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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작은신화 <싸지르는 것들>

우리가 쥐고 있는 라이터의 위력

한현주_극작가
103호 2016.11.03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성냥갑이 항상 있었다. 곤로나 난로에 불을 붙이기 위한 용도이거나, 담배를 태우시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장난감이기도 했다. 성냥개비를 쌓거나 때로는 정말 불장난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귀를 후비기도 했다. 특히 누군가가 귀를 후벼줄 때는 귓속에서 움직이는 성냥개비의 느낌 때문에 잔뜩 긴장을 하기도 했...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성냥갑이 항상 있었다. 곤로나 난로에 불을 붙이기 위한 용도이거나, 담배를 태우시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장난감이기도 했다. 성냥개비를 쌓거나 때로는 정말 불장난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귀를 후비기도 했다. 특히 누군가가 귀를 후벼줄 때는 귓속에서 움직이는 성냥개비의 느낌 때문에 잔뜩 긴장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불이 붙어 귓속이 붉게 타오르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작은 성냥개비 하나의 위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던 거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가진 것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불에 대한 공포는 커졌다. 불의 이미지가 주는 두려움보다 불로 인해 잃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불’은 소유의 반대편에 서 있는 모든 것의 상징이 된다.
극단 ‘작은신화’가 30주년을 맞아 선보인 <싸지르는 것들>은 70여 년 전에 발표된 막스 프리쉬의 <비더만과 방화범들>을 각색한 작품이다. 적극적인 각색이라기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는 쪽으로 대사를 수정한 정도이다. 원작에서의 성냥은 라이터로 바뀌었다. 하지만 라이터를 쥐고 있는 주인공 ‘비더만’이 외치는 말은 그대로다. “내 집만 아니면 돼!”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각종 벌칙이 오갈 때 멤버들이 자주 외치는 말이 떠오른다. “나만 아니면 돼!” 그래서인지 ‘이기심’이라는 키워드만으로 무대를 읽다보면 작품이 너무 단순해져버린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비더만’은 어떠한 양상인지, 웃음 뒤에 가려진 공포가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우리를 이끄는지를 생각함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듯 싶었다. 극단 ‘작은신화’가 이같이 아주 거친 제목을 내세워 이 작품을 기념 공연으로 선택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 일 것이다. 최대한 많은 배우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 공연은 세 팀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한 팀의 선후배 배우 두 분을 만났다. 김은석 배우와 박종용 배우. ‘작은신화’의 길 위에 서 있는 두 배우가 작품과 극단을 함께 돌아본다.

김은석(좌)과 박종용(우) 배우

‘작은신화’에서의 시작, 그리고 비더만과 소방관으로 만나다

한현주
두 분은 각각 언제 극단에 입단하셨나요?
김은석
저는 1995년, ‘우리 연극 만들기’ 두 번째 작품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어요. 그 작품이 저의 데뷔작이 됐고 이듬해에 극단에 들어갔죠.
박종용
저는 2006년에 입단했고, 워크샵 <똥강리 미스터리>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김은석
너도 그 작품 했구나.
한현주
저는 초연을 봤어요. 아리랑 소극장에서.
김은석
맞아요. 그 작품은 성석제의 소설 <조동관 약전>을 각색한 건데, 인물의 비중도 고르고 해서 신입 단원들이 들어오면 꼭 하게 되는 워크샵이었죠.
한현주
그랬군요. 어쨌든 한 분은 극단에서 20년을, 또 한 분은 10년을 보내셨네요. 그러고 보니 전작 <토일릿 피플>에서 두 분이 함께 출연하셨잖아요. 워낙에 배우가 많은 극단이어서, 인연은 인연이네요. (웃음)
김은석
네. 저는 <돐날> 이후에 오랜만에 극단 작업을 한 거였어요. 30주년 공연을 함께하게 돼서 저도 기뻐요. 물론 초기 멤버들이 더 많이 참여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후배들은 그런 거 같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구요. 저 역시 갈 길이 바쁘고, 꼰대 소리 들을까봐 얘기도 잘 못하겠고 그렇더라구요.
한현주
박종용 배우님은 이번에 소방관 역할로 무대에 섰잖아요.
박종용
코러스로 캐스팅 되어서 처음에는 아쉬움도 컸어요. 하지만 앞으로 30년은 더 가야할 극단이니까 후배들과 잘 만들어보라는 대표님의 뜻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하하. 사실 제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라 후배들과 잘 못 어울렸어요. 이번엔 나름 책임감도 생기더라구요. 또 내가 나중에 주인공을 하게 되면 코러스와 어떻게 무대에서 어우러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기회였어요.

