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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동체 아르케 <툇마루가 있는 집>

기억이 저장되는 집, 기억이 펼쳐지는 무대

한현주_극작가
110호 2017.02.23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집은 곧 영혼이며 우리가 만나는 최초의 세계라고 했다. 또한 기억이 축적되고 몽상이 피어오르는 곳이라고. 요즘 같은 세상살이에 몽상까지 바라는 건 좀 무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그런 집, 혹은 집안의 특정 공간 하나쯤은 새기고 있을 것이다. 다락방, 혹은 작은 뒤꼍 같은... 그런데...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집은 곧 영혼이며 우리가 만나는 최초의 세계라고 했다. 또한 기억이 축적되고 몽상이 피어오르는 곳이라고. 요즘 같은 세상살이에 몽상까지 바라는 건 좀 무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그런 집, 혹은 집안의 특정 공간 하나쯤은 새기고 있을 것이다. 다락방, 혹은 작은 뒤꼍 같은... 그런데 그런 공간이 허겁지겁 내달리는 시대를 만났을 때, 또 무지막지한 폭력의 시대를 만났을 때는, 집밖의 세계가 집과 인간 모두를 지배한다. 그리고 그 생채기는 또 저장된다. 집에.
<툇마루가 있는 집>은 바로 그런 집을, 그런 시대적 기억을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한 남자가 형의 기일에 산소를 찾아가던 중 옛집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오랜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여러 가구가 살았던 집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특히 ‘툇마루’의 활용 때문에 임철우의 소설 <아버지의 땅>의 한 부분이 갑자기 생각났다. <툇마루가 있는 집>에서 중학생이었던 ‘진구’는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를 향해 빼들었던 칼을 차오르는 울음으로 거두어 툇마루 밑에 넣어둔다. <아버지의 땅>에서 화자는 어린 시절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배를 깔고 누워 마루 밑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 공간을 통해 아버지를 느낀다. 빨치산이 되어 북으로 가버린 사내를 향한 증오를... ‘내 유년 시절의 퇴락한 고가의 마루 밑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음습하고 불길한 냄새와 함께 나를 쏘아보고 있던 한 사내의 눈빛을’ 화자는 마루 밑을 통해 느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아버지는 ‘청년이 된 지금까지도 가슴을 새까맣게 그을려 놓으며 깊숙한 상흔으로만 찍혀져 있을 뿐인 그 증오스런 사내’이다.
이처럼 집이라는 공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환기시키며 기억을 소환하게 만든다. <툇마루가 있는 집> 역시 맥락을 같이한다. 작품을 만든 이들은 어떻게 그 기억에 다가가고, 또 마주했을까. 작품을 쓰고 연출한 김승철님과 극 중에서 할머니 역할을 맡은 강애심 배우를 만났다.

왜, 79년과 83년인가

김승철 연출가

한현주
작품 의도와도 연결될 텐데요. 특정 시대 배경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김승철
그 시대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이에요. 70년대 후반에 저는 국민학교 고학년이었는데 이른바 생각이라는 게 생길 무렵이었어요. 제 나름의 격변기이기도 했던 거죠. 아시다시피 79년에 박정희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상징성이 다분한 선택이죠. 그리고 80년대 초중반에 저는 대학을 다녔는데 극 중 인물의 나이와 관계 등을 고려해서 83년을 선택했어요.
한현주
주인공 남자가 작가의 분신인 셈이군요.
김승철
작품의 의도와 관련해서는 더 구체적인 상황이 있어요. 연습 첫 날, 모두에게 그걸 털어놓았는데요. 87년의 어느 날에 대해서요. 그 해 1월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있었고, 6월 항쟁이 있었고, 결국 6.29민주화선언으로 이어졌죠. 그때 전 제대하고 복학해서 겨울부터 워크숍을 하고 있었어요.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던 거죠. 아침 7시에 연습하러 동대 후문에서 학교로 올라가고 있는데 언덕배기에서부터 막 소리가 들려요. 가보니까 가로수 위에 한 학생이 올라가 구호를 외치고 있고, 밑에는 사복 경찰들이 협박하면서 둘러싸고 있는 거예요. 또 저 위에는 몇 십 명의 학생들이 더불어 구호를 외치고 있고... 어슴푸레하던 하늘에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그때 피를 토하듯 외치는 그 모습이, 순간 저에게 각인되어 버린 거죠. 그 거리와 연습실 사이에서 느꼈던 자괴감과 죄책감... 연극을 하면서 언젠가 한번은 그 미안함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 시절이 나한테 준 상처도 함께. 제가 이런 얘기를 풀어놓는데, 애심 누나가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시더라구요.
강애심
저도 마찬가지의 감정과 의식이 있었거든요. 저도 그때 연극만 했으니까... 당시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아가씨와 건달들>을 공연하고 있었던 때가 생각나요. 광화문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었죠. 뭔지 모를 두려움이 컸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오늘 관객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어요.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시대에 눈을 뜰 수 있었죠. 그래서 연출이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 더 공감을 했나 봐요.

