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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달나라동백꽃 <검은 입김의 신>

그들이 맡은 역

윤성호_극작가·연출가
121호 2017.08.03
현재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는 ‘세월호2017’이라는 이름하에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7월 6일부터 8월 13일까지) 정권이 바뀌었고, 책임자들의 재판 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이 무겁다.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간 연극계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

현재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는 ‘세월호2017’이라는 이름하에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7월 6일부터 8월 13일까지) 정권이 바뀌었고, 책임자들의 재판 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이 무겁다.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간 연극계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연들이 있어왔다. 배우들의 입장에서 만난 ‘세월호’, 세월호 ‘연극’이 궁금했다. <검은 입김의 신>에서 아이를 임신한 채 탄광촌에 정착하는 신혼부부 남희, 상진 역을 맡았던 배선희, 노기용 배우를 만났다.

윤성호(이하 윤)
반갑습니다.
노기용(이하 노)
정말 옛날 일 같아요. 공연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배선희(이하 배)
일주일?
노
일주일? 벌써?
윤
각설하고 바로 인터뷰로 들어갈게요.(웃음) 탄광촌이라는 배경을 다루고 있는데 대본을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배
처음에는 어려웠워요. 대사가 대화라기보다는, 문어적이고 시적이라고 생각했죠. 체호프 작품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읽을수록 좋더라고요. (배선희 배우는 본인이 직접 작품을 쓰고 낭독극을 한 경험이 있다.)
노
세월호의 느낌을 많이 받지 못했어요. 광부 얘기구나. 첫 이미지는 ‘왜 이렇게 말이 많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느낌이 가장 컸어요. 아무래도 배우다 보니... 재미있긴 재미있었지만요.
윤
뭐가 재미있었나요?
노
광부 이야기가 생소하면서도, 흥미를 끌었어요. 탄광 이야기라는 게.
배
인상적이었던 게 광부들이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하는 것들과, 특히 이 <검은 입 김의 신> 5장에 남자 광부들이 광업소에 앉아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공연에서는 막장에서 대화하는 걸로 바꿨는데, 원래는 공업소에서 “사람취급 해주십시오”라고 신입 광부 상진이 이야기 하는 장면이었죠. 선배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갑자기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고백하기도 하고, 누구는 과거 목사님한테 폭행당한 이야기, 누구는 신(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이야기, 갑자기 왜 이런 얘기들을 쏟아낼까? 그런 게 대본 처음 볼 때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인물들이 사람 같지 않더라고요. 나도 남희 라인을 보다보니, 처음에는 ‘얘 왜 이러지? 이 사람들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컸어요.
노
