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극단 행복한 사람들 <세컨드맨>

사랑의 약자들이 찾고 싶은, 거칠고 핍진한 자기애

최윤우_ 본지 편집장, 연극평론가
104호 2016.11.17
연극이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해야 할까. 혼란한 정국과 문화예술계의 비상식적인 이슈들을 목도하면서 연극무대는 이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질문이 개인의 신념, 연극(예술)의 가치가 무엇인가로 확장될 때 더욱더 그렇다. 연극은 우리가 사는 일상의 면면을 거대한 담론으로도 풀어낼 수 있고, 아주 사소한 정서와 감성으로 만나게도...

연극이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해야 할까. 혼란한 정국과 문화예술계의 비상식적인 이슈들을 목도하면서 연극무대는 이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질문이 개인의 신념, 연극(예술)의 가치가 무엇인가로 확장될 때 더욱더 그렇다.
연극은 우리가 사는 일상의 면면을 거대한 담론으로도 풀어낼 수 있고, 아주 사소한 정서와 감성으로 만나게도 한다. 형식과 방향이 다를지라도 결국 연극무대의 지향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내면을 다양한 감각과 관점으로 만나게 한다는 데 있다.
창단 2년을 맞은 극단 행복한 사람들의 <세컨드맨>도 그와 같은 선상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발칙한 상상과 가감 없는 표현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 2년간 8편의 작품을 올릴 만큼, 신진 단체라고 하기에는 쉽지 않은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극단 행복한 사람들이 8번째 정기공연으로 올린 <세컨드맨>을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만났다. 도대체 이 작품의 기저에 웅크리고 있는 연극적 함의는 무엇일까.

연극 <세컨드맨>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나눠질 수 있는 여지가 짙은(?) 작품이다. 4명의 등장인물을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명확하지 않고,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서사 역시 치밀하지는 못하다. 속으로 감추고 있으나 인간이 가진 욕망 혹은 이제는 일상에서 언제든 대면하게 되는 모습들을 가감 없이 까발려보자는 작품의 해석보다 ‘섹스 파트너’로서의 비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의 자극적 행위가 작품을 수식하는 듯 전개되고 있는 지점에서도 그렇다. 반면, 이 작품은 또 다른 삶의 이면을 바라보게 한다. 각각의 인물이 만들어내는 헛헛함 뒤에 풍겨오는 한 인간으로서의 고독함,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찾지 못하거나, 알지만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극단!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근간

최윤우
극단 행복한 사람들… 정체가 뭐죠?(웃음)
원종철
극단 ‘행복한 사람들’은 배우로 구성된 극단이에요. 2014년 창단 이후 최근 공연된 <세컨드맨>까지 총 8편의 작품을 올렸고요.
최윤우
많이 했네요. 신진단체가 2년 동안 8작품을 올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작품을 막 하시는 건가? 하하하.
원종철
아, 그런가요?(웃음) 그것보다 배우로 구성된 극단의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처음에 극단을 창단하면서 지향했던 방향성이 ‘관객이 행복한 연극’을 하고 싶다는 게 목표였어요. 그렇다고 삼류 개그 같은 작품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휴머니티’가 있는 연극, 가슴이 따뜻해지는 작품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최윤우
최근에 공연했던 <행복 배달 우수씨> 같은 작품이 그런 예가 되겠네요. 물론 극단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원종철
네. 맞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다양성이었어요. 대부분 연출이 대표로 있는 극단은 그 연출의 색깔이 곧 극단의 언어가 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배우들은 다양한 연출들과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는게 사실이거든요. 그걸 극단에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배우들도 우리 극단 뿐 아니라, 타 극단의 배우들과 함께 협업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대부분 더블캐스팅으로 공연되는 경우가 많죠. 그런 구조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최윤우
그게 여러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 편으로 극단만의 언어를 개발하고 지속성을 갖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고민의 지점도 많을 것 같네요. <세컨드맨> 공연이 끝났어요. 쉽지 않은 작품이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송현섭
아쉽죠. 해결 하지 못하고 끝난 것들도 많은 것 같아서. 섭섭하고(웃음).
김진영
더 좋은 표현을 무대에서 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것보다 연극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작업이잖아요. 다른 동료 배우들을 만나고, 관객을 만나면서 극단 안에서 알지 못했던 것들, 즉 배우의 태도 문제, 동료와의 관계, 그런 것을 다시 알게 된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작품에 약간 노출도 있잖아요? 작품의 표현 방식에 대해 납득이 안 가는 지점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면서 만들어갔던 작품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세컨드맨>

