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돌파구 <XXL레오타드안나수이손거울>
교복과 아파트에 갇힌 개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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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서 다룰 작품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필자는 잠시 2011년으로 돌아가 본다. 그해 여름, 청소년극 <쉬반의 신발>을 보았다. 영국의 극작가 팀 크라우치의 작품이었는데, 그해 봄에 그의 또 다른 작품 <디 오서>(이 작품에 대해서는 리뷰 말미 참조)를 본 터라 그가 쓴 청소년극은 과연 얼마나 파격적일까 싶었다. 뜻밖에도 공연은 아주 온유했다. 청소년극이니까, 싶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내 안에 잠재된 불편한 생각을 들추게 되었다.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에 집착하는 소년과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 노동력을 착취하여 생산되는 신발을 절대 신지 않겠다는 소녀. 둘은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소녀는 이런 발언을 한다. “부시(당시 미국 대통령)의 말 잘 듣는 강아지일 뿐인 블레어(당시 영국 총리)가 뭘 할 수 있겠냐”고. 음... 대사를 들으며 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우리의 현실에선 저런 식의 일상적 대화가 가능키나 할까, 라고. 즉, 청소년의 의식과 발화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나를 확인한 셈이다. 또 하나가 있다. 이 작품이 블레어 정부 시절, 영국의 국립극장 측이 작가에게 의뢰하여 생산된 청소년극이라는 점. 그런 작품에서 위와 같은 대사가 나왔다는 것. 솔직히 놀랐다. 그리고 스스로 놀랐다는 것이 불쾌하고 부끄러웠다. 이미 내 안에 검열이 존재했고, 퇴행적인 사고를 어느 순간 품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니까. 청소년극을 만드는 창작자는 고민하는 주체로서의 청소년과 그 고민의 과정에 끊임없이 잣대를 들이대는 어른을 동시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청소년극이 아닌 기성 창작자들이 하는 작업에서는, 청소년을 대상화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XXL레오타드안나수이손거울>을 만든 박찬규 작가와 전인철 연출가를 만나 이러한 지점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전인철 연출가(좌)와 박찬규 작가(우)
청소년을 쓰기, 청소년을 연기하기
레오타드를 입었을 때 느끼는 밀착을 통해 자신감과 행복을 느끼는 남학생 ‘준호’. 그의 엄마는 아파트 단지 일대의 사교육 시장을 선도하는 일명 ‘돼지엄마’다. 엄마의 계획대로 단지 내 아이들과 함께 커 갈 터이므로, 당연히 자신의 취향을 꼭꼭 숨겨야만 한다. 무대 위의 배우는 ‘준호’의 억압과 해방을 동시에 표현해야 한다. 쉽지 않다.
- 한현주
- 청소년극 작업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아마 연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적지 않은 나이의 배우들이 청소년을 따라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배우들과 이 지점에 대해서 어떻게 고민을 나누었는지 궁금해요.
- 전인철
- 인물들이 배우보다 더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독립된 하나의 주체로 접근하자는 거였죠. 특정 시기에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민이니까요. 배우들이 물리적으로는 나이가 더 많지만 스스로의 고민으로 가져가보자고. 앞서 캐스팅을 할 때도 더 어린 배우를 찾으려고 하기보다, 저와 작업해오고 있는 배우들을 선택했죠. 물론 레오타드를 입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연습 때 배우가 직접 주문을 해서 처음 입었을 때 모두가 충격에 빠졌죠. (웃음)
- 한현주
- 또 다른 주인공 왕따 ‘희주’를 보여주는 것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을 거 같아요.
- 전인철
- 네.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고 무대에 서는 순간 그 파급력이 너무 세서 관객은 모두 그에게 집중하게 되죠. 그래서 연습 과정에서 오히려 ‘희주’에게 포커스를 뒀어요. 작가도 연출가도 남자니까 ‘희주’에 대해 우리가 놓치고 가는 부분이 생길까봐서죠.
- 박찬규
- 예를 들면 ‘희주’와 ‘민지’의 서사에 대해, 혹은 ‘희주’와 ‘준호’의 관계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상상해보기를 배우들에게 주문하시더라구요.
- 한현주
- 작가님이 희곡집에서 밝히기도 했는데, 독서실 총무 알바를 하면서 관찰한 모습들이 모티브가 되었다구요.
- 박찬규
- 네. 다양한 친구들을 봤죠. 하고 싶은 게 없는 친구, 잠만 자는 친구도 많았죠.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부모들도 많았구요. 저는 사실 부모들에게 더 관심이 더 많았어요. 아이들이 가장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니까요. 음... 예전에 제가 만난 한 대학 강사 분이 수업을 하면서 이런 걸 느꼈대요. 학생들의 언어가, 자신들의 언어가 아닌 부모에 의해서 세팅된 언어 같다구요. 청소년은 더할 수밖에 없겠죠. 독서실에서 한 친구가 자신 있게 자신의 꿈을 얘기하는데, 그럴 때조차 자기 말이 아닌 거 같은 거예요. 꿈의 동력조차 세팅되어 있다는 느낌.

관객으로서의 청소년과 마주하기
- 한현주
- 작년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는 청소년들이 단체로 관람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관객층이 다양한 거 같아요.
