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비둘기 <메디아 온 미디어>
변치 않는, 그러나 늘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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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도발, 해체 그리고 자생적 포스트드라마. 김현탁 연출과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작업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첫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던 이들은 고전에 대한 강박, 경직된 무대 대신 더 넓은 해석의 경지를 선보였다. 햄릿은 망루 위의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열녀(烈女) 춘향은 열녀(十女)로 해석되어 다양한 여성의 모습으로 변주됐다. 무대 위에는 장엄한 음악대신 대중가요가 흐르고 장남감 물총, 비닐우산, 캐릭터 가면 따위가 배우들의 손에 쥐어졌다. 무엇을 상상하든 늘 상상력의 극단을 보여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들의 과감한 행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 최근 극단 성북동비둘기가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다. 스스로 번지 잃은 비둘기를 자처하고 연극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성북동에 깃들었던 이들이 최근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긴 것이다. 이제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대신 ‘한남대로 158’의 시대가 열렸다. 또 다시 번지를 잃었던 그들이 새로 얻은 둥지는 어떤 곳이고, 그 곳에서 새롭게 올린 <메디아 온 미디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북동비둘기의 새 둥지 “한남대로 158”
김미옥 배우
- 김태희
- 공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오델로> 공연을 할 때 장소를 구하고 계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쪽으로 옮기실 줄은 몰랐어요.
- 김미옥
- 연출님께서 동네에 대한 특별한 게 있어요. 처음에 성북동에 둥지를 틀 때도 동네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나 그 공간 주변의 환경, 공간과의 어우러짐,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셨거든요. 이 동네도 마찬가지였어요.
- 김태희
- 딱히 뭐라고 꼬집을 수 없지만 그냥 연출님의 느낌인가요?
- 김미옥
- (웃음) 네, 또 여기가 일상(일상지하)이랑 느낌이 많이 비슷해요. 저희가 스튜디오 개념을 좋아하거든요. 공간 자체는 일상이랑 비슷하죠.
- 김태희
- 주변에 오래된 가게들이 많던데 동네 분들 반응이 궁금하네요.
- 김미옥
- 아직은 좀 낯설어 하세요. 공연 전에 성북동비둘기 간판만 있었을 때는 음식점인줄 아시는 분들도 계셨고, 뭐하는 곳인지 자주 물어보셨어요. 아직까지는 저희도 알리고 있는 단계예요.
- 김태희
- 서로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첫 작품을 <메디아 온 미디어>로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 김미옥
- 아무래도 극단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의미가 큰 작품이죠. 일상에서 이 공연을 시작하고 순차적으로 밖으로, 외국까지 가게 된 작품이어서 ‘출발’이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에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도 있구요. 이 작품 이후에 또 다른 신작을 하면서 점점 나아가자,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연극 무대의 일회성, 새로운 창작의 연속
- 김태희
- 이제 공연 이야기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은 2013년 SPAF(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공연 된 버전과 어떤 점들이 달라졌을까요?
- 김미옥
- 멤버가 바뀐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코러스들도 전부 바뀌었고 덕분에 파트너와의 관계가 바뀌고 장면들의 세부적인 부분이 많이 변했어요. 아이게우스 장면도 체조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구요. 또 루마니아 공연을 준비하면서 메디아에게 의상을 많이 갈아입히자는 의견이 있어서, 콘셉트에 맞는 의상을 찾기 위해 노력했죠. 가령 이아손과 메디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한복을 입기도 했구요. 저희는 재공연을 다시 하는 거라기보다는 새로 만든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매번 다른 것들을 시도하려고 해요.
- 김태희
- 배우들이 장면 구성에 많이 참여하는 편인가요?
- 김미옥
- 네, 그런 편이죠. 가령 루마니아 가기 전에는 게임 장면을 더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서 모바일 게임을 계속 했어요. 그걸 바탕으로 저희가 움직임을 선보이면 연출님이 연극적 움직임에 맞게 조율을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움직임을 만들 때 많이 참여하는 편이에요.
- 김태희
- 그럼 연출님께 먼저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 김미옥
- 그래도 콘셉트는 연출님이 정하세요. 가령 <자전거>에서 하계, 동계 올림픽을 할 때 연출님이 올림픽이라는 콘셉트를 잡고 배우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보시죠. 그럼 배우들이 사이클을 제안하고 움직임을 만들어요. 아무래도 배우는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요. 저희가 움직임을 만들어 보이지 않으면 연출님이 상상만 하실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희는 연출님이 뭔가 하고 싶으시다 그러면 그걸 동작으로 만들어서 보여드리는 거고, 그럼 이제 된다, 안된다가 결정되는 거죠.
- 김태희
- 그럼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콘셉트에 맞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한 아이디어도 있겠네요.
- 김미옥
- 많아요. 연출님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시면 빨리 시도를 해보려고 하세요. 그런데 또 전체적인 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가 바뀌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튀면 그건 또 안 돼요. 시도는 많이 했어요.(웃음) 어쨌든 전체적인 콘셉트는 안 바뀌지만 그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세부적인 것들을 많이 바꿔보려고 노력해요.
