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2017 여행자극장 프로젝트 ‘봄봄’ <오딧세우스>

자유로운 공간, 경계를 이탈하는 상상력

김태희
113호 2017.04.06
연극인들의 탈-대학로 현상은 이제 꽤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연극인들은 대학로라는 프레임을 포기하는 대신 조금 더 자유로운 공간을 선택했다. 극단여행자가 여행자극장을 개관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결국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물론 한성대입구역 근처는 이미 연극 연습실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

연극인들의 탈-대학로 현상은 이제 꽤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연극인들은 대학로라는 프레임을 포기하는 대신 조금 더 자유로운 공간을 선택했다. 극단여행자가 여행자극장을 개관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결국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물론 한성대입구역 근처는 이미 연극 연습실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곳을 탈-대학로라고 칭하기는 어딘지 겸연쩍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새로 생긴 극장은 그 희소성 측면에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작년 하반기 개관 공연에 이어 올 상반기에는 ‘봄봄 프로젝트’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배우들을 제외한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그 동안 극단여행자와 인연을 맺어왔던 신인 창작자들이다. 극장이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특별히 이들에게 자유로운 작업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곧 이 극장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첫 작품은 <오딧세우스>(홍세영 작, 권영호 연출, 2017.3.24~4.2)다. 방대한 호메로스의 원작을 소극장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제 막 극장이 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것이 이 작품이 마주한 숙제였을 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딧세우스>는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이 난관들을 극복해 가고 있다.

극장 혹은 극장 같은 그 곳

김태희
여행자극장은 첫 방문이에요. 어떻게 극장을 만들 계획을 하셨나요?
김진곤
대학로를 벗어난 지역에서 그 지역과 함께 할 수 있는 극장을 만들고 실험을 해보고 싶어서 원래 연습실이었던 공간을 극장으로 만들게 됐어요. 이곳에서 저희가 지향하는 건 열린 공간이에요. 객석도 정비되어 있지 않고 조명을 다는 그리드도 턱 없이 부족하긴 한데 그만큼 열려 있어서 다양한 다원예술이라든가 다양한 장르, 전시도 가능하고 연극이 아닌 공연도 가능해요. 이런 것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공간을 꿈 꿔서 극장을 시작하게 됐죠.
김태희
그래서 그런지 극장 입구에 바(Bar)를 설치하고 무대 가운데 관객 테이블들을 배치하는 등 객석과 무대가 독특하게 위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구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거에요?
권영호
그건 이 작품을 초연하기 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콘셉트였어요. 공간을 마치 카페처럼 꾸며놓고 싶었죠. 이 작품의 형식적 요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 중 하나가 스토리텔링이에요. 처음에 화자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관객들이 서서히 빠져들었다가 중간에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마지막에는 다시 빠져나오는. 그래서 카페 같은 공간을 구상했어요. 그리고 그 카페 테이블 사이를 배우들이 왔다 갔다하면서 연기를 하는 거죠. 특히 요즘에 소극장이 아니라 다른 대안 공간에서 공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요. 무대를 그리스 신전처럼 꾸며놓고 싶지는 않았어요.
김태희
들어오자마자 바(Bar)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관객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권영호
네, 외국 극장가면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보는데 한국 관객들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좀 풀어진 분위기에서 즐기며 공연을 보길 원했어요.

다양한 자극, 감각적 이미지의 향연

김태희
공간과 객석을 허무는 시도는 많이 하잖아요. 객석 사이를 배우들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아예 객석과 무대를 바꾸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게 형식적인 것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관객의 입장에서 굳이 이런 시도에 동참하지 않게 된다고 할까요. 관객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은 배우 분들의 움직임이 관객의 능동성을 이끌어낼 만큼 에너지가 있기도 했고 인형이나 음악 등 다양한 요소들이 더해지니까 배우들을 쫓아가면서 보게 되더라고요. 작품 속 다양한 요소들은 어떻게 첨가하게 되신 건가요?
권영호
<오딧세이아>를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을 때 작품 속에 인물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먼저 필요한 인물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특히 대극장이 아닌 곳에서 방대한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적은 인원의 배우들로 작품을 꾸릴 때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또 신, 괴물, 거인들이 나올 때 인위적인 가면, 분장 이런 거 없이 배우들의 연기로만 표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인형이라는 장치를 생각하게 됐죠. 모두가 코러스처럼 선원으로 나오다가 그 중 한 인물이 떨어져 나와서 인형을 가지고 움직이면 거부감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생겼죠.
김태희
가까이에서 인형을 이용한 연기를 본 건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얼굴만 있는 인형을 높이 들고 있기 때문에 배우의 얼굴이 노출되잖아요. 무표정한 표정의 인형 바로 뒤에 배우의 표정이 더해지면서 그 인형이 섬세한 표정을 얻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다가도 인형을 보면 배우의 몸이 아니라 인형의 몸이 상상이 되기도 하고요.
권영호
마침 제 근처에 손재린이라는 인형 제작에 뛰어난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가 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김진곤 배우도 오딧세우스를 구상했을 때 김진곤 배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에요. 여기에 음향 감독님이 직접 작곡도 다 해주셨고 세이렌 장면 하나를 위해서 제 주변에 계신 가수 분을 섭외하기도 했어요.
김태희
덕분에 화자가 있는 층위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때 몰입과 이완을 시키는 방식이 매번 달라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의 움직임, 조명, 탁자를 놓고 움직이는 이미지, 음향, 매 번 달랐어요. 특히 첫 장면에서 이야기로 들어가고 시선을 확 끌더라고요. 사냥을 하는 이야기의 첫 장면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이 가볍다고 해야 하나요. 이야기로의 몰입을 톡톡히 견인해내더라고요. 근데 마침 연출님이 무용 전공을 하셨다고 하니 배우 입장에서는 작업하면서 뭔가 특별한 게 있었나요?
김진곤
권영호 연출은 배우로 시작을 해서 무용 창작을 전공했고 지금은 연출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배우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깊어요. 배우들이 장면을 만들어갈 때 많은 팁이랄까 배우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열쇠를 많이 가지고 있는 연출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도움이 되죠. 연출은 항상 배우가 보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어서 배우들이 무언가를 제시했을 때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선택해나가니까 배우들이 거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따라가게 되는 거죠.
김태희
확실히 연출님 주변 사람들의 영향, 연출님이 겪어온 작업의 여정이 작품 안에 묻어나네요.