극적 장치이기도 한 치매 할머니

강애심 배우

한현주
작품의 구성적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의 나’가 집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기억을 끄집어내는 거잖아요. 무대에 ‘과거의 나’가 함께 존재하기도 하면서 연극적 순간이 만들어지는 셈인데요.
김승철
어떤 관객들은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요. 마치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실제로 과거의 인물들과 조우하는 것처럼 말이죠. 근데 이 작품에서 과거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기억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과거의 인물들은 현재의 주인공을 보지 못해요. 할머니와 형의 유령만이 예외죠.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어서 그를 본다고 전제한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극적 장치이기도 한 거죠. 어쨌든 두 과거는 모두 주인공의 기억 혹은 추억이고 어떤 면에서는 희망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시위를 하다가 맞고 돌아온 형이 ‘정양’(세 들어 살고 있던 술집 여자)과 함께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 것을 어린 ‘진구’가 목격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의 나(진구)’는 그게 더럽다고 생각해서 침을 뱉어버려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제 형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형이 들킬까봐 신발을 형의 방 앞으로 옮겨 놓는 거죠.
한현주
치매를 앓고 있던 83년의 할머니가 정 많고 생활력 강한 79년의 할머니로 바뀌고, 또 그게 다시 역으로 바뀌고 하는 과정에서 관객이 배우의 감칠맛 나는 연기에 빠져들더군요.
김승철
쓸 때부터 강애심 배우를 염두에 뒀어요. 이 작품에서 할머니가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을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애심 누나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거절하면 어떡하나 걱정 많이 했죠. 하하.
강애심
김승철 연출은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터치를 잘 안 해요. 애드립이나 배우들 간의 화학 작용에 대해서 많이 열어놓는 편이죠. 좋은 배우도 중요하지만, 연출이 배우를 믿어주는 것도 중요해요. 그 믿음이 굉장히 든든했어요. 연습 때 정말로 집중해서 배우를 관찰하는 연출이거든요.
한현주
평안도 사투리는 배우 분의 선택인가요?
김승철
표준어로 쓰긴 했는데, 해주 출신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있었죠. 저희 할머니가 연안 출신이신데, 사투리를 거의 안 쓰셨어요.
강애심
저는 아버지가 평안도 분이세요. 그래서 작가의 동의를 얻어서 평안도 사투리로 풀어본 거죠. 작가가 공들여 쓴 대본인데, 이렇게 자유롭게 막 바꿔도 되나 싶은 걱정이 있었지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더라구요.

배우로서 끌어내는 앙상블

한현주
세 명의 진구, 시대를 달리하며 어머니와 아내 역을 소화한 배우 등... 연기 앙상블에 관객들의 반응이 좋은 거 같아요. 연출님도 배우로 무대에 서신 적이 있잖아요. 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김승철
무대에서, 혹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배우의 상태나 심리 변화 같은 걸 잘 알죠. 저는 무엇보다 각 배우가 갖고 있는 창의성을 자발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고 애써요. 연습 때 모든 장면이 도식화되면, 공연하면서 오히려 작품이 퇴보하더라구요.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게 저마다의 능력을 끌어내는 게 저의 역할이지 싶어요.
강애심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연출이에요. 굉장히 자유로우면서 한편으로 굉장히 엄격하죠. 특히 약속에 대해서. 예를 들어 주연 배우가 늦으면 다른 장면을 연습하는 게 아니라 꼭 대역을 시켜서 처음부터 끌어가요. 긴장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모든 배우들의 집중력이 놀라웠어요. 특히 어린 ‘진구’를 맡은 배우(김보라)는 매 연습 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연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현재의 ‘진구’인 이대연 씨가 매번 긴장이 된다는 거예요. 놀라운 거죠. 그런 연습이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기억의 집과 기억의 사물 : 툇마루 밑의 도시락

한현주
주인공이 적어도 수 년 만에 방문하는 집인데, 너무 멀쩡한(?) 거 같아요. (웃음)
김승철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요. 첫 장면에서는 아주 퇴락한 집이었다가, 그 다음 장면부터 생동감이 넘치는 집이길 바랐어요. 쉽지가 않았죠.
강애심
무대에서 그런 마법은 안 되니까, 그래도 사람이 살 것 같은 집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한현주
어린 ‘진구’가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그 밤, 부르르 떨면서 메모를 하고 그 종이로 칼을 싸서 도시락에 넣죠.
김승철
뭐라고 썼을지 관객들이 저마다 상상을 하겠죠.
한현주
저는 형에 대한 원망을 썼을 것 같아요. 그 지독한 순간에 형은 대의를 위해 집 밖에 있었으니까요. 외롭고 두렵고 그랬을 거 같아요.

두 사람이 슬며시 웃는다. 메모의 내용을 잘못 짚었나?

한현주
극이 끝나갈 무렵 주인공이 여는 도시락에 관객도 배우도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요.
김승철
맞아요. 종이는 태우는데 도시락을 열어놓은 채로 나가는 게, 장용철 배우는 영 마음에 걸린대요.
한현주
저는 말라버린 분수에 던지는 칼이 그렇던데요. (웃음)
김승철
주인공이 자유로워지기를, 그 기억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어요.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질 수 있을 때, 훌훌 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못내 궁금한 것이 있다. 주인공이 현재 어떤 삶에 놓여 있는지, 그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현재를 짓누르고 있는지... 그것을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과거와 마주하는 고통은 물론 기억으로부터의 해방에 더욱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툇마루가 있던 집의 삶은 그 집을 잊고 지내온, 혹은 잊은 척 애써온 콘크리트 속 삶으로 이어졌을 테니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