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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국립극단 <실수연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주는 즐거움

한현주_극작가
107호 2017.01.05
명동예술극장의 비교적 안락한 의자에서 희극을 지켜보는 느낌. 일단 편안함이다. 그것은 희극이 가지는 힘이다. 실수가 연발되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거나, 산산이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그 확신에 가까운 예상은 관극에 있어서의 무게를 덜어준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하에, 기꺼...

임영준(좌), 안병찬(우) 배우

명동예술극장의 비교적 안락한 의자에서 희극을 지켜보는 느낌. 일단 편안함이다. 그것은 희극이 가지는 힘이다. 실수가 연발되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거나, 산산이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그 확신에 가까운 예상은 관극에 있어서의 무게를 덜어준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하에, 기꺼이 따스한 마음으로 실수 연발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극장 안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아니, 극장 안에서부터 그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유쾌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지 않을까. 물론 그 희극을 만들어가기 위한 여정이 즐겁지만은 않았을 터. 2016년 국립극단 시즌 단원들이 마지막으로 선보인 무대에서 쌍둥이 ‘안티포로스’ 형제 역을 맡은 임영준, 안병찬 배우를 만났다.

‘똑같아야 한다, 웃겨야한다’는 강박을 넘어서기

한현주
쌍둥이 연기로 인한 어려움이 당연히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안병찬
관객은 서로 다른 배우가 연기한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즐겁게 볼 수 있죠. 하지만 연습 초기에 저희는 우선 ‘같아야한다’는 강박을 안 가질 수가 없었어요. 서로의 장점을 따라가 보면서 밸런스를 맞추기로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보이스도, 몸을 쓰는 스타일도 달랐으니까요. 어쨌든 그 강박이 프로덕션 전체의 스트레스였어요. 그래서 최대한 각자 움직임을 찾기로 하고 나서, 연습 막바지에 감정과 상황에 따라 특정 습관과 동작을 한정지어 정했죠.
임영준
공연 초반에는 서로 맞춰주려고 애쓰다보니까, 오히려 약간 어긋나는 실수가 있기도 했어요.
안병찬
저는 형을 생각해서 일부러 특정 동작을 뺐는데, 형은 그 동작을 하는 거예요.
임영준
배려 때문에 생긴 오차를 발견하고는 둘이 무대에서 슬쩍 웃기도 했죠. 같이 나오는 장면이 후반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기 때문에 다행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하하.
한현주
기라성같은 선배들이 조연을 맡고 있으니, 더 부담이 됐을 것도 같은데요.
안병찬
그런 부담은 없었어요.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여러 작품을 함께 해왔고, 또 시즌 단원제의 취지가 앙상블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이번에 윤희 형(박윤희)이 기타를 치는 방향으로 연출의 디렉션이 결정되니까, 정말 열심히 연습을 하시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희도 배웠죠. 물론 저희가 맡은 역할의 크기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는 있었어요. 저렇게 다들 열심히 해주시는데, 우리가 못하면 안 된다는... 이런 마음이 코미디라는 장르와 충돌하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큰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각 씬에서 기능만 충실히 해내자고 스스로 다독였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풀리기 시작하더군요.
임영준
못 웃기면 어떡하지?, 라는 부담이 많았죠. 하지만 선배님들이 워낙에 재밌게 잘 풀어주시고, 또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기본적으로 상황이 재밌으니까 말만 충실하게 잘하면 된다고. 또 공연을 하다 보니, 관객이 만들어주는 순간이 참 많다는 걸 너무 잘 알겠더라구요. 연습 때 잘 못 찾았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 상황의 재미를 관객이 캐치하고 반응해주셔서 그 순간을 함께 채우게 되더라구요. 아, 이게 연극만의 매력이지, 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연출의 아이디어를 체화하기

한현주
두 연출가의 스타일이 달랐을 텐데요.
안병찬
남긍호 선생님은 주문이 아주 명확하신 편이에요. 이 부분에서 이렇게 해내야한다는 것. 슬랩스틱이나 몸의 디자인 측면에서 특히 그렇죠.
한현주
각각의 인물들이 특정 동물을 형상화해내는 것 말이죠?
안병찬
네. 연출가님이 이미 설계를 다 해놓으셨기 때문에 따라가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사실 서너 달은 족히 연습해야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근데단원들이 다른 작품을 하고 있기도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부족했죠. 서충식 선생님은 전체적인 그림을 주로 보셨어요. 리듬과 템포에 따라 줄여야할 부분이나 강화해야할 부분 등에 대해 주로 체크를 하셨죠.
임영준
동물 표현은 정말 쉽지가 않았어요. 제가 좀 늦게 합류를 했는데, 병찬 배우가 ‘말’에 대한 이미지를 너무 잘 만들어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안병찬
사실 처음에는 무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가는 것조차도 힘들었어요. 모든 배우들이 체력적으로도 버거워했고 중압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출부와 긴장도 있었죠. 가만히 서 있을 때조차도 몸은 어떤 디자인을 그려내야 했으니까요. 프레스 리허설 때까지도 자신이 없었던 거 같아요. 일반 관객 분들이 이렇게 좋아해주실 줄 몰랐어요.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죠.
한현주
아주 심플한 무대에 의상과 조명의 화려한 색감이 더해지는 콘셉트잖아요.
임영준
미니어처를 봤을 때도 감이 잘 안 왔어요. 그냥 하얀 무대였으니까요. 극장에 들어와서 확 감이 오더라구요. 동화 같은 느낌이랄까. 무대에서 연기하면서 알겠더라구요. 아, 이 작품은 일종의 파티 같은 공연이구나, 라는 걸요. 그래서 배우들끼리도 그렇고 관객과도 더 즐길 수 있었어요.
안병찬
거의 시도된 적이 없는 스크린 무대고, 배우가 예쁘게 빛날 수밖에 없는 무대잖아요. 테크 리허설을 하는데, 처음에는 연출님이 배우들을 자꾸 앞쪽으로 나와서 움직이게 하는 거예요. 너무 무대에 묻히는 것 같다고. 그 정도로 무대의 영향이 컸어요. 몇 번 시도 끝에 지금처럼 자리를 잡고 움직일 수 있었죠.

