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화학작용3: 미아리고개예술극장 편

신진이면 좋잖아요

임진선_극작가
116호 2017.05.25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떤 불꽃이 연상 됐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오색찬란한 불꽃보다는, 정비공의 손끝에서 튀어 오르는 푸르스름한 불꽃에 가까웠다. 푸르고 뜨겁고 거칠고 세밀한, 화학작용.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창작환경 조성을 위한 젊은 창작자들의 연극축제 ‘화학작용’이 관객들과 만나게 된 것은 올해로 세 번째다. 소...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떤 불꽃이 연상 됐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오색찬란한 불꽃보다는, 정비공의 손끝에서 튀어 오르는 푸르스름한 불꽃에 가까웠다. 푸르고 뜨겁고 거칠고 세밀한, 화학작용.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창작환경 조성을 위한 젊은 창작자들의 연극축제 ‘화학작용’이 관객들과 만나게 된 것은 올해로 세 번째다. 소개팅에서도 세 번째 만남이면 이건 뭐 확실하다는 거다. 난 니가 맘에 든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화학작용3’이 가진 의미는, 이 축제가 확실히 누군가의 마음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 아닐까?
‘화학작용3’를 가리키는 말들 중 ‘30대 연극인’ ‘신진 창작자’ ‘자발적인’ ‘연대’ 그리고 ‘축제’ 등의 단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젊은 창작진들이 모이는 게 과연 축제일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젊은 창작자인 필자와 그 주변은 영 축제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다. 일상이 전투적이어서, 축제를 누릴 겨를이 없는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었다. 오색찬란하지는 못해도, 뜨거운 푸른 불꽃을 맞아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미아리고개를 열심히 올라 극장을 찾았다. 화학작용3의 신주훈 기획자와 3주차의 화학작용을 보여준 <꼰대>의 서현우 연출가, <명랑 新악극 맹랑별곡 : 맹진사댁 사랑이야기>의 심재욱 연출가를 만났다.

임진선
화학작용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신주훈
화학작용이라고 하는 축제가 처음 시작된 건 2014년도 부터예요. 민간극장과 젊은 창작 집단들의 서로간의 협력, 그리고 두 팀 간의 화학작용이라는 협력관계를 기본구조로 가지고 가는 축제이고요. 올해는 총 열 여섯 개 단체가 참여를 하고 있어요.
임진선
지난 화학작용과 올해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신주훈
이전까지는 민간극장이 무료로 공간을 제공하고 극장의 프로그램을 축제 창작진이 채워가는 구조였어요. 올해는 대학로가 아닌 미아리에서. 미아리고개예술극장도 기본적으로는 공립극장인데 마을담은극장협동조합이라는 민간협동조합이 운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극장을 운영하는 것도 결국에는 예술가들이고요. 공간은 공적이면서도 결국에는 성북구라는 지역과 화학작용이라는 축제가 만나는 것이라는 점이, 그동안의 민간극장과의 협업과는 다른 구도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임진선
‘30대’, ‘신진창작자’라는 말들이 눈에 띄었어요. 저도 어떻게 보면 신진? 신인인건데... 조금 고민이 되더라구요. 신진창작자라는 게 뭔지. 어떻게 표현을 하면 좋을지.
서현우
되게 애매하네요, 기준이. 나이로 자르는 것도 아니고. 뒤늦게 입봉한 사람도 있고. 저 같은 경우는 2008년 스물여덟에 처음 입봉을 했거든요. 지금까지 한 9년? 연출도 이번 꼰대까지 10편 한 것 같고... 근데 아직도 제 마음은 신진이고, 아직도 몰라주는 사람 많아요. 어딜 가서 설명할 때 그냥 “저 신인이에요” 해요. 모르겠어요. 내 스스로가 한 단계 성숙되고 이제는 내가 신진의 타이틀을 뗄 수 있겠다 하면 그때는 기성연출가라고 얘기할 거 같은데. 아직까진 계속 미완으로 남아있는. 완성을 꿈꾸는.
심재욱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신진이겠죠? 내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그것들을 지금 시작한 사람들. 완성직전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완성직전, 나의 언어를 구축하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신진 아닌가... 근데 또 그렇게 얘기하면 대가들도 계속해서 창조 작업을 하고 있으면 신진인거 같구요. 새로운 주제나. 새로운 형식. 이런 것들을 계속 찾아나가는 창작자들이 신진이지 않을까요.

