘기하세요?
재엽
음,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하는 상대보다, 싸우고 있지 않은 동료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맞는 방향이 아닌 거 같고요. 아무래도, 한 번 더 조크를 걸어주는 게... 예를 들어서. "돈을... 쪼끔만 더 내라" 이렇게. (다 같이 웃음) 왜 참여하지 않느냐? 왜 같이 싸우지 않느냐? 하는 건 '내가 국가다'라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두가 같은 마음이어야 하고, 모두가 같이 싸워야 하고, 이런 거는 예술가들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인 거 같고. 우리가 (이 사태에 대응하면서) 어떤 순수한 분노를 어디다가 표출할 데가 없으니까. 딴 데 가서 표출할걸. 옆 사람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터져 나온 부분이 있지 않나 싶어요.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이다, 하는 거가 확실히 스트레스가 있었던 거 같아요.
관객2
현재 공연계의 시스템이, 공연 제작비만큼의 티켓수익을 내는 구조는 아니잖아요. 때문에 예술가들이 지원금을 바라게 되는 게 당연한 흐름인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창작지원금을 대하는 건강한 태도가 있을 거 같아요. 연출님은 앞으로 작업에서 공공창작지원금을 어떻게 대하고 접근하실 생각이신지.
재엽
(깊이 한숨 쉰다. 서로에게 대답을 미루는 김재엽 연출과 정영두 감독. 일동, 웃음) 지원금은. 내도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거라고 저는 일단 생각을 해요. 지원제도 자체는 꾸준히 하다 보면 덤으로 따라와 주는 거지. 지원금이 있음 올리고 없음 공연 못 하게 되는. 그런 건 아닌 거 같고요. 물론 그 금액이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도움은 될 거예요. 저희 극단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우리는 200~300만 원을 갖고 공연하는, 그리고 망하는 법을 연습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작년에 한 게. 연습실을 개조했어요, 작은 극장으로. 거기서 상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려고 하고요. 음, 독립적인 시스템을 최소한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원제도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도, 제가 봤을 때는 고도의 전략인 거 같습니다. 지원금 놓고, 우리를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것인 양, 지원금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예술가들이 삐딱하게 군다던지, 하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 그게 그들이 원하는 프레임인 거 같습니다.

(술자리로 자리를 옮겨서)

오진
작년에 검열 사태를 목도해 오면서, 그리고 힘들어 하는 주변 작업자들 보면서. 이 상황에서 내가 무얼 해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상하게 분노는, 음. 분노는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86년생인데, 어, 저는, 학생운동을 경험한 세대도 아니고. 시대와 사회가 막 나에게 온 몸으로 다가온. 그런 세대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자꾸 작업을 하다 보면 시대와 사회를 생각하라고. 혹은 분노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그래서 있던 분노도 사그라드는. 그런 경험을 좀 한 거 같아요. 물론 검열 사태는 다르긴 한데. 창작자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고. 말이 안 되는 상황이고.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에게 분노와 연대라는 게, 그리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거예요. 저항의 방식들도 성명서를 쓴다던가, 그런 일들이. 굉장히 멀게 느껴지고. 전 이번 검열 사태 전까지는 성명서가 뭔지도 정확히 몰랐거든요.
재엽
검열에 대응하는 방법 안에서. 여전히 구호가 많아요. 그런 구호들이, 공허하단 말이에요. 우리가 처음부터 공동체로 만들어진 그룹이 아니잖아요.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그걸 어떤 공동체로 묶어서 같이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거 자체가 되게 억압적이에요.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 결과나 판단에 대해서 누군가의 한 마디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저는 이게 최근에 검열 페스티발까지, 축제의 방향으로 오고 있는 거 같아요. 뭐든지 이런 게 즐거워야지, 재밌어야 하는데. 성명서, 집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수다를 떠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방식이 공적으로는 대담회나 토크가 있겠지만, 아주 사소한 방식으로라도 그 수다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거죠. 현대 사회의 운동이란 그런 거죠. 조직이 누구의 깃발을 따라서 갈 수 없어요. 작년에 시행착오를 겪었던 이유 중 하나가 조절되지 않는 분노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게 너무 안 좋은 영향을 주었고.
