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여행자극장 프로젝트 ‘봄봄’ <오딧세우스>
자유로운 공간, 경계를 이탈하는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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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들의 탈-대학로 현상은 이제 꽤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연극인들은 대학로라는 프레임을 포기하는 대신 조금 더 자유로운 공간을 선택했다. 극단여행자가 여행자극장을 개관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결국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물론 한성대입구역 근처는 이미 연극 연습실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곳을 탈-대학로라고 칭하기는 어딘지 겸연쩍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새로 생긴 극장은 그 희소성 측면에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작년 하반기 개관 공연에 이어 올 상반기에는 ‘봄봄 프로젝트’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배우들을 제외한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그 동안 극단여행자와 인연을 맺어왔던 신인 창작자들이다. 극장이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특별히 이들에게 자유로운 작업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곧 이 극장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첫 작품은 <오딧세우스>(홍세영 작, 권영호 연출, 2017.3.24~4.2)다. 방대한 호메로스의 원작을 소극장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제 막 극장이 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것이 이 작품이 마주한 숙제였을 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딧세우스>는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이 난관들을 극복해 가고 있다.

극장 혹은 극장 같은 그 곳
- 김태희
- 여행자극장은 첫 방문이에요. 어떻게 극장을 만들 계획을 하셨나요?
- 김진곤
- 대학로를 벗어난 지역에서 그 지역과 함께 할 수 있는 극장을 만들고 실험을 해보고 싶어서 원래 연습실이었던 공간을 극장으로 만들게 됐어요. 이곳에서 저희가 지향하는 건 열린 공간이에요. 객석도 정비되어 있지 않고 조명을 다는 그리드도 턱 없이 부족하긴 한데 그만큼 열려 있어서 다양한 다원예술이라든가 다양한 장르, 전시도 가능하고 연극이 아닌 공연도 가능해요. 이런 것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공간을 꿈 꿔서 극장을 시작하게 됐죠.
- 김태희
- 그래서 그런지 극장 입구에 바(Bar)를 설치하고 무대 가운데 관객 테이블들을 배치하는 등 객석과 무대가 독특하게 위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구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거에요?
- 권영호
- 그건 이 작품을 초연하기 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콘셉트였어요. 공간을 마치 카페처럼 꾸며놓고 싶었죠. 이 작품의 형식적 요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 중 하나가 스토리텔링이에요. 처음에 화자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관객들이 서서히 빠져들었다가 중간에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마지막에는 다시 빠져나오는. 그래서 카페 같은 공간을 구상했어요. 그리고 그 카페 테이블 사이를 배우들이 왔다 갔다하면서 연기를 하는 거죠. 특히 요즘에 소극장이 아니라 다른 대안 공간에서 공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요. 무대를 그리스 신전처럼 꾸며놓고 싶지는 않았어요.
- 김태희
- 들어오자마자 바(Bar)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관객들이 인상적이었어요.
- 권영호
- 네, 외국 극장가면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보는데 한국 관객들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좀 풀어진 분위기에서 즐기며 공연을 보길 원했어요.

다양한 자극, 감각적 이미지의 향연
- 김태희
- 공간과 객석을 허무는 시도는 많이 하잖아요. 객석 사이를 배우들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아예 객석과 무대를 바꾸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게 형식적인 것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관객의 입장에서 굳이 이런 시도에 동참하지 않게 된다고 할까요. 관객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은 배우 분들의 움직임이 관객의 능동성을 이끌어낼 만큼 에너지가 있기도 했고 인형이나 음악 등 다양한 요소들이 더해지니까 배우들을 쫓아가면서 보게 되더라고요. 작품 속 다양한 요소들은 어떻게 첨가하게 되신 건가요?
- 권영호
- <오딧세이아>를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을 때 작품 속에 인물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먼저 필요한 인물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특히 대극장이 아닌 곳에서 방대한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적은 인원의 배우들로 작품을 꾸릴 때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또 신, 괴물, 거인들이 나올 때 인위적인 가면, 분장 이런 거 없이 배우들의 연기로만 표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인형이라는 장치를 생각하게 됐죠. 모두가 코러스처럼 선원으로 나오다가 그 중 한 인물이 떨어져 나와서 인형을 가지고 움직이면 거부감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생겼죠.
- 김태희
- 가까이에서 인형을 이용한 연기를 본 건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얼굴만 있는 인형을 높이 들고 있기 때문에 배우의 얼굴이 노출되잖아요. 무표정한 표정의 인형 바로 뒤에 배우의 표정이 더해지면서 그 인형이 섬세한 표정을 얻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다가도 인형을 보면 배우의 몸이 아니라 인형의 몸이 상상이 되기도 하고요.
- 권영호
- 마침 제 근처에 손재린이라는 인형 제작에 뛰어난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가 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김진곤 배우도 오딧세우스를 구상했을 때 김진곤 배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에요. 여기에 음향 감독님이 직접 작곡도 다 해주셨고 세이렌 장면 하나를 위해서 제 주변에 계신 가수 분을 섭외하기도 했어요.
- 김태희
- 덕분에 화자가 있는 층위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때 몰입과 이완을 시키는 방식이 매번 달라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의 움직임, 조명, 탁자를 놓고 움직이는 이미지, 음향, 매 번 달랐어요. 특히 첫 장면에서 이야기로 들어가고 시선을 확 끌더라고요. 사냥을 하는 이야기의 첫 장면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이 가볍다고 해야 하나요. 이야기로의 몰입을 톡톡히 견인해내더라고요. 근데 마침 연출님이 무용 전공을 하셨다고 하니 배우 입장에서는 작업하면서 뭔가 특별한 게 있었나요?
- 김진곤
- 권영호 연출은 배우로 시작을 해서 무용 창작을 전공했고 지금은 연출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배우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깊어요. 배우들이 장면을 만들어갈 때 많은 팁이랄까 배우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열쇠를 많이 가지고 있는 연출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도움이 되죠. 연출은 항상 배우가 보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어서 배우들이 무언가를 제시했을 때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선택해나가니까 배우들이 거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따라가게 되는 거죠.
- 김태희
- 확실히 연출님 주변 사람들의 영향, 연출님이 겪어온 작업의 여정이 작품 안에 묻어나네요.