화학작용 속의 화학작용

신주훈

신주훈
화학작용3은 단순히 두 작품의 나열로서만이 아니라, 두 집단이 서로 협력하고 서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가지고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어느 주차에 어느 팀을 엮는가에 많은 고민과 진통을 거쳤습니다.
심재욱
원랜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근데 저작권 문제가 생겨서 그걸 못하게 됐죠. 그리고 소외지역 신나는 예술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르신들이 재미있게 즐기면서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면 좋겠다, 라는 취지에서 만든 작품을 하게 됐는데. 주제가 묘하게 맞은 거예요.
서현우
저는 요즘 자주 노출되는 태극기 할아버지들에 대해서 궁금했어요. 이번작품은 그들을 그냥 객관적인 시선으로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너무 맹목적인 비판만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진짜 한국현대사의 모든 독을 먹은 분들인데 쓸모가 없어졌다고 배척을 한다면, 당연히 그들로서는 내가 죽지 않았다는 생존투쟁을 하겠죠. 그런 분들을 관객들하고 같이 고민하면 좋지 않을까 했던 것 같아요.
임진선
두 작품의 색깔이 많이 달랐어요. 그런데 그게 더욱 시너지를 주는 느낌을 받았구요. 이건 좀 형식적인 질문인데, 이 프로젝트를 하시면서 어렵거나 힘든 점은 있으셨는지.
심재욱
연출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겠지. 연출들이 원하는 게 너무 많아서. (웃음)
신주훈
아뇨 아니요. 각 팀별로 서로 인력도 지원 해주고. 어떤 경우에는 연습실을 공유하기도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을 진행하시다보니 팀이 많아서 힘들다거나 하는 점은 없어요. 굳이 어려움이라고 한다면 처음 재정적인 면에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다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루트를 얻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됐어요.
심재욱
워낙 많은 연출들이 희생이라고 해야 하나... 공유하는 게 있어요. 연극작업 하다보면 고립되어 있잖아요. 내 작품 안에만 있고, 내 팀에만 있고. 어떻게 먹고 살지 하는 고민 많이 하고. 내가 종종... 대부분의 시간을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와 같은 인간들이 또 더 있구나. 너도 있고 나도 있고, 같이 살아 있구나, 라는 걸 확인하게 돼요. 여러 작품들 보면서 아 여기 이런 팀이 있고 이런 팀이 있구나도 알고.
서현우
사실 연극작업 하시는 분들이 자기작업 하다보면 바빠서 다른 작품들을 못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번 작업 하면서 벌써 몇 편을 본 거야.
임진선
그럼 하시면서 모든 작품을 다 관람하시는 건가요?
심재욱
네 의무적으로? 의무라기 보단 다 보는 걸로. 모든 팀이.
서현우
저는 올해 일 년 치 할당량 다 한 것 같아요.

