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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섬으로 간 나비 <무인도 탈출기>

우리들의 극중극

한현주_극작가
100호 2016.09.22
필자는 공연이 끝난 후에 창작자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이 코너에 옮겨 놓고 있다. 꽃점도 별점도 아닌, ‘그 점’에 대해 말을 주고받는데, 여기서 ‘그 점’은 공연을 본 관객이 궁금해할만한 지점이다. 아니, 그랬으면 하는 것이 이 코너의 취지다. 필자는 대부분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희곡 및 시놉시스, 혹은 홍보자료)를 접한 ...

필자는 공연이 끝난 후에 창작자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이 코너에 옮겨 놓고 있다. 꽃점도 별점도 아닌, ‘그 점’에 대해 말을 주고받는데, 여기서 ‘그 점’은 공연을 본 관객이 궁금해할만한 지점이다. 아니, 그랬으면 하는 것이 이 코너의 취지다. 필자는 대부분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희곡 및 시놉시스, 혹은 홍보자료)를 접한 뒤 나름대로 몇 가지의 키워드를 가지고 창작자들을 만나는 편이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때도 있고, 인터뷰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준비한 질문을 꺼내놓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창작자의 의도가 무대 위에서 잘 구현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점, 즉 다소 부정적인 성격의 질문이다. 그래서 글을 정리하면서 뒤늦게 고민에 빠질 때도 있다. 그래도 이건 물어봤어야 하는데... 관객 혹은 독자가 이 코너를 통해 듣고 싶어 하는 바에 대한 기대치에 필자의 글이 가 닿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웹진 100호를 맞아 이러한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두 명의 관객과 함께 공연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솔직히 더 난감했다. 당최 무슨 질문을 던져야할지... 또 뒤늦게 후회할까봐 긴장을 했는데, 누구보다 연극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풀어내주었다. 두 관객인 정석민, 김영선 씨는 웹진 [연극in] 의 애독자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독자좌담회도 참석했던 분들인데, 정석민 씨는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일하다 현재 창업을 준비 중에 있고, 김영선 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흔쾌히 함께 자리해주었다. 이들과 함께 본 작품에 대한 감상과 더불어 그들이 사랑해 온 극장에서의 경험을 풀어내본다.

공감의 키워드 : 실업급여와 취업준비

극단 ‘섬으로 간 나비’의 <무인도 탈출기>는 이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실업급여로 간신히 버티며 ‘삼성맨’을 꿈꾸는 남자와 문예창작과를 다니다 말고 친구에게 빌붙다시피 살고 있는 남자. 둘은 지하방 생활자다. 그리고 위층에 살고 있으며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생기발랄함을 잃지 않고 있는 여자가 자주 그들을 찾아온다.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과 김밥을 들고서. 극의 분위기는 우울하지 않다. 취업난과 관련하여 매일같이 접하는 뉴스나 노량진을 가득 메운 근심어린 얼굴들을 떠올리며 극장에 들어섰기 때문에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래, 꼭, 굳이, 어두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의 두 관객은 자신들의 일상에 맞닿는 극의 지점들에 적극 공감했다.

정석민
저는 이 공연이 <청춘, 간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라이트 버전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적절하게 동시대 청년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도, 뭔가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좋았어요. 탄탄하게 구조를 짜려는 강박 때문에 얘기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꼭 그럴 필요는 없죠. 다소 가벼울 수 있지만 즐겁게 펼쳐진 이런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이 극단이 잘 해낼 수 있는 지점을 향해 이야기와 연기가 펼쳐졌다고 봐요. 마치 친구들이 우리의 얘기를 가지고 만든 작품을 본 것 같아요.
김영선
청년들의 현실이 적극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아니었지만 저 역시 고시 공부 중이라 더 공감이 됐어요.
정석민
저 역시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상태라 공감이 됐어요. (웃음)
김영선
극 중에서 삼성맨과 로또의 설정이 재밌었어요. 어쩌면 이 두 가지는 인물들에게 막연한 기대를 품게 한다는 점에서 같은 점이 있으니까요. 둘 다 판타지에 가깝잖아요. 저는 평소에 저의 현실과는 좀 떨어져 있는 작품을 많이 봐요.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경험이 흥미롭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공연을 보면서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공연 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싶은 거죠. 어찌 보면 제가 청년으로 겪는 현실이 문화 경험에까지 제약을 주고 있는 거죠. 그런데 오늘 작품을 보면서는 편하게 웃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한현주
공연을 보면서 <위대한 생활자의 모험> 같은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오늘 작품보다는 훨씬 어두웠지만, 주인공 청년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저항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죠.

그러고 보니 제목에 하나는 ‘모험’이 붙었고, 다른 하나는 ‘탈출’이 붙었다. 일상의 사회학에 따라붙는 용어 중 하나인 ‘권태’와는 거리가 멀다. 어찌 보면 살벌하기 그지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지하실에 처박혀 오직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 발버둥치는 주인공은 전직 말단 공무원이다. 그 시기 러시아 소설의 대표적인 주인공이 하급 공무원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는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다양한 형식의 새로운 수기가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관객 김영선(좌)과 정석민(우)

나의 극중극

극 중에서 인물들은 극중극을 펼친다. 사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하방이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무인도 같지만, 그들은 또 하나의 무인도를 상상한다.

