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함익> & 두산아트센터 <썬샤인의 전사들>
거울 앞에 선 ‘함익’, 거울 속의 모습을 그리는 ‘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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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작가에게도 관객에게도 풍성한 가을임에 틀림없다. 관객은 동시에 올라간 두 작품을 보며 작가의 세계에 한 발 더 다가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종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매력 안에서 취향을 확인하기도 한다. ‘함익’이 제자 ‘연우’를 통해 얻게 되는 질문-‘사느냐 죽느냐’가 아닌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에 많은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객 스스로를 향한 질문으로 전이되는 순간이다. 또 작가를 찾아오는 역사 속의 아이들을 통해, 우리도 그들처럼 저마다의 ‘수첩’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곧 망각의 요구에 맞서 기억의 전사가 되기를 자처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은성 작가를 만났다. ‘함익’과 ‘한승우’를, 그리고 작가를 찾아온 아이들을 만났다.

거울보기와 글쓰기
- 한현주
- 두 작품을 다 본 사람들은 비교를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구요. 그 지점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 전에, 두 작품을 구상하고 쓴 시기가 궁금해요.
- 김은성
- <썬샤인의 전사들>(이하 <썬샤인>)은 2013년 2월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말고 바꾸고를 반복했어요. 작년 요맘때까지도 헤매면서 자료조사만 했죠. 올해 3월에 초고를 끝냈어요. <함익>은 작년 가을에 의뢰를 받았는데 <썬샤인> 초고를 끝내고 4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한 3개월 걸린 거 같아요.
대부분의 창작자가 그러하겠지만 세월호의 영향, 검열 사태의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잠시 후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려주었다. 일단, 다른 질문 먼저.
- 한현주
- 두 작품 모두 거울이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잖아요. 거울을 통해 보고, 나아가 본 것을 그리죠. 염두에 둔 건가요?
- 김은성
- 공통의 키워드로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에요. 공연 막바지에 돌아보니 그런 것도 보이긴 하더군요. 작년 가을부터였던 거 같은데, 아마 내 자신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함익>에서는 자아의 분신을 만나는 것으로 작용했고, <썬샤인>에서는 뭐랄까... 일종의 작가론을 얘기하는 매개가 된 거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었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어서 그런 장치가 생겨난 게 아닐까 싶어요.
- 한현주
-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 김은성
-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동료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또한 이야기를 쓴다는 게 유효한 일인가, 라는 질문을 거듭하게 됐어요. 한 발짝 물러서서 배부른 짓거리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어떤 이야기가 떠올라도 동력이 안 생기더라구요.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감동이 되기를 바라고 쓰는 나에게도 감동이 되기를 바랐지만, 잘 안 됐죠. 책상 앞에서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기보다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어야할 거 같고, 선언문을 쓰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야 했고... 그러다 아팠어요. 부정맥을 앓으니까 심장이 자꾸 벌렁거려요. 가라앉히기 위해서 걷고 산에 오르고, 그게 일상이었죠. 그렇게 혼자 있으면서 비로소 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걸 느꼈고,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믿어보자고 되뇌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죠.
- 한현주
- <함익>에서는 무대에 오브제로 거울이 있었지만, <썬샤인>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거울이 존재했던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소리들조차 서로를 보게 하는, 확인하게 하는 거울로 작동하는 느낌이었어요.
- 김은성
- 소리는 대본을 쓸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곳곳에 배치한 거예요. 숨소리, 웃음소리 등을 통해 인물의 죄의식과 자의식을 표현하려고 했죠. 세월호의 영향이었어요. 아이들이 창문을 깨려던 순간이 계속 떠올라서 그런지, 질식의 고통을 드러내는 숨소리를 환기의 차원에서 쓰게 됐어요.
- 한현주
- 작품에 나오는 윤흥길 작가를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거죠?
- 김은성
- 네. 사회적인 문제를 소시민의 일상과 맞물려서 얘기하는 방식이 좋아요. 특정한 사회적 상황이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시키는가를 보여주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그 질감이, 내가 가진 어떤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져요.
<함익>
유령들 : 죽은, 혹은 살아 있으되 죽은 것과 다름없는
- 한현주
- ‘함익’은 여러 유령들을 보죠. 죽은 어머니나 오빠만이 아니라,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사는 사람들도 유령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물론 ‘함익’ 자신도 포함되는 거구요.
- 김은성
- <함익>은 자아론적 측면이 강해요. 스스로도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인물이 자신을 찾는 과정이죠. 현실에서는 자신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는데 환각 상태에서만 자신을 만난다는 전략을 가지고 썼어요. 연극이라는 환영 안에서 햄릿과 그를 연기하는 제자에게만 자신을 투영하려는 것도, 본인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행위죠. 그래서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구요. 저한테도 질문으로 남아 있어요. 그렇게 연극 속에서라도 자신을 찾으려는 게 살아있는 건지,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이 현실을 사는 게 살아있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 한현주
- <썬샤인>에서도 수첩에서만, ‘승우’의 내면에서만 존재하는 죽은 사람들이 등장하죠. 그리고 살아 있지만 자신과 오롯이 대면하지 못했던 ‘승우’ 역시 유령에 다름 아니잖아요.