일동 웃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심재욱

임진선
저도 <꼰대>와 비슷한 고민을 했거든요. 할아버지에게 <꼰대> 속 그 대사 그대로 들어봤어요. “요즘 젊은 애들은 진짜 고생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가 나무껍질을 안 달여 먹어봤다고 혼이 나요. 내 할아버진데, 소통이 안 돼요. 광화문 나가면 보는 할아버지들을 욕할 수만은 없겠더라구요. 연출님도 ‘비판하려고 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옮겨보려고 했다’ 하셨는데.
서현우
자료 수집을 많이 하다보니까 공통적인 부분들이 있어요. 그분들도 잘못됐다는 걸 알아요. 근데 그것보단 자기의 가치로 상징되는, 젊은 시절을 대표하는 박정희라는 시대를 깡그리 거부하고 무시하는 것에 대해 소외감을 대단히 많이 느낀다고 봤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 연극적이고 테크닉적인 요소들을 빼고 순수하게 그분들 하는 얘기들을 전달해보고자 했어요. 그냥 전달하면 재미없으니까 과정 속에서 영상기법을 써서 중간에 가미를 했구요. 본질은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얘기, 그분들이 살았던 삶. 그걸 관객들에게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작품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임진선
저희는 어쨌든 그 삶을 못 살아봤잖아요. 이해하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고. 그 노력이 무대 위에 어느 정도 구현이 된 것 같으세요.
심재욱
글쎄요. 젊은 사람들이 아닌, 더 많은 어르신들하고 같이 해봐야 알 거 같아요. 이전에 어르신들하고 작품을 한 게 있어요. 양양에서 상여소리하고 농여소리. 마을이 무형문화재에요. 소리를 하시는 분들, 농사일 하시는 분들인데. 공연을 하는데 우는 장면이 있었어요. 근데 공연하시면서 그렇지, 하고 같이 우시는 거예요. 또 공연중간에 나 마이크 빠졌어! 그러는데, 아 그렇지! 뭘 그렇게 다 짜놓고 시작하지? 뭘 틀 안에 가둬놓고 하려고 그랬을까? 생각하게 되고. 연극은 다 틀 안에 가둬놓고 하잖아요. 그걸 많이 깨고 싶어서 이 작품을 하게 됐죠. 그렇지만 또 많이 틀 안에 있기도 해요. 그걸 많이 깨고 싶고, 그렇게 어르신들이 같이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란 생각이었죠.