한현주
극중극의 설정이 흥미로워요. 비루한 현실에서 꿈꾸는 판타지는 대부분 현실과는 정반대인 상황으로 그려질 때가 많잖아요.
김영선
네. 저도 그게 재밌었어요. 이미 삼성맨이 되고 난 뒤에 조난을 당하고, 여자는 로또에 당첨된 후에 미국에 가다가 무인도에 떨어지게 되잖아요. 저는 여자를 보면서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하고 생각을 해보게 되요. 당첨금이 사라지고 없다면 당연히 섬에 남을 거 같아요.
한현주
석민씨는 어떤 극중극을 상상해볼 수 있을 거 같으세요?
정석민
저는 지금 창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투자를 받아서 대박이 나는 상황? (웃음)

작품에서는 막연할지라도 지금 자신이 꾸고 있는 꿈, 그것을 이룬 뒤에 다다를 수도 있는 또 하나의 위기가 극중극으로 그려지고 있다. 오히려 그 극중극을 통해 지금 인물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 혹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가 그런 미래까지 상상해볼 여유라는 게 있겠습니까, 라고 물어온다면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하지만 상상해볼 필요는 분명 있어 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극장을 찾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극중극을 체험해보는 것, 말이다.

한현주
촌스러운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왜 연극... 인가요?

대학 신입생 시절 오리테이션을 가장 한 각종 술자리에서 정말 받기 싫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다. 죄송하다. 하지만 친절한 두 분의 목소리에는 창작자 이상의 뜨거움이 있었다.

김영선
저는 ‘디즈니 세대’예요. 음악과 연기가 한데 어우러진 극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세대죠. 그래서인지 제 주변에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구요. 그런데 전 내러티브가 강한 극이 좋더라구요. 제가 디자인을 전공해서 동화책을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이야기에 관심이 더 많아졌나 봐요. 연극을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낭독공연으로까지 관심이 이어졌어요. 제가 본 작품이 ‘본 공연’으로 제작되면 그렇게 기쁘더라구요. 마치 창작의 과정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정석민
처음 본 공연이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 밤의 꿈>이었어요. 스토리와 무대 이미지 모두가 너무 좋았어요. 그 후로 밀양 연극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공연을 자꾸 보다 보니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아마추어 극단에서 연극을 해보기도 했죠. 지금은 취미로 발레를 배우고 있어요. 1년 반 정도 됐어요.
한현주
어쨌든 몸을 통한 표현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계신 거네요. 웨이트 트레이닝이랑은 다르니까요. 컴퓨터프로그래머(정석민 씨의 직업은 컴퓨터프로그래머이다)의 발레를 잠시 상상해보았습니다.(웃음)
정석민
저는 작품을 고를 때 주제보다는 극단을 봐요. 완성도가 중요하니까요. 저는 대전에서 살고 있고, 보고 싶은 공연이 있을 때 올라와요. 긴 시간을 내는 만큼 완성도 있는 공연을 보고 싶은 열망이 크죠. 그런데 오늘처럼 젊은 신생 극단의 작품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만날 기회가 잘 없어요. 작품을 소개해주는 매개가 부족하잖아요.
김영선
연극은 제가 저에게 주는 보상이에요. 예전보다 그 보상을 더 자주 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죠.

정말 큰 아쉬움이 느껴져, 동시에 맥주잔에 손이 갔다. 멋쩍게 한 모금.

연극이 끝난 후

연극이 끝나면 관객과의 대화가 있을 때도 있고, 함께 본 친구들과의 대화가 있을 때도 있다. 어떤 얘기를 듣고 싶고, 또 하고 싶을까...

정석민
저는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서 조용히 보고 내려가기 때문에 공연을 보고 나서 얘기를 나눈 경험이 거의 없어요. 항상 아쉬웠죠. 그래서 인터뷰 섭외가 왔을 때 더 신났어요. 실은 요즘 작품을 보는 횟수가 줄었어요. 실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웃음) 언제부턴가 연극을 스스로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오락 프로 보듯이 소비해버리는 거 같은... 공연을 보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부족해져 갔던 거죠.
김영선
저는 관객과의 대화에도 가끔 참여하는 편인데요. 그렇다고 작품에 대해서 연출가나 작가가 직접적으로 다 설명하는 게 썩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관객이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이런 경험도 있어요. 한번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어떤 관객이 자기가 본 바를 말했는데, 연출가가 자신은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작품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서로 열어놓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정석민
저는 좀 달라요. 웹진의 이 코너를 통해서라도 작품의 의도 같은 걸 시원하게 듣고 싶어지더라구요. 내가 궁금한 걸 확인하고 싶은 거죠. 아무래도 그럴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아서인가 봐요.
김영선
저는 오히려 연습과정에서 작품이 어떻게 변화하게 됐는지...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게 좋아요.

우리는 그렇게 만들고, 또 우리는 그렇게 보고 있다. 그 사이, 극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만들고 보는 사람의 기대와 불안이 두루 섞여 있다. 그 길 위의 공기를 맛보는 마음으로, 전하는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또 기다려본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