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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파수꾼 <정의의 사람들>

끊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김태희_연극평론가
114호 2017.04.20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삶이 인접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수치심과 분노를 몸소 겪었고 변화의 가능성을 목도했으며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정치와 삶이 밀접해진 만큼 예술도 정치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예술은 정치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출구로 담론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조금 신중해질 필요는 있다. 이...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삶이 인접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수치심과 분노를 몸소 겪었고 변화의 가능성을 목도했으며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정치와 삶이 밀접해진 만큼 예술도 정치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예술은 정치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출구로 담론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조금 신중해질 필요는 있다. 이런 시국이 핑계가 되어 모두가 정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며 설령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조금 더 거칠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주제를 핑계 삼아 예술적 성취에 소홀했으며 또 그 주제 의식이란 것이 얼마나 얕고 단순한 반복에 불과했는가. 하지만 정치‘적’ 프레임은 유난히 연극을 쥐고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올해 무죽 페스티벌의 주제는 무려 ‘정의’다. 우리가 겪었던 일련의 사태들이 우리로 하여금 근본적인 개념들 요컨대 정의, 평등, 민주, 자유 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음을 생각해본다면 무죽 페스티벌에 올해 주제로 선정한 ‘정의’는 당사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적 의미 맥락 하에서 해석될 여지를 갖는다. <정의의 사람들>은 제목부터 강렬하다. ‘정의’의 무거움을 이들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레지스탕스에서 휴머니스트로

김태희
올해 무죽 페스티벌 주제가 ‘정의’라고 들었습니다.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선택하게 되신 건가요?
이은준
이번이 초연은 아니고요, 2009년에 초연을 했었어요. 마침 페스티벌 주제가 ‘정의’이기도 했고요, 지금 이 작품을 내가 다시 하면 그 때 알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김태희
아무래도 요즘 상황하고 맞물리면서 이 작품을 다시 꺼내게 되신 거네요.
이원재
저는 꼭 그렇지는 않아요. 100년 전 이야기에 우리의 현실이 투영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광장에 나가게 하고 그런 걸 원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이 작품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는 거죠.
이은준
올해가 러시아 혁명 100주기예요. 우리나라도 외국도 마찬가지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10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가야할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쯤 변화되기 위해서 한 개인, 인간이 자기를 포기하고 살지 않는 세상이 올까에 대해서 관객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김태희
그럼 초연과 달라진 점이 뭐가 있을까요?
이원재
그 때는 <정의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하지 않고 <레지스탕스>라는 제목으로 그 개념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 공연을 했죠. 지금은 연출가가 작업 전에 이야기를 했듯이 휴머니스트에 초점을 맞췄고요. 그래서 정의의 사람들이라는 제목도 그대로 가져갔어요.
이은준
2009년에는 몰랐는데 야네크하고 도라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물론 극 중 어린 아이에게 폭탄을 던지냐 말 것 이냐, 어떤 게 정의냐 이런 논쟁과 대화들도 있지만요. 이번에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개인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에 대해서 조금 더 중점을 두려고 했어요.
김태희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어떤 지점을 부각 시키고 싶으셨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보면서 이틀 후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계획된 거사 날에는 느끼지 못했던 분노나 공포가 이틀 뒤에 터져 나오잖아요. 그 때 무대 위 인간들이 제일 인간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이은준
저는 사람들이 유약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리 정의를 사랑하더라도 죽음 앞에 두렵잖아요. 가령 스테판의 경우 강하게 보이지만 사실 자기가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를 지키기 위해 강하게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도라도 혁명적 투사의 느낌이 아니라 사람을 안아주는 느낌으로 연기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동지라는 게 그렇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안아줄 수 있으니까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이념이 강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이 폭탄을 던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의를 위해서 노력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더 슬퍼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 거니까요.
배보람
다른 것보다도 그 지점이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품어줘라, 안아줘라, 넓어져라, 이 소갈딱지를 넓히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거대한 말들의 향연, 각색의 난점과 미묘한 매력