- 전인철
-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청소년의 고민을 그려서 보여줌으로써, 어른들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현실적으로 단체 관람이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작품이 끌어가는 주제에 비교적 잘 가닿고 있다고 봅니다.
- 한현주
- 사실 제가 안산에서 공연을 봤을 때, 제 옆에 앉아 있던 남학생들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남자 배우가 레오타드를 입고 나올 때마다, 거의 추임새에 가까운 다양한 욕설을 쏟아냈어요. 결론은 더럽다는 거예요. 그 혐오를 서로 확인함으로써 ‘나는 아니다’를 강조하는 거죠.
- 전인철
- 당연한 반응일 수 있어요.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교육 받은 부분이고 살기 위해 흡수한 것이니까요.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고 봐야겠죠.
- 한현주
- 아마 단체 관람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혐오를 드러내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어요. 그러한 관극의 경험이 어떻게든 기억에 남을 테니까요. 그리고 성장의 과정에서 분명히 그 기억을 끄집어낼 기회가 있겠죠. 희미하게나마. 어쩌면 훗날 가치관의 변화에 미세한, 혹은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거구요.
- 전인철
- 저는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지 청소년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평소에 연극 작업을 통해 세상을 공부한다고 여기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어요. 작가가 건넨 『대한민국 부모』나 『울기엔 좀 애매한』같은 책을 통해 청소년의 현실에 다가갔어요.
- 박찬규
- 선생님 역할을 맡은 배우 분께는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를 추천하기도 했는데요. 부모들이 선생을 관리자 취급하는 현실에서 교사들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극 중에서 선생님이 항상 분주하게 오가고 계속 전화를 받잖아요. 기간제 교사나 다른 접근의 교육을 시도하는 교사는 특히나 온갖 잡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분을 작품에서 드러내려고 한 건데, 배우 분과 책을 읽고 흥미롭게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 전인철
- 교육의 내용과 현실은 저희 때와 크게 달라진 거 같지가 않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앞으로 맞닥뜨릴 세상은 점점 더 급변할 거란 말이죠. 그런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를 쥐어주지 못하는 거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세월호 세대로서의 청소년, 그리고 청소년극
- 한현주
- ‘세월호 세대’라는 명명 아래에서, 또 최근의 촛불 집회 상황에서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긴 합니다만.
- 박찬규
-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답을 가져보기 위해서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어떻게 호출되어 왔는가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같은 책에서처럼 근현대사에서 청소년이 어떻게 존재했는지, 또 어떻게 규정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고요. 가깝게는 2008년 광우병 집회 당시를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시에 청소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니까, 이런 식의 분석들이 있었어요. 역시 논술 세대라 다르다는 둥, 미래세대의 희망이라는 둥... 그러다가 촛불이 꺼지는 순간, 청소년은 다시 통제의 대상이 되고 말았죠. 학생인권조례도 그런 연장선에 있는 거잖아요. 쉽게 얘기되어지는 순간 빨리 무기력해지는 거죠.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에 대한 그런 단편적인 인지와 판단에 대해 우리 사회가 재고를 하고 있다고 봐요. 청소년 스스로도 힘들겠지만 자신들이 어떤 상태인지 꾸준히 체크하고 고민해봐야 하고, 기성세대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로 다양한 방식과 입장의 기록들을 남겨야겠죠. 일단 너희들 얘기를 들어볼게, 라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 한현주
- 작가님에게는 그 행동이 글쓰기가 되겠군요. 마지막으로 ‘청소년극’이라는 분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분류로 인한 제한도 느낄 듯한데요.
- 전인철
- 기획자와 창작자, 또 수용자 각각의 입장에서 다른 지점이 있어요. 특히 민간극단의 기획자 입장에서는 그 같은 분류에 대해 힘든 지점이 있죠. 관객층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데이터, 레퍼런스가 필요한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죠.
- 박찬규
-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손해 보는 부분이 있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그런 분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청소년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이 있겠죠. 하지만 이것이 열악한 상황에서는 청소년극이라는 분류만으로도, 그들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중요한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만드니까요.
- 한현주
- 청소년은 연령별로 많은 차이가 있잖아요. 십대 초반과 후반은 천지 차이죠. 그래서 십대 후반을 대상으로 한 공연은 대학생 관객까지 아우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국에서는 'The theater for young adults'와 같은 분류도 있다더군요.
- 전인철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회도 연극도 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으니까요. 지금 그러한 과정에 있으니까 청소년극이라는 분류뿐만 아니라, 작업 자체도 더 섬세해져야겠죠.
- 박찬규
- 실험극에 대해서만 관객 계발이라는 개념을 쓸게 아니라, 청소년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해요. 큰 범주로 보자면 새로운 관객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니까요. 멀리 봐야죠.
서두가 너무 길어질 것을 염려하여 이곳에 적습니다.
<디 오서>(The author)는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룬 한 연극을 만든 작가와 배우, 그리고 관객이 등장하여 논쟁하는 작품이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실제인지, 그 경계를 오가며 서로가 주장을 펼친다. 관객들 사이에 그들이 앉아 관객에게 계속 질문하는 연극이어서,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관객들이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