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애인 <삼인삼색 시즌2>
대학로의 문턱을 넘는 ‘애인’의 휠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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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들은 분류된다. 혹은 스스로를 분류하기도 한다. 그것이 미학적 차이에 따른 것일 때도 있지만, 성별과 나이 등의 기준이 앞세워질 때도 많다. 기획과 홍보의 과정에서는 이 같은 분류로 작동하는 편견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극단 애인’의 이름 앞에 ‘장애인 극단’이라는 분류명을 넣는 것은, 일종의 한계나 극복해야할 지점을 드러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 역시 조심스러운 점이 있다. 극단 ‘애인’은 내년에 10주년을 맞는다. 지금도 구성원들에겐 대학로에서의 일상 곳곳이 넘어야할 산일지 모른다. 많은 연습실과 극장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에 위치해 있으니. 또한 대학로의 연극 문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작품을 올리고 그것을 발전시켜온 9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아 보인다. 그간 <고도를 기다리며>를 필두로 번역극의 각색을 통한 작업과 장애인의 삶을 주로 다룬 창작극 작업이 극단의 두 축이었다. <삼인 삼색>은 단원들이 쓰고 연출하는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 2월에 첫 선을 보였고 이번이 두 번째다. 백우람 작가와 강예슬, 김지수 연출가를 공연이 끝난 무대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백우람(작가), 강예슬(연출가), 김지수(연출가 및 극단 대표)
10여 년의 시간: 축적과 변화
- 한현주
- 극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좀 소개해주세요.
- 김지수
- ‘극단 산’의 윤정환 연출가와의 만남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가 한 자원봉사단체의 간사로 일하고 있을 때 학생이었던 그를 만났어요. 그리고 같이 ‘극단 휠’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당시에 여러 가지 상황이 있어서 흩어지고 말았어요. 그 후에 ‘극단 애인’을 만들게 됐죠. 하지만 장애인 연극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은 물론 연극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어요. 창단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기와 극작, 공동창작 등을 공부했는데 ‘극단 산’의 도움이 정말 컸죠. 아, 또 한 명의 연출을 빼놓을 수 없네요. 이연주 연출가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면서 극단 내의 힘이 축적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시간을 담은 긴 숨을 내뱉으며)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보면 실감이 잘 안 나요. 울컥하기도 하구요.
- 한현주
- 백우람님은 어떻게 함께 하시게됐나요.
- 백우람
- 제가 연극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지수 누나를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 됐죠. ‘극단 산’이 주최했던 장애인 연극 교실 워크숍 공연이 제게 첫 작품이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작품이었는데 제가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끝나고 엉엉 울었어요. 그 시기를 어떻게 잘 견뎌오고 나니까, 조금씩 힘이 생긴 거 같아요.
- 김지수
- 이젠 공연 끝나고 술도 마실 정도로 여유가 생겼죠. 하하.
- 백우람
- 참, 그때 ‘줄리엣’을 여기 있는 예슬씨가 맡았더랬죠.
- 한현주
- 예슬 씨는 이 극단의 유일한 비장애인이시잖아요.
- 김지수
- 우리 극단 힘의 한 축이죠.
- 강예슬
- (멋쩍어하다가) 저는 이 극단의 사람들이 좋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사촌 오빠를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됐는데요. 당시엔 장애인과 연극, 이 모두가 낯설었어요. 하지만 사람이 좋아 매일 만나고 함께 연극을 공부하다 보니까, 나도 연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어요. 하지만 배우는 제 길이 아니더군요. 하하.
- 한현주
- 그 시간 동안 극단에 여러 가지 변화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 김지수
-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면서 극단이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해요. 이연주 연출과 3년 넘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죠. 굉장히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자신감도 좀 생겼어요. 물론 연기의 측면에서 어려운 점이 많죠. 극단 배우들이 비장애인 배우와 연기를 할 때 호흡이 달라서 힘들기도 해요. 무대 위에서는 확연히 대조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극단의 배우들이 대부분 언어장애가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낯설어 할까봐 걱정도 많이 했죠. 배우들 스스로 이러한 부분들을 이겨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연대 혹은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 한현주
- 작품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죠.
- 백우람
- 저는 글을 쓸 때 아이디어가 되는 한 장면을 먼저 떠올리는 편이에요. 이번에는 남자들만 있는 장애인 그룹 홈에 갓난 애기가 맡겨지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 김지수
- 영화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의 모티브와 유사하죠.
- 강예슬
- 저도 작가의 아이디어가 흥미로웠어요. 연출을 맡은 저로서는 무엇보다 작가가 가진 주제 의식을 꼭 살리고 싶었어요. 우왕좌왕 하면서 아기를 돌보는 가운데 생겨나는 소소한 일상의 힘 자체를 보여주고 싶더라구요.