- 김태희
- 이번 공연 관극 전에 아누팜 배우의 출연 소식을 듣고 메디아와 이아손이 가지고 있는 타자, 이방인이라는 특징이 배우의 특성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김미옥
-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아마 다른 외국인 배우들도 함께 작업을 할 생각을 하셨던 것을 보면 연출님이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미디어 채널 속 메디아
김명석 배우
- 김태희
- 이 작품은 여러 개의 미디어 채널을 통해서 메디아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만들죠. 각 채널을 연기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 김명석
- 개인적으로 리얼 토크쇼가 가장 힘들어요. 작품에 들어가는 채널마다 특징이 다 다른데, 토크쇼의 경우 연출님이 항상 리얼한 현장성을 강조하세요. 남녀 관계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소위 막장의 상황을 그려야하고 그래서 관객들이 진짜 그 토크쇼의 방청객으로 현장에 있는 것처럼 즐기고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더라구요. 어차피 정해져 있고 약속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어서요. 그래서 연출님이 하루에 하나씩 관객들의 현장성을 유도할 수 있는 애드리브를 시도해보라고 제안하셨어요.
- 김미옥
- 그래서 오늘 아이들 이름이 바뀌었군요.
- 김명석
- 네, 그렇죠. 그런데 루마니아 공연 때는 한국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아무래도 관객들이 자막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잖아요. 빠르게 진행되니까. 대신 관계성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소통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제스처를 더 첨가한다든지요. 반면에 한국 관객들은 그것보다 대사를 더 듣고 거기에 더 반응을 하시니까 대사를 이용하구요.
- 김미옥
- 리얼토크쇼는 확실히 채널의 특성 상 오늘의 관객이 저희를 결정하는 느낌이 더 많이 들어요. 어느 관객이 좀 더 반응을 보여주고 날 지지하고 있으면 내가 더 몰입하게 돼요. 루마니아 공연 때 있었던 일인데, 공연하고 다음날 기자회견 비슷한 걸 했어요. 그때 한 관객이 각각의 채널이 가져오는 특성을 재밌게 즐기다 보니 마지막에는 폭력성으로 끝났다는 말을 했어요. 우리가 미디어를 보고 웃고 있지만 그 안에 잔인한 폭력성이 존재하는 걸 말하려는 것이 당신의 의도가 아니었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 김태희
- 그 관객분이야말로 미디어 채널을 이용한 이 작품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계시네요.
- 김미옥
- 네. 언어가 다르니까 오히려 각각의 채널을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결국 이 작품의 의도가 잘 전달되려면 각 채널의 특성이 잘 전달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원전으로부터 멀어지기, 혹은 가까이에 있기
- 김태희
- 김현탁 연출님 작품을 말할 때 늘 원작과의 거리 혹은 관계 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작업을 하기 전 배우님들도 원작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것이 연출님이 창안한 작품의 해석과 다른 경우가 있었나요? 그럴 경우 스스로 조율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요?
- 김명석
- 글쎄요. 원작을 읽어보면 저 나름대로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긴 한데, 대체로 그게 연출님의 해석과 크게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 표현 방식이 좀 다르게 느껴지는 거지 오히려 <메디아 온 미디어>는 원작의 정서를 가장 잘 원전답게 표현한 것 같아요. 연출님은 원전에서 가장 멀어지려고 하시지만요.
- 김태희
- 그래도 처음부터 동의하면서 시작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김명석
- 작품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자전거>를 할 때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대사와 상황이 좀 다르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좀 어려웠었어요. 그 원작을 알고는 있고 대사를 그대로 쓰지만 상황이라는 게 다르니까요. 이 작품의 경우는 미디어의 채널이라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거기 때문에 작품에 들어가면 원작을 버리려고 하죠. 이아손이긴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지금의 이아손이 <메디아 온 미디어>의 이아손이라고 이해하고 접근하는 거니까.
- 김미옥
- 원작의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면 배우가 연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면 그 해석 하나하나를 다 실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연습을 할 때도 이 채널 하나에 집중해요. 가령 토크쇼에 있는 게 메디아가 아니라 김미옥이면 어떨까. 이렇게 들어가기 때문에 저희는 그것만 집중해요. 원작의 모든 부분을 전달하는 건 너무 어렵고 저희가 지향하는 그 상황, 사건만 가져오는 거죠.

한남동에 새로 둥지를 튼 성북동 비둘기와 이들의 <메디아 온 미디어>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이들다웠다. 시종일관 에너지가 넘치고 도발과 충격이 이어진다. 관객들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뒤에도 관극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어쩌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연극 환경 속에서 변치 않는 무엇은, 이 시간을 버텨내는 가장 큰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가장 큰 자산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며 우리는 앞으로도 성북동 비둘기에게서 더 놀라울만한 작품을 기대해 볼 수도 있으리라.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