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행길 <옆방에서 혹은 바이브레이터 플레이>
당신과 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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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이다. 게다가 하이섹스코미디라니. 그동안 서울연극제를 통해 만났던 작품들을 떠올려본다면 가히 혁명적인 작품이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문제는 마치 강박처럼 무대를 배회하고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지만, 그 문제의식도 이를 담아내는 언어도 앙상할 뿐이었다. 누구도 피곤함을 해소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연속. 그 연쇄를 <옆방에서 혹은 바이브레이터 플레이>가 보기 좋게 깨버렸다. 제목에서부터 자유분방한 이 작품은 초반부터 작정이나 한 듯 관객들의 웃음을 빵빵 터트린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품은 1880년대 전기가 막 보급되던 시절의 미국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간 복제가 낯설지 않은 우리들에게 이들이 자랑하는 성의학과 정신의학은 사이비 과학에 가까워 보이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는 최첨단의 산물이었다. 바이브레이터를 히스테리를 고치기 위한 의학기구로 이용하고 오르가즘을 치료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엉뚱함은 그 자체로 희극적이다. 하지만 이 희극성 뒤에는 여성문제에서부터 인종문제에 이르기까지 관계에 대한 다양한 사고의 편린이 숨겨져 있다.

여성의 적은 남성일까?
- 김태희
- 서울연극제 작품으로 이 작품을 선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 이강임
-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편적 주제가 펼쳐지고 현대적 감수성이 우러나는 세련된 작품이라 끌렸어요. 특히 여성이 주체적으로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통쾌하면서도 결코 남성을 무너뜨려야할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사랑과 행복을 추구할 동반자로 여기는 감수성이 좋았어요. 작가는 코미디 형식을 통하여 성욕. 사랑, 그리고 결혼 생활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유쾌하고도 진지하게 풀어갑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제가 우리의 삶과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공명하고 있어요.
- 김태희
- 확실히 이 작품에서는 여성인물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최성희 선생님께서도 글을 통해 말씀하셨지만, 그동안 모험을 하고 인생을 탐구해나가는 여정이 남성 인물들의 것으로 그려졌다면 이 작품에서는 이 모든 게 여성인물들에 의해서 진행이 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특히 자신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옆방을 탐색하는 기빙스 부인과 그 조력자인 덜드리 부인이 그 중심에 있죠.
- 이강임
- 그렇죠. 그래서 일부 비평가들은 이게 여성중심 연극이라고 보기도 해요. 욕망의 주체로 적극적인 여성이 등장하고 그녀들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죠. 작품의 모든 여성인물들은 사랑의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인물이에요. 하지만 작품이 끝날 때 쯤 캐서린은 진정한 사랑을 얻고 사브리나는 생의 활력을 얻고, 애니는 난생처음으로 몸적 충동과 정서적 교감을 경험하죠.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여성중심 연극이라기보다는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이쪽 편에는 분명히 남성이 있기 때문예요. 작가도 옆방이라는 은유적인 메타포를 쓰고 있는데요, 그 옆방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남성의 공간이지만 남성한테는 그 옆방이 여성의 공간이거든요. 옆방은 결국 상대적인 거예요.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쌍,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여성중심 연극이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 김태희
-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여성 중심 연극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포인트들이 축소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럼에도 우리 연극에서 보기 힘든 여성 인물인 건 확실 한 것 같아요.
- 이강임
- 연출 하면서 늘 생각했던 건데 무대는 굉장한 파격과 실험이 허용되는 곳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처럼 보수적인 곳이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젠더 문제에 관해서는 왜 그렇게 여성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누군가의 시선과 누군가의 욕망에 맞춰진 대상화된 인물들이 유난히 많은지요. 그건 남성작가가 굉장히 많다는 거고 연출가가 많다는 거예요. 젠더라는 건 아무래도 성적 경험을 무시할 수가 없어요. 내가 아무리 나의 파트너의 성을 균형 있게 바라본다 하더라도 내가 여성인건 분명하잖아요. 아무래도 남성작가나 남성 연출가가 많고, 그들의 성적 경험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해요.
엘리자베스, 당신의 피와 땀

- 김태희
- 이 작품에는 중요한 포인트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 중에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유모의 존재였어요. 유모는 아프리카계 여성으로 아이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여성이죠. 덕분에 기빙스 박사의 집에 유모로 들어와 그 집 아이를 위해 젖을 먹일 수 있었는데요. 이건 일종의 ‘도구화’로 비춰졌어요. 그녀의 인종적 특성은 곧 그녀의 사회적 지위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을 연출하실 때 그녀의 인종적 특징을 중요한 요소로 보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 이강임
- 네, 물론이에요. 흑인 유모 엘리자베스는 많은 연극 작품들에 나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버리는 중요한 인물이에요. 백인 중산층 계층의 무의식적인 인종 편견을 드러내는 인물로 백인 가정에 육체와 노동력을 받쳐야 했던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삶의 애환을 드러내면서도 도덕적이고 고결한 인물임을 삶의 태도로 웅변하는 인물이죠. 마지막 엘리자베스의 대사, 기빙스 부부의 딸이 먹은 젖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것은 자신의 아들의 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백인’ 사회를 은유하는 경고이기도 해요.
- 김태희
- 대본으로 읽으면서 흑인이라는 엘리자베스의 인종적 특징을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하실지 궁금했었어요. 저는 한국인들이 인종 문제에 둔감한 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이강임
- 고민을 많이 했어요. 흑인과 백인의 축약된 역사가 엘리자베스의 개인적인 장면들에 녹아 있는 셈인데 그게 한국의 문화로 번역되기는 어렵죠. 그렇지만 우리도 인종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봐요. 그런 맥락에서 엘리자베스가 우리 문화 안에 존재하는 ‘인종적’ 편견을 깨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에 관한 협의 과정에서 에이전시 대표가 엘리자베스의 구현에 관해 걱정하더라고요. 아시아에서 아프리카계 인물들이 나오는 작품을 공연할 때 흔히 스테레오 타입에 입각한 방식으로, 이를테면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치아 틀을 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올린다고 하더라고요.
- 김태희
- 그게 흔하다는 게 충격적이네요.