신진으로서의 활동

서현우

임진선
두 분 연출님 극단이 다 특색이 있더라구요. 공동창작집단 가온은 영상기법, 극단 바바서커스는 가면극. 그런 기법들을 많이 연출에 사용하시나요?
서현우
창단공연이 인생게임이라는 공연이었는데 그때 처음 영상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배우들에게 각자 감독이 돼서 이 장면을 가지고 각자 찍어봐라 했어요. 근데 재밌더라구요. 하면할수록 재미있어서 공연전체 컨셉이 아예 영상연극으로 바뀐 거예요. 막상 일을 벌려놓고 나니까 잠이 안 왔어요. 연극에서 이래도 되나?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런데 관객들은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똑똑하시고, 더 받아들이시더라구요.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젊은 연출이 해서 새로운 공연이 나온 거 같다, 신선하다 얘기를 들은 거죠. 신진단체들은 잘한다는 얘기보다 새롭다,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 같아, 이런 게 좋죠. 그 작품이 운 좋게 작품상 연출상을 받으면서 아 이게 가능하구나.. 해서 도전을 한 거죠. 아직 미완성이에요. 목표는 영상 삼부작을 만들어보고 싶은 거예요. 삼부작까지 만들어서 그걸 한 달 정도 대관 잡고. 각주마다 영상이라는 주제를 잡고 서로 다른 연극을 만들어 보는 게 꿈이에요.
임진선
연출님의 바바서커스는.
심재욱
피지컬시어터를 한다는 의미로 서커스가 들어갔어요. 피지컬시어터는 배우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행동들이 감정이나 정서, 이야기 안에서 같이 나오는 거죠. 공간자체에 피지컬이 다 있는 거거든요. 그 자체로서 이용해보고 싶다는 거였고요. 가면은 꽤 오래 됐더라구요. 제가 있었던 수레무대에서 처음 가면이라는 걸 쓰고 하게 됐어요. 배우 얼굴은 드러내야 하는 건데 왜 가면을 써? 했었는데. 배우가 가면을 씀으로써,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더 숭고해지더라구요.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보다 가면에 맞춰서 배우가 변화 되는 게. 같은 가면을 다른 배우가 쓰면 또 달라지니까. 그러면서 그 자체가 또 피지컬이 되고. 그런 게 저희의 기본적인 베이스에요. 어떤 작품들은 가면을 전혀 안 쓰는 것도 있어요. 지난 서울연극제 나간 <연옥>은 가면 없이 했어요. 좀 더 많은 훈련과 극단안의 언어들이 맞아야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진선
벌써 열두시네요. 신진창작자들이 모인 축제인데, 신진이 신진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연출님이 연출님께나, 혹은 제게.
서현우
저도 사실 신진 쓰면서 부끄럽긴 하거든요. 내년이면 10년차인데. 여전히 모르면 신진이죠. 갓 졸업한 애들에게 한다고 하면. 버텨라. 버티고... 저질러보면 길이 다 보이더라. 막다른 길 가도 자기가 정말 끝까지 줄을 놓지 않으면 쥐구멍이 하나 보이더라구요. 쥐구멍으로 딱 들어가면 또 막다른길 나오고, 또 불빛 보이고. 그냥 용기 있게 도전했음 좋겠어요. 버티다보면 길이 열리는 것 같더라구요. 제가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심재욱
생각해보니 제가 신진이 맞는 거 같아요. 이 전까지는 배우를 했고. 연출로서 제 이름을 걸고는 처음이네요. 이전까지는 공동연출이었고. 이 얘긴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다기 보단... 배우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인데. 우리 교육환경이 항상 정답을 찾다보니 연습하다보면 연기도 맞는 걸 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생각했던 맞는 연기. 내가 배웠던 맞는 연기. 근데. 그걸 보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창작을 하는 순간에 맞는걸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떤 이미지나 상상으로 인해서 막 해봤는데, 그중에 좋은 거 몇 개를 찾는 거거든요. 화학작용이 좋았던 게 맞는 걸 하는 게 아니라 내 얘기를 하고 있고 내가보고 싶은걸 하고 있고 내가 즐겼던 걸 너희들도 같이 봐, 하고 공유하는 거예요. 그래서 되게 좋았어요. 나도 자극을 많이 받았거든요.
내 생각을 많이 풀어내서 창피함 없이 이건 나야, 하고 그냥 이 세상과 만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재미없다 이상하다 하면 수렴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맞다고 하고 갈 수 있는 개인차가 있겠죠. 되게 쪽팔린 순간들이 많을 텐데. 그런 개인적인 시험들을 가감 없이 했음 좋겠어요. 겁내지 말고. 근데 점점 그렇게 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러면서 같이 버텼음 좋겠어요 먹고살기 힘드니까. 살아남는 사람이 살아남는 거라고. 맞나요?
서현우
네 그렇죠.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심재욱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죠. 그동안 극단에도 있었고 다른 연출들도 봐오면서, 어 저배우 뭐야? 저 연출 뭐야? 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있고. 어쨌든. 실험이라기 보단 나 자신을 보여주는 시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꼰대>를 보면서는 용술의 구술서를 작성하는 미형이 된 기분이었다. 용술이 쏟아내는 말들에 그를 연민하게도 되고,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용술이 왜 태극기를 들고 나갔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의 삶을 다 들려줬기 때문일까. 그래서 설명이 필요 없었던 것일까. 말은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일까.
그에 반해 <명랑 新악극 맹랑별곡 : 맹진사댁 사랑이야기> 는 신나는 놀이였다. 흥이었다. 앞서 <꼰대>를 보지 않았더라면 또 다르게 체감했을지도 모른다. 화학작용은, 봐야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상태’인 것이다.
나는 그러니까 푸른 불꽃을 본 것이다. 함께 타오르는 법도 알게 됐다. 어려울 거 없다. 뛰어들면 되는 것이다. 신진이라는 말이 내게는 청춘이란 단어처럼 느껴졌다. 규정지을 수 없고 완성되지도 못하는, 손에 잡히지 않기에 계속해서 가질 수 있는 어떤 상태. 화학작용은 분명 세 번도 네 번도 또 만나보고 싶은 매력적인 상대였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