김태희
번역극 공연은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러시아 혁명기라는 시대 자체가 우리에게 생소하기도 하고 또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거대한 담론들과 수많은 대화들이 오가잖아요. 그런 면에서 작품 올리실 때 고민하신 부분은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이원재
텍스트에 대해 이미지로는 어떤 느낌인지 알아도 그걸 실체화 시켜서 관객한테 주는 건 다른 거거든요. 눈으로 읽는 것과 그걸 누군가의 행위를 통해서 관객한테 전달할 때는 분명 괴리감이 생기니까요. 특히 이 작품은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인데 연출이 소소하게 관객에게 느껴지길 원했고 배우들은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 말을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공연을 하면서 이 작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수께끼처럼 어제 몰랐던 걸 오늘 공연할 때 알게 되는 것들이 종종 있었거든요. 한 글자를 잘못 말했을 때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지죠.
김태희
매일매일 대사가 다르게 느껴지시는 부분이 있나 봐요.
이원재
네, 그건 분명해요. 한 글자 때문에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이 사람이 써 놓은 걸 함부로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태희
특별한 각색 없이 원작에 충실하게 옮기시다 보니 더 힘드셨을 것 같기도 해요. 대공비 장면이 인상 깊어요. 이 작품이 긴 작품은 아닌데, 주고받는 대사의 질량이 엄청나잖아요. 그래서 사실 대공비가 등장하는 장면을 잘라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대사를 듣고 이게 들어가야 되는구나 생각했었어요. 대공비가 무대에서 온몸으로 종교를 대변하잖아요. 그렇게 등장한 이 여자가 결국에는 마지막 대사랑 대조되면서 신조차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하는 절망적인 순간들이 부각되더라고요.
이원재
대본은 그냥 말을 다듬는 수준에서 각색되었는데 그럼에도 100퍼센트 창작해서 넣은 딱 한 줄이에요. “신은 너무 바쁘니까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지.”
이은준
대공비가 등장하는 장면이 사실 어렵잖아요. 혹자는 너무 친절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대사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공비와 마주하는 순간은 야네크에게 엄청 괴로운 순간이에요. 아무리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자기가 죽인 사람의 부인을 만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충격이 있으니까요. 요컨대 이 장면은 야네크의 약한 부분을 건드린 거잖아요. 그래서 그 장면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이원재
게다가 저희 작품에는 임신한 대공비가 등장해요. 야네크를 연기하는 제 입장에서도 마주하기가 힘들었어요. 배우가 실제로 임신 중이기도 하고요.
이은준
만약에 배우가 임신 중이 아니었어도 저는 대공비를 임신부로 등장시켰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마주했을 때 이 사람이 더 괴로워지니까요.

진지하지만 소박하게, 차분하지만 뜨겁게

김태희
아무래도 외국 작품이고 조직이 몰래 숨어있는 공간을 무대에 담아내는 거잖아요. 무대 디자인은 어떤 콘셉트로 접근 하신 건가요?
이은준
원래는 배경이 아파트였는데 저는 좀 창고 같았으면 했어요. 왜냐면 창고는 쓰지 않는 물건들이 있는 곳인데 이 사람들의 삶이랑 어울리는 것 같았죠. 제일 큰 게 교수형 집행 장소로 바뀌기도 해야 하니까요. 제가 좀 촌스러운가 봐요. 부르주아가 나오는 연극보다 소소하고 가난하고 그냥 때 묻은 느낌이 좋거든요. 제가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은 다 무대들이 세련미보다는 촌스럽고 투박하고 그래요.
김태희
작품도 진지한 작품들을 더 선호하시는 것 같아요.
이은준
제가 유머가 별로 없어요. 저는 이렇게 말 한마디로 웃기는 재간이 없어요. 뭐 하나 웃기려면 계속 쌓아놨다가 상황을 가지고 웃기는 건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제 자체가 유머가 없는 것 같아요. 또 저는 연극보고 웃고 나오는 것도 좋지만 드라마 영화도 그렇고 웃고 즐길만한 매체는 이미 많은 것 같아요. 연극을 처음 보는 분들이 웃는 걸 좋아하고 아닌 분도 계시겠지만 어쨌든 가슴속에 머릿속에 뭔가 하나가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딱 보고 끝났으니까 그 땐 그랬고 끝. 이게 아니라 집에 가서 아까 그 대사가 생각하니까 가슴이 찡하네, 하는 느낌을 받기를 원해요. 이렇게 생각을 하다보니까 연극들이 무겁거나 담론이 좀 있거나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김태희
작품 보면서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말씀을 나눠보니까 작품이랑 연출님이랑 이미지가 많이 겹쳐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배우 분들께서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가지고 가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원재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담론은 거대하고 이들의 행동에 대한 의미 역시 강렬하지만, 사실 독립투사들이 만나서 늘 그런 이야기만 하진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그들이 나눈 소소한 이야기가 신념이 되고 그들의 힘이 되었다는 것을 믿어요. 정의의 사람들, 정의로운 사람들이 지금도 있거든요. 폭탄을 던지는 행위는 아니지만 뭔가 싸우는 행위는 아니지만 소소한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은 너무 바쁘니까. 그분하고 상관없이 그런 남을 돕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세상이 되겠죠.
배보람
이 작품의 인물들은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이에 있어요. 당장 조금 이따가 죽을 수도 있고 내일 죽을 수도 있죠. 그런 인물들을 연기하다 보니까 정말 사는데 중요한 게 뭔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평생 살게 아닌데 허비하는 시간들이 많잖아요. 만약에 내가 조금 이따가 죽는다거나 내일 죽는다거나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생각, 뭔가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저 스스로도 하게 되었고 관객들도 그런 것들을 돌이켜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리 거대한 담론도 결국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의라는 명분 자체가 우리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죄를 저지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연약한 것들에 동정심을 갖는다. 사람이기에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정의를 말 할 수 있다. 결국 두렵고 무서운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건 결국 내 주변의 사람들 덕분이고 그들과 맞잡은 손 덕분이다. <정의의 사람들>이 정의를 마주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 그것에 다름없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