저와는 반대인 것 같아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광부여서 그런가? 굉장히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 같았어요. 문학적이거나 시적이라는 느낌은 안 들었어요. 물론 아름답게 쓰여 있지만 내뱉었을 때 시적이라기보다는 정말 할 법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죠.
윤
흔히 접하기 힘든, 지금은 더더욱, 인물들을 다룬 작품이라 배우로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우리가 하는 말과 다른 말들을 할 것 같고. 남희는 사실 전사라는 게 알기 어렵기도 하고, 상진도 흥신소에서도 일하고, 공장에서 노조를 하다가 해고된 전사들이 있어요.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갔나요?
배
엠티를 갔는데 너무 좋았어요. 거의 현장학습이었죠. 1박2일. 사북. 태백. 실제 지금 사북 같은 경우는 거기 광업소를 아예 그대로 남겨두고서 광부들의 실제 장비며 캐비넷이며 다 볼 수 있었어요. 안내해주시는 분이 실제 광부였고요. 사북에서는 모자를 쓰고 수평으로만 들어갔는데, 100m도 안 됐던 것 같아요. 모자 쓰고 갱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했죠. 안전지대까지 가서 더 깊은 갱을 보고 빠져나왔어요. 소리랑 습도, 그 기분이 너무 특별했어요. 사북에서, 태백에서도 아직까지 운영하고 있는 광산 앞에 있는 마을들 다 돌아보고, 박물관도 갔어요.
윤
실제로 까맣던가요?
배
네. 강이 하나 흐르는데 강물 바닥 자체가 까만색이에요. 그냥 눈으로 봤을 때 까맣죠.
윤
대사에도 있던데, 광산에서 자란 애들은 색을 다 검게 그린다고. 대본에서는 하늘은 그래도 파랗게 그린다는 대사가 있더라고요. 남희라는 인물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쨌든 계속해서 기다려야 하는 인물이니까.
배
그런 것도 있고, 연습 중반에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형성이 있다고... 아기, 임신한 여자, 아이, 그리고 일하기 싫은 남편을 등 떠미는 전형성이 있는데, 이걸 벗어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어떻게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죠.
윤
어떤 이야기예요? 그 전형성을 피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배경이 옛날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많이 봐왔던, 남자들이 사건의 중심이 되고 행동의 주체가 되는... 여기서도 어쨌든 여자들이 일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이야기잖아요. 빨래터에서 말들이 있고...
배
그래서 노동이라는 것을 좀 더 가져가려고 했어요. 빨래터에서도 빨래 바구니와 발레 동작. 남희도 나중에 똑같이 빨랫감을 들고 일을 하고. 이 사람이 겪는 고통과 힘듦이 동일하게 나의 삶 안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기를 원했어요. 남희가 상진에게 여기서 떠나지 말고 조금만 더 버티자, 라고 할 때, 삶의 무게를 같이 동일하게 이해하는 상태라면 남희가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텍스트 안에서 되게 나쁜 여자처럼 보였어요. 그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사고 이후 전개가 있으니, 어떻게든 약간 여자가 남자를 더 밀어 넣는, 그런 구도를 벗어나 그냥 동일하게 똑같이 새로운 곳으로 떨어져서 다른 환경에서 이겨나가려고 애쓰는데, 어려움이 생기는 상황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윤
선희 이야기 들어보니, 상진은 어땠나요?
노
그런 것 같아요. 뭔가, 일방적으로 못 해, 가야 해, 더 돈벌어야 해, 이런 게 아니라 자기도 남자들 하는 것처럼 똑같이 힘듦을 겪고 있다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무섭다’라고 느껴졌죠. 그걸 이겨내거나 숨기고, 들어가야 해, 하는 것들이. 그게 없이, 돈 벌어야해, 그렇게만 갔으면 누나가 말한 것처럼 나쁜 사람으로 보였을 것 같아요. 똑같이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달랐어요.