- 이강임
- 그렇죠. 저는 그런 방식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방식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원작과는 다른 설정들이 필요했어요. 가령 미국 무대에서는 스테레오 타입을 깨는 멋진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 유모라는 사실만으로도 레오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설명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쉽지가 않죠. 이 장면을 저희는 많은 설정으로 설명해야 했어요.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엘리자베스가 아기를 안고 있는 장면을 넣는 식으로요. 이런 장치들을 바탕으로 관객들이 엘리자베스에 대해 피부가 검은 인물인데 굉장히 위엄 있고 고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저희는 성공한 거고요. 어쨌든 우리 문화에 낯선 것들이 들어오면 관객의 해석이 혼란스러워지거든요. 그런 걸 잡느라고 굉장히 애를 썼죠.
- 김태희
- 아이를 안고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캐서린 기빙스가 보여주는 경계심은 백인이 흑인에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감정인 것 같아요. 인종 문제는 결국 흑인에 대한 백인의 무지와 공포에서 비롯되는 거잖아요.
- 이강임
- 네, 한편으로는 마지막 두 여자의 연대도 중요해요. 마지막에 캐서린 기빙스가 엘리자베스에게 덕분에 아기가 건강해지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었다고 고마워하는 장면이 나와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사이의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사랑이라는 거예요.
- 김태희
- 마지막 장면의 의미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씀 듣고 나니 중요하게 다가오네요. 젠더 문제는 단순히 젠더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종, 계급 등 사회적인 문제들과 함께 고민을 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 이강임
- 제가 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는 젠더 문제를 하나의 협소한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성,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하나의 축으로 보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이 작품에서 그런 것들이 부각되지 않는 다면 이건 그야말로 상업화되기 쉬운 섹스 코드만 있는 작품이 되어버리는 거잖아요. 이 작품은 일차적으로 여성이 내 몸의 쾌감, 자연이 준 선물인 그 오르가즘의 정체와 나아가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사회적 분석과 함께 가지 않으면 평면적이고 2차원적인 작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굉장히 신경을 썼어요.
- 김태희
- 그 아슬아슬한 균형감이 좋았어요.
- 이강임
- 연습할 때는 사실 더 재밌게 했죠. 연출로서 제일 어려웠던 게 사실 균형을 잡는 부분이에요. 균형감을 유지하자니 에너지와 재미가 떨어지고 흥미를 잡자니 또 너무 과격해지고요. 관객들한테 빵빵 터트리면서도 이 작품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여운을 갖고 생각할 여지를 좀 주고 싶었어요.

행복의 조건들
- 김태희
- 마지막 부분에 캐서린이 기빙스에게 우리의 미래의 행복은 비현실적인 것에 달렸다고 말하죠. 현실적이고 이성을 중시하는 기빙스에게 던진 대사여서 인상에 남아요. 그녀가 말하는 ‘비현실’이 함의하는 바가 뭘까요?
- 이강임
- 돈, 명예, 지위, 권력, 실용성, 이런 것들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일 텐데요. 이런 것들은 편안함을 보장하지만 행복의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캐서린 기빙스가 말하는 것처럼 비가 올 때만 우산을 쓰는 현실적인 사람들은 삶이 팍팍하고 건조할 거예요. 그녀가 말하는 비현실적인 것은 현실의 조건들과 어긋날 수 있는 것들을 통칭하고 있지만 특히 사랑의 관계가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우리 삶의 선물과 같은 것이겠죠. 아마 인간의 행위 중에서 가장 현실적 조건들에 어긋날 수 있는 비현실적 행위가 사랑이 아닐까요? 관객들이 이 작품의 인물들과 같이 사랑과 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해서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인지적, 감정적 체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여성의 적은 남성이라는 구조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남성 전부를 적으로 만듦으로써 여성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이 각각 인류의 절반을 이루고 있다면 이들이 동반자의 관계를 맺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다. 실제로 기빙스 부부의 서사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어떻게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유쾌하게 그려낸다. 사랑은 기빙스 부부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행복을 선사한다. 심지어 가장 약자였던 엘리자베스마저도 아이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고 캐서린과의 연대의 순간을 맛본다.
한편 이러한 행복한 결말이 무대 밖에서도 가능할지는 의구심이 든다. 구조적으로 주입된 젠더 경험과 관계를 정의하는 관습들은 집요하게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여러 번 우산을 집어 던지고 빗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