인간이어라, 오딧세우스

김태희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으로 넘어가 볼게요. 먼저 작품은 처음에 어떻게 선택하게 되신 거예요?
권영호
어느 순간부터 그리스 신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스 이야기들을 섭렵해 나가다가 <오딧세이아> 읽었는데 저의 30대와 너무도 닿아 있는 거예요. <오딧세이아>가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승리 후 집으로 돌아가는 10년간의 이야기를 다룬 거잖아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30대가 투영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수많았던 고난과 시련과 유혹들. 그래서 제가 30대를 마무리하면서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어요.
홍세영
각색을 하면서 오딧세우스의 여정이 어떤 섬에 도착하고 나오고 도착하고의 나열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어요. 고민 끝에 결국 자신감 넘치고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여러 가지를 겪으면서 그 걸 하나씩 내려놓고 알몸의 자신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가져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러면 어떤 연출님 의도처럼 30대 초중후반을 지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마흔에 도달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태희
물론 각각의 섬마다 흥미로운 모습으로 그려지긴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섬과 섬을 옮겨 다니는 여정이 자칫 잘못하면 단순히 반복되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스토리텔링이라는 형식이 잘 부각되고 각 섬들의 특성이 잘 살아났을 때 성장이라는 큰 주제도 무리 없이 흘러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권영호
네, 맞아요. 그래서 저승 장면에서도 오딧세우스가 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주변 배우들에게 대사를 분산시켰어요. 이야기라는 것이 아주 태고부터 여러 이야기꾼들에 의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잖아요. 그런 요소를 중간에도 한 번 넣어주고 싶었어요.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냈고 인간이 인간에게 전해 준 이야기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거죠.
김태희
그래서 그 장면에서 다들 눈을 가리고 나오셨군요. 맨 처음 등장한 이야기꾼처럼요.
권영호
원작자가 호메로스잖아요.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그 사람이 장님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또 옛날에는 이야기가 그냥 인간이 만들어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가 아니라 신의 이야기를 들어서 전해주었다는 설도 있어요. 눈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귀가 예민해져서 더 잘 들을 수 있는 거죠. 이야기꾼에서 과거의 화자 호메로스로 넘어가는 그런 장치들이었어요.
김진곤
반면에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성장을 믿지는 않아요. 인간은 그냥 조금 달라지는 거죠. 저는 사실 관객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살아가는 게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긴 하지만, 막상 이런 시련과 고난이 가득한 이야기를 맞닥뜨렸을 때 거기에 자기를 투영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살아가는 것과는 또 별개여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져갔으면 하는 건 공연을 보고 나서 한참 후에, 그냥 어느 순간에 불현 듯 인간이 이렇구나, 하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요. 공연을 보는 그 순간의 감동이 아니라 보고나서 한참 후에 그거랑 비슷했어, 이렇게 느끼는 관객이 있으면 성공한 게 아닌가 싶어요.

<오딧세우스>는 공간에 빚지고 있는 바가 큰 작품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카페와 전시회장, 혹은 극장처럼 느껴지는 모호한 공간이 펼쳐진다. 조명도 부족하고 객석도 그저 펼쳐져 있을 따름이다. 배우들은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관객들 사이를 오가며 연기를 한다. 무대와 객석, 그 경계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을 채우는 것은 온갖 종류의 자극들이다. 거인, 신과 같은 존재들을 표현한 인형부터 음악, 노래, 조명과 배우의 몸까지 잠시도 관객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자극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상상력은 곧 그 공간 자체를 오디세우스가 살던 그리스 시대로 바꿔놓는다. 상상력은 늘 무한한 예술의 원천이다.
굳이 성장을, 인간의 인생을 엿보지 않아도 좋다.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에서 온 몸의 자극이 곤두서는 체험, 가장 연극적인, 그러면서도 단출한 장치들만으로 그리스 고전의 세계를 실감나게 체험하는 것. 어쩌면 이 작품이 갖는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