윤
“여기 들어오면 서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라는 대사가 시의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지금도 살기 팍팍하고 힘들고, 어쩐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채감을 갖게 되는 그런... 연계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로에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곳에 살고 있는 배경을 인물로서 어떻게 만났나요?
노
나라는 사람이, 노기용이라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밝고 명랑한 것들이 인물에 묻어나니까, 말도 깨끗한 것 같기도 한데 상진은 많은 걸 갖고 있고,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경험을 갖고 있는데 너무 깨끗한 것 아니냐, 라는 이야기가 다 있었어요. 주임 만날 때 좀 더 비열해지기도 하고, 살 집도 구해야 하니까. 그런 것들이 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배
그래서 노기용에게 상진을 맡겼어요. 왜냐하면 남희와 상진이 이 마을에 처음으로 떨어지는 거니까요. 신혼부부, 아이도 처음 같고요. 부부생활도 처음 탄광의 일도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서 뭔가 순수함 혹은 날 것 같은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요령 있는 사람보다, 깨끗한 상태로 이 마을에 와서 이 사람들이 오롯이 겪어내는 것들을 원하셨어요.
윤
작품을 통해 작가나 연출이 뭔가를 발언하고 전달하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어요. 그 작품을 함께하는 배우들은, 더군다나 이번 작품은 ‘세월호2017’이라는 기획 하에서 공연되는 작품인데, 이 작품을 배우들은 어떻게 감각하고 연결됐는지 궁금해요.
노
초반에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작품 처음 읽었을 때 작가님께도 많이 물었죠. 이 작품이 어떻게 세월호와 붙어있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했는데 까먹었어요.(웃음)
배
다른 작업 할 때보다는 세월호를 굉장히 염두 할 수밖에 없었어요. 보러온 관객 중 유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요. 세월호 팽목항과 너무나 유사한 광경들이 펼쳐지니까, 보러 오신 관객 분들이 그것을 현실에서 실제로 겪은 사람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까지 이 인물의 고통과 행동을, 수위를 선택할지 끝까지 계속 고민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래서 조금 헤맬 때 작가님이 연습실에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어요
윤
무언가요?
배
“현재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극 속 인물을 보면서 열등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죠. 이들의 삶을 통해 고귀한 가치를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고귀한 가치? 그게 뭘까? 세월호와 유사한 사고를 당하고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극에서 사고를 놓고 보상금 문제도 나오지만 극 안에서 내가 발견한 건 ‘연대’였어요. 매몰 사고를 당한 광부의 아내들이 함께 모여 남편들을 기다리며 “언니들이 있어서 좋아요.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에요”라고 말하는 그런 순간들. 내가 맡은 남희의 남편 상진은 프락치 역할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마음을 내비치니까 누군가가 “같이 가자”고 하는 것들, 쉽게 넘어가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그게, 지금이랑 조금 다른 가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더 의심하고, 선이 나뉘어 있고, 더 자기한테 집중을 하는 것이라면요.
노
공연에서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에요. 세월호, 하나의 이야기를 갖고 왔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사북을 가져와서 이야기 만들었는데 세월호와 연관 지어서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죠. 배우로서 나는 그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이게 다 만들어졌을 때, 아 그런 이야기가 되는구나, 느껴지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거의 생각 안 했어요. 오히려, <검은 입김의 신>이 아니라 실제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고민을 정말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완전 다른 이야기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보여주면 되겠다 싶었죠. ‘이렇게 라면 할 수 있겠다.’
윤
세월호를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작품의 극단적인 상황 안에 있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배우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지 못하는 탄광촌이라는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런 게 큰 과제였을 것 같아요.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들, 갱에서 일을 해본적도 없잖아요. 상상만 해도 힘들 것 같아요. 매일 그 분진을 마시고, 하는 상황들. 공연에서 그 현장감을 느낄 수 없다면 관객으로서 아쉬울 것 같더라고요.
노
많은 것이 그랬어요. 한 예로 막 아이를 가진 신혼부부 역을 맡았는데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내가 막 태어났을 때 어땠냐, 마냥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배
생경함이 있었죠. 마냥 좋고 행복하고가 아니라, 너무 새로운 존재. 우리가 신생아 사진도 보고 했는데 애들 눈동자가 엄청 까맣더라고요.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남편도 마찬가지로 생경하고, 두려워지는 것도 같지만요.
노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한테도 탄가루 얼룩이 보인다고 하고, 어떻게 자기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할까, 싶었죠. 사는 게 너무 힘들고, 탄광 안으로 가기 싫고, 그 어둠이 보기 싫고.
배
극장이 탄광이랑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옷 입고, 헬맷 쓰고 극장으로 들어오니까, 막장에서 일하는 그 현장감이 나기도 한 것 같아요. 배우들이 실제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경험하지 못했잖아요. 능숙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광부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에 정말 약속을 많이 걸고 반복 연습을 많이 했어요. 장비를 입는 것, 장갑 끼고 헤드라이트 확인하고 구호 외치는 것들이 다 순서와 방법이 있어요. 처음부터 동선, 대사, 타이밍 등 그래야 능숙해 보여요.