인간이어라, 오딧세우스
- 김태희
-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으로 넘어가 볼게요. 먼저 작품은 처음에 어떻게 선택하게 되신 거예요?
- 권영호
- 어느 순간부터 그리스 신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스 이야기들을 섭렵해 나가다가 <오딧세이아> 읽었는데 저의 30대와 너무도 닿아 있는 거예요. <오딧세이아>가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승리 후 집으로 돌아가는 10년간의 이야기를 다룬 거잖아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30대가 투영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수많았던 고난과 시련과 유혹들. 그래서 제가 30대를 마무리하면서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어요.
- 홍세영
- 각색을 하면서 오딧세우스의 여정이 어떤 섬에 도착하고 나오고 도착하고의 나열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어요. 고민 끝에 결국 자신감 넘치고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여러 가지를 겪으면서 그 걸 하나씩 내려놓고 알몸의 자신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가져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러면 어떤 연출님 의도처럼 30대 초중후반을 지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마흔에 도달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김태희
- 물론 각각의 섬마다 흥미로운 모습으로 그려지긴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섬과 섬을 옮겨 다니는 여정이 자칫 잘못하면 단순히 반복되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스토리텔링이라는 형식이 잘 부각되고 각 섬들의 특성이 잘 살아났을 때 성장이라는 큰 주제도 무리 없이 흘러갈 수 있는 것 같아요.
- 권영호
- 네, 맞아요. 그래서 저승 장면에서도 오딧세우스가 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주변 배우들에게 대사를 분산시켰어요. 이야기라는 것이 아주 태고부터 여러 이야기꾼들에 의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잖아요. 그런 요소를 중간에도 한 번 넣어주고 싶었어요.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냈고 인간이 인간에게 전해 준 이야기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거죠.
- 김태희
- 그래서 그 장면에서 다들 눈을 가리고 나오셨군요. 맨 처음 등장한 이야기꾼처럼요.
- 권영호
- 원작자가 호메로스잖아요.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그 사람이 장님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또 옛날에는 이야기가 그냥 인간이 만들어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가 아니라 신의 이야기를 들어서 전해주었다는 설도 있어요. 눈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귀가 예민해져서 더 잘 들을 수 있는 거죠. 이야기꾼에서 과거의 화자 호메로스로 넘어가는 그런 장치들이었어요.
- 김진곤
- 반면에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성장을 믿지는 않아요. 인간은 그냥 조금 달라지는 거죠. 저는 사실 관객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살아가는 게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긴 하지만, 막상 이런 시련과 고난이 가득한 이야기를 맞닥뜨렸을 때 거기에 자기를 투영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살아가는 것과는 또 별개여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져갔으면 하는 건 공연을 보고 나서 한참 후에, 그냥 어느 순간에 불현 듯 인간이 이렇구나, 하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요. 공연을 보는 그 순간의 감동이 아니라 보고나서 한참 후에 그거랑 비슷했어, 이렇게 느끼는 관객이 있으면 성공한 게 아닌가 싶어요.

<오딧세우스>는 공간에 빚지고 있는 바가 큰 작품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카페와 전시회장, 혹은 극장처럼 느껴지는 모호한 공간이 펼쳐진다. 조명도 부족하고 객석도 그저 펼쳐져 있을 따름이다. 배우들은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관객들 사이를 오가며 연기를 한다. 무대와 객석, 그 경계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을 채우는 것은 온갖 종류의 자극들이다. 거인, 신과 같은 존재들을 표현한 인형부터 음악, 노래, 조명과 배우의 몸까지 잠시도 관객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자극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상상력은 곧 그 공간 자체를 오디세우스가 살던 그리스 시대로 바꿔놓는다. 상상력은 늘 무한한 예술의 원천이다.
굳이 성장을, 인간의 인생을 엿보지 않아도 좋다.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에서 온 몸의 자극이 곤두서는 체험, 가장 연극적인, 그러면서도 단출한 장치들만으로 그리스 고전의 세계를 실감나게 체험하는 것. 어쩌면 이 작품이 갖는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