- 한현주
- 결말이 흥미로웠어요. 아기의 엄마가 찾아오고 끝나버리잖아요. 열린 결말인 셈인데, 다양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이어지더라구요.
- 강예슬
- 연습을 할 때 공동창작이나 즉흥극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결말은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아이디어에요.
- 한현주
- 두 번째 작품 <조건 만남>은 주인공인 장애 남성의 캐릭터가 강렬했어요.
- 김지수
- 자신을 거부하는 성판매 여성 앞에서 남성적 우월성을 드러내죠. 그에 반해 성판매 여성은 비장애인으로서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거구요. 둘 모두 사회적으로 소수자인데, 서로가 우월함을 내세우면서 한계를 보여주게 되죠.
- 한현주
- 그 부딪힘에서 오는 긴장이 무대를 가로지르는 휠체어의 에너지로 표현되면서 욕구가 분출되는 거 같았어요. 그에 반해 세 번째 작품 <방에서 나오기만 해>는 아버지의 압박으로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춘기 주인공을 그리고 있는데요.
- 김지수
-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요. 그리고 저 역시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만 보냈던 시간이 있어요. 평생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더군요. 부모의 탓만도 아니고, 사회 구조의 문제인 거잖아요. 작품 속 아버지 역시 자식에게 말할 수 없는 지점이 있으니, 둘 모두 일상의 고독을 떠안고 사는 셈이죠.
- 한현주
- 그런 아버지가 치매를 겪게 되고,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돌보게 된다는 설정이 짙은 여운으로 남았어요.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연습할 때 너무 힘들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양상은 달라도 비슷한 상처가 다들 있을 거 같아서...
- 김지수
- 네. 주인공을 맡은 하지성 배우가 처음에는 하기 싫다고 하더군요. 너무 아프니까요. 제가 설득해서 하게 됐는데, 연습실이 종종 울음바다가 됐어요. 저도 같이 울기도 했지만 한 발 물러서서 다그치기도 하고 그랬죠. 총연출을 맡은 이양구 연출가가 그러더군요. 이 과정 또한 의미 있는 거 아니겠냐고, 연극이 가진 치유의 힘을 같이 경험해보는 것도 중요한 거 아니겠냐고... 그런 연습 시간을 겪고 나서 조금은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극단 애인’만이 선보일 수 있는 무대에 대한 가능성
- 한현주
- 백우람 님은 극단에서 작가와 연출, 배우로서 활동하고 있잖아요. 어떤 옷이 가장 본인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 백우람
- 저는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 모두
- 천상 배우.
- 백우람
-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조명이 딱 들어오면 힘이 나요. 콘센트에 전기 코트 꽂은 것처럼 찌릿찌릿.
- 한현주
- 도전하고 싶은 연기는?
- 백우람
- 늘 얘기하고 다니는 건데, <고도를 기다리며>의 ‘럭키’요.
- 한현주
- 고고나 디디가 아니라, ‘럭키’요?
- 백우람
- 네. 제가 극단 공연에서 그 역할을 했었어요. 근데 그때는 잘 모르고 했던 거 같아요. 이제는 정말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한현주
- ‘애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대에 대해서 다들 고민하실 거 같은데요.
- 강예슬
- 음... 항상 답을 갖고 있는 거 같은데, 또 그 답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래요. 밀양연극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 ‘진정성’에 대해서 말을 했어요.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거 없는 사람이 또 어딨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고전과 창작극이라는 두 축을 두고 고민을 이어가려고 해요. 베케트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존재에 대한 보편적인 주제를 끌고 감과 동시에, 창작극을 통해서는 장애인의 삶에 대해 좀 더 깊게 들여다보려고 하는 거죠.
- 한현주
- 소재적 차원에서 다루는 것을 넘어서는...?
- 김지수
- 네. 연극의 주체가 장애인이라는 점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죠. 사실 장애인이 비장애인 역할의 연기를 해도 관객은 장애인 얘기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그 지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더 탐구해야겠죠.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고민으로 넓혀가고 싶어요.
- 한현주
- 10주년에는 어떤 공연이 펼쳐지나요.
- 김지수
- 이연주, 윤정환 연출가의 신작을 계획하고 있어요. <삼인 삼색>도 계속 이어갔으면 하구요. 10년이라고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어쩌면 대학로의 문턱을 넘으려는 것이 ‘극단 애인’의 목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 문턱을 위태롭게, 혹은 아름답고 힘차게 가로지르는 휠체어의 움직임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극단 애인’을 통한 시선의 확장, 그 힘이 더 많은 관객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