윤
<검은 입김의 신>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고통을 받지만, 오히려 함께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신이 돼주려는 사람들. 세월호 뿐만 아니라 많은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돼요. 어쩌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상상을 다해 공감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일인 것도 같고. 배우로서 느끼고, 감각하는 부분들을 듣고 싶어요.
노
상진이 대사로 하잖아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도 하고, 내가 따뜻하게 하니까 광부는 신이다, 그런 이야기도 하고. 남희도 덜 힘들게 해주면 좋겠고. 잘 살게 해주면 좋겠고. 덜 힘들다는 건 결국 힘들다는 거잖아요. 조금 덜 힘들 뿐이지. “시간이 흐르면 다른 세상이 될까? 광부도 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힘들고 안 좋지만,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지점이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렇게 되도록 나 자신도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싶었고요.
이건 다른 얘기인데, 인터뷰 한다고 버스 타고 오면서 생각해보니, 작품도 좋다는 평을 받았고 배우들도 좋다고 느끼고 있는데... 뭔가 공허하더라고요. 허무하고. 실질적으로 나는 뭐, 내 삶이 그렇게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버스타고 오는데, 다음에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하고 허무함을 느낄까. 뭘까. 왜 이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계속 하려고 할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배
나는 이 작업 하면서, 기용이처럼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 위로는 이제 내가 생명을 품고, 가짜 배지만, 배가 볼록하게 있으면 나한테 아이가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상상을 해보는 거죠. 이 무게감이며, 배가 팽창해 있는 기분이며, 그리고 태어남. 물론 솜으로 된 가짜지만 아이 얼굴과 온도와 그런 것들. 제일 큰 건 가정이 생긴다는 것? 부부가 된다는 것? 그것에서 나아가 사랑이 뭘까. 남희가 “당신 끝까지 사랑할테니까” 약속했는데, 그럼 사랑이 사라지는 걸까. 형태만 변형될 뿐 지속되는 걸까, 싶기도 하고요. 신이 도처에 있는 것 같다는 글을 본 적 있어요. 결국 인간이 인간에 의해서 큰 위로를 받고 그런 것들이 이제 구원처럼 느껴질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이 작품 안에서 나도 인물들이 하는 말들에, 배우 배선희가 밖에서 보는데 너무 사람이 크게 보이더라고요.
노
멋있네요. 한 사람이라도 위로를 얻었다니...
배
끝나고 엉엉 울었어요.
노
대성통곡했지.
배
그동안 연습하면서 울음을 참아야 했어요. 그래서, 그냥 드라마 안에서 인물로서 살아야 하니까, 사고 안에서 언니들하고 우는 것도 내가 우는 게 아니라 인물이 우는 것이잖아요. 배선희라는 사람은 계속 울음을 참다가 끝나고 나서 울었죠.
노
뽀글 머리 했던 누나도 항상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윤
기용 씨는 안 울었어요?
노
프락치 하면서, 왕따 되고, 세상에 완전 끝자락에 있고, 동료 만나서 오랜만에 대화하고 속 시원하다, 하고 가잖아요. 데모하자고 갈 때 울컥했어요.
윤
아까 선희 씨가 울었다고 해서 생각한 건데, 세월호 공연을 한 다른 동료들이 다들 데미지를 받는 것 같아요. 지금 선희, 기용 배우가 말했던 것도 비슷한 것 같고요. 좋은 뜻에서 하는 공연이고, 극적 재미와 배우들도 연출도 작가도 좋게 했는데, 사실 보러 오는 사람들은 항상 비슷한 사람들이잖아요. 이걸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었냐고 물으면, 할 말 없을 때가 많죠.
노
기억나는 대사가 하나 있어요. 세월호와 연관 있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데, 주임이 사고 이후 와서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있으면 구조 될 거다”라고 해요. 가만 있어, 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가 되는구나. 내뱉을 수 있는 말이구나. 많이 쓰는구나, 싶었죠. 그 말이 그 상황 뿐 아니라 공연 중에도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세상이 바뀌면 좋겠어요. “너 연극 왜하니?” 물어요. 만약 누군가 연극을 본 사람의 삶이 바뀌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바뀌다보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요.
배
저는 바뀌는 것 까지는 모르겠고... 계속해서 언급하고 수면아래 있는 것들을 얘기하는 책임감 같은 게 있어요.
윤
바뀐다기보다 기억하는?
배
그렇죠.

공연 중 노기용 배우가 다시 탄광으로 들어가기 전 전환 장면에서 관객에게 노출되도록 검은 칠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이 순간을 배선희 배우가 끝까지 바라보고 있다. 문득 지금 남희가 상진을 바라보는 것인지 배선희가 노기용을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배우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배선희 배우는 검은 칠을 하는 순간을 봐야한다고 생각했고, 볼 때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힘들기 때문에 더 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우는 어떠한 인물의 역을 맡지만, 결코 그 인물이 겪는 경험과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공감하려하고, 더 생각하는 것이다. 사건에 있어, 타인에게 있어,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든, 혹은 그저 잊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든, 그것만이 이 시대의 관객이자 배우인 우리가 내딛을 수 있는 첫발이 아닐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