영화 같은 이미지를 무대화하는 고민

최윤우
부혜정 연출님은 작품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받으셨을 때, 즉 대본을 보고나서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던가요?
부혜정
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하하하. 눈동냥, 귀동냥만 많이 했지, 이렇게 정식으로 연출가로서 작업을 해본 것은 거의 처음이거든요. 그런데 배우들과 같은 시점에 대본을 받아서 첫 리딩을 했는데, 런닝타임이 30분 정도 나오더라고요. 큰일 났다. 빨리 장면 만들어야겠다.
최윤우
작품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지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부혜정
네. 그래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성적인 대사도 많이 나와서 우리가 관람 연령을 높였는데, 그게 터닝 포인트가 됐던 것 같아요. 대본 속에 그려져 있는 단어들, 예컨데 콘돔,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말로만 풀어가기에는 입체감이 생기지를 않더라고요. 오히려 그것을 좀 더 까발려보면 어떨까, 하는 방향을 세울 수 있었던 거죠. 처음 대본 받았을 때는 굉장히 영화 같은 대본이라고 생각했어요. 무대로 그려지는 대본이 있고, 영화, 드라마처럼 읽혀지는 글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무대화 시킬 것인가를 가장 많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최윤우
굉장히 직접적인 표현들이 많은 장면 구성은 모두가 같이 만든 아이디어인가요?
부혜정
네, 제일 많은 아이디어는 원종철 대표님이 내셨지만.
최윤우
역시, 사람이… 하하하. 팸플릿에 있는 작가의 의도를 보면 작가는 이 작품을 ‘부끄러움’이라는 키워드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는 각자가 갖고 있는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라는 말처럼. 배우들은 어떤 키워드로 이 작품에 접근하고, 인물을 분석해 갔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송현섭
인물 자체가 새컨드맨이잖아요. 남편이 있는 두 여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저는 이 정환이라는 인물이 왜 그런 삶을 선택했을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희곡에 그 이유나 상황이 디테일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인물을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최윤우
그렇다면 ‘정환’이라는 인물은 스스로 세컨드맨의 삶을 선택한 건가요?
송현섭
선택은 본인이 했다고 생각해요. 직업이 없는 것이든. 뭐든. 물론 외부적 환경에서 만들어졌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스스로 선택한 거죠.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워하고, 깊어지는 것에 멀리하고….

대표 원종철

원종철
저는 외부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졌든, 선택을 했든, 그것보다 그 다음이 궁금했어요. 이 삶에 만족스러운 건지, 아니면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염증으로 괴로워하는 건지. 그거는 ‘세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이 굉장히 쉽게 이야기하면 마치 TV재연드라마 <사랑과 전쟁>처럼 볼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사 하나 하나에 정말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데, 배우들은 어떤 정서로 풀어내는가에 대한 고민과 궁금함을 함께 갖고 있었죠.
부혜정
제가 쓴 연출의 글에 이런 게 있었어요. “치열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다른 세계를 꿈꾸지만 내가 속한 곳에서 ‘퍼스트’라는 위치는 탐나는 타이틀이다.” 세컨드맨을 자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안정성이 없고,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이고, 작품에서도 그렇게 보이기를 바랐어요. 스스로 선택을 했지만,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아주 외롭고, 불안한, 그런 인물이라는 거죠.
최윤우
정환의 캐릭터가 궁금했던 것처럼 세손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였어요. 세손은 남편 재석과 정환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자신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적극적이었던 재석을 선택했으나, 여전히 정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이에서 이 인물의 실질적인 바람은 어디에 있는가, 단순히 감성적인 측면은 뛰어넘는 근원적인 질문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거요.
김진영
저는 세손을 포함하여 모든 인물이 사랑에 대해 약자라고 생각해요.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인 거죠. 즉, 내가 원한 사람은 정환이지만 확신을 주지 않고 불안하고, 남편 재석과는 여러 정서적,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고… 아마 정환의 집을 다시 찾은 이유는 대사처럼 몸의 기억 때문이 아니라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인간적으로 너무 약하기 때문에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연극 <세컨드맨>에 등장하는 인물들인 정환, 세손, 재석, 혜연은 마치 각자의 불안함을 대변하는 탈출구로서 서로에게 치명적인 관계로 얽혀있지만, 일면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연극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거칠어지고 핍진해진 삶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최윤우
파편적으로, 또 감각적으로 상황을 전개하고 있는 이 작품이 창작자, 즉 연출과 배우들에게는 어떤 부분에서 공감과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가? 그런 고민이 좀 있었어요.
원종철
말도 안 되는 뉴스를 접하면 이게 말이 되냐? 했던 게 이제는 말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봐요. 에이, 그래도 대통령인데 그럴 수 있겠어? 그런데 그게 이제는 현실로 드러나죠. 같은 시대를 살면서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거죠. 직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는 것처럼 이 작품의 이야기 역시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김진영
공연을 하면서도 표현하고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놓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여러 피드백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내면서, 오히려 여백이나 대사만으로 충분히 쓸쓸함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솔직하게 다 까놓고 이야기 해보자, 이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거죠.
송현섭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의 문제이기도 한데, 한 곳에 깊이 가는 것보다 분산된 것들이 많잖아요. 그게 세대적 특징이기도 한 것 같고, 이 작품은 그런 인간의 어떤 모습을 상징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최윤우
물론 아쉬움도 있어요. 표현의 방식들이 거칠다보니 배우 개개인이 정서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너무 강해서인지, 행동이 무거워지면서 작품 역시 무거워졌던 것 같아요. 오히려 더 담백하게 상황들을 전개시켜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연극이 늘 거대 담론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아주 사소한 일상을 연극적 상상력으로 품어내 되, 그것이 가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지점 중에 하나는 명확함이다. 연극 <세컨드맨>은 자기애를 찾고 싶은 인물들의 가장 내밀한 지점을 거칠고 투박하게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대면하게 함으로써 다시 한 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하고 있다.

[사진: 극단 행복한 사람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