- 김은성
- <썬샤인>에서 ‘승우’를 죽어 있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본인의 가장 깊은 내부에서는 스스로와 화해를 못하고 있었죠. 그런 자신을 계속 미워했겠죠. 결국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렸을 때, 할 수 있는 건 자신과 대면하는 일밖에 없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그게 끝은 아니죠. 연극에서의 이야기는 자신이 벌써 쓴 게 아니라 아직도 쓰지 못한 이야기고, 이제 그가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되겠죠.
<썬샤인의 전사들>
50년 장진호를 ‘뺑뺑뺑’ 돌다
- 한현주
- 전작인 <뺑뺑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특히 <썬샤인>의 1막은 전작의 연장선, 혹은 다른 방식으로 약간 선회한 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 김은성
- 작가주의적 입장에서는 일보 후퇴죠. (웃음) 당시에 훨씬 더 분노했고 과감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만 그렇게 생각해요. 카툰의 형식을 빌려온 연극 형식의 측면에서도 그렇구요. 하지만 엄청나게 쓴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어쨌든 연극은 관객과 호흡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용이한 측면이 있죠. <뺑뺑뺑>에서는 직선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을 썼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다소 에둘러서 이야기로 표현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보수적인 글쓰기여서 아쉬움도 있죠.
- 한현주
- 한국 전쟁 전후를 그리지만, 인물들이 50년 장진호를 뺑뺑뺑 도는 것 같아요. 그 시공간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 김은성
- 미국과 중국의 세력다툼이라는 양상의 한국전쟁을 확대해보자는 거였어요. 실제로 51년 11월 26일에 미 7사단과 중공군이 장진호에서 부딪쳤죠. 극 중 카투사 소년병과 조선족 출신의 중공군 소년병이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 생각했어요.
- 한현주
- 그리고 소녀가 들어있는 그 ‘상자’가 만남에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무대의 한계일 수 있겠지만, 그 상자 속이 전해지지 않은 게 아쉬워요. 따뜻하게 보호받는 느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 김은성
- 맞아요. 분명히 공포가 있죠. 그래서 다급하게 두드릴 수도 있는 거고. ‘막이’(극 중 위안부 소녀)의 방도 마찬가지죠.
- 한현주
- 네. 무대에서는 복도의 분위기 정도만 전해지죠.
- 김은성
- 그 폐쇄성이 가져다주는 공포에 대해서는 연출이 좀 놓친 거 같아요. 뭐, 워낙에 해결해야할 게 많은 작품이니까...

연출가와 만나기, 그리고 나머지 질문들
- 한현주
- 부새롬 연출가와는 작업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인가요?
- 김은성
- 네.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라도 중요한 장면을 쓰면 피드백을 받기도 하죠.재미 없으면 그렇다고 너무 솔직하게 말해요. 물론 이렇게 항상 얘기 나누는 관계가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을 거예요. 장단점이 있겠죠. <함익> 하면서 김광보 연출님과는 소주 한 잔 안 했어요. 작품도 한 세 줄 정도 삭제한 걸 제외하곤 온전히 올라갔죠. 공연하기 쉬운 대본은 아니었는데, 미안하기도 해요.
- 한현주
- 장면을 굉장히 짧게 쓰는 편이잖아요.
- 김은성
- 공간을 하나 혹은 둘로 상정해두고 쓰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가 봐요.
- 한현주
- 연출이 장면 구성에 애를 많이 먹을 거 같은데요.
- 김은성
- 연출이 해결해야할 몫 아닐까요? (웃음)
- 한현주
- 이번에 출간된 희곡집에 실린 원고는 공연대본인가요?
- 김은성
- 아니요. 초고와 공연대본 사이 쯤? 끝내 아쉬워서 삭제하지 못한 장면을 넣었어요. 저는 작품 고칠 때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리딩을 해요. 이번에도 B선 라인을 동원했는데요. 전문적인 배우가 아닌 분들이 리딩을 할 때 더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진짜 아무리 해도 안 넘어가지는 부분이 훨씬 명확하게 보이거든요.
- 한현주
- 마지막 질문. 죄책감은 사는데 도움이 될까요?
- 김은성
- 당연히.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거울을 들여다보는 거죠. 찌질해지기도 하고 술도 찾게 되겠죠. 확신이 없어서 눈치를 보기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남을 해치진 않죠. 나쁜 일을 한다는 건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고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오히려 자신을 숨기는 거죠. 하지만 죄책감은 내부에 숨어서 끊임없이 그 행동을 지켜보겠죠.
극의 말미,
‘승우’가 만화 ‘썬샤인의 전사들’에 나오는 레더 박사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하는 말 :
거울을 본 악당들은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겨났지.
거울로 악당을 죽인 사람들이 점점 괴물로 변해간다는 사실이었어.
(한숨) 절망적이었지.
블랙드락을 물리치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나 또한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갔으니까.
마지막 방법으로 나는 내 자신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어.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뾰족하게 길어진 송곳니를 그리는 순간,
거울 속의 송곳니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지.
가늘게 찢어진 눈동자를 그리는 순간,
거울 속의 눈동자가 다시 동그랗게 빛나기 시작했어.
비법은 우리들의 손에 숨어 있었던 거야.
그림을 그려줘.
블랙드락의 얼굴을 그려줘.
악당들을 만나면 그들의 모습을 그려줘.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각 극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