오진
꼭 사회적인 얘기... 해야 하나요. (사이) 극작가가 희곡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으음, 유아적인 글쓰기의 상태로 여기는 거 있는 거 같아요. 젊은 작가들은 개인에 함몰되어 있고. 시대랑 만나는 게 없다, 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있고. 때문에 (작가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으면서도... '내가 사회랑 깊이 만나고 있지 않아' 하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쓰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 나는 너무 사회적인 의식이 없지... 그치...' 하면서 그렇게 자책 하다가 또 문득. '나는 한 개인이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거야.' 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막 들기도 하고.
재엽
예를 들어, 사회라고 하는 거는 구체적으로 하나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세대별로도 다르죠. 80년대라는 시대가, (저 같은) 1990년대 학번들에게는 모르지만 꼭 알아야 하는 세대였어요. 데모는 가끔 따라가긴 하지만, 끝나고 락카페 노래방 가는 게 이상하지 않고. 막걸리 집에서 투쟁가요 부르고 노래하는 거랑. 댄스음악 듣고 락카페서 노는 거랑 왜 동시에 하면 안 되나 싶은 사람들이었죠. 그럴 때 선배들이 내게 '왜 너는 하고 싶은 거만 하니' 라고 했었어요. 사실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정치적인 거거든요. 최근에 예를 들어 힙합 문화가 왜 힙하냐. '나 이렇게 바보야', ’나 이렇게 속물이야' 금기시된 욕망을 드러내는 거죠. 성에 대한 담론도 드러내고. 그게 내가 볼 때는 가장 정치적인 거 같거든요. 예를 들어 까뮈의 책을 보면. 그는 레지스탕스인데. 그의 글은 개인적이고 실존주의잖아요. 자기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거에서 인간을 발견해 내는 거. 전 그게 정치적이고 사회적이지 않다고 보는 건 아닌 거 같고요. 지금 세상이 위기에 있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자, 라고 하는 공동체의 선한 가치만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는 예술가들의 고민이 아닌 거 같아요. 그건 철학자들의 고민인 거고 예술가는 그거에 대해서 좀 새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런 상황일수록 더 개인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게. 그런 데서 사회와 맞물려 갈 수 있는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작가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 걸까? 작가정신과 시대정신이 만나야 한다고 선배들이 가르쳐주었고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배웠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때가 되면 예술가는 가출을 감행해야 하는데, 물론 그가 떠나는 집이란 자기 자신이다.' 라고 썼다.4) 팝업씨어터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 모든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분노했다. 분노가 자꾸 커져서 마음이 무너지려 들 때 생각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내 동료의 일이지만 아직 나에게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고.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전선에 서있던 이들이 받은 상처들을 목도했다. 나는 그 불길이 나에게 번져올까 두려웠다. 권리장전[權利長戰]이라고 했다. 그렇다, 긴 싸움이다. 오래 걸리는 싸움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검열과 그 검열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자기검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아니, '나'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매주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는 [권리장전_2016검열각하] 프로젝트가 근사한 이유는, 각 작품들이 저항으로서의 연극이라는 대의에 묻히지 않고 그 자체로서의 멋짐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열의 피해자인 한 개인의 내면으로 파고들었던 <15분>과 검열의 언어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 탐구하였던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은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검열'을 향한 창작자로서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하는 때가 왔다는, 자각의 다름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싸울 필요는 없다. 실은 '싸운다'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도 망설여진다. 누구에게는 여전한 침묵이 그들 나름의 시위일 수 있는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래 어쩌면, 공공성과 보편성을 위해서 검열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함께 싸우자고 말하는 일은, 폭력이 될 수 있다. 다만 '일상의 감각'으로 검열이 다가왔을 때 그 때가 왔을 때 작업하는 누구나가 자신 나름의 정직함과 떳떳함으로 이 사태를 마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연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말고 '나'부터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연출가 3인의 문제제기와, 당시 문화사업부장의 1차 답변
http://arko.or.kr/nation/page3_1_list.jsp
2) 당시 문화사업부장의 2차 답변
http://www.arko.or.kr/nation/page3_1_list.jsp
3) 국립국악원 검열일지 http://hellolara.com/?p=61579
4) 신용목의 시집 『아무 날의 도시』 (문학과 지성사, 2012) 해설 중에서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각 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