'비더만’스러운 우리의 발견

한현주
30주년에, 왜 이 작품이었을까요?
김은석
연극이 시대상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히 있었겠구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잖아요.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할 ‘비더만’이 어떻게 숨는지, 어떻게 모르는 척 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된다고 봐요.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전조와 기회가 작품에서 계속 있잖아요. 그게 싸이렌으로 계속 환기되죠.
한현주
공연을 보면서 제 안의 ‘비더만’스러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 사람만큼 가지지도 못했지만, 지금 이 시대에선 적게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때가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펴다가도,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만은 고개를 젓는 경우 말이에요. 음... 갖은 대출을 끼고 산 아파트 한 채가 오히려 사유를 가로막는 것 같은... 말이 너무 멀리 나갔습니다만... (웃음)
김은석
저 역시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쁠 때가 많죠. 작품을 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다른 해석을 품었음에도 상처주기 싫다는 핑계로 입을 다물죠. 내 안의 ‘비더만’이라고 할 수 있죠. (웃음) 어쨌든 잃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 치다가, 악수에 악수를 두게 되면 결국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걸 ‘비더만’을 통해 배우는 겁니다.

극 중에서 ‘비더만’은 결국 자신의 라이터를 방화범들에게 주고 만다. 어쩌면 그 라이터로 자신의 마음을 태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 것만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타인을 향해서는 무섭도록 차가운 그 마음을.

박종용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의 팬인데요. 백남기 농민 편을 보다가 그 분 따님의 얘기를 듣고 한동안 먹먹했어요. 자기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그랬대요. 얘야 원하는 게 있으면 엉엉 울지 말고 너의 의사를 표현하거라, 라고. 요즘 그 말씀을 자꾸 되새기게 돼요.
김은석
어떤 조직에 있든, 어떤 상황에 있든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죠.

<싸지르는 것들>

이것은 개코미디?

한현주
작품에서 희극적인 상황 연출이 많아 보였는데요.
김은석
연출이 처음부터 이 작품은 개코미디야, 라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원작을 읽고 그런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슈미츠(극 중 방화범)가 등장했을 때부터 제가 겁을 먹는데, 사실 저는 좀 더 대등한 구도로 그들을 제어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끌고 가고 싶었어요. 그러다 상황이 뒤죽박죽되고 결국 폭탄을 터트리게 되는 식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었죠.
한현주
몰리에르 식의 코미디도 있는 것 같아요.
김은석
그런 면도 있죠. 하지만 저는 꼭 코미디라기보다는 상황적인 아이러니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강조하려다 보니 과장된 몸짓도 나오고 하는 거죠.
한현주
지금의 상황에 맞게 더 적극적으로 각색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김은석
저도 동의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함께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어요. 번역도 후배 둘이서 직접 했고, 연출이 직접 대본을 다듬었고...
박종용
코러스의 움직임도 몸을 잘 쓰는 선배님이 라인을 짜주셨어요. 극 중에 음식도 나오고, 의상도 자주 갈아입는 편이라 무대 뒤에서 후배들이 정말 많이 고생하고 있어요.
한현주
세 팀이니까, 다른 배우가 같은 역할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을 것 같은데요.
김은석
공통의 동선에 나도 맞춰가야 한다는 점에서 힘든 것도 있었어요. 특히 이번 작품은 큐가 정말 많았어요. 연출님이 원래 좀 그런 편이긴 한데, 평소보다 더 큐가 세밀했던 거 같아요. 아마 여러 팀이 무대에 서야 하니까 그랬겠죠. 장점도 있었어요. 다른 팀을 지켜보면서 좋은 아이디어는 적극적으로 차용했어요. 다른 공연에서는 자존심이 있으니까 그렇게 잘 못하죠. (웃음)

거친,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시간들

김은석
(문득 포스터를 보며) 저는 이번 포스터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제목도 그렇고 거친 글씨체도 그렇고. 연출님 스스로도 거칠게 만들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거든요. 다시 초심으로 하고 싶어 하는 형의 열망을 보면서 그동안 형이 많이 고팠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연습을 열심히 하니까 대표의 언행일치가 보이잖아요. 그럼 배우들도 열심히 하게 되죠.
한현주
마지막으로 ‘작은신화’에서의 빼놓을 수 없는 순간들을 좀 얘기해주시죠.
박종용
저는 10년 동안의 과정이 다 빼놓을 수 없는 순간 순간인 거 같아요. 이번에 30주년 엠티를 갔는데, 후배들이 댄스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근데 평소에 그렇게 감정 표현을 잘 안 하시던 대표님이 그걸 보시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라구요. 그 순간 저도 이 극단에서의 시간들이 눈앞에 그려지더군요.
김은석
‘작은신화’는 저의 20대에요. 이제는 기억조차도 희미하지만 배우로서의 삶을 극단에서 시작했으니까요.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는 어떤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했던 순수함을 나눴던 것 같아요.
한현주
극단에 100명이 넘는 배우가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김은석
단원 수는 더 많겠죠. 하지만 숫자만으로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저 역시 빨리 커서 나가야 후배들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한현주
앞으로의 ‘작은신화’는?
김은석
다시 거칠게!
박종용
파이팅!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