동물에의 비유를 통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있어 보인다. 인물들의 성격이 도드라지는 효과와 그로 인해 유발되는 웃음은 관극의 한 재미다. 하지만 극의 흐름에 따라 속도감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때도 있고, 반복이 주는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수연발>

희극이 가지는 힘에 대해

한현주
셰익스피어의 초기작이고, 많이 공연되는 작품은 아니잖아요. 공연을 하면서 희곡에 대한 인상의 변화가 있었나요?
안병찬
공연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희곡이 정말 좋다는 거였어요. 말들이 너무 아름답다고. 사실 처음 희곡을 접했을 때는 잘 몰랐어요. 제 배역에 기초해서 어떤 포인트에서 웃음이 유발되어야 하나, 라는 식으로 읽었기 때문에 매력을 잘 못 느꼈죠. 근데 함께 해보니까, 좋은 작품은 배우들과 스텝들에 의해 입체적으로 일으켜지는 거라는 걸 알겠어요. 그래서 희곡을 대하는 태도에 겸손함이 생긴 것 같아요. 18명의 배우가 하나하나의 말들을 정말 감칠맛 나게 살리려고 애쓰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희곡의 가치를 더 느꼈죠.
임영준
연습 초기에는 내가 나오는 장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점점 상황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게 되더라구요. 내가 서 있는 전과 후의 맥락에 대해서 말이죠.
한현주
어려운 질문이긴 합니다만, 희극이 가지는 힘이 뭘까요. 특히 이런 시국에 말이죠.
임영준
작품 준비할 때부터 시국 걱정이 많았어요. 관객들이 희극을 보러 올까 싶기도 했구요. 배우들이 일단 그런 무게를 견뎌내려고 많이 애쓴 거 같아요. 요소요소에 정성을 많이 쏟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처음 관객을 만났을 때 정성들인 선물을 드리는 기분이었어요. 관객이 이 무대를 통해 즐길 수 있다는 건 치유의 의미도 갖는 거니까요.
안병찬
관객들이 이런 좋은 희극을 많이 원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작품에서는 재밌게 웃다가도 어떤 진실을 툭 발견하는 포인트들이 있잖아요. 나, 우리,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예를 들면 “우리는 똑같이 이 세상에 떨어졌으니까, 손을 잡고 같이 가자”라는 대사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동은 어떤 비극과 견주어도 적지 않다고 봐요. 현실의 사건들이 워낙에 버겁고 크니까, 진수성찬이 아닌 맛있는 케익 한 조각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거 아닐까요.

한현주
희극 연기는 다른 차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안병찬
제가 요즘 오디션 때문에 햄릿 독백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아주 절실한 고백의 독백이에요. 근데 이번 작품에서도 제가 ‘루시아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비교해보니까 차이가 없는 거예요. 둘 다 연기는 절실해요. 근데 한 끗 차이로 서로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거잖아요. 앞, 뒤의 맥락,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 좌우되는 거죠. 비극이라고 쥐어짜듯 연기하는 것도 아니고, 희극이라고 꼭 웃기려드는 게 아니라는 걸 배우고 있는 거죠.
임영준
5막을 향해 두 시간을 달려오다가 말이 없는 어떤 순간. 예를 들면 쌍둥이가 만나는 그 짧은 침묵의 순간이 너무 좋아요. 관객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구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걱정이 다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무대에서 틀리면 어떡하지 하고 마음 졸였던 모든 것들이 해소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어쩌면 이런 것도 희극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현주
작품이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끌고 가잖아요.
안병찬
쌍둥이 네 명이 다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어요. 안티포러스 동생은 도피하려 들고, 형은 자아가 강해서 타인을 무시하는 성향이 있죠. 또 하인 형은 자기 정체성이 없다가 동생을 통해 그걸 발견하고, 동생은 자기가 누구냐고 계속 타인에게 물어보죠. 어쩌면 이 모두가 자아정체성을 찾는 우리의 서로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요.
임영준
작품을 하면서 저 역시 제 자신의 정체성 대해 고민하기도 했는데요. 시즌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은 그렇게 보지 않는데, ‘내가 만들어낸 내’가 있구나 라는 느낌. 그래서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보고 싶어졌어요. 특히 이번 시즌의 마지막 작품에서 단원들이 모두 다 함께 해서인지, ‘너와 나’의 관계 맺기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됐어요.
안병찬
나 혼자 존재한다면 이런 고민을 안 하겠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서로를 바라볼 때 생기는 고민이잖아요. 서로의 모습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불안했는데, 이렇게 공연이 무사하게 올라간 것도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 않나 싶어요.

우리네 현실에서도 실수연발이 가져온 결과가 질서의 회복이나 서로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어쨌든 비장함으로 무장한 촛불보다, 유쾌한 에너지로 퍼져나가는 촛불이 대세임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꼬이고 꼬인 혼돈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은 회복에의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